산행일 : 2006.8.15 (화)
산행코스 : 용화사-용천령-숫용추-머리봉-문다래미-천황봉-쌀개봉-칼능선-은선폭포-오성대-심우정사-동학사-주차장
가지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의 기대를 이룰 수 없다면 현재 가지고 있는 자신의 것을 사랑해야 한다.
멋지고 그럴싸하게 보이는 남의 것에 대한 열망을 키우지 말고 거칠고 투박하지만 소중한 나의 현실로 돌아와야 한다.
주체적 삶의 실현이란 자기만의 내용물을 채워 가는 일이다. -윤광준의<잘 찍은 사진 한 장>중에서-
수용추와 암용추는 원형의 깊은 웅덩이로, 전설에 의하면 태고 때 살고 있던 용이 승천하면서 바위에 생긴 용의 무릎 팍 자리라고 한다.
7년을 굼벵이로 땅 속에 살다 날갯짓 2주일 만에 죽음을 맞는 매미들의 서글픈 이별곡이 무척 시끄럽다.
머리봉은 계룡산 용머리에 해당하는 곳으로 주변을 모두 아우르는 멋있는 조망터이다.
속살을 다 드러낸 천왕봉이 눈에 들어온다.
암릉이 용틀임하듯 다가오고, 눈앞엔 가야할 암릉이 까마득하게 다가오며 마치 험난한 인생여정처럼 느껴진다.
험한 암릉을 조심스레 내려서 뒤돌아보니 머리봉의 육중한 뒷모습이 눈앞을 가로 막아선다.
문다래미. 커다란 바위사이로 길이 나있다. 신도안이 도읍지가 되었을 때 자연스레 서쪽의 문이 되도록 자연 스스로 준비한 것이라고 한다. 믿어야될지 말아야될지... 경이롭다. 산바람이 힘들었던 산행을 위로한다.
문다래미 옆에는 호랑이의 모습의 범바위가 조용히 나그네들을 바라본다.
용추 계곡을 향하여 웅크리고 앉아 자신의 모습을 한껏 뽐내는 범바위의 위용이 멋있다.
통신시설 철조망 왼쪽으로 올라서 산제단을 지나 천황봉에 올라선다. 천단(天壇) 표지석이 반갑다.
심대평 충청남도지사가 세운 천단유래비가 보인다.
역사이래 충청인과 애환을 함께 한 계룡산은 첫 기록이 이미 백제때 보이는 명산이다. 통일신라시대에는 오악(五岳)중 서악(西岳)이라 불리었고 고려 이후 나라에서 영산으로 받들었던 이 산은 조선조 말기에는 신원사의 경내에 중악단(中嶽壇)이 세워져 오늘에 이른다.
계룡산 제일봉인 이곳 천황봉(天皇峰)에는 통일신라시대이래 조선조에 이르기까지 나라에서 제단(祭壇)을 설치하고 국태민안을 기원코자 하늘에 제사를 지내던 신성한 장소이다.
20세기 후반에 군사시설 및 통신시설이 설치되면서 본래의 모습을 크게 훼손되어 안타까운 지경이 이르렀으나 다행히 근래에 계룡 영산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각계각층의 인사들이 천황봉을 복원하자는 의지를 결집하여 충청남도에서는 1998년부터 2003년까지 시설물의 이전과 원상복구 작업을 추진함으로써 비로소 옛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새로운 21세기를 맞아 계룡산의 정기와 함께 충청인의 기개를 드높이기 위하여 천황봉의 옛 자리에 천단(天壇)을 다시 세우고 유래비를 세웠다.
왼편으로 거대한 암봉(岩峯)들이 병풍처럼 눈앞을 가로 막는다. 삼불봉에서 관음봉으로 이어지는 자연성능이다.
마치 산수화 속 풍경처럼, 암봉 능선과 벼랑에는 푸르름이 달라붙어 눈까지 시원하게 한다.
그 풍광에 아무 말도 못하고 서서 넋을 잃는다.
선경(仙境)이란 말은 이런 경우에 쓰는 단어다.
깊이 파인 골짜기도 넉넉한 모습으로 펼쳐진다.
신이 빚어 놓은 만물상이 연이어지는 스릴 넘치는 암릉이 산행의 백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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