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 2006년 6월 11일(일)
조령산(鳥嶺山·1,017m)은 충북 괴산군 연풍면과 경북 문경시 문경읍의 경계를 이루면서 이화령부터 조령3관문까지 펼쳐져 있는 산으로서 백두대간의 분수령을 이루고 있다. 조령산은 신선봉(神仙峯·967m), 마패봉, 주흘산(主屹山·1,106m) 등 경관이 수려한 산들로 주변이 이루어져 있으며, 조령산과 신선봉 사이 안부에는 그 옛날 영남지역 사람들이 서울로 올라 다니던 가장 유명한 큰 고개의 하나인 조령(鳥嶺)이 있다.
대전요금소를 들어선 버스는 중부고속도로 오창휴게소에서 약 20분 정도 정차하고 곧바로 증평톨게이트로 빠져나가 34번 국도를 타고 증평을 거쳐 괴산 방향으로 향한다.
보통 조령산 산행은 해발 529m의 이화령에서 산행을 시작하면 큰 부담을 주지 않고 정상에 오를 수 있어 이화령을 기점으로 많이 이용하나 오늘 산행은 절골마을을 들머리로 삼았다.
산행코스 : 신풍리∼기도원∼기수련원∼무덤∼능선∼촛대바위∼조령산∼신선암∼깃대봉입구∼조령3관문∼조령2관문∼조령1관문∼주차장
8시 50분 괴산군 연풍면 신풍리 절골마을 입구에서 하차하여 포장길을 따라 10분 정도 진행하면 데바다 기도원이 보이고 조금 지나 기(氣)수련원이 나오는데, 이 기수련원이 산행 기점이다. 임도를 따라 3-4분 오르면 오른쪽에 조그만 무덤이 나오는데, 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이다. 왼쪽은 절골을 통해 조령산 정상으로 가는 등산로이고 오른쪽 길은 촛대봉을 거쳐 조령산 정상으로 가는 길이다.
조령산 촛대봉 코스는 소나무와 아기자기한 암릉이 어우러져 멋진 경치를 즐기며 산행할 수 있는 코스다. 그리고 바위 옆으로 우회길이 나 있어 암릉등반 경험이 없는 초보자들도 산행이 가능하다.
촛대바위 쪽으로 들어서면 꾸준히 오르막길이다. 이마와 얼굴에 흐르는 땀으로 금새 손수건 하나가 흠뻑 젖고 길은 점점 가팔라진다. 울창한 나무 숲 사이사이 드러나는 희끗희끗한 선 굵은 암봉들은 코끼리의 상아를 연상케 한다.
30여분 오르고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지는 바위에서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달래고 잠시 쉬었다가 진행한다. 능선에 올라서면 오른쪽으로는 연풍면이 한눈에 바라보이고, 왼쪽으로는 조령산의 여러 능선들과 신선봉, 마패봉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몇 분 더 진행하여 로프 매달린 바위를 내려와 오른쪽으로 가파르게 내려섰다 왼쪽으로 크게 돌면서 오른다. 양옆의 멋진 소나무가 어우러진 완만한 바위 능선길을 조금 걷다보면 앞쪽에 우뚝 솟은 촛대바위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촛대바위는 조령산 신선암에서 암벽등반을 하면서 쳐다보면 꼭 뾰족한 촛대처럼 보여 촛대바위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약간 위험한 암릉길이고 이어지고 암벽 내리막 길이 가로막는다. 밀려드는 산행객들로 정체가 심하다. 밧줄을 이용하여 조심스럽게 내려선다.
10시 15분 촛대바위를 지나면서 길은 흙길로 바뀌고 편해진다. 20분 정도 지나 서서히 가팔라진다. 10분간 숨을 헐떡이며 오르면 이화령에서 오르는 길과 만난다. 넓은 헬기장이 있는 남봉에서는 조령산 정상이 코앞으로 다가선다.
10분 정도 능선길을 더 진행하면 비로소 백두대간 조령산이란 정상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는 조령산 정상에 닿는다. 산행 기점인 기수련원에서 2시간 소요.
5분간 휴식을 취하고 백두대간 길을 따라 능선길로 조금 내려가자 아주 전망이 좋은 곳이 나오는데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정말 감탄을 연발하게 한다. 암릉을 형성하며 북으로 계속 이어지는 백두대간의 분수령이 웅장하고, 동쪽의 주흘산(1106m)이나 부봉(980m)등 기암괴석의 암벽 봉우리들은 마치 한 폭의 빼어난 산수화이다.
10분 정도 내려서자 안부 갈림길이다. 왼쪽은 상암사터를 지나 절골로 내려가는 길이고 오른쪽으로는 제 1관문으로 향하는 가파른 길이다. 신선암봉까지 60분이라고 적힌 이정표가 서 있다.
안부에서 930봉(신선암)까지가 바로 조령산 산행의 백미 구간이다. 좌우로 수십 길 절벽을 형성한 칼날 같은 릿지를 걷기 때문이다.
10분 정도 진행하여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서니 다시 갈림길이다. 오른쪽은 새재 주막(1km) 왼쪽은 신풍(2.9km)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제 3관문(4km)은 그대로 직진하여 오른다.
12시 정각. 신선암에 도착한다. 표지석 대신 어느 산악회에서 만든 아크릴 표찰이 눈에 띤다. 신선암에 앉아 있노라면 마치 신선이 된 기분이다. 암반이 차지한 암봉인데다가 서쪽 능선상의 바위봉이 바로 신선암봉이기 때문이다. 넓은 바위에 둘러앉아 점심식사를 한다.
30분간의 점심식사가 끝날 즈음 빗방울이 떨어진다. 걸음을 서두른다. 완만한 내리막길은 점점 가파르고 험한 내리막길로 바뀐다. 10여분 정도 내려섰다가 곧바로 완만한 오르막길을 오른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되돌아보니 우뚝 솟은 신선암봉이 신록의 푸르름을 자랑하며 잘 가라 손짓한다.
오르락 내리락을 반복하며 길은 이어진다. 가끔씩 굵은 빗방울이 떨어지며 마음을 급하게 한다. 신선암을 떠난 지 2시간. 깃대봉입구 갈림길에 도착한다. 그대로 직진하면 깃대봉 오른쪽은 제3관문 1km 20분 소요 이정표가 서 있다.
백두대간 만남의 쉼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흥겨운 노랫가락이 점점 크게 들린다. 20분 정도 내려서니 조령 3관문이 보인다. 이곳은 문경새재의 정상이다.
조령약수
조선 숙종 34년(1708년) 조령성 구축시 새재 정상(해발 650m)에서 발견된 이 샘은 청운의 꿈을 안고 한양 길을 넘나들 때 타는 목을 식혀주던 역사 속의 명약수로 사철 솟아올라 옛날부터 이 물을 즐겨 마시면 장수하는 백수령천이라고 했다.
조령 약수로 목을 축이고 잠시 조령 3관문(조령관)을 둘러 본 다음 오른쪽으로 내려선다.
문경새재.
백두대간의 조령산과 주흘산 사이를 넘는 이 고개는 옛 문헌에는 초점(草岾)으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조령(鳥嶺)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 어원은 “새도 날아서 넘기 힘든 고개”, “풀(억새)이 우거진 고개”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또한 하늘재(麻骨嶺)와 이우리재(伊火峴) 사이에 있다고 해서 “새(사이)재” 혹은 새(新)로 된 고개라서 “새(新)재”라고도 한다. 새재는 임진왜란 뒤에 3개의 관문(제1관문 주흘관, 제2관문 조곡관, 제3관문 조령관)을 설치하여 국방의 요새로 삼았다.
이곳부터는 1981년 문경새재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잘 정리정돈 되어 있고 제2관문(조곡관)과 제1관문(주흘관)을 지나 주차장까지 볼거리가 많다.
조선시대 영남의 선비들은 죽을 쑬까 봐 죽령을 피했고, 추풍낙엽 떨어질까 봐 추풍령을 피했고, 오직 경사를 듣기 위해(聞慶) 이곳 새재를 지나갔다고 한다. 따라서 새재 곳곳에는 그 시절 전설들이 존재한다. 그들이 지나다니던 옛 길은 장원급제길, 금의환향길이라 불리며, 그 길 중간에는 심지어 책 바위라 불리는 그들이 소원을 빌던 돌무덤도 존재한다.
50분 후. 제2관문에 도착한다. 조곡관은 사극 때문에 낯익다. 관문 위에 병사들이 올라가 있고 밑에서 말을 탄 적군의 수장이 호령을 하던 그 장면이 눈앞에 선하게 펼쳐진다. SBS대하사극 연개소문의 촬영을 위한 소품 팀의 모습이 보인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휴게소에는 나들이 나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왼쪽으로 조곡폭포가 시원스럽게 물줄기를 뿜는다.
조곡폭포
주흘산 깊은 골의 맑고 청아한 물이 한 방울씩 모여 이루어진 이 폭포는 높이 25m의 3단 폭포로 영남 제2관문인 조곡관 앞에 위치하여 조곡폭포라 한다.
옛날 문경새재를 지나는 길손들이 이 길을 지나면서 한 개의 돌이라도 쌓고 간 선비는 장원급제하고, 몸이 마른 사람은 쾌차하고, 상인은 장사가 잘 되며, 아들을 못 낳는 여인은 옥동자를 낳을 수 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조선시대 임금으로부터 명을 받은 신·구 경상 감사가 업무를 인수인계 하던 곳으로 성종때 건립된 후 폐허가 된 것을 1999년 중창하였다.
새재는 조선시대에 영남에서 한양을 오가던 가장 큰길로서, 이 주막은 청운의 꿈을 품고, 한양길을 오르던 선비들, 거부의 꿈을 안고 전국을 누비던 상인들 등 여려 계층의 우리 선조들이 험준한 새잿길을 오르다 피로에 지친 몸을 한잔의 술로써 여독을 풀면서 서로의 정분을 나누며 쉬어 가던 곳이다. 옛 형태대로 되살린 것이라고 한다.
@조령원터
주흘산 조령관문 1관문과 2관문 사이에 위치한 조령원터는 고려와 조선조 공용으로 출장하는 관리들에게 숙식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공익시설이다. 문경새재는 역과 원이 일찍부터 발달하여 새재내에만 동화원, 신혜원, 조령원 등 3곳의 원터가 전해온다.
이곳은 2000년 KBS대하드라마 궁예가 원대한 꿈을 품고 세달사 절에서 나와 백성으로부터 민심을 얻어 장군으로 추대되어 사용한 산채 촬영지이다.
기름을 짜는 도구인 기름틀을 닮아 붙여진 이름으로 지름틀은 기름틀의 경상도 사투리이다.
조산은 말 그대로 인위적으로 조성한 산을 일컫는다. 풍수지리적으로 볼 때 공허하거나 취약한 지점에 조산을 만듦으로써 그곳을 보강하고자 하는 의식이 담겨있다. 마을입구나 경계 지점에 세워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한 곳이다.
30분 정도 더 내려서면 KBS드라마 왕건 촬영장 세트가 눈길을 끈다. 고려궁과 백제궁, 저작거리를 비롯한 한옥과 초가의 세트가 잘 보존되어 볼거리를 제공한다.
걷고 싶은 아름다운 길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게 부드러운 흙길은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고 계곡과 길 좌우에 여기저기 볼거리가 지루한 줄 모르게 한다. 제 1관문에 도착한다.
제 1관문을 지나 개울을 흐르는 시원한 물에서 족탕을 하며 산행에 지친 몸을 잠시 쉬어간다.
@장승
기다란 통나무나 돌 따위에 사람의 얼굴 모양을 익살스럽게 새겨 세운 것으로 신라시대부터 장생, 승, 장승, 장승우 등 여러 가지 명칭으로 불려지다가 1933년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 의하여 장승이 표준말이 되었다.
매표소를 나와 주차장에 도착하면서 약 8시간 동안의 널널 산행은 끝이난다.
산행 뒤풀이를 위한 찾은 은티마을은 산행에 지친 산꾼들의 쉼터로 대간종주자들에겐 추억의 장소이다. 바로 막걸리와 두부 때문이다. 마을 초입에 있는 가게는 입담 좋고 장사수완 좋은 아주머니가 만들어 파는 맛있는 두부를 안주 삼아 시원한 막걸리 한 잔을 걸치고 나면 산행의 모든 피로가 잊혀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