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 : 2006년 9월 26일(화)
산행코스 : 천태산(주차장 - 용추폭포 - 영국사은행나무 - 송판서묘 - 암벽 - 정상 - 헬기장 - 남고개 - 옥새봉 - 구수봉 - 할미성봉 - 주차장)
가는 길
경부고속도로 옥천IC -37번국도-옥천읍-4번국도-이원면-501번지방도-누교리 천태산입구-천태산주차장
2시 10분 천태산 주차장에 도착한다.
평일임에도 불구하고 주차장에는 관광버스가 여러 대 보이고 산행을 마친 사람들이 뒤풀이를 하고 있다.
간단한 산행 준비를 마치고 매표소(입장료 1인당 천원)를 지나 단풍나무가 터널을 이룬 산책로를 따라 걷는다. 길가에 핀 가을의 전령사 코스모스가 가을 냄새를 물씬 풍기며 가을의 운치를 더한다.
삼신바위를 지나 ‘충북의 설악 천태산계곡’이라고 적힌 커다란 표지석을 배경으로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길을 이어간다. 진주폭포로 향하는 길을 버리고 오른쪽 삼단폭포(옛 용추폭포)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삼단폭포를 지나고 이어지는 침목 계단을 올라 둔덕에 이르면 새로운 모습으로 전개되는 별천지가 나타난다. 제법 넓은 평지에는 논과 밭이 자리 잡고, 그 품안에 천년고찰 영국사가 고즈넉하게 자리하고 있다.
둔덕 갈림길에서 왼쪽은 망탑(250m)으로 가는 길이다. 눈길을 끄는 것은 마을사람들이 일구어 놓은 밭에 쳐놓은 철조망에 매달아 놓은 산악회의 리본이다. 산행 중 길잡이 역할을 하는 리본이 이곳에서는 산악회 리본전시용으로 탈바꿈 했다.
식수대에서 식수통을 채우고 은행나무 모습을 디카에 담는다.
천연기념물 223호인 영국사 은행나무가 하늘로 치솟고 있다. 높이가 31m, 가슴 높이 둘레만 11m이며, 나이는 대략 1000년쯤으로 추정된다. 천태산의 역사요, 터줏대감인 셈이다. 가지는 2m 높이에서 갈라져 그 중 하나는 땅으로 늘어져 새로운 줄기를 만들어내고 여기서 자란 새로운 나뭇가지의 높이도 5m가 넘는다. 국가의 재난이 있을 때마다 큰 울음소리를 낸다고 하니 더욱 신비감이 느껴진다.
가을에는 기암절벽의 천태산과 어우러져 절경을 만들어내며, 격년마다 많은 양의 은행이 열린다고 한다. 다행히 지난해 화마에도 가까스로 목숨을 건졌다.
영국사는 신라 문무왕 8년 원각대사가 창건하였고 그 후 효소왕이 육궁백관을 인솔하고 피난했다는 전설이 있는 옥새봉과 육조골이 있고, 고려문종 때 대각국사가 국청사라 한 것을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이곳에서 국태민안을 기원함으로써 국난을 극복하였다 하여 ‘영국사’라고 개칭하였다고 한다.
은행나무 아래에서 등산로가 갈린다.무엇이 그리 급한지 선두가 역사의 향기를 간직한 천년고찰 영국사를 들리지 않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논두렁을 타고 가다 누교당(한옥집)을 바라보면서 A코스(미륵길) 숲 속으로 빠져 들어간다. 매표소에서 약 30분소요.
A코스는 능선을 따라 정상까지 약 1시간 정도 소요되는 가장 가깝고 재미있는 길이다. 밧줄을 타고 오르는 경사 70도 정도 되는 바위코스도 있어 짜릿함도 맛볼 수 있다. 나무계단을 올라 A코스 들머리로 들어서자 불탄 흔적이 그대로 남아 당시의 참상을 전한다.
당시 관련 신문기사-지난 27일 오전 11시 30분 충북 영동군 양산면 가선리 야산에서 난 불은 인접한 천태산(해발 715m) 등 7.5ha영동군 추산)의 산림을 태우고 50시간 만인 29일 오후 2시쯤 완전 진화됐다.
이날 새벽 5시 30분 산림청과 군용헬기 17대를 앞세워 총공세에 나선 군과 소방당국은 오전 9시 30분께 큰 불길을 잡는 데 성공했으며 공무원과 군인 2300여명을 뒷불정리에 투입해 3시간여 만에 작은 불씨까지 모두 껐다.
사흘간 천태산과 주변 야산을 태운 불은 다행히 신라고찰인 영국사 인근 100m까지 불길이 접근했으나 군과 소방당국은 헬기 11대와 소방차 7대를 앞세워 1시간 넘는 사투를 벌이며 절을 지켰다.
한편 경찰은 이번 영동산불은 산에서 움막 생활을 하는 박모씨(52)가 자신의 움막 앞에서 밥을 해 먹은 뒤 불씨를 방치해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정확한 화인을 조사 중이라고 한다(대전일보 2005. 4. 29).
천태산 지킴이 배상우씨가 설치한 등산안내도함은 안타깝게도 쓰레기통으로 변해있다.
첫 번째 암릉이 나타난다. 밧줄이 설치돼 있어 그다지 까다롭지 않게 오를 수 있다. 곧바로 밧줄을 잡고 암릉을 올라 바위 전망대에 걸터앉아 거치러진 숨을 고르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산 아래 조망이 시원스럽게 펼쳐지며 영국사와 이웃하여 마을이름이 영국동인 마을의 모습이 평화롭게 느껴진다.
잠깐 동안의 휴식을 마치고 7-8분 더 오르면 거대한 벽이 가로막는다. 아찔한 높이. 무려 75m가 넘는 암벽코스다. 정상까지 남은 거리 620m 오른쪽으로 우회하는 안전코스가 있지만 모두들 밧줄에 몸을 의지해 암릉을 기어오른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돌아 오르면 정상 500m 이정표가 있는 바위 전망대에 닿는다. 이곳은 조망이 아주 좋다.
여기서부터 D코스로 하산하는 삼거리 갈림길까지 300m는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30분 천태산 정상에 도착한다. 충북 영동군 양산면 누교리에 자리한 천태산은 해발 714.7m로 그다지 높은 산이 아니지만 고려 천태종의 본산이었기에 천태산이란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특이하게 정상에는 방명록이 설치되어 있다. 한쪽 면에는 나옹선사의 "바람같이 물같이"라는 시가, 또 다른 한쪽 면에는 노산 이은상 시인의 "산악인의 선서"가 적혀있다. 방명록에 흔적을 남기고 커다란 천태산 정상 표지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한다.
정상표지석 뒤쪽에는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기 좋은 넓은 공터가 있다. 공터 오른쪽에 대성산 종주길이 보인다.
다시 200m를 되돌아 내려와 삼거리 갈림길에서 간식을 나누며 휴식을 취한다. 두부안주 삼아 한잔씩 나누는 인삼막걸리가 갈증과 허기짐을 한꺼번에 해결한다.
경사가 완만한 내리막길을 7-8분 내려서면 시원한 전망바위에 닿는다. 아름다운 주변경관이 한눈에 펼쳐지는 곳이다. 힘들게 오르느라 놓쳤던 풍광을 눈에 담으며 잠시 쉬어간다. 암벽위에 뿌리를 내리고, 천년 세월 동안 온갖 풍상을 겪으면서도 흔들림 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소나무에서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정상에서 약 30분이면 남고개에 닿는다. 주차장(0.9km)으로 이어지는 직진길을 버리고 오른쪽 산길을 치고 올라 옥새봉으로 향한다. 무슨 이유에선지 누군가 등산로를 폐쇄시켰다.
곧이어 요술램프처럼 생긴 바위 틈 사이를 지나고 소나무 숲 사이로 이어지는 전형적인 등산로를 따라 오른다. 3-4분 진행하여 옥새봉과 육조골로 갈라지는 지점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옥새봉으로 향한다. 등 뒤로 천태산이 멋진 자태를 뽐낸다.
푸르름을 한껏 뽐내야 할 나무들은 검게 그을린 채 앙상한 모습으로 지난해 봄 화마의 상처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너무나도 처참한 모습이다. 남고개에서 25분 정도면 옥새봉에 닿는다.
옥새봉은 공민왕과 함께 피난 온 노국공주가 옥새를 보관했다는 전설이 전해오며 이 길은 공민왕의 발길이 특히 잦았다 한다.
내친 김에 구수봉을 거쳐 할미성봉까지 진행한다. 능선을 타지만 조망은 시원찮다. 산불로 인함인지 고사리가 지천이다.
▲ 구수봉 가는 길에 돌아본 옥새봉
10분 정도 진행하면 구수봉이다. 나무에 매달린 조각난 이정표가 눈에 띤다. 다시 10분 더 진행하면 할미성봉에 도착한다. 등산객들의 정성이 담겨있는 작은 돌탑이 여러 기 있고 나뭇가지 사이로 가을 오후 햇살이 스며든다. 사과 한 조각으로 갈증을 달래고 하산 길로 들어선다.
할미성봉 뒤쪽으로 내려서면 뚜렷한 하산길이 이어진다. 선두가 얼마나 빨리 치고 내려서는지 30분 만에 주차장으로 떨어진다. 해가 산능선 뒤로 숨기 시작한다.
호탄교를 건너 갈기산과 월영산을 스쳐지나 어죽으로 유명한 원골식당에서 도리뱅뱅을 안주로 산행 뒤풀이를 하고 어죽으로 허기진 배를 채운 다음 아쉬운 작별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