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날 아침 7시.
때그락거리는 소리에 눈을 뜨니 피곤하지도 않은지 벌써 일어난 플러스님이 아침식사를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바다가 보고 싶어 뒷배란다 창문을 여니 비가 내린다. 우산을 쓰고 해안도로를 따라 용두암과 용연까지 산책을 다녀오니 아침식사가 준비되었다.
여행의 마지막날은 늘 허전함이 밀려온다.
10시 숙소를 나선다. 처로님이 기사겸 가이드를 해 주신다고 자청하여 훨씬 편한 여행이 되었다. 5.16도로 구불거리는 길 양편으로 나무가 숲을 이루었다. 절물오름(568m)이 있는 절물자연휴양림으로 접어들면 하늘을 찌를 듯한 쭉쭉 뻗은 울창한 삼나무숲이 시야에 확 들어온다. 삼나무 숲 사이로 난 도로는 드라이브 코스로도 많이 이용된다고 한다. 일명 제주도 아우토반으로 불리는 1118번 지방도로를 따라 남원으로 향한다.
어느 것이 진정 너의 모습이냐고 묻는다면 웃음으로 화답할 수밖에.
지금 보는 것이 전부이면서 또 그것만이 아니라는 선문답 같은 이야기가 있는 곳.
다가갈수록, 겪어볼수록 처음인 듯 여겨지는 설렘.
끝을 알 수 없는 오묘함이 바로 제주의 매력이다.
제주도는 돌의 나라다. 정말 돌이 많다.
돌하르방이 지켜주는 가운데, 돌로 담을 쌓아 만든 집에서 생활하고 돌로 밭에 담을 쌓고 키운 곡식을 먹고살며, 죽어서는 돌로 담을 쌓고 그 안에 묻힌다. 돌담은 얼기설기 쌓아올린 듯하지만 좀처럼 쓰러지지 않는다고 한다. 돌의 거친 부분들이 서로 엉커붙고 돌과 돌 사이의 빈틈으로 거센 바람이 빠져나가기 때문이란다. 방목된 말과 소들이 무덤을 훼손하지 못하도록 보호하기 위해 돌로 쌓은 산담 역시 눈길을 끈다.
도중에 잠깐 들렸던 수망리 감귤선과장은 감귤을 선별하느라 기계가 쉴새없이 돌아가고 처로님이 5천원어치라며 건네준 귤은 거의 10kg 한 박스였다.
해안도로로 들어서니 바닷물이 유난히 파랗다. 예전에 제주도 관광하면서 버스 기사가 하던 농담이 생각나 입가에 미소를 짓는다.
제주도 바닷물이 동해보다 더 파란 이유는 돌이 많아 부딪치면서 멍이 들었기 때문이고, 더 짠 이유는 해녀들이 물질하면서 그대로 볼일을 보기 때문이라고...
빗줄기를 뚫고 영화‘단적비연수’ 와 ‘이재수의 난’ 그리고 SBS드라마 ‘올인’으로 유명해진 섭지코지에 닿았다. 섭지코지라는 지명은 협지(狹地: 좁은 땅)라는 뜻의 ‘섭지’와 곶(串: 뾰족 튀어나온 곳)이라는 뜻의 ‘코지’가 합해진 제주 방언이다. 위치상으로는 남제주군 성산읍 신양리 해안에 돌출 되어 있다. 재작년에 태풍 ‘매미’가 제주 지방을 강타하고 지나가면서 파괴된 성당은‘올인 하우스’로 새로 태어나 입장료를 받고 관광객들에게 공개되고 있다.
등대가 있는 섭지코지의 끝으로 가는 길에는 바람을 막기 위해 쌓은 돌담 안에 노란 유채꽃밭이 있고 성산일출봉이 손에 잡힐 듯 다가선다. 나즈막한 구릉에서는 말들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한 폭의 풍경화 같다. 부슬부슬 내리던 가랑비의 빗줄기가 제법 굵어진다.
등대까지는 철계단이 마련되어 있어 쉽게 올라갈 수 있으며 등대 난간에 올라서면 기가 막힌 섭지코지의 해안절경이 바로 코앞에 펼쳐진다.
절벽 아래로 보이는 촛대 모양으로 삐죽 솟은 높이 15m의 바위는 용왕의 아들과 하늘나라 선녀에 대한 슬픈 짝사랑의 전설이 담긴 선돌로 일명 선녀바위다.
성산포에 닿으면 일출봉의 위용에 눈을 빼앗기게 된다. 제주도 동쪽 끝에 위치한 성산 일출봉(해발 182m)은 10만 년 전 제주도 수많은 분화구 중에서는 드물게 바다 속에서 수중 폭발하여 해저 용암분출로 생긴 화산으로서 99개의 작은 봉우리로 둘러싸인 천연 축구장 같은 분화구이다. 그 모습이 거대한 성과 같다하여 성산이라 불린다. 둥근 바위산 아래로 넓은 초원이 펼쳐져 있고, 바다 쪽으로 깎아지른 절벽아래 푸른 바닷물이 넘실댄다.
금강산도 식후경. 투덜이님이 제주도에 왔으니 해물뚝배기를 먹자고 제안한다. 사람들로 붐비는 일출봉 근처 성산포뚝배기 집은 SBS에 방영되었다고...
작은 전복한 비슷한 오분자기와 조개, 오징어, 새우 등 다양하고 신선한 해물과 야채를 넣어 된장으로 맛을 내며 해산물에서 우러난 국물이 된장 맛과 어우러져 시원한 맛을 낸다.
제주도 사람들의 진솔한 삶의 모습을 들여다보기 위해 들렸던 제주의 전통적인 5일장은 육지의 재래시장과 비슷했다.
제주도 별미라며 원조보리빵집에 들려 처로님이 사준 주먹만한 크기의 보리빵은 맛과 향이 어린 시절의 아련한 추억이 떠오르게 한다.
오후 3시. 숙소로 돌아와 잠깐 휴식을 취하고 짐을 챙겨 제주항 6번 부두로 이동한다. 처로님의 배웅을 뒤로하고 아이들에게 줄 선물로 감귤초콜릿을 구입했다.
4시 40분 목포행 뉴씨월드고속 훼리호는 10분 늦게 서서히 부두를 떠난다.
부르지 않아도 다가오는 파도, 보내지 않아도 잠시 떠나갈 줄 아는 파도, 그의 사랑법을 배우리라.
전국에서 몰려든 수많은 산악회원들에 점령당한 갑판과 선실은 질퍽한 술판과 고스톱판으로 왁자지껄하고 식당 또한 점령되어 시장을 방불케 한다.
기대했던 선상 일몰은 먹구름에 가려 멋진 장면을 연출한다.
일몰 감상은 다음 기회로 미루고 식당으로 향한다. 3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고 해서 주문을 하고 갑판 위에서 바람을 쐬고 다시 식당으로 돌아가니 주문한 통닭튀김이 나왔는데 밀려드는 손님들 때문에 시간에 쫓긴 탓인지 고기 속에 핏기가 그대로 남아있다. 다시 튀겨 달라고 해서 나온 닭다리에는 핏기가 여전히 남아있다. 다시 튀겨 달라고 주문하자 직원은 죄송하다며 미안해한다. 얼마 후 4조각 대신 2캔의 사이다와 함께 새로 한 마리가 제공되었고, 덕분에 안주가 남아 이슬이 한 병이 추가되기는 했지만 얼굴만큼이나 예쁜 직원의 친절이 흐뭇했다.
4시간 40분간의 항해 끝에 목포항에 닿는다. 목표 역에서 22시 30분발 새마을호에 몸을 싣자 모두들 잠에 취한다.
새벽 1시 30분 서대전역에서 아쉬운 작별을 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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