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일시 : 2005년 7월 30일(토)- 8월 3일(수) [4박 5일]
★동행자 : 한밭대학교 평생교육원 디지털사진과정 15명과 함께
★여행지 : 중국 북경/장가계
때론 일상의 삶으로부터 벗어나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는 것, 그것이 내게는 행복이고 즐거움이다.
여행의 길마다에서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여행 중일 때, 나는 다른 어떤 때보다도
내가 살아 있음을 가장 잘 느낄 수 있었다.
나는 여행이 좋았다. 삶이 좋았다.
류시화 <지구별 여행자> 중에서-
7월 30일(토) -첫째 날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참으로 축복이다.
여행 가방을 꾸릴 수 있는 나는 축복 받은 사람이며, 여행길에 나서는 신발 끈을 묶는 나는 정말 행운아이다.
아내의 배웅을 뒤로하고 엑스포 남문주차장에 도착하여 함께 여행 할 반가운 님들과 인사를 나눈다. 정오가 조금 지난 시각 버스는 출발하여 3시간을 달려 인천공항에 도착하고 그때부터 지루한 기다림이 시작된다.
[tip] 인천공항은 커피나 음료수 자판기가 없고 스낵코너에서는 커피 한 잔에 3-4천원 한다. 기다리면서 즐길 음료수나 간단한 간식을 준비하는 센스가 필요하다.
2시간 정도 기다려서 여행사 T/C와 미팅을 하고 항공권과 필요한 서류를 건네 받았다. 1시간 정도 더 기다려 출국수속을 마치고 면세점에서 간단한 쇼핑을 하고 CA(중국국제항공기 AIR CHINA)에 탑승한다.
7시 40분 드디어 비행기가 활주로를 박차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인천에서 북경까지는 1100km 약 1시간 반정도 비행한다. 간단한 음료와 기내식이 제공되고 9시 20분(북경시간 8시 20분 : 중국과의 시차 -1시간) 북경수도국제공항에 착륙한다.
[episode]30여분이 지나도 짐이 나오지 않는다. 항공기 화물칸 문이 고장나서 짐을 찾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들린다. 안내방송도 사과방송도 없다. 이게 무슨 황당한 상황인가. CA사무실로 찾아가 항의하자 1시간 반정도 기다리던가 아니면 호텔로 돌아가 기다리면 택배로 보내준다고 한다. 다른 단체 여행객의 인솔자가 항공사 매니저와 이야기를 나누더니 오늘 중으로는 짐을 찾을 수 없다고 한다. 우여곡절 끝에 북경현지 가이드의 도움을 받아 다음날 짐을 찾기로 한다. 중국 특유의 기질인 만만디를 넘어서 무책임한 항공사의 태도를 보면서 2008년 북경올림픽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심히 걱정스러웠다.
가이드의 뒤를 따라 밤 11시가 넘어서 공항을 빠져나와 버스를 타고 숙소인 로즈델호텔(중국에서는 호텔을 주점酒店이라고 한다)로 이동한다. 숙소에 여장을 풀고 가이드가 추천하는 꼬치구이점("고향집"이라는 한글 간판이 정겹다)에서 양고기와 소고기 꼬치구이 안주로 이과두주를 마시며 즐거운 시간을 가진 다음 새벽 1시가 되어서 다시 호텔로 돌아와 중국에서의 첫날밤을 맞는다.
7월 31일 (일) -둘째 날
여행지에서의 첫날밤은 마치 신혼 초야 같다. 쉬이 잠들지도 못하고 여독으로 인해 숙면도 어렵다. 설렘에 잠 못들이고 익숙하지 않은 밤을 뒤척이다 보면 날이 밝아온다.
5시 30분 눈을 떴다. 커튼을 열자 호텔 바로 앞에 공원이 보인다. 아침 산책을 나선다. 공원에서 아침 운동을 하는 중국인들이 매우 많다. 중국인들은 건강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한다고 한다. 호텔에서 제공되는 서양식 뷔페로 아침식사를 하고 본격적인 중국여행을 시작한다.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천안문 광장.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12억의 인구. 남한의 96배, 세계 육지 면적의 6.7%나 되는 거대한 땅덩어리. 서쪽 끝 상하이에서 동쪽에 있는 우루무치까지 기차로 여행한다면 5일 동안 쉬지 않고 기차를 타야 하는 거대한 대륙 중국. 북경은 인구로 보면 중경, 상해보다 적고, 삶의 질이나 도시의 번화함에서는 상해보다 떨어지지만 한 나라의 수도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는 북경, 과거의 영광을 바탕으로 새로운 도약을 꿈꾸는 북경은 2008년 올림픽의 유치로 지구상의 많은 나라 가운데 지금 가장 꿈과 희망에 부풀어 있다.
중국관광은 크게 3가지로 나눈다. 첫째는 보는 관광으로 계림이 여기에 해당하며, 둘째는 듣는 관광으로 서안이 여기에 속한다. 마지막은 걷는 관광으로 북경이 이에 해당한다. 중국 사람들은 입고 자는 것보다 먹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할 정도로 먹거리가 풍부하다고 한다. 먹지 못하는 음식이 없다고 한다. 양자강 이남은 쥐새끼 요리도 있다고 하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이 요리를 삼찍요리라고 한다고 한다. 젓가락으로 잡으면 아프다고 "찍"하고 초장에 찍으면 짜다고 "찍"하고 입 속에 넣으면 죽는다고 "찍"해서 삼찍요리라고 한다. 삼찍요리는 모든 가이드들의 단골 멘트인 듯 하다.
북경 관광에서는 천안문 광장이나 자금성의 규모에서 놀라고 그 넓은 광장과 고궁을 가득 메운 엄청난 사람들의 물결에서 다시 한 번 놀라게 된다.
북경은 3년 전 아이들과 여행한 곳이어서 낯설지 않은 곳이다. 가이드는 여행에 앞서 북경동인당천안문점으로 일행을 안내한다. 이곳에서는 중국한의사의 무료 진맥과 원하면 한약 처방을 받을 수도 있고 침을 맞을 수도 있다. 난 허리가 아파 침을 맞았는데 참으로 신기할 정도로 요통이 사라져 이후로 편안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천안문앞 대로는 장안대가(長安大街)라고 부른다. 그 길이가 50km 이며 전쟁시 비상활주로로 사용된다고 한다. 천안문 광장은 베이징의 중심이다. 1959년 건국 10주년을 기념하여 정비한 것으로 백만 명 정도의 집회가 가능하다. 국경일과 메이데이에는 천안문과 그 사방의 건물 지붕이 조명으로 장식되어 아름다운 야경을 즐길 수도 있다고 한다.
천안문 광장 남쪽에 우뚝 솟은 첨탑은 인민영웅기념비이다. 높이 약 38m로, 혁명을 위해 목숨을 바친 유명·무명의 전사들을 기리기 위한 것이다. 인민영웅기념비의 바로 뒤에 있는 높이 33.6m, 가로 세로 105m의 정방형 건물은 모주석기념당이다. 1976년 9월 9일에 사망한 모주석의 유체는 배례실의 수정관에 안치되어 있다.
광장 서쪽의 인민대회당은 중국 정치의 중심으로 기능은 다소 다르지만 우리나라의 국회의사당에 해당된다. 만인대회당이라는 중앙 홀은 말 그대로 1만 명이 집회를 할 수 있는 크기이다.
천안문 광장의 동쪽에 나란히 서 있는 건물 중 천안문에서 가까운 쪽이 혁명박물관이고, 그 옆이 역사박물관이다.
천안문은 명나라 영락(英樂) 15년(1417)에 건설되었다. 지어질 당시는 승천문(承天門)이라고 불렸는데, 전화(戰火)로 소실되어 1651년에 재건되었다. 천안문이라고 불리게 된 것은 그때부터이다. 고궁의 남문에 해당하며, 지붕은 이중으로 되어 있다. 기단(基壇)에는 5개의 통로가 있고, 중앙의 문은 황제만 출입하였다. 문 앞에 있는 5개의 백대리석 다리는 금수교(金水橋)라고 하는데 조각이 아름답다.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의 건국선언이 이 문 위에서 이루어져 중국 사람들에게는 의미가 깊은 장소이다.
자금성으로 불리는 고궁은 명, 청 시기의 황궁이다. 고궁은 현재 중국에서 보전되고 있는 규모가 가장 크고 가장 완전한 황궁건축물이다.
고궁의 정문인 오문은 높이 35.6m 이다. 아래는 높고 큰 벽돌 돈대이며 돈대 위에 승루 5개가 건조되어 있는데 오봉루라고 한다.
태화전 앞 동서 양측에 각각 구리사자 하나가 웅크리고 있는데 동쪽(오른쪽)의 것은 수컷이고 서쪽의 것은 암컷이다. 수사자는 오른발로 수구를 밟고 있는데 권력과 천하통일을 상징하며, 암사자는 왼발로 어린 사자를 쓰다듬고 있는데 자손들의 번성을 상징한다. '태화'란 우주간의 일체 사물의 상호관계가 조화를 이룬다는 뜻.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 석조 등을 차례로 지나면 건청궁에 도달한다.
건청궁은 내정의 첫 궁전으로서 명, 청 시기 황제의 침실이며 또한 일상 정무를 처리하던 전당이다. 건청궁 내부를 보면 적중은 보좌, 그 위에 "정대광명"이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청나라 때에는 강희 황제 이후 재위 황제가 생전에 황위 계승자를 선포하지 않고 내정한 계승자 이름을 써서 휼갑안에 봉해 넣고 편액 뒤에 보관해 두었다가 일단 황제가 서거하게 되면 즉시 휼갑을 열고 황제 계승자를 선포하였다. 보좌는 전부 금박을 입히고 루비와 에머랄드를 상감한 금보좌로서 팔걸이와 등받이는 모두 금룡으로 휘감았다.
교태전을 지나면 곤녕궁이다. 곤녕궁은 명대에는 황후의 침전이었으나 청대에 와서는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으로 사용하였으며 청나라의 강희, 동치, 광서 황제가 이 궁전에서 혼례식을 했다고 한다.
황제의 정원이였던 어화원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10여개의 정자와 측백나무, 기이한 꽃과 기암괴석으로 잘 가꾸어져 있다. 고궁 후문인 신무문을 빠져나오니 해자(적의 침입으로부터 성을 보호하기 위해 만든 강으로 호성강이라고도 부른다)가 보이고 해자를 만들기 위해 파낸 흙으로 생겨났다는 경산공원이 눈앞에 그 모습을 드러낸다. 경산공원은 원라나 때 만들어진 높이 92m의 공원으로 북경에서 제일 높은 곳이다. 역대황제가 산책을 위해 즐겨 찾던 곳이며. 명의 마지막 황제인 승정제가 이자성의 반란군을 피해 숨었다가 목을 매 자결한 곳으로 유명하다.
모두들 더위에 지치고 힘든 모습이다. 가이드의 뒤를 따라 식당으로 향한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은 탓에 단체관광객을 맞이하는 식당의 음식은 우리 입맛에도 비교적 잘 맞는다. 한국에서 수입한 김치인지 모르겠지만 김치가 아주 맛있다. 음식은 주로 볶음과 튀김으로 기름기가 많다. 식사 후 곧바로 차가운 생수를 마시면 배탈 염려가 있으므로 식당에서는 따뜻한 쟈스민차를 제공한다. 점심식사로 원기를 회복하고 천단공원으로 향했다.
천단공원은 명·청대에 황제가 하늘의 신에게 풍년을 빌던 곳이다. 명나라의 영락제(永樂帝)가 세웠고 건륭제(乾隆帝) 때 개축하여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둘레가 약 6km로 고궁의 3배 가량이며 현재는 공원으로 이용되고 있다. 보통 한국인들이 중국을 생각하면 만리장성, 자금성, 천안문 등을 떠올리지만 중국인들은 이 천단공원을 떠올린다고 한다. 중국인들이 모여 기체조, 카드놀이, 노래, 악기연주 등 취미생활을 즐기는 것이 눈에 띈다.
공원에 가득 찬 구룡백이라 불리는 측백나무는 나무줄기가 비비꼬이고 뒤엉켜 흡사 아홉 마리 용이 서리고 있는 것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오래된 것은 수령이 천년이 넘는 것도 있다고 한다.
기년문을 통과하면 중국 3대 건물의 하나인 기년전이 있는데 이곳은 황제들이 풍년을 기원하던 곳이라고 한다. 현재는 보수공사 관계로 관람을 할 수 없어 아쉬움이 남았다.
가이드를 따라 민속촌 옆에 위치한 차박사라는 간판을 건 쇼핑점으로 안내한다. 여러 가지 중국차의 효능에 대한 설명과 함께 맛을 보여주고 판매하는 쇼핑점이다. 북방에서는 주로 화차(모리화차)를 마시고, 남방에서는 잎차(우롱차, 녹차, 홍차)를 마신다고 한다. 이곳에서는 관광객에게 4가지 차 (거지차, 보이차, 우롱차, 자스민차)를 서비스하고 판매한다. 할인은 되지 않으며 대신 양을 많이 준다. - 차 마시는 방법은 차마다 약간씩 다른데 찻잔을 오른손으로 감싸 쥐고 바른 자세로 왼손으로는 차의 밑 부분을 받쳐들고 맛과 향을 음미하며 마신다고 한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단체관광객은 의무적으로 몇 군데 쇼핑점을 들려야하며 그렇지 않으면 가이드가 벌금을 물어야한다고 했다.
곧이어 실크제품을 판매하는 쇼핑점으로 이동한다. 때마침 패션쇼를 하고 있었는데 우리 일행들이 연신 후레쉬를 터뜨리며 카메라 셔터를 누르자 분위기가 한껏 고조된다.
쇼핑을 마치고 장가계로 가기 위해 북경공항으로 이동한다. 어제 찾지 못한 짐을 찾고 공항 2층으로 올라가 장가계로 향하는 비행기 탑승구에서 탑승을 기다린다. 30분 정도 지연된 후 탑승구를 1층으로 변경한다는 조그만 안내문이 붙는다. 한꺼번에 아래층으로 내려가려고 몰려드는 관광객들로 아수라장이다. 탑승 수속을 마치고 셔틀버스를 타고 비행기로 이동한다. 이제 일행들은 중국에 어느 정도 적응이 되었는지 당연스럽게 받아들인다.
[episode]오후 6시 30분 탑승이 끝나고 이륙을 기다린다. 조금씩 비가 내린다. 북경의 기상악화로 이륙이 잠시 지체된다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오후 8시 비행기는 이륙하지도 못한 채 기내식이 제공되고 2시간 30분이 지연된 9시가 되어서야 비행기는 서서히 활주로를 구른다.
장가계로 가는 비행기 안의 승객은 거의 한국인. 2시간 40분 동안 하늘을 나른 비행기는 밤 11시 40분 장가계 공항에 착륙한다. 장가계 공항은 지방공항이지만 여객기가 다수 활주로 부근에 있다. 장가계는 공항이 있는 영정구와 관광지로 개발된 무릉원구로 나뉜다.
[tip]공항 대합실에서 장가계 사진첩을 3천원, 5천원에 판매한다. 이 사진첩은 장가계에서 천원에 살 수 있다. 중국에서 쇼핑할 때 확실히 기억해 두어야 할 것은 무조건 가격을 깎아야 한다는 것이다. 심지어는 백화점에서 가격표가 붙어 있는 경우에도 깎으려고 마음만 먹는다면 깎을 수 있다. 중국인들은 외국인이라고 판단이 내려지면 무조건 비싼 가격을 부르는 경향이 있는데, 이것을 곧이곧대로 믿고 산다면 십중팔구는 바가지를 쓰게 된다. 보통 2배 정도의 가격에서 심지어는 10배 이상의 터무니없는 가격을 부르기도 한다. 특히 자유시장이나 관광지의 기념품 가게에서는 50~70% 정도 깎는다. 가격 흥정에서부터 물건의 진위여부까지 멋모르고 샀다가 낭패보는 경우가 많으므로 주의를 기울여야한다.
공항을 빠져 나가니 조선족 가이드가 기다린다. 주호림이라고 자기를 소개한 가이드를 따라 버스에 오른다. 10분 정도 이동하여 식당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나오자 문 앞에서 아이들이 옥수수와 자두를 들고 "천원"을 외치며 버스까지 따라 붙는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이곳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공부보다는 돈버는 것을 시킨다고 한다. 최근 3년 사이에 엄청난 한국인 관광객(년 간 삼십만명 정도)이 몰려 많은 발전을 했다고 한다. 무릉원으로 향하는 특급도로로 들어선다. 시멘트 포장이 되었지만 곳곳이 패이고 울퉁불퉁한 것이 형편없다. 가이드는 이 도로를 마사지 도로라고 우스갯소리로 소개한다. 새벽 1시가 넘어서 숙소인 백장협호텔에 도착하여 여장을 풀고 둘째 날을 마무리한다.
8월 1일 (월)- 셋째 날
7시 모닝콜에 눈을 뜬다. 샤워를 하고 호텔 1층 식당에서 뷔페식 아침식사를 하고 버스에 오른다.
중국 후난성(湖南省) 서북부에 위치한 장가계(장자지에)의 공식 명칭은 무릉원이다. 무릉원은 도연명의 ‘도화원기’에 등장하는 무릉도원에서 따온 말로 수려한 산세와 계곡, 그리고 기이한 동굴이 빚어내는 원시의 자연이 무릉도원을 닮은 데서 비롯됐다.
‘장씨의 마을’이라는 뜻의 장자지에가 역사에 처음 등장한 때는 BC 200년 경. 유방을 도와 한나라를 세운 장량이 토사구팽을 눈치 채고 도망쳐서 정착한 곳이 소수민족인 토가족(土家族)이 살던 장자지에로 장량은 유방의 군사를 피해 황석채의 바위 봉우리에서 무려 49일을 버텼다고 전한다.
외부와 격리된 채 살고 있던 토가족의 터전인 장자지에는 2200여 년이 흐른 후 이 지역 출신의 화가가 장자지에의 산수를 담은 그림을 발표하면서 세상에 처음 알려지기 시작하여 1982년에 중국 최초의 국가삼림공원(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중국 정부에 의해 본격적인 관광지로 개발되기 시작했다. 1992년엔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되면서 가장 많은 한국인 관광객들이 찾는 명소로 부상했다.
무릉원은 크게 장가계 국가 삼림공원, 삭계곡자연보호구, 천자산자연보호구 등 세 개의 풍경구로 나뉜다. 이들은 모두 인접해 있으며 이 전체를 다 보려면 최소한 4-5일 정도가 소요된다. 석영사암봉림을 주체로 동굴, 호수, 폭포가 어우러져 기이하고, 수려하고, 조용하고, 야생적이고, 험준함을 한데 모아 놓은 중국 산수화의 원본이며, 지구기념물이다.
48시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자유이용권(지문카드)을 구입하고 출입구에서 지문을 확인한 다음 줄지어 차례를 기다려 순환 버스에 오른다.
삭계곡자연보호구로 가려면 터널을 지난다. 버스가 터널을 지나자 눈앞에 펼쳐진 주변의 경관은 산세가 얼마나 수려한지 말로 형용할 수 없다. 길옆으로 깎아지른 절벽과 연이어서 늘어선 기기묘묘한 봉오리들 사이로 노송들의 자태는 정말 한 폭의 동양화다. 가이드 하는 말이 앞으로 펼쳐지는 풍광에 비교하면 이것은 아무 것도 아니란다.
[tip]관광지 곳곳에서 토가족들이 조그만 기념품을 제공하면서 한국돈 천 원짜리를 만 원짜리로 바꾸자고 조른다. 이들이 정식으로 은행에서 환전하는 것은 아닐 것이고 누군가에 의해서 암암리에 환치기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실제도 중국 위엔화보다 우리돈 천 원짜리가 더 보편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므로 장가계를 여행하기 위해서는 굳이 한국에서 환전할 필요가 없다.
모노레일을 타고 십리화랑을 감상한다.
이름 그대로 그림 같은 풍경이 십리에 걸쳐 있다는 의미인데 과연 그대로 이름에 걸맞게 절경이다. 길 양쪽으로 대자연이 그려놓은 산수화와 수묵화들이 두루마리 그림처럼 펼쳐지는 십리화랑은 수석들의 전시장이다. 집게손가락과 비슷한 식지봉, 약초 캐는 노인을 연상케 하는 바위, 세 자매를 닮은 삼자매바위가 줄을 잇는다. 일행은 삼자매바위 앞에서 내려 모두들 정신 없이 셔터를 눌러대며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가이드의 재촉을 받고 다시 돌아가는 모노레일에 몸을 싣는다.
[tip]모노레일은 갈 때는 왼쪽, 올 때는 오른쪽 좌석에 앉아야 풍광을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까마득한 바위 절벽에 수직으로 붙어있는 백룡엘리베이터가 눈길을 끈다. 220여 개의 계단을 숨가쁘게 올라서고 시원한 인공터널을 지나 엘리베이터에 탑승한다. 송곳 같은 석봉들이 병풍처럼 늘어 선 협곡에서 수직으로 치솟은 326m 높이의 백룡엘리베이터를 타고 1분 52초 만에 산 정상에 오르면 장자지에의 중심풍경구인 원가계의 절경이 숨을 멎게 한다.
[tip]토가족 아이들이 쟁반에 가득 군밤을 담아 "몽땅 천원"을 외친다. 현혹되지 말 것. 실제사면 한 움큼 정도 밖에 안 준다. 장가계의 서민들, 그들은 생계를 위해서라지만 그들의 물건을 파는데 한국어를 구사하고 한국인들과 의사소통에 지장을 받지 않는다.
협곡에서 솟은 바위 봉우리가 인간의 넋을 빼앗을 정도로 아름답다는 미혼대(迷魂臺)에서 내려다보는 원가계의 절경은 형언할 수 없는 조물주의 걸작품이다. 창조주의 위대함을 새삼 깨닫게 하는 거대한 자연 앞에서 언어는 힘을 잃는다. 400∼500m 높이의 뾰족 바위 수백 개가 버티고 있고,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가 아슬아슬하게 절벽에 걸려 있으며, 봉우리 아래로는 끝이 보이지 않는 협곡이 두루마리 그림처럼 펼쳐진다.
장자지에는 3억8000만 년 전 해저가 융기하면서 생겨났다. 처음엔 사암으로 된 평평한 땅이었으나 오랜 세월 풍화작용을 거치면서 규암으로 굳어져 오늘날의 모습으로 변했다고 한다.
1992년 UN이 정한 자연유산으로 선정이 되었으며, 중국의 첫 국가 삼림 공원인 무릉원 관광구가 되었다. 장가계의 총 인구는 약 153만 명으로, 인구의 70%가 토가족이다. 토가족은 한족이 부른데서 이름이 유래되었는데, 대부분 깊은 산중에서 사는 소수민족으로 산적의 후예들이다.
갈림길에서 천하제일교까지 1.1km는 조물주의 걸작품에 정신을 차릴 수 없다. 후화원으로도 불리는 원가계의 천하제일교는 높이 300m의 커다란 바위 두 개가 자연스럽게 연결된 길이 20m의 천연석교로 마치 구름 위를 걷는 듯 황홀경에 빠진다. 이곳을 다녀간 연인이나 부부들이 마음 변치 말자고 약속하며 다리 난간에 매달아 놓은 무수한 자물쇠가 이채롭다.
중간 중간 상점이 있어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조선족이 운영하는 가게에서 수박과 냉커피(한 잔에 천원)를 마시면서 휴식을 취한다. 이 곳에서는 냉막걸리도 판매한다. 주인 아주머니의 후한 인심이 관광객들을 즐겁게 한다.
산 속 원가계 마을에서 먹은 현지식 점심식사도 비교적 우리 입맛에 맞는다. 김치가 보이고 고추장이 보이고 반찬도 많고 더 더구나 반찬들이 한국적으로 식단이 꾸며져 있다. 식단을 한국적으로 가져간 경영전략의 하나는 90% 이상이 한국고객이기에 고객을 중심으로 한 피하지 못할 흐름이라 생각했다.
점심 식사 후 천자산으로 이동하는 버스 안은 입담 좋은 일행들에 의해 웃음꽃이 핀다. 만만디. 중국 여행에 조금씩 익숙해진다. 도로는 매우 울퉁불퉁하고 좁다. 관광객을 태운 순환버스 외에는 차량 통행이 거의 없다.
약 1시간 정도 이동하여 천자산에 도착한다. 천자산은 무릉원의 서북쪽에 위치해 있으며 주 봉우리에 오르면 무릉원의 산봉우리와 계곡이 한 눈에 들어온다. 중국 10대 원수인 "하룡장군"을 기념하기 위한 하룡공원은 중국 근 백년이래 가장 큰 하룡장군 동상이 있다.
계단을 내려서면 '알후'라는 악기로 아리랑과 도라지타령 등 한국민요를 연주하는 토가족을 만날 수 있다. 새로운 자연과 문화, 그리고 그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아이에게 젖을 물리고 천 원짜리를 만 원짜리와 바꾸기 위한 젊은 아이 엄마의 안쓰러운 모습에서 삶의 힘겨움과 측은함이 느껴진다.
‘천대서해’는 황제를 호위하는 천군만마의 기세로 솟은 봉우리가 운무에 휩싸이면 바위 숲이 바다를 이룬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혹은 송곳 같고 혹은 붓을 닮은 수천 개의 석봉들은 하늘을 찌르고, 흙 한줌 물 한 방울 없는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는 올곧은 자세로 푸름을 자랑한다.
맞은 편 계곡에선 선녀가 꽃바구니를 들고 세상에 꽃을 뿌리는 형상의‘선녀헌화’라는 바위가 은근한 유혹의 눈길을 보낸다.
천자산의 기암절벽 중 특히 눈에 띄는 어필봉은 바위 봉우리에서 자란 소나무와 어우러져 마치 붓을 거꾸로 꽂아놓은 형상이다. 높고 낮음이 들쭉날쭉하지만 더할 나위 없이 조화로운 장관이다. 전쟁에서 진 황제가 천자를 향해 쓰던 붓을 던졌다고 해서 어필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단다.
전통복장을 한 토가족 아가씨들과 기념 사진을 촬영한다.
[tip]이동하려하니 웬 중국청년 하나가 다가와서 한국말로 '이쁘다, 한국돈 천원이다' 라면서 열쇠고리를 사라고 보여주는데 어느틈에 일행의 얼굴 사진을 찍어 열쇠고리에 넣어 보여 준다. 누가 중국인들을 '만만디' 라고 하면서 느리다고 말했는지 수정해야 할것 같다. 중국인들 돈 벌이 되는 행동은 '귀신처럼 빠르다' 라고... 토가족 아가씨들에게 1인당 천원의 모델료를 지불하면 함께 기념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좋은 추억이 될 수 있으므로 꼭 권하고 싶다.
천자산은 1997년에 길이 2㎞의 삭도(케이블카)가 설치되면서 손쉽게 정상을 오르내릴 수 있게 됐다. 케이블카를 타고 창 밖으로 펼쳐지는 협곡과 숲, 그리고 수천 개의 석봉 등 상상조차 힘든 비경을 감상하면서 하산한다.
"人生不到張家界, 百歲豈能稱老翁?(사람이 태어나서 장가계에 가보지 않았다면, 100세가 되어도 어찌 늙었다고 할 수가 있겠는가?)" 라는 말이 있다. 그야말로 장가계가 얼마나 아름다운 곳인지를 잘 표현해 주는 말이다.
[episode]케이블카에 함께 탑승한 아가씨와 이야기를 나누던 어느 분이 삼각대를 놓고 내려 가이드와 함께 찾으러 다시 정상으로 올라간 사이 일행은 기념품을 파는 상인과 흥정이 붙는다. 천원에 5개라던 호루라기는 13개까지, 심지어 천원에 5개라던 어떤 기념품은 25개까지 살 수 있었다.
호텔 식당에서 여유로운 저녁 식사를 한다. 회전테이블에 모든 음식이 올려지면 테이블을 돌려가며 앞접시에 음식을 덜어먹는 데, 술잔을 채워 테이블에 올려놓고 테이블을 돌려 자기 앞에 오면 마시는 게임을 즐긴다.
저녁식사후 호텔 내 몽환극장에서 쇼를 관람한다. 토가족의 차력, 마술, 서커스 등 1시간 가량 이어지는 쇼는 여행 중 맛보는 또 다른 즐거움 중의 하나이다. 특히, 5살짜리 쌍둥이자매의 서커스에 많은 사람들이 박수갈채를 보내지만 왠지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쇼가 끝나고 천 원짜리 한 장씩을 손에 쥐어지며 미소로 인사를 나눈다.
쇼 관람을 마치고 발 마사지를 받았다. 따끈한 약초 물에 발을 씻은 다음 마사지 크림을 바른 후 지압을 해 주는데 받고나면 묵직했던 발이 피로가 싹 풀리면서 기분이 좋다. 팁으로 3천원을 주었다.
우리 일행이 묵은 백장엽 호텔은 4성급으로 토가족의 특색과 현대적인 건축을 결합시킨 무릉원관광구에서는 가장 좋은 호텔이라고 한다. 호텔 앞에는 4개의 조그만 상점이 자리잡고 있는데 모두 한글 간판을 달고 있다. 쇼핑을 위해 가게로 들어서면 어디서나 종업원이 비아그라 있다고 이야기한다. 앞서 다녀간 한국인 관광객들이 어떤 형태의 쇼핑을 했는지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
숙소 바로 옆 백화점 간판을 건 가게 앞에 모여서 술 한잔씩 나누며 이야기꽃을 피운다. 침대에 누우니 아내와 아이들, 함께 있을 때는 잊곤 하는 그들의 소중함이 떠나온 자리에서 순간 절감되어 그 마음을 엽서에 담는다.
8월 2일(화)-넷째 날
6시. 모닝콜에 눈을 떴다. 샤워를 하고 짐을 챙겨 여행 가방을 정리한 다음 식당으로 향했다. 뷔페식 아침 식사 후 호텔 로비에 짐을 맡기고 버스에 오른다.
[episode]전날 구입한 지문카드를 미쳐 챙기지 못한 교수님은 30달러의 거금을 주고 다시 지문카드를 구입해야했다.
금평계곡으로 향하는 갈림길에서 카메라에 몇 장의 사진을 담고 금평계곡을 관광하는 일정을 변경하여 추가 요금을 지불하는 조건으로 양가계 관광을 하기로 한다. 백룡엘리베이터를 타는 곳까지 도보로 이동하며 주변 절경을 카메라에 담느라 모두들 분주하게 움직인다.
양가계로 향하는 입구에 들어서자 가마꾼들과 가방을 들어주겠다는 아주머니들(짐꾼)들의 호객이 줄을 잇는다. 양가계의 절경을 감상하려면 도보로 왕복 1시간 정도 걸어야한다.
좁은 바위틈을 지나 힘겹게 산을 오르면 어룡채의 기가 막힌 비경이 펼쳐지며 오를 때의 모든 고통을 한방에 날려버린다. 모든 봉오리들이 어쩌면 그렇게도 하나하나가 다 기기묘묘한 형상으로 서있는지 억겁의 세월동안 풍상을 견뎌온 자국인지 신비한 형상의 수많은 봉우리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바라본 풍광은 아름다움을 넘어 경이롭기까지 하다. 선계가 따로 없다. 위대한 자연 앞에 인간이란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절감한다.
돌아오는 길에 일행 중 몇몇은 문화체험을 위해서 가마를 탔다. 대나무로 의자를 만들어서 의자에 사람이 앉고 앞뒤에서 두 명이 메고 다니는데 혼자 걷기도 힘든 가파른 오르막길이나 내리막길을 잘 다니는 것이 신기하기만 하다. 의자는 대나무로 만들어서 탄력성이 있어 보인다.
[tip]가마 체험은 바가지 요금을 당할 수 있으므로 가마를 타기 전에 가이드를 통해 가격을 협상해야한다.
돌아오는 길은 주차장까지 만원정도 한다.
이곳 원주민들은 배가 나오거나 뚱뚱한 사람을 찾아 볼 수가 없다. 가이드의 설명에 의하면 생수와 차를 즐기고 운동량이 많기 때문이라고 한다. 우리도 한 번 생각해 볼 대목이다.
점심식사를 위해 버스를 타고 식당으로 이동한다. "위하여"라는 한글로 된 식당 간판이 눈길을 끈다. 2시가 넘어 늦은 식사를 마치고 식당 옆에 붙은 쇼핑점 아세아보석관에 들려 30분간 쇼핑을 하고 다시 태평양진주점으로 이동한다.
[tip]쇼핑점에서는 가능하면 상품을 구입하지 않는 것이 좋으나 꼭 구입하고자 하면 정가의 2-30%가 적정 가격이다.
버스를 타고 마지막 황룡동으로 향한다. 황용동(黃龍洞)은 지각운동으로 이루어진 석회암 용암동굴로서 상하 4층으로 되어 있고 아래 2층에는 4계절 시내가 흘러내리는 수동이다. 수직고도는 160m, 동굴길이는 15㎞이다. 동굴 안에는 수많은 기이한 종유석들이 천태만상을 보여주고 있다. 영국 황실 지질탐사대는 황용동은 "세계 동굴학의 모든 내용을 망라하고 있어 세계적으로 지금까지 발견된 동굴 중에서도 으뜸이다."고 평가했다.
호텔에 보관해 둔 짐을 찾아 공항으로 향한다. 공항까지는 50분 정도 소요된다. 공항 근처 식당에서 마지막 저녁식사를 마치고 북경행 비행기를 타기 위하여 장가계 공항으로 이동한다. 공항은 매우 작아 대전역을 연상시킨다. 가이드와 아쉬운 작별을 나누고 공항 검색대를 통과하여 2층 탑승구로 올라서니 한국인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episode]커피 자판기가 있는 상점에서 자판기 커피 한 잔에 천원을 받는다. 생수나 녹차 역시 한 병에 천원이다. 이곳은 무조건 천원을 받는다. 중국 위엔화로는 3원(우리 돈 400원정도)인데 거스름돈이 없으니 무조건 한국돈 천원을 내라며 위엔화를 내면 종업원이 신경질을 부린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 이곳은 중국 속의 또 하나의 한국이다.
역시 1시간 동안 지연되고 나서야 탑승구를 빠져나가 비행기까지 걸어가서 탑승한다. 장가계 공항을 이륙하자 음료수와 다과가 제공되는데 형편없다. 2시간 30분 간 비행하고 새벽 1시가 넘어 북경 공항에 착륙한다. 가이드와 만나 호텔로 이동하여 마지막 밤을 보낸다.
8월 3일(수)-마지막 날
새벽 4시.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이 깨어 문을 여니 중국에 연수차 와 있던 이선생이 찾아왔다. 반가운 인사를 나누고 택시(기본요금 11위엔)를 타고 한촌설렁탕 집(24시간 문을 여는 한국식당)으로 자리를 옮겨 수육을 안주로 경주(京酒-북경을 대표하는 술 38도)한 병이 다 비워갈 즈음 갑자기 폭우가 쏟아진다. 이선생의 설명에 의하면 2008년 베이징하계올림픽을 위하여 무더위를 식히기 위한 인공 강우를 실험중이라고 한다. 호텔로 돌아와 이선생과 작별 인사를 나누고 샤워를 한 다음 짐을 챙겨 식당으로 내려간다. 먹는 둥 마는 둥 아침 식사를 마치고 버스에 오른다.
비가 와서 오고 가는 길이 많이 막히고 잘못하면 비행기 시간에 도착하지 못한다며 용경협과 만리장성 관광 대신 수족관 관광을 종용하는 가이드에게 예정된 일정대로 진행해 줄 것을 이야기하자 마지못해 용경협으로 향한다. 태가촌에서의 식사 일정도 빼먹더니 만리장성 일정도 변경하여 케이블카 요금을 착복하려는 가이드의 성의 없는 모습에 약간 화가 치민다.
북경 시내에서 빠따링(팔달령)까지는 70km. 버스는 고속도로를 1시간 20분 정도 막힘 없이 달려 팔달령 톨게이트를 빠져나가 20분 정도 더 진행하여 용경협 주차장에 도착한다. 주차장에서 용경협 입구까지는 우리나라 옛날 다마스 같은 빵차를 타고 이동한다. 이것은 지역주민들의 일자리 창출과 소득분배를 위한 정책의 일환이라고 한다.
출입문을 들어서 눈을 들어 산등성이를 보니 '용경협(龍慶峽)'이라는 거대한 붉은 색 글자가 한 눈에 들어온다. 등소평 사후 중국의 지도자인 강택민(姜澤民)의 이름도 함께 있다. 명나라 때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용경협은 계림(桂林)에 있는 경치를 그대로 옮겨 놓아 '소계림'이라는 별명을 지닌 곳으로 수 천리 떨어져 있는 계림에 갈 수 없는 어느 황제를 위해 협곡을 막아 만들어 놓은 절경이라고 전해지는데 중국 정부가 관광명소로 개발한 곳이다.
협곡을 따라가는 모퉁이 길을 돌아 나가면 거대한 댐에서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가 장관이다. 승천하는 두 마리 용으로 만든 돌기둥 문을 통과하여 용꼬리 부분으로 들어가면 에스컬레이터가 기다리고 있다. 대여섯번 에스컬레이터를 갈아타고 용 주둥아리 부분으로 빠져 나와 터널을 지나면 절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용경협 선상 유람으로 소요되는 시간은 약 1시간 정도. 배를 타고 절경 사이를 유유히 지나며 감탄을 연발한다. 양쪽 벼랑의 깎아지를 듯한 기세가 매우 장관이다. 우산을 받쳐들고 열심히 눈 사진만 찍다보니 배는 어느덧 처음 떠난 선착장 건너편에 닿는다. 용경협을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동굴을 통과해야 한다.
버스를 타고 만리장성으로 이동한다. 만리장성은 현재 관광객에게 개방되어 있는 곳이 여러 곳 있지만, 북경에 가서 구경하게 되는 만리장성은 대부분 빠따링(八達嶺) 장성이다. 사통팔달(四通八達)로 만리장성이 이어지는 이곳은 중국인과 외국인들이 많이 찾아 일년 내내 붐비는 곳으로 '교통이 사통팔달한 고개'라는 의미로 팔달령이라 이름 지어졌다고 한다.
중국에서도 "만리장성에 가보지 않은 사람은 사나이가 아니다"(不到長城非好漢)라는 속담이 있다. 그래서인지 장성어귀에는 중국인들이 넘친다.
빠따링 장성은 매표소 입구에서 보았을 때 오른쪽이 여판(女坂)이고, 왼쪽이 남판(男坂)이다. 이렇게 이름 붙여진 이유는 왼쪽인 남판 쪽이 오르기가 더 힘들기 때문이란다. 그러나 만리장성에 설치되어 있는 케이블카 덕분에 좀 더 편하고 색다른 여행을 할 수 있다.
'달에서 보이는 유일한 인조 건축물'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 만리장성(萬里長城). 험한 산의 등성이를 따라 끝없이 이어지는 성벽의 장엄한 곡선은 직접 눈으로 확인해 본 사람만이 그 감동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성곽에서 건너다보게 되는 만리장성은 묘한 긴장감과 흥분을 가져다준다.
만리장성은 진시황제가 중국을 통일한 후 30만의 군사와 수백만의 농민을 징발하여 대량의 벽돌을 쌓아 장성을 연결해 현재의 장성 원형를 만들었다. 그 길이가 1만여 리에 달해서 만리장성이라고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기마민족의 침입을 막을 목적으로 만들었는데, 동쪽의 기점은 보하이만(渤海灣)에 면한 산하이관(山海關)이고 끝나는 지점은 실크로드의 입구인 자위관으로 총길이는 6천km이다. 만리장성의 길이는 실제로 1만리를 넘어 1만2천리나 된다.
[episode]만리장성 위에서 촬영을 마치고 빗속에서 컵라면을 안주 삼아 마신 56도의 이과두주 맛은 기억에 남는다. 그 덕분에 권선생님은 삼각대를 미쳐 챙기지 못하고 내려오는 케이블카를 탔다. 모두들 피곤한지 식당으로 이동하는 버스 속에서 곤히 잠들고 그 모습을 누군가는 열심히 카메라에 담았다.
중국에서의 마지막 점심식사는 3년 전 들렸던 커다란 쇼핑센터 옆 식당이었다. 음식은 매우 푸짐했다. 밀전병에 싸 먹는 북경오리구이와 북경을 대표하는 38도 술 경주는 끝나 가는 여행의 아쉬움을 달래기에 충분했다. 쇼핑에서 마지막 쇼핑을 끝내고 공항으로 이동한다. 가이드의 작별 멘트가 이어지고 그 사이 버스는 공항에 도착한다.
이제 모든 일정이 끝나고 귀국하는 일만 남았다. 4박 5일의 시간이 금방 흘렀다.
[tip]출국장에 들어서기 전 세관신고서를 작성하여 제출해야 한다. 티켓팅을 서두르면 좋은 좌석을 얻을 수 있고, 면세점에서 여유 있는 쇼핑을 즐길 수 있다.
난 머지 않아 또 다시 일탈을 꿈꿀 것이다.
항상 내 삶의 동기를 끊임없이 부여해서 항상 변화할 수 있고, 내 가슴 깊숙이 간직하고 있는 낭만이 숨쉴 수 있도록 늘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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