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 2006년 1월 8일 (일)
산행코스 : 덕유산(삼공리매표소-백련사-향적봉-설천봉-칠봉-인월담-매표소-주차장)
눈꽃 화려한 겨울 산행이 그리웠는지... 목마른 사람이 우물을 판다고, 몇몇 교우들이 산행을 같이하자고 조른다. 못 이기는 채 승낙을 하고 새해 첫 번째 일요일을 산행일로 잡았다.
소한이 지난 지 3일. 다행히 매섭던 추위도 조금 누그러지고 산행하기에 그지없이 좋은 날이다. 모두들 오랫동안 산행을 쉰 탓에 어렵지 않은 코스를 원한다.
올 겨울은 전라도 지방에 유난히도 눈이 많이 왔던 터라 덕유산에는 아직도 눈이 쌓여 있을 거라는 기대감으로 덕유산을 택했다.
덕유산은 전라북도 무주군과 장수군, 경상북도 거창군과 함양군에 걸쳐 있다. 주봉인 향적봉(1614m)을 중심으로 적상산, 두문산, 거칠봉, 칠봉, 중봉, 삿갓봉, 무룡산, 남덕유산 등의 해발 1000m가 넘는 고봉들이 덕유산맥이라고 일컫는 작은 산맥을 이루고 있다. 산세가 웅장하고 계곡미가 수려한데다 각종 동식물들이 분포돼 있어 지난 1975년 2월 국립공원으로 지정됐다.
덕유산 국립공원을 대표하는 구천동은 33경의 절승을 품은 계곡으로 유명하다. 장장 70여 리(28km)에 이르는 계곡을 거슬러 오르면 제 1경인 나제통문에서 제 32경인 백련담에 이르기까지 기암괴석 폭포 연담(淵潭)과 깨끗한 계류, 울창한 숲 등이 서로 잘 어우러진 경관을 감상할 수 있다.
덕유산의 정상 향적봉은 구천동의 제 33경인데, 이곳은 사계절 중에서도 겨울철의 풍광이 가장 웅장하고 수려하다. 덕유산은 남부지방에 솟아 있으면서도 서해바다의 습한 대기가 이 산을 넘으면서 뿌리는 눈이 많기 때문에 최적의 겨울산행지로 인기를 끌고 있다. 그래서 눈이 푸짐하게 내린 날이면 향적봉 기슭에 무리 지어 서 있는 구상나무와 주목마다 화사하게 피어난 눈꽃이 장관을 연출한다.
7시 40분 예정보다 10분 늦게 출발하여 유성톨게이트 앞에서 기다리던 혜숙님과 성우님을 태우고 유성톨게이트로 진입하여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질주한다.
무주요금소를 나와서 좌회전한 다음 19번 국도를 타고 진안방면으로 8-9분 달려서 만나는 회차로에서 좌회전하면서 49번 지방도로로 갈아탄다. 치목터널을 지나 구천동터널로 들어서자 아뿔싸 일요일 스키를 즐기려는 사람들의 차량으로 꼼짝하지 않는다. 30분을 소비하고 터널을 빠져나가 이어지는 37번 국도로 타고 무주구천동 주차장에 도착한 시간은 9시 40분. 간단한 산행 준비를 마치고 화장실에 다녀온 후 집단시설지구를 지나 삼공리 매표소로 향한다.
오늘 산행은 삼공리 삼공매표소에서 무주구천동과 백련사를 거쳐 주봉인 향적봉에 오르는 3시간 정도의 가장 보편적인 코스를 택했다.
9시 50분 삼공리 매표소를 지나 독일가문비 나무가 늘어선 포장도로를 따라 무주구천동계곡을 끼고 백련사로 발걸음을 옮긴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든 산행객으로 백련사로 향하는 길은 비좁기만 하고 길을 따라 이어지는 구천동 계곡의 풍광은 다른 계절에서는 느낄 없는 적막감이 짙게 느껴진다. 뽀드득거리며 발바닥을 타고 전해지는 눈 밟히는 소리와 하얀 눈을 이고 있는 계곡의 바위들이 겨울 산행의 느낌을 더해준다.
구천동계곡은 물이 급경사를 이루고 뱀처럼 꼬불꼬불 흐르기 때문에 곳곳이 아름다운 풍경의 극치를 이룬다. 이름하여 33경. 큰 바위가 있으면 대(臺)요, 물이 떨어지면 폭(瀑)이고, 고이면 소(沼)고 담(潭)이다.
구천동 33경중 제 14경인 수경대까지는 차를 타고 갈 수 있지만 제 15경인 월하탄부터 마지막 덕유산 정상까지는 걸어 올라야 한다. 그래서 제 1경(라제통문)부터 제 14경까지는 외구천동이라 부르고 제 15경부터 제 33경(향적봉)까지를 내구천동이라 부르기도 한다.
구천동 계곡으로 들어서서 처음 만나는 절경은 월하탄. 선녀들이 하얀 날개를 펼치며 춤을 추듯이 두 가닥 물줄기가 폭포처럼 쏟아져 푸른 담소를 이루는 구천동 33경 중 제 15경이다.
인월교를 지나면 작은 소(沼)와 담(潭)이 연이어 선경을 연출한다. 하나같이 그림과 함께 명명된 사연이 적혀 있다. 이들을 감상하는 것으로 지루함을 달래며 평지 길을 걷는다.
삼공리매표소에서 25분. 오른쪽으로 인월담(제 16경)이 보이고 아치형철다리를 건너면 칠봉으로 오르는 등산로인데 지금은 폐쇄되어 출입이 통제된다.
사자담(제 17경) 청류동(제 18경) 비파담(제 19경) 구월담(제 21경)이 차례로 모습을 들어내고 덕유산 휴게소에 도착한다. 재킷을 벗어 배낭에 아무렇게나 쑤셔 넣고 잠시 숨을 고른다.
덕유산휴게소를 지나면 이내 안심대(제 25경). 옛날 구천동과 백련사를 오가던 스님과 불도들이 쉬어가던 곳으로, 생육신의 한 사람인 매월당 김시습이 도망 길에 이 곳에 당도하여 비로소 안심하고 땀을 씻었다는 유래가 전해온다.
백련교를 건너자 백련사일주문이 보인다.
오른쪽으로는 자칫 지나치기 쉬운 매월당부도가 나그네들을 맞이한다. 종 모양의 이 부도는 매월당의 사리를 모신 것으로, 받침돌과 부도의 위 부분에 불교의 상징인 연꽃을 화려하게 새겨 세련미를 준 것으로, 높이는 1.6m이다.
곧 백련사. 매표소에서 절까지는 1시간 20분 정도 소요. 천왕문으로 오르는 계단 왼편에 자리잡은 백련사 정관당부도는 정관당 곽일선 스님의 사리를 봉안한 것으로, 연꽃을 새긴 받침 돌 위에 종 모양의 탑신을 올린 형태이다. 어린 나이에 승려가 된 정관당은 말년에는 서산대사로부터 불법을 배웠으며 무주구천동에서 선풍(禪風)을 전하는 일에 온 정성을 다하다가 광해군 1년(1609)에 입적하였다고 한다.
백팔번뇌를 상징하는 108개의 계단을 오르면 고즈넉하게 자리잡은 대웅전과 요사채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백련사(白蓮寺)는 신라 신문왕때 백련선사가 은거하던 곳에 하얀 연꽃이 피는 모습을 보고 지었다는 설과 신라 흥덕광 5년(830) 무렴국사가 창건했다는 설이 전해지며 구천동 열 네 개 사찰 중 지금까지 남은 유일한 것이다. 원래의 건물은 한국전쟁때 불타 없어졌고, 지금 건물은 1962년 다시 지은 것이다.
간식을 나누며 10분 정도 휴식을 하고 나무계단을 오르며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된다. 백련사까지가 가벼운 산책코스라면 주봉인 향적봉으로 오르는 길은 고행길이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따라 5분 정도 오르면 백련사계단이 보인다.
백련사계단(戒壇)
계단의 유래는 신라 선덕여왕 12년(643) 불경을 연구하러 당나라에 갔다온 자장율사가 지금의 통도사인 구룡연에다 금강계단을 축조하고 당나라에서 봉안해온 부처님의 사리를 안치한 후 불교의 계율을 설법한데서 연유되었고 그 이후에는 전국의 명산대찰마다 계단을 설치하여 승려들의 계율의식을 행하게 되었다고 전한다. 백련사 계단은 자연석 기단 위에 세워진 높이 2m, 둘레 4m의 석종형 탑으로 탑신의 상륜에 여의두문(如意頭紋)의 보륜이 조각되었고 그 위에는 유두형 보주가 조각되어 있다.
계단(戒壇)을 지나면 첫 이정표가 반긴다.‘해발 950m 향적봉 대피소 2km’
오랫동안 산행을 쉰 경화님이 무척 힘이 드는지 자주 주저앉는다. 양지바른 쉼터에서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냄새가 식욕을 돋운다.
찬바람이 홍조를 띤 볼 살을 스치고 덕유를 분칠한 눈이 산수화를 그려놓은 병풍처럼 둘러져 있다.
‘살아서 천년, 죽어서도 천년’이라는 주목과 유난히 파란 하늘의 조화는 한 폭의 그림이다.
잘 정비된 나무계단을 100m 정도 오르면 해발 1614m 삼남을 굽어보는 덕유연봉의 최고봉인 향적봉이다.
웅장한 산세와 빼어난 계곡미 그리고 울창한 숲이 어울려 뛰어난 자연 경관을 이루고 있으며 덕(德)이 많아 너그럽고 넉넉한 산이라 덕유산(德裕山)이라 불린다. 영호남지방을 가름하는 우리나라의 4번째 높은 산이다. 덕유산의 주봉은 향적봉(상봉)이며 그 남서쪽에는 남덕유산(1507.4m)이 솟아 두 봉우리는 쌍봉을 이루며 두 곳을 연결하는 분수령은 전북과 경남의 도경계를 이루고 있다.
덕유산이라는 이름은 오래 전부터 사용된 것으로 보이며, 조선조 인조 때의 인물인 윤증이 쓴 ‘유광려산행기’에 의하면 ‘여산은 덕유산의 다른 이름’이라는 언급이 있는데, 이로 보아 한때 여산 혹은 광려산으로 불리기도 했던 것 같다. 특히 임진왜란을 전후하여 덕유산을 십승지지로 꼽은 것을 보면 임진왜란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이 곳으로 난을 피하여 들어왔는데 전란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는 전설로 보아 덕유라는 이름값을 제대로 했다고 한다.
13시 15분 향적봉 정상은 말 그대로 인산인해 북새통을 이룬다.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양지바른 곳에 빙둘러 자리를 잡고 점심 도시락을 펼친다.
30분간의 점심 식사를 마치고 아이젠을 착용하고 설천봉을 향해 나무계단을 내려선다. 무주리조트의 관광 곤돌라를 타면 설천봉(해발1520m)까지 단번에 오를 수 있고, 다시 부드러운 능선을 타고 20분이면 향적봉 정상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에 산행객들이 북적댄다.
화장실을 다녀오기 위해 설천봉 휴게소에 들렸다. 설천봉 휴게소 화장실은 소변을 보려는 사람들로 긴 행렬이 이어진다. 설경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디카에 담고 실크로드 슬로프를 따라 내려선다.
스키를 타는 사람들과 보드를 타는 사람들이 이방인의 모습에 놀라 이상한 눈으로 바라본다. 실크로드 슬로프를 따라 20분 정도 내려서자 칠봉1km 인월담 3.2km 이정표가 보이고 길이 열려있다. 칠봉으로 가는 길인데 스키장이 들어서면서 폐쇄된 등산로이다.
호젓한 산길로 들어서자 능선의 눈이 장난이 아니다. 쌓인 눈은 스패츠 위를 넘어 허벅지를 감싼다. 다행히 길은 지나간 사람들의 발자국에 눈이 다지고 다져져 있어 진행이 수월하다.
이정표가 서 있는 입구에서 약 25분 소요. 칠봉 헬기장에 도착한다.
뒤돌아보면 걸어온 능선이 한 눈에 펼쳐진다. 산의 모습은 말이 아니다. 산 정상에서 내려오는 스키코스가 흡사 이발기로 머리를 밀어놓은 모습이다. 문명과 원시의 아름다움이 공존하는 산, 인간 몸부림과 자연의 여유로움이 함께 하는 산, 덕유. 무주 리조트의 스키장이 덕유산 주봉까지 올라오는 바람에 등산객에 관광객까지 가세하여 훼손과 오염이 가속되고, 슬로프를 만들면서 아름다운 경관을 망가트려 놓아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돌아서서 영역 표시를 하고 간식을 나누며 휴식을 취한 후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선다.
200m를 내려서면 해발1300m 칠봉 약수 0.3km 이정표가 보인다. 출입금지 표지판도 없고 곳곳에 이정표가 잘 정비되어 있어 이 등산로가 다시 개방되었나하는 착각을 한다.
매우 급경사 철계단과 이어지는 돌계단을 내려서니 한 숨 돌리기 전에 더 가파른 철계단이다.
조심조심 내려서 칠봉약수터(해발 1100m)에 도착한다. 옛날부터 불로 장수를 구하던 사람들이 찾아든 곳으로 지금도 피부병을 비롯한 만병통치의 성수로 여겨진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약수터가 얼어있어 배낭 속의 물로 갈증을 달래고 내림길을 재촉한다.
16시. 오랜만에 산행에 나선 성우님이 다리에 통증을 호소하며 속도가 느려진다. 겨울 산 속은 일찍 어두움이 찾아든다. 마음이 조급해지면서 빠른 걸음으로 내려선다.
16시 30분. 인월담에 도착하면서 여유가 생긴다. 인월암으로 갈라지는 갈림길에 출입금지 표지가 눈에 띤다.
아이젠을 벗고 20여분 진행하여 주차장에 도착하면서 산행은 끝이난다.
기대했던 눈꽃은 없었지만 처음부처 끝까지 눈길을 걸은 7시간의 겨울 산행은 모두의 마음을 흡족하기에 충분했다.
주차장은 곳곳에 시골아주머니들의 장터가 열려 곶감과 갖가지 산나물을 판다. 산행객들과의 흥정은 언제나 정겨움이 넘친다. 곶감을 좋아하는 경화님이 여지없이 곶감을 사 가지고 차에 오른다. 어죽으로 유명한 제원면 원골 식당에서 도리뱅뱅과 어죽 한 그릇씩 뚝딱 해치우고 대전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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