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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주왕산

⊙산행일시 : 2005년 10월 30일 (일)
⊙산행코스 : 절골 매표소-절터-대문다리-가메봉-내원마을-폭포-주왕암-대전사-상의 매표소(약 5시간)

 

가을이 깊어간다. 잎이 진 감나무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잘 익은 붉은 감들이 더욱 선명하고 계절의 유혹도 커져만 간다.

 

경상북도 청송에 위치한 주왕산, 20년 전 산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던 젊은 시절에 친구들과  여행한 적이 있다. 전국에 유명한 산을 찾아다니면서도 대전에서 너무 멀고 교통도 좋지 않아 마음에만 두고 있었는데 이 가을 다시 찾아 길을 떠난다.
 
8시 정각. 통로에 보조의자까지 이용하여 산행객을 태운 버스는 대전톨게이트로 진입하여 경부고속도로를 1시간 10분 동안 거침없이 질주하고 칠곡휴게소에서 15분간 정차한다. 다시 20분 정도 진행하여 도동분기점에서 지난해 개통한 대구-포항간 고속도로로 갈아타고 30여분을 달려 서포항톨게이트로 빠져나간다. 우회전하여 31번 국도를 이용하여 청송방향으로 진행한다.

 

죽장으로 들어서자 편도 1차선의 좁은 도로 변에는 빨갛게 익은 탐스런 사과가 가지가 찢어지도록 주렁주렁 매달려 눈을 즐겁게 하고, 방폐장유치 찬반 문제로 주민들이 대립하고 있는지 곳곳에 현수막이 걸려있다. 힘겹게 꼭두방재를 넘으면 청송군 현동면이다. 현동파출소 앞에서 우회전하여 계속 31번 국도를 타고 진행한다. 대전사로 들어가는 입구는 차량들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다. 주산지 이정표를 따라 이전리로 진행한다.

 

주산지와 절골계곡으로 갈라지는 삼거리 도로변에도 넘치는 차량으로 더 이상 진입이 어려워 걸어가기로 하고 하차한다. 대전에서 3시간 30분 소요. 

 

포장도로를 따라 빠른 걸음으로 10분쯤 올라가면 절골 매표소를 만난다. 11시 50분. 절골매표소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절골 계곡은 그 길이가 약 10km 에 이르며 맑고 깨끗한 물이 사계절 흐르고 기암괴석이 우뚝 솟아 있는 아름다운 산세가 주왕산의 본 계곡인 주방 계곡과 비교해서 조금도 손색이 없다. 절골은 절벽이 있는 골짜기라는 뜻으로 이름처럼 산행 초입부터 길 오른쪽으로 요란한 물소리가 들리면서 벼랑이 이마를 맞대듯 나란히 선 협곡이 비경으로 다가온다.

 

 

기기묘묘한 바위와 울창한 숲이 협곡을 따라 계속된다. 형형색색의 단풍이 곱게 물든 산책로를 따라 감탄사를 연발하며 30분쯤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면 첫 번째 합수머리에 닿는다. 오른쪽은 신술골 입구다. 절골 못지 않게 아름다운 계곡이지만 출입금지 구역으로 지금은 들어갈 수 없다.

 

 

왼쪽으로 10분쯤 더 올라가면 제법 너른 공간의 펑퍼짐한 공터를 만난다. 예전에 절터였다고 한다. 이곳부터 계곡은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협곡과 기암괴석이 사라지고 대신 가을햇살조차 파고들기 힘든 울창한 숲, 그리고 비교적 때묻지 않은 태고적 신비와 차가운 옥빛 계류가 흐른다. 국립공원이 맞나 할 정도로 원시적 자연미가 느껴진다.

 

군데군데 징검다리로 계류를 건너며 올라간다. 주왕산국립공원에서 계곡 옆 나무에 가메봉 표지판을 매달아 놓아 길 찾는 어려움 없이 진행한다.

 

두 번째 합수머리인 대문다리(해발400m)는 경사가 약간 있는 제법 넓은 반석으로 물줄기가 한 쪽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절골매표소에서 1시간 소요. 길은 반석 위쪽 물줄기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10분 정도 더 오르면 가메봉 1.5km 이정표가 서 있는 갈전 삼거리이다. 왕거암으로 오르는 등산로는 목재 울타리로 폐쇄되어 있고 여기서부터 가메봉삼거리까지는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가파른 된비알 오르막길이다.

7분 정도 오르면 분성배씨와 안동권씨묘가 보이고 상처 입은 소나무들이 눈에 띤다.

 

소나무에 남겨진 빗살무늬의 흔적은 1960년대 당시 경제 사정에 의한 산림자원 개발 대상으로 송진 채취 과정에서 생겨난 상처로, 1976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중단되었다고 한다.

 

턱밑까지 차 오르는 거친 숨을 토해내며  40분 정도 오르면 이정표가 서 있는 가메봉삼거리에 닿는다. 왼쪽으로 수직 절벽의 바위봉인 가메봉이 보이고 직진하면 내원마을로 내려가는 길이다.

 

 

100m 정도 오르면 주왕산 최고의 전망대인 가메봉(882m)에 닿는다. 정상을 알리는 표지석은 없고 이정표가 정상임을 알려준다. 절골매표소에서 2시간 소요.

 

 

천지가 단풍바다로 오색 물감을 풀어놓은 듯 눈부신 가을의 아름다움을 온몸으로 보여주며 황홀함에 빠져들게 한다. 어느 천재화가가 이 아름다움을 화폭에 담아낼 수 있을까..

 

 

주변 풍광에 넋을 놓고 있다가 바람에 등 떠밀려 왔던 길을 50m쯤 되돌아 내려가자 왼쪽으로 오솔길이 보인다. 길은 뚜렷하지만 급경사 내리막길로 조심해서 내려서야 한다. 한 사람 걷기 딱 좋은 오솔길이다. 낙엽이 발에 차일만큼 수북하다. 인적이 없어 호젓하다.

 

20분 정도 내려서면 가메봉삼거리에서 내려오는 길과 만난다. 내가 내려왔던 길이 정규 등산로가 아님을 다 내려와 표지판을 보고 알았다. 가메봉 1.1km 내원동 1.7km 이정표가 보이고 이어지는 물감을 뿌린 듯 화려하게 채색된 당단풍 길은 동화 속에 나오는 숲 속처럼 환상적이다. 

 

 

봄, 여름에는 광합성을 위하여 엽록소가 많기 때문에 초록색으로 보인다. 그러나 가을에 기온이 떨어지고 빛이 적어지면 엽록소(초록색소)가 활동을 중지하고 카로틴, 크산토필(노란색소)이나 안토시안(빨간색소)와 같은 색소가 드러나기 때문에 단풍이 드는 것이다. 나무들이 잎을 떨어뜨리는 이유는 곰이나 뱀이 겨울잠을 자는 이유와 비슷하다.

 

내원 5교와 내원 4교 목재다리를 차례로 건너면 내원동 0.9km 상의매표소 5.8km를 알려주는 큰골 이정표가 보인다.

 

10분 정도 진행하여 내원 3교를 건너면 내원마을이다. 전기 없는 마을로 유명한 내원마을은 9가구 20여명의 주민이 화전에 농사를 지어 생계를 유지하며 별빛과 풀벌레 소리를 벗삼아 오순도순 살았으나 올해 10월 1일 미관저해로 철거되고 찻집만이 남아있다.

 

 

억새밭을 지나자 주왕산초등학교 내원분교가 옛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1970년에 개교하여 78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1980년에 폐교되어 지금은 등산인 들의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도토리묵과 파전을 안주로 막걸리를 팔고 있는 분교 옆 간이매점에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2시 40분. 내원분교 교실 바닥에 앉아 때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길을 재촉한다.

 

아치형의 금은광이교 주위는 절정의 단풍이 산행객의 눈길을 사로잡으며 발걸음을 붙잡는다.

 

 

주왕산의 비경은 협곡이 시작되는 제3폭포에서부터 본격화된다. 솟대처럼 삐쭉 치솟은 암봉과 병풍처럼 펼쳐진 거대한 바위 절벽 사이로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떨어지는 폭포가 장관이다. 천길 낭떠러지 사이로 흘러내리는 하얀 물줄기가 산행의 피로를 잠시동안 잊게 한다.

 

 

제3폭포에서 5분 정도 내려오면 제2폭포 이정표가 보인다. 제2폭포는 일부러 찾아 들어가야 하지만 왕복 5분 정도 소요되므로 꼭 들려보기를 권한다. 물줄기가 움푹 파인 바위 웅덩이로 떨어지는 폭포다.

 

 

다시 돌아 나와 매우 좁은 협곡에 위치한 제1폭포를 지나자 학소대와 시루봉 등 비경들이 쉴 틈 없이 쏟아진다.

 

 

학소대는 하늘을 찌를 듯이 솟은 절벽 위에서 청학과 백학 한 쌍이 둥지(巢)를 짓고 살았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옛날 백학이 사냥꾼에게 잡혀 짝을 잃은 청학은 날마다 슬피 울면서 바위 주변을 배회하다가 자취를 감추었다는 슬픈 사연이 전해온다.

 

 

시루봉은 그 생김새가 떡을 찌는 시루와 같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측면에서 바라보면 마치 사람의 옆모습처럼 보이기도 한다. 시루봉에는 옛날 어느 겨울에 한 도사가 이 바위 위에서 도를 닦고 있을 때 신선이 불을 지펴 주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으며 바위 밑에서 불을 피우면 그 연기가 바위 전체를 감싸면서 봉우리 위로 치솟는다고 한다.

 

 

학소대휴게소에서 그냥 내려서지 말고 이정표를 따라 왼쪽 주왕암쪽으로 발걸음을 옮기면 주왕산 최고의 절경으로 손꼽히는 기암(旗岩)을 만나는데 주왕이 기(旗)를 꽂아 병사가 많은 것처럼 위장했다는 전설이 있다.

 

5분 정도 더 진행하면 전망대가 있는데 이곳에 올라서면 그 이유를 알게된다. 거대한 바위가 하늘이 좁도록 치솟은 모습도 현란하지만 뫼 산(山)자와 꼭 닮은 형상이 더욱 인상적이다. 높푸른 하늘에 낮게 깔린 흰 구름 몇 덩이가 주변을 감싸 그 기이함은 절정에 달한다. 연화봉과 병풍바위 그리고 급수대까지 한 눈에 조망된다.

 

 

급수대는 신라 37대 선덕왕이 후예가 없어 대신들이 무열왕 5대손인 김주원을 38대 왕으로 추대하였는데 각간 김경신이 왕위에 오르고자 내란을 일으키자 김주원은 왕위를 양보하고 이곳으로 은둔하여 대궐을 건립하였다고 한다. 대궐지는 급수대의 정상으로 샘이 없어 계곡의 물을 퍼 올려 식수로 사용하였다 하여 급수대라 불리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숲 속 오솔길을 따라 6-7분 정도 진행하자 불경소리가 은은히 들리고 주왕암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주왕암은 주왕의 혼을 위안하기 위하여 대전사와 함께 창건되었다. 문간채인 가학루와 16나한을 모신 나한전이 있다.

 

 

주왕암 옆으로 협곡의 좁은 길을 따라 200m를 걸어가면 주왕굴에 닿는다. 주왕굴은 협곡 사이 암벽에 위치한 자연 동굴로 주왕이 마장군의 공격을 피하여 이곳에 은거하던 어느 날 굴 입구에 떨어지는 물로 세수하다가 마장군 일행에 발각되어 마장군의 군사가 쏜 화살에 맞아 애절하게 죽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주왕암으로 돌아 나와 약수로 목을 축이고 대전사로 향한다. 허물어진 자하성벽이 눈에 띤다. 자하성은 주왕이 신라 군사를 막기 위해 대전사 동편 주왕암 입구에서 나한봉에 걸쳐 가로막은 돌담으로 길이가 30여리(약 12km)에 달하였다고 한다. 지금은 성의 형체는 거의 사라지고, 곳곳에 부서진 성터의 자취만 남아있다.

 

 

주왕암에서 20분 정도 진행하면 왼쪽으로 주왕산으로 오르는 길과 만난다.


주왕산은 당나라 때 진나라의 왕손인 주도가 진의 회복을 꿈꾸며 군사 1만 명을 이끌고 자신을 후주천왕이라 자칭하고 반란을 도모하다가 실패하여 요동반도를 통하여 이곳에 숨어 들었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당나라의 요청으로 신라에서는 마일성장군의 형제를 중심으로 토벌대를 구성하여 주왕을 토벌하였다고 전해진다. (신라시대의 왕인지, 중국 당나라 왕인지 정확한 사료가 없어 알 수 없음)

 

오른쪽 길로 들어서면 10여 개의 상점들이 서로 마주보며 등산객들을 부른다. 곧바로 대전사로 들어선다. 주왕의 아들 대전의 명복을 빌기 위하여 창건하였다는 대전사 뒤편에는 주왕과 마장군이 격전을 가졌다는 기암이 버티어 서서 나그네들의 발길을 멈추게 한다.

 

 

대전사는 국립공원 내에 있다는 이유로 문화재관람료(1600원)를 징수한다. 대전사를 휭하니 한바퀴 돌아보고 나오면 상의매표소와 만난다.



국립공원 어디에서나 볼 수 있듯이 길 양옆으로 즐비하게 늘어선 상점에서는 음식냄새와 술냄새가 진동한다.

 

17시 정각. 주차장에 도착하여 산행은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