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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속리산(상학봉-묘봉)

2005년 6월 26일(일)


산행 경로 : 서부상회∼사지매기재∼마당바위∼토끼봉∼이씨묘∼상학봉∼묘봉∼북가치∼절골 지능선∼미타사 입구∼ 운흥 2리∼용화정류소

 

유월의 마지막 일요일이다.
오늘 오후부터 장마가 시작된다는 일기예보에 산행을 망설이다가 가까운 속리산 서북능선 산행을 따라 나선다. 
36명의 산행객을 태운 버스는 8시 20분 대전 톨게이트로 진입하여 경부고속도로를 10여분 질주하고 옥천 톨게이트를 빠져나가 곧바로 좌회전하여 37번 국도를 타고 보은방면으로 진행한다. 교사사거리에서 19번 국도로 갈아타고 괴산방향으로 6분 정도 진행하다 삼거리에서 우회전 다시 37번 국도로 갈아타고 3분 정도 진행하여 힘겹게 구티재를 넘는다.
9시 15분 활목고개에 도착하여 산꾼들을 내려놓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산비탈을 치고 오른다. 나는 작년에 이곳을 들머리로 산행한 적이 있어 오늘 산행은 상주시 화북면 운흥 1리를 기점으로 산에 올라 운흥 2리로 내려오는 원점회귀 코스를 택하고 홀로 차에 그대로 남는다. 운흥 1리 기점과 운흥 2리 종점사이의 거리는 1·5km정도 된다.



9시 25분 운흥 1리 서부식당(☎ 054-533-9197) 앞에서 하차한다. 
속리산 서북능선의 산세가 한 눈에 들어온다. 상학봉∼묘봉 코스는 속리산의 다른 산행로에선 느낄 수 없는 속리산 진경을 만날 수 있다.
묘봉(874m)은 충북 보은군 산외면과 내속리면, 그리고 경북 상주군 화북면의 경계에 자리잡은 봉우리로 두류봉이라고도 부른다. 묘봉에서 북쪽으로 뻗은 능선에는 옛날 어떤 사람이 돈을 몰래 만들었다는 주전봉, 학들이 살았다는 상학봉, 산세가 미남형으로 생겨 빼어나게 아름답다는 미남봉을 비롯하여 감투바위, 덤바위, 말바위, 병풍바위, 애기업은 바위, 장군석, 치마바위 등 기묘한 암석으로 형성된 바위들이 자리하고 있다.



화평마을 서부식당 왼편에 보이는 출입금지 표지를 애써 외면하고 시멘트포장도로 따라 마을길로 들어선다.



운흥 1리 마을회관에서 오른쪽 좁은 농로를 따라 진행한다.



9시 33분 숲 속으로 접어들어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된다. 인적이 없어 호젓한 산행이다.
조금 지나 완만한 오르막길이 시작되고 15분 정도 올라서 물 한 모금으로 거치러진 호흡을 가다듬고 산행을 계속한다. 길은 고도를 높이며 점점 가팔라진다. 내뱉은 거친 숨소리만 귓가에 가득하다. 온 몸으로 땀이 비 오듯 흐른다.
10시 정각. 사지매기재에 닿는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더욱 가팔라진 오르막길을 10분 정도 오르면 모자바위가 길을 가로막는다.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모자바위에 오른다. 머리에 선 모자 같다고 해서 모자바위라 불리는데 바위 위에서의 조망은 압권이다.




조금 올라서자 두 쌍의 부부 산행객이 바위에 걸터앉아 간식을 먹으며 담소를 나눈다. 오른쪽 신정리에서 1시간 전에 출발하여 올라왔다고 한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암봉에 올라서자 속리산 서북능선의 절경이 펼쳐진다. 손때가 덜 탄 자연 그대로의 풋풋한 모습이 싱그럽고 큰바위와 노송의 멋진 조화도 곳곳에서 진풍경을 연출한다. 육중한 바위가 빚어놓은 각종 예술작품이 발을 옮길 때마다 탄성을 자아낸다. 커다란 바위가 하나의 봉우리를 이루며 기기묘묘한 자태를 뽐내는 등 육중한 남성미를 느낄 수 있는 기암들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10시 35분. 거대한 바위봉으로 이루어진 마당바위(830봉)에 오른다. 넓은 암반에 소나무가 그늘을 만들고 조망은 막힘이 없다. 상학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바위벼랑 내려서 상학봉 으로 향하는 능선길은 쉽지 않은 길이다.



암봉을 향하여 밧줄로 몸을 끌어올리고, 매달려 내려오고, 사다리를 오르고, 바위 벼랑을 기어 내리고, 일명 산파바위라 부르는 몸통이 겨우 빠지는 바위틈을 기어오른다.


 
11시 정각. 상학봉이 건너다 보이는 널찍한 마당바위(825봉)에 닿는다. 흙 한줌 보이지 않는 바위봉에도 노송이 굽은 가지를 드리워 눈길을 끈다. 참으로 더할 수 없는 장관의 연속이다.






직벽을 오르기도 하고 지리산의 통천문 같은 석문과 한 사람 겨우 빠져나갈 수 있는 개구멍도 통과하기도 한다. 물 한 모금으로 숨을 고르고 잠시 휴식을 취하는 데 활목고개에서 산행을 시작한 선두가 인사를 하며 앞서간다.




11시 30분 갈림길이다. 오른쪽은 신정리로 내려가는 길이다. 직진하여 3분 정도 오르면 상학봉이다. 상학봉(上鶴峰 862m)은 정상 부근 암봉에 학들이 많이 모였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상학봉 정상은 집채만한 사각의 바위 덩이가 암봉에 덩그러니 올라앉아 있다. 일명 식빵 바위다. 정상은 쇠사다리를 타고 올라야 한다. 쇠사다리를 밟고 식빵 바위에 오르면 3-4명이 앉을 수 있는 좁은 공간이다. 속세를 떠나 세속을 내려다보며 나를 되돌아볼 수 있는 '여유'는 산 정상에 오른 사람만 즐길 수 있는 특권이다. 예전에 보이던 표지석은 제거되고 좌대 흔적만 남아 있다.




상학봉에서 묘봉까지의 암릉 능선은 험한 바위봉의 오르내림이 계속된다. 날등 곳곳에 벼랑으로 솟아있는 암봉에 올라 까마득한 바닥을 내려다보는 기분은 짜릿한 전율이 느껴진다.



‘암릉 860m’란 표지석이 보인다. 묘봉까지는 0.3km.





상학봉을 떠난 지 30분. 묘봉(妙峰 874m)에 닿는다. 올라온 길 외에는 천길 벼랑이다. 정상에 서면 시야는 일망무제로 펼쳐진다. 묘봉은 거대한 너럭 바위봉으로 수십 명이 올라설 수 있는 넓은 암반이며 아주 좋은 전망대다.



산아래 운흥리, 절골, 대흥동 산자락에 포근하게 안긴 마을과 산 그림자가 겹쳐서 한 폭의 그림이다.



북가치 속사치 언덕을 지나 관음봉을 넘어 문장대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위용을 드러내고, 뒤돌아보면 묘봉에서 상학봉으로 계속해서 상학봉에서 토끼봉으로는 설악의 용아릉을 방불케 하며 장관을 이루는 기암괴석의 바위 전시장이다. 까마득하면서도 아찔한 바위벼랑과 바위 등에 자라난 노송이 어우러진 경관은 한 폭의 동양화이다. 세속을 벗어난 세상 밖이 속리(俗離)의 의미라면 바로 이 곳을 두고 한 말이 아닐는지.




정상석은 여기도 제거되어 있다. 떡 한 조각 허기를 달래며 20분 정도 휴식을 취하고 하산길로 걸음을 내딛는다.
묘봉에서 북가치까지는 부드러운 흙길이다. 이 흙길을 밟고 10여분 내려서면 북가치 안부에 닿는다. 왼쪽 절골을 따라 운흥리로 향하는 내림길은 조망이 없는 숲길로 답답하고 물 마른 계곡이 더욱 짜증스럽다. 북가치에서 관음봉 방향으로 조금 더 진행하여 770봉에서 능선을 타고 운흥리로 하산하는 코스를 버리고 서둘러 절골로 들어선 것이 후회된다. 답답함을 빨리 벗어나기 위하여 발걸음이 빨라진다. 20여분 지나 시멘트 포장길과 만난다. 미타사라는 절로 이어지는 도로이다. 오른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미타사라는 절이 있다. 왼쪽 마을로 이어지는 시멘트 포장도로 옆에는 인삼밭이 도열해있다.
13시 30분. 걸음을 멈추고 마을 앞을 흐르는 계류에 발을 담그고 탁족을 하며 땀을 식힌다. 운흥 2리 마을 표지석이 보이고 소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정겨운 모습과 어우러져 농촌 풍경은 더욱 평화롭다.




마침 들녘에서 점심 식사를 하던 농부가 낯선 나그네에게도 점심을 같이하자며 권한다. 아직도 농촌의 인심에서 정겨움과 따뜻함이 전해진다.
14시 정각. 용화초등학교 앞 용화정공원에 도착하면서 4시간 30분간의 널널한 산행을 마친다.



권사장님이 준비한 컵라면과 시원한 수박 한 조각으로 시장기를 달랜다.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이 날씨가 심상치 않다. 아직 묘봉에서 출발하지도 않은 후미가 걱정이다.




드디어 비가 쏟아진다. 먼저 하산한 사람들은 비를 피해 용화정이라는 현판이 붙은 정자에서 하산주를 나누며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 비에 젖은 일행들이 하나 둘 도착한다. 16시 40분 맨 후미가 비에 흠뻑 젖은 채 무사히 도착한다. 수박 한 조각씩 나누고 버스는 서둘러 대전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