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 2005년 10월 16일(일)
⊙산행코스 : 향토소공원-한계산성-천제단-안산-탕골-옥녀탕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 속에는 성큼 다가선 가을 냄새가 묻어난다. 진해진 풀벌레 소리, 익어가는 홍고추, 조금씩 고개를 숙이며 누렇게 익어가는 벼들…. 계절은 그렇게 소리 소문 없이 조심스레 우리 곁을 지나치기도 하고 다가서기도 한다.
6시 20분 대전톨게이트로 진입한 버스는 경부, 중부, 영동고속도로를 갈아타며 1시간 30분을 달려 문막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위해 25분간 정차한다. 25분을 더 진행하여 홍천요금소를 빠져나와 44번 국도를 타고 진행한다. 한계리 민예단지삼거리휴게소에서 잠시 정차하였다가 오른쪽 한계령 방향으로 진행한다.
설악산의 서쪽 귀퉁이에 우뚝 솟은 안산은 외진 위치 때문에 찾는 사람이 많지 않다. 장수대에서 산행을 시작하는 사람들은 대승령에서 탕수동계곡으로 하산길을 잡아 이 산을 스쳐 지나는 것이 보통이다. 그래서 설악을 수십 번 다닌 사람들 중에도 안산을 다녀온 사람이 드물 정도로 한적한 봉우리다.
10시 10분 옥녀탕휴게소 조금 못미처 향토소공원에서 하차하여 산행객들을 내려놓고 10명의 산행객을 태운 버스는 장수대로 떠난다.
출입금지 표지판이 이곳이 산행들머리임을 확인시켜준다. 시작부터 가파른 오르막길을 15분 정도 치고 오르면 길이 완만해진다. 이곳은 산행객의 발길이 뜸해 조용하고 한적하다. 육산의 부드러움이 느껴지며 나뭇잎 사이로 아침햇살이 쏟아져 땅에 퍼지고 새소리조차 없어 적막감마저 감돈다.
한계산성 성벽이 나타난다. 성벽을 따라 진행하다보면 식수로 사용할 수 있는 깨끗한 옥류가 흐르는 계곡과 만난다. 미처 식수를 준비하지 못한 일행은 이곳에서 식수를 보충하고 계곡을 건너 오른쪽 능선으로 붙는다.
산행을 시작한지 30분. 한계산성 남문지(南門地)앞에 도착한다. 이 남문 자리가 해발 1000m라 한다. 성문이 있는 성곽 앞에는 안내판이 서 있다. 기록에 의하면 고려 고종 1259년에 야별초의 안홍민장군이 몽고군을 섬멸한 곳이라고 한다. 성둘레가 20km나 되는 이 산성은 남문이 가장 아래 부분이고 위로는 1300m 지점까지 성이 있다.
한계산성(寒溪山城)은 신라말 경순왕의 전설이 전해오는 유서 깊은 산성이다. 성벽(城壁)은 거의 무너졌으나 옥녀탕 골짜기의 문 터와 그 연장부는 견고한 내외겹축의 성벽이다. 이 험한 산에 성을 쌓을 때 동네 사람들이 일렬로 서서 돌을 손에서 손으로 넘겼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전략적 요충지로의 한계산성은 방어목적 보다는 피난성의 성격을 띠고 있다고 한다.
성벽을 끼고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산성을 지나면 뚜렷하던 길이 희미해지기 시작하다 이내 없어져 버린다. 멀리 안산으로 이어지는 장쾌한 암릉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오른쪽으로 계곡 건너 펼쳐지는 절벽의 절경이 잠시 걸음을 멈추게 한다.
산성터를 떠난 지 30여분. 지리산 통천문 같은 구멍바위를 빠져 나와 다시 주능선으로 붙으면 노송과 고사목이 어우러진 암릉이 나온다.
주걱봉, 가리봉, 삼형제봉이 손에 잡힐 듯 조망되는 조망 터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며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달래고 다시 가파른 암릉을 네발로 기어오른다.
소나무에 자일을 설치하고 한 사람씩 오르다보니 시간이 많이 지체된다.
산행을 시작한지 2시간 지나 천제단에 닿는다. 천제단은 세 부분으로 나뉘어 있는‘삼신단(三伸壇)’이다.
왼쪽으로 치마바위와 안산의 모습이 손에 잡힐 듯 다가선다. 계곡 전체에 마치 붉은 카펫을 펼쳐놓은 듯 하다.
20분 정도 진행하여 봉우리에 올라서자 오른쪽 계곡 건너 눈앞에 펼쳐지는 절경에 모두들 감탄사를 연발하며 눈을 떼지 못하고 걸음이 느려지고 디카에 담느라 시간이 지체된다.
다른 곳은 이제 한창 가을이 무르익어 가고 있는데 이곳의 나무들은 낙엽을 떨구며 벌써 겨울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그러나 곳곳에 붉게 물든 단풍이 고운 자태를 뽐내며 눈을 즐겁게 한다.
험한 오르막길을 다시 한 번 올라서자 오른쪽에 오른손 손바닥과 손등 모습의 손바위가 신비하기만 하다.
13시 30분 능선 갈림길에 닿는다. 안산 정상으로 향하는 길은 왼쪽길이다. 나무 그늘에서 자리를 잡고 약밥으로 점심식사를 한다. 15분간의 식사를 끝낼 즈음 일행이 도착한다. 커다란 암봉을 우회하여 10분 정도 진행하면 갈림길이다. 산 아래 풍광이 지난 여름 중국의 장가계 여행 추억을 되살아나게 한다.
오른쪽은 12선녀탕을 거쳐 남교리로 이어지는 길이고 왼쪽 오르막길이 정상으로 올라서는 길이다. 숨가쁘게 마지막 오르막길을 10분 정도 치고 오르면 안산(해발 1430m)정상에 닿는다. 안산에는 표지석이나 안내판이 전혀 없다.
삼각점이 박혀있는 정상은 그리 넓지 않지만 사방으로 조망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멀리 대청봉과 중청이 하늘 마루금을 걷고 그 앞으로 공룡능선과 용아장성릉이 허연 속살을 드러내고, 한계령의 구불구불한 길을 건너 우뚝 솟은 주걱봉, 가리봉(加里峯:1,519m), 삼형제봉으로 이어지는 주름잡힌 산줄기가 구름과 더불어 멋을 선사한다. 진정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을 말로 표현하지 않아도 느끼듯이 아름다움 앞에 어떤 말과 글도 다 부질없는 짓일 것이다.
시원한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20분간 조망을 감상하고 아쉬움을 뒤로 한 채 하산길로 내려선다. 삼거리 갈림길에서 후미일행을 기다린다. 안전한 치마바위골로 하산하기 위해 하산로로 접어들어 10분 정도 진행하다 후미가 너무 늦어져 좀 험하지만 빠른 계곡길로 하산하기로 계획을 변경하고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간다. 정상의 고사목이 을씨년스럽다.
한계산성이 있어 성골이라 부르는 골짜기는 옥녀탕까지 울퉁불퉁한 돌길로 험하고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이다. 물이 흐르지 않는 계곡 가운데를 따라 내려선다.
선두와 함께 1시간 30분을 빠르게 내려서자 옥녀탕 옆 계곡에 닿는다. 옥녀탕에서 세수와 족탕을 하며 6시간 30분간의 산행의 피로를 말끔히 씻어낸다.
1시간 후 맨 후미가 도착하고 18시경 버스는 대전으로 향한다. 44번 국도는 마비될 정도로 심한 정체에 몸살을 앓고 고속도로마저 정체되어 결국 자정이 훨씬 넘어 대전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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