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8월 14일 (일) 각화산-왕두산 (경북 봉화)
6시 30분. 평송수련원을 출발한 산악회 버스는 정해진 코스를 돌며 회원들을 태운다. 시민회관을 거쳐 톨게이트 앞 원두막에서 마지막으로 회원을 태우고 7시 20분 대전톨게이트로 진입하여 경부고속도로를 힘차게 달린다. 아침 식사를 위하여 추풍령휴게소에서 정차하였다가 김천분기점에서 중부내륙고속도로로 갈아타고 함창 점촌톨게이트로 빠져나가 국도를 타고 영주와 봉화를 지나 춘향으로 향한다.
영동선 철길이 봉화역에서 현동역에 이를 때 직접 가도 되나, 굳이 춘양을 들어갔다 되돌아 나오도록 놓여있어 억지 춘양이 되었다는 곳이다. 점촌톨게이트에서 약 2시간 정도 소요된다.
11시 10분. 88번 지방도로변 각화사입구 표지석이 있는 도로 옆에서 하차하여 등산화 끈을 고쳐 매고 산행 준비를 한다.
마을을 지나 왼쪽 능선으로 붙기 위해 산비탈을 3-4분 치고 오르자 뚜렷한 등산로와 만난다. 통훈대부 합장 묘를 지나 오른쪽으로 이어지는 등산로는 산새와 매미들의 합창소리가 정겨운 호젓한 숲길이다. 시작부터 깊은 산 속의 분위기를 느낀다. 사람이 거의 안 다닌 듯 오래된 숲길이 희미하지만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40분 정도를 진행한 후 물 한 모금으로 타는 목마름을 달래고 길을 재촉한다. 시원한 바람이 분다. 완만한 오르막길이지만 부드러운 육산으로 산행하기에 아주 좋다. 곳곳에 보이는 산막은 이 곳이 송이밭임을 짐작케 한다. 급경사 길을 10분 오르자 전망이 확 트이는 공터가 나타난다. 지도상 840봉으로 짐작되는 곳이다. 아침을 커피 한 잔과 빵 한 조각으로 때운 탓에 허기가 밀려온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준비해 간 떡 한 조각으로 허기를 속인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50분 지난 13시 정각. 각화산 정상에 도착한다. 헬기장이 조성되어 있고 정상 표지석은 눈에 띠지 않는다. 각화산(1177m)은 경북 봉화군 춘양면과 소천면의 경계지점에 있는 산으로서 태백산(1567m)을 모산으로 하고 있다. 즉 백두대간이 태백산에서 구룡산으로 이어지는 중간지점인 1242봉에서 남으로 가지를 친 지능선상의 최고봉이다. 녹음이 짙은 계절의 탓도 있겠지만 주변 조망은 그렇게 좋은 편이 못된다. 5분 정도 진행하자 선두 일행이 점심식사를 하려고 평평한 나무 그늘 아래에 자리를 잡는다. 대장님이 준비한 정상주가 한 잔씩 돌아가고 배낭에서 각자 준비한 도시락을 꺼낸다.
정겨운 담소를 나누며 30분간의 점심식사를 마치고 천천히 몇 걸음을 옮기자 동봉에 닿는다. 넓은 공터에 보도 블록으로 쉼터가 조성되어 있고 삼각점이 박혀있다. 정상보다 오히려 조망이 좋다. 태백산부터 구룡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어머니 품안같이 편안하고 육중하게 시야에 들어온다.
곧바로 내리막길로 접어들어 5분 정도 내려서고 조금 더 진행하면 오른쪽으로 태백산 사고지로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5분 정도 내려가면 태백산 사고지에 닿는다. 철제 울타리가 쳐진 사고지는 주춧돌만 찾아볼 수 있을 뿐 허물어진 채 방치되어 있고, 사고지 옆에는 오래된 샘이 하나 있다.
태백산 사고지는 사적 348호로 한양의 춘추관 및 강화도, 묘향산, 오대산의 사고(史庫)와 더불어 조선 후기 5대 사고 중의 하나로 1606년 지어져 1913년까지 300여 년 간 조선왕조실록을 보관했던 역사적인 장소다. 그러나 조선왕조실록은 당시 조선총독부에 의해 경성제대로 옮겨졌고, 건물은 해방 이후 원인 모를 불로 완전히 타버렸다.
여기서 각화사로 바로 내려가는 길도 있으나 다시 내려왔던 능선으로 오른다. 참나무가 우거진 능선길은 낙엽이 쌓여 푹신하다. 15분 정도 진행하면 능선이 크게 갈라지는 분기봉이다. 계속 직진하여 평탄한 길을 걷다보면 뚝 떨어지는 내리막길이 나타난다. 내리막길이 유난히 가파른 급경사이다. 조심스럽게 내리막길을 내려서 7분 정도면 안부에 도착한다. 안부에서 그대로 왼쪽 주능을 따라서 가면 왕두산으로 이어지고, 평탄한 길을 따라 오른쪽으로 산허리를 감아 돌면 조그만 암자가 눈에 들어온다. 금봉암인데 지금은 동암이라고 불려진다. 금봉암은 아담스럽고 평화로운 분위기이지만 중창불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금봉암 앞마당의 샘터에서 목을 축인 뒤, 금봉암을 뒤로하고 왕두산으로 향한다. 길은 화장실 앞을 지나 내려가는 듯하다가 곧 갈림길이 나오는데 왼쪽길을 따라 20분 정도 오르자 헬기장이다. 헬기장 한쪽에 달린 표지기를 보고 숲길을 따라 5분 정도 가면 왕두산 정상이다. 금봉암에서 왕두산까지는 약 25분 정도가 소요된다. 시야도 툭 트여 형제봉, 화장산을 비롯해 지나온 각화산과 능선 등 주변 조망도 좋다.
왕두산(1044)은 각화산에서 남동 방향으로 약간 가지를 틀어 약 2km지점에 위치하여 각화산의 아우뻘 되는 산이다. 왕두산은 왕관을 쓴 형국으로 춘양의 젖줄인 운곡천을 보듬고 춘양고을을 살지게 한다.
다시 금봉암을 향해 하산길로 들어선다.
금동암을 뒤로하고 계곡길을 따르면 상수도 보호구역 팻말이 보이고 정말 맑고 깨끗한 계류가 시원하게 흐른다.
15시 10분. 절 뒤편의 소박한 싸리문을 통해 각화사로 들어선다. 이 절은 신라 문무왕 12년(676년)에 원효대사가 지금의 춘양면 서동리에 있던 남화사를 폐하고, 여기로 옮기면서 '남화사를 생각한다'는 뜻으로 각화사(覺華寺)라 했단다. 한창 번성하던 때에는 수도승이 800명에 이르는 조선 3대 사찰의 하나로, 태백산 사고의 관리 임무를 이 절에서 맡았었다.
여느 절 집과는 달리 일주문도 찾아볼 수 없지만, 범종각 추녀 끝에 '태백산각화사' 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현판이 범종각 건물에 걸린 것도 보기 드문 일이지만, 각화사의 실록을 보관했던 사고 등에 태백산이 붙는다는 사실이다. 범종각은 건물 뒤편에서 바라보면 '월영루' 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범종각 아래에서 휴식을 끝내고 계단을 내려서 왼쪽으로 보이는 각화사 귀부와 부도전을 둘러본다. 경북 유형문화재 제189호인 '각화사 귀부'에 본디 얹혔던 비신은 고려 초기의 통진대사비로 전해진다. 그러나 본래의 비신은 간 곳 없고, 대신 거기에 각화사기적비를 세우고 비석머리도 새로 만들어 얹었다. 귀부의 모서리가 약간 파손됐으나 대체로 원형이 잘 보존된 고려 초기의 걸작으로 주목된다. 특이한 것은 몸체의 육각형 귀갑문 속에 돋을 새김한 '왕(王)' 자와 '만(卍)' 자의 조각솜씨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너무나 조용한, 그래서 평화롭게까지 느껴지는 산골 마을이다. 산자락을 터전 삼아 드문드문 자리한 산촌의 민가는 눈에 띄지만 인적이라고는 느낄 수 없다. 계곡을 끼고 도로 옆으로 펼쳐지는 사과밭이 장관이다. 탐스럽게 익어 가는 사과가 따가운 햇살을 받으며 제 빛깔의 옷을 입는다.
16시 정각. 왼쪽은 춘향 오른쪽은 영월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보이는 88번 지방도로와 만난다.
석현리에 도착하자 88번 지방도 옆으로 운곡천의 맑은 물이 흐른다. 버스에 올라 배낭을 내려놓고 여벌옷을 가지고 계곡으로 향한다. 알탕을 즐기며 5시간의 산행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