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5월 29일(일)
등산은 目的이 아니다. 그것은 노년을 대비하는 힘을 젊어서 기르고, 장년의 활력을 저축하며, 맑고 아름다운 추억의 보물들을 담아둘 창고를 짓는 手段이다.
- 기도 레이의 ‘처음 본 마터 혼’에서 -
산 하나를 넘으면 또 산이요. 언덕 하나를 넘으면 또 언덕인 등산길은 온갖 어려움과 싸우며 이를 극복하는 인생길이다.
새벽 1시 10분. 그레이님을 마지막으로 14명의 산꾼을 태운 버스는 유성나들목으로 들어서자 언제나처럼 차내에 불을 소등되고 모두들 토막 잠을 청한다. 버스는 전조등으로 어두움을 가르며 호남고속도로를 거침없이 50분간 질주하여 2시 정각 전주 나들목으로 빠져나간다.
3시 45분. 그리매님이 한재가든에 아침식사를 예약하는 전화통화 소리에 눈을 뜨니 차창 밖으로 달빛 내려앉은 섬진강이 보이고 버스는 섬진대교를 건넌다. 삼거리 갈림길이다. 오른쪽은 구례 가는 길이고 왼쪽은 광양시 다암면 매화마을 가는 길이다. 좌회전하여 곧바로 한재가든 간판이 보이는 곳에서 우회전하여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한다.
4시 정각. 한재가든 앞마당에 도착하여 하차하니 낯선 나그네들의 갑작스런 출현에 놀란 동네 개들이 짖어댄다. 새벽 공기가 아직은 차갑게 느껴진다. 아침 식사가 준비되는 막간을 이용하여 모두들 따뜻한 방바닥에 누워 잠시 눈을 붙인다.
고사리와 산나물무침, 두부 된장국, 고등어구이, 김치, 깍두기 등 맛깔스럽고 정성스런 시골 밥상이 차려지고 훌륭한 아침 식사를 마친다. 주인 노부부의 친절과 주변 경관이 기회가 되면 여름휴가 때 다시 찾고 싶다.
5시 5분. 주인 아저씨의 봉고 트럭을 이용하여 한재로 향한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굽이굽이 힘겹게 15분 정도 오르자 서울대학교 학술림 지역으로 차량을 통제하는 쇠줄이 막는다. 주인아저씨와 작별 인사를 하고 시멘트 도로를 따라 30분을 걷는다.
5시 50분. 한재 (850m)에 도착. 고도가 높고 북향으로 되어 있어 추위가 심하다 하여 추운 고개란 뜻에서 한재라 부르게 되었단다.
이정표 (백운산: 2.7km, 다압하천: 8km)를 배경으로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따리봉을 향해 오른다.
점점 고도를 높이면서 경사가 가팔라진다. 산행을 시작한지 30분. 잡초로 뒤덮인 헬기장을 지나면서 경사가 완만해지고 2분 뒤 따리봉(1,120m)에 닿는다. 이 지방 사람들은 마치 뱀이 똬리를 튼 모양이라 똬리봉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정상표지석이 바위 위에 자리를 잡고 있고 간밤에 호남정맥 종주자의 안식을 제공한 두 동의 텐트가 보인다.
왼쪽으로 백운산이 우뚝하고 도솔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멀리 희미하게 지리산 산줄기가 시야에 들어온다.
간식을 나누며 15분 동안 휴식을 취한다. 급경사에 내림길이다. 따리봉에서 15분이면 참샘이재 (966m)에 닿는다. 도솔봉 1.2km 이정표가 보이고 양쪽으로 하산로가 뚜렷하다.
곧바로 헬기장(980봉)을 지나고 3분 정도 지나서 다시 헬기장을 통과한다. 따리봉에서 45분지나 도솔봉 (1,123.4m)에 도착한다. 오석으로 된 정상 표지석과 삼각점 (하동 308, 1985 재설)그리고 형제봉 2.6km 휴양림 6.7km이정표가 있다. 동쪽으로 지나온 따리봉과 그 옆으로 백운산, 남쪽으로 가야할 호남정맥 산줄기들이 파도치듯 뻗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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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시 5분. 새재(810m)에 도착한다. 갈림길이다. 왼쪽은 성불계곡으로 하산길이다. 성불사 1.5km 형제봉 1km 이정표가 서 있다. 정맥은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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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솔봉을 떠난 지 약 1시간. 첫 번째 형제봉에 도착한다. 나무 그늘에서 막걸리와 간식을 나누며 휴식을 취하고 표지석이 있는 두 번째 형제봉 (861.3m)을 올랐다가 내려서면 왼쪽으로 하산로가 보이고 곧이어 능선상에 삼각점 (하동 426, 1985 재설)이 있다.
9시 15분. 임도(구례군 간전면과 전남 봉강면 광양을 연결하는 865번 지방도로로 1970년 준공)를 만난다. 임도를 가로질러 3분 정도 오르면 월출봉(?)이다. 왼쪽으로 확 방향을 틀어 가파르게 2분 정도 내려서면 다시 임도와 만나고 가로질러 2-3분 내려가면 또 다시 임도를 만난다. 월출재(763m)를 조금 지나서 걸음을 멈추고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달랜다. 간식을 나누며 15분 동안 휴식을 취한다.
10시 15분 깃대봉(828.2m)정상에 도착한다. 비교적 넓은 공터에 삼각점 (하동 24, 1991재설)이 있는 능선분기점이다. 정맥은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
3-4분 정도 진행하면 삼계면 경계지점으로 왼쪽은 계족산과 비봉산 (555.3m)으로 이어지고 오른쪽은 미사치(2.3km)가는 길이다. 계속해서 내리막길이다.
30분 정도 진행하여 송전탑을 통과하고 3분 후 헬기장을 지난다. 곧바로 십자로 안부 미사치(444m)에 도착하여 휴식을 취하며 후미 일행을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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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길을 따라 오르는 등산객에게 물으니 20분 정도 내려가면 심원리 버스 종점이라고 한다. 그리매님이 맨 후미 산머루님에게 탈출 의사를 묻자 계속 진행하겠다고 한다. 산머루님은 포기하지 않고 완주하였다.
15분 정도 휴식을 하고 708봉을 향하여 오른다.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매우 가파른 된비알이다. 15분 정도 오르면 오른쪽으로 전망이 좋은 바위(일명 신선대 바위)에 닿는다.
산아래 마을이 온통 산으로 둘러 싸여 천연요새와 같고 한 쪽에서는 터널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다.
물 한 모금으로 거친 숨을 고르고 15분 정도 더 올라 708봉 바로 아래 나무 그늘에 점심식사를 위해 자리를 잡았지만 모두들 더위에 지쳐 선뜻 도시락을 꺼내지 않는다.
점심식사가 끝나갈 즈음 혼자 종주하는 사람이 묵묵히 올라온다. 등에 맨 85리터 배낭을 보니 괜스레 기가 죽는다.
12시 30분. 50분간의 식사와 과일 통조림 후식, 달콤한 휴식을 마치고 자리를 뜬다. 곧바로 708봉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진행한다.
20분 진행하여 갓꼬리봉 (689m)에 닿는다. 산불감시초소가 보이고 삼각점 (구례 313, 1985 복구)이 있다. 정맥 길은 산불감시초소 오른쪽으로 이어진다.
5분 정도 내려서 암벽 밧줄을 타고 내려서고 5분 정도 진행하여 바위 암반에 올라서니 시원한 바람이 걸음을 멈추게 한다. 방금 내려온 갓꼬리봉의 모습이 보기 좋다.
절벽을 내려오는 산머루님이 보인다. 모두들 암반에 주저앉아 온몸으로 바람을 즐기는 사이 점심식사 후 맨 후미로 따라오던 신샘님과 사쿠님이 그대로 앞으로 치고 나간다. 산행을 시작한지 7시간이 흐른 시각. 이때쯤 편안한님의 수박화채가 기다려진다. 오늘도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수박화채를 꺼내자 모두들 환호성을 지른다. 갈증이 한 방에 날아간다. 오늘은 수박화채를 꼭 먹겠다던 신샘님은 끝내 그 소원을 이루지 못한다.
13시 15분. 휴식을 끝내고 630봉 헬기장을 지난다. 능선 좌우로 죽청치 임도가 시야에 들어온다. 내리막길이다. 20분 정도 진행하여 마당재(440m)를 통과한다. 측백나무 군락지다. 길가에 만개한 큰꽃으아리가 고운 자태를 자랑한다.
15분 동안 왼쪽 산허리를 타고 진행한다. 산새들의 청아한 노랫소리가 하모니를 이루며 연신 숲의 교향악을 열창하고 있어 나그네를 즐겁게 해주고 발걸음은 가볍기만 하다. 10분 더 평탄하고 호젓한 길을 진행한다. 막 호남정맥을 졸업하신 청록님의 표지기가 너무나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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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시 정각. 갈매봉에 도착한다. “갈매봉(468m)정상” 표지판이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다. 고도 표시가 이상하다. 선두로 치고 달리던 신샘님이 커다란 소나무 그늘에서 휴식을 취하며 미소를 짓는다. 학생수련원에서 올라오는 학생들이 부르도록 어머님은혜 노랫말이 적혀있다. 후미 일행을 기다리며 간식을 나누고 30분간 휴식을 취한다.
14시 30분. 죽청치 (381m)에 도착한다. 순천시 황전면 죽청리에서 서면 운평리를 연결하는 임도가 지나간다.
임도를 가로질러 오르막길을 오르다 표지리본이 많이 매달린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튼다. 그대로 직진하면 호두산으로 향한다. 턱밑까지 차 오르는 거친 숨을 토해내며 7-8분 치고 오르면 순탄한 길이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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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시 정각. 진행하던 뚜렷한 등산로 왼쪽으로 정맥 표지리본이 보인다. 생각 없이 진행하면 알바하기 쉬운 지점이다. 콧노래를 부르며 내려가던 편안함님을 빽 시키고 후미 일행을 위해 나뭇가지로 길을 막아놓고 표지리본을 매단다. 사쿠님이 남는다며 주는 500밀리리터 물 한 병을 받아 갈증을 달래고 배낭에 넣으니 마음이 든든하다. 가파른 길을 내려서면 장사굴재다. 옛길 흔적이 희미하다. 산불이 난 흔적이 보이고 불에 탄 나무들을 벌목하여 방치해 놓았다. 천천히 오르막길을 오른다.
15시 30분. 삼각점 (구례 464, 1985 재설)이 박혀있는 농암산 (476.2m)정상에 도착한다. 참나무에 가려 조망을 즐길 수 없다. 간식을 나누며 휴식을 취하는 데 선두로 치고 나간 신샘님과 장총님이 땀을 비 오듯 흘리며 올라온다. 죽정치에서 호두산 중턱까지 1시간 이상 알바를 한 것이다. 모두들 폭소를 하며 반긴다. 20분간의 달콤한 휴식을 마치고 길을 이어간다.
25분 정도 진행하여 570봉을 오르고 다시 7-8분 진행하여 500봉에 닿는다. "道"자가 음각된 사각 작은 표지석이 있는 삼거리 갈림길이다. 왼쪽 내리막길로 향한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서면 훤히 뚫리면서 햇빛 내리 쬐는 넓은 길이 나타난다.
선답자의 산행기에서 본 빨간 기와지붕 집(별장)이 보이고 임도를 따라 송치로 내려간다.
16시 45분. 17번 국도가 지나는 송치(솔재, 280m)에 도착하여 11시간의 긴 산행을 마무리한다.
솔재를 한자로 표기하면서 송치와 송현으로 적었고, 왼쪽 서면 계곡에 원을 설치하고 송원과 송현원으로 이름지었으나, 사람들은 한자대로 부르지 않고 '솔원'이라 불렀고 '솔원이 있는 재'란 뜻으로 '솔원재'라 불렀다고 한다. 지금은 송치터널이 뚫려 차량 통행이 뜸하며 옛날 휴게소가 있던 고갯마루에는 잘 지어진 교회가 자리잡고 있다.
맨 후미로 산머루님과 동행한 그레이님이 도착하고 버스는 가까운 계곡을 찾아 떠난다. 흐르는 물에 땀을 씻어내고 남원으로 향한다. 광한루 옆 월매식당에서 묵과 파전을 안주 삼아 동동주로 하산주를 나누고 추어탕과 비빔밥으로 저녁식사를 마친다. 88고속도로 남원나들목으로 들어선 버스는 대전을 향해 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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