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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공원

한라산1

2005년 1월 30일 (일)

새벽 5시. 알람소리에 눈을 뜬다. 제주도 여정 둘째 날이 시작된다. 한식뷔페로 아침식사를 마치고 보온병에 따듯한 물을 채운다. 점심 도시락 하나씩을 배낭에 챙겨 넣고 버스에 오른다. 7시 정각, 숙소를 떠나 목석원을 지나고 제주시에서 한라산 동쪽 허리를 가로질러 서귀포를 잇는, 총연장 43km의 5·16도로(한라산  제1횡단도로)를 따라 30여분 이동하여 성판악휴게소에 도착한다. 양쪽 길가 숲에 오직 한 가지 순 백색으로 만발한 설화와 설경은 만가지 색으로 피어난 꽃보다 한층 화려함을 뽐내는 겨울 한라산이 주는 최고의 선물이다. 



한라산으로 오르는 성판악 코스는 5·16도로의 최고점인 해발 750m에서 시작된다. 성판악(城板岳)은 남서쪽 인근에 있는 성널오름에서 유래되었다. 특히 수직절벽이 병풍처럼 약 500m 정도 둘러쳐진 모양이 마치 '나무판자로 성을 둘러친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7시 40분 매표소를 지나 매우 평탄한 등산로를 따라 숲 속으로 들어선다. 오전 9시 30분 이후엔 입장을 못하게 통제를 하기 때문에 등산을 할 수 없다고 한다. 정상에서도 12시 30분 이후엔 모두 하산을 해야한다. 날씨가 시시각각으로 변하기 때문이란다. 한라산 등산로에 깔린 하얀 눈은 마치 솜이불 같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설경으로 눈이 부시다. 사람들은 한라산을 두고 신의 정원이라 부른다. 계절마다 색깔이 다르고 생태가 다르고, 계곡마다 전설이 서려 있는, 그래서 사람들은 한라산을 동경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내디디며 정상을 향해 다가설 수 있는 여유. 가파른 길에서는 땀을 흘려서 좋고 평탄한 길에서는 잰걸음으로 달려갈 수 있어 좋은 길. 산행은 자신을 거듭나게 만든다.


겨울 산에서 항상 푸르름을 주는 키 작은 나무 조릿대가 눈 속에서도 얼굴을 내밀고 있다. 서어나무 등 활엽수가 우거진 길을 따라 50분쯤 진행하여 속밭에 이른다. 진달래밭 대피소 3.5km 이정표가 보이고 완만한 오름길이 이어진다.



산행을 시작한지 한 시간. 화장실이 보이고 진달래밭 대피소 3.2km 이정표를 지나자 벌거벗은 나무마다 새하얀 눈꽃으로 장식한 동화의 세계가 펼쳐진다. 속밭을 지나 40분 정도 걸어가니 사라무인대피소가 보인다.


자연은 참으로 신비롭다. 소복이 내린 눈이 산을 덮고 있다. 그 형태는 마치 오름 같기도 하고 어머님의 젖가슴처럼 같기도 하다. 정상에 호수가 있는 사라오름이 인상적이다. 제주도의 330여 기생 화산 가운데 정상에 화구호가 있는 오름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라고 한다. 사라오름 분화구는 예로부터 제주 제일의 명당자리라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온다고 한다.



9시 25분 진달래밭대피소 0.7km이정표를 지나면서 길은 조금씩 가팔라진다. 가파른 길은 10여분 오르면 시야가 열리면서 해발 1,500m고지에 다다른다. 이곳에서 만난 구상나무와 좀고채목 등이 눈 속에서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 가고 있다. 계절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자연의 신비를 안겨주는 나무들의 모습이 우직하게 느껴진다.



크리스마스트리 같은 나무들이 빽빽이 들어 찬 백색의 숲이 펼쳐진다. 너무나 멋진 광경이다.


곧바로 진달래밭 대피소 도착하여 잠시 여정을 푼다. 따뜻한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빵으로 허기를 달래며 10분간 휴식을 취한다.



진달래 밭에서 백록담까지는 2.3km. 정상인 백록담에 도전하기 위해서는 낮 12시까지 진달래 밭에 도착해야 한다. 진달래밭 대피소부터는 오르막길을 걷게 되는데 양쪽으로 전나무가 즐비하고 바위들이 뒤엉켜있다. 많은 등산객들로 정체되어 시간이 지체된다.




진달래밭대피소를 떠난 지 50분. 정상 1km 이정표를 지나자 정상이 눈앞으로 성큼 다가선다. 한라산을 멀리서 보면 동그란 산정에서부터 해안지방까지 납작한 접시 아니면 방패를 엎어놓은 것 같으니, 곧 방패 순(楯)자를 쓴 순상화산(楯狀火山)이다. 해발 1750m부터 정상까지 0.8km 올라가는 길은 성판악 등산코스 중에서 제일 가파른 길이다.



11시 정각. 해발 1900m 돌 표지석이 반긴다. 나무 한 그루 없는 황량한 마지막 오르막길은 차라리 이국적인 멋을 풍기고 있어 낭만적이다.



세찬 바람이 볼을 할퀴고 지나간다. 고개를 숙이고 3-4분 정도 진행하여 드디어 해발 1,950m 한라산 동릉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 한 가운데 푹 패인 분화구 안은 흰 눈이 덮여있다. 백록담이다.




사방이 바다로 둘러싸인 환상의 섬 제주도, 이 섬의 한 가운데 1,950m의 높이로 우뚝 솟은  한라산(漢拏山)이 있다. 능히 은하수를 잡아당길(雲漢可拏引也)만큼 높은 산이란 뜻을 가진 이 산은 옛부터 신선들이 산다고 해서 영주산(瀛州山)이라 불리기도 했고 금강산(金剛山) 지리산(智異山)과 더불어 우리나라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여겨져 왔다.


주변의 설경이 너무 환상적이다. 눈 속에 잠긴 설경의 한라는 절경 중의 절경으로 꼽힌다. 고사(枯死)된지 오래된 구상나뭇가지에 피어난 눈꽃들의 기묘함을 감상하며 물 한 모금으로 잠시 숨을 고른다.



한라산 동릉 정상 표지목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한 장 남기고 아이젠을 착용하고 관음사지구를 향해 발길을 내딛자 온 산이 하얀 눈을 뒤집어쓰고 있는 환상적인 설국으로 변모한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서자 서서히 한라산 최고봉인 부악의 외벽이 기괴하고 웅장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오래 전 스위스 여행에서 오른 알프스의 융플라우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



산길로 들어선 지 30분. 왕관릉에 도착한다. '살아 백년 죽어 천년 산다'는 고사목과 고채목 등 이국적인 나무들이 신비경에 빠지게 한다.





설경과 구름이 어우러져 멎진 조망을 만들며 나그네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양지바른 곳에 자리를 잡고 도시락을 펼친다. 등산객들이 던져주는 먹이에 길들여진 까마귀들이 떼지어 주변을 맴돈다.




30분간의 점심식사를 마치고 가파른 내리막길을 따라 20분 정도 내려서 용진각 무인대피소에 도착한다. 용진각에는 갑자기 비가 내려 급류가 생길 우려가 있는 곳이어서 무인대피소가 있다. 정상에서 이곳까지는 거리는 짧지만 경사가 상당히 가파르다.


용진각은 삼각봉과 왕관릉 사이의 움푹 꺼진 골짜기를 일컫는 것인데, 예전에 용진굴이라고도 불렸다. 굴이라고 해서 동굴이 있는 것은 아니고 주위가 높은 언덕에 둘러싸여 신비스런 기운이 서려 있는 동네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이 용진각의 동북쪽 언덕은 장구목이라는 고원평지이다. 왕관릉에서 바라보면 영락없는 장고 모양을 하고 있다. 이 곳에 1977년 세계 최고봉 초모룽마(티베트어로 세계의 어머니 여신이라는 뜻. 에베레스트, 8848m)를 한국사람으로서는 최초로 올랐으나, 2년 뒤 북아메리카의 최고봉 데날리(일명 메킨리, 6194m)에서 운명을 달리한 제주출신 산악인 고상돈씨를 기리는 케른(돌무덤)이 있다고 한다. 골짜기 건너편 산 중턱에 우뚝 선 바위 하나가 눈길을 끈다.



용진각대피소에서 15분 정도 내려서면  삼각봉을 만나고 곧바로 개미목을 지나 개미등이 시작된다. 두 골짜기 사이에 툭 튀어나온 모양이 개미의 등 같아서 그런 명칭이 붙은 것이라고 한다.



13시 30분 탐라계곡대피소에 도착한다. 이곳 역시 폭우로 인한 기상악화시 계곡물이 갑자기 불어났을 때를 대비해서 지어놓은 무인대피소이다.


한라산 계 곡 중 가장 길다는 탐라계곡을 끼고 계속해서 내리막길이 이어지고 약간 위험하다. 계곡이 깊을수록 마음도 깊어진다더니, 겨울 산의 계곡은 인기척이 없다. 동물들도 겨울잠을 자기 때문일게다.




탐라대피소에서 20여분 지나면 흰눈을 뒤집어쓰고 무덤처럼 보이는 숯가마터는 안내판만이 이곳이 한라산 참나무로 숯을 만들던 숯가마터임을 알려준다.


다시 10분을 더 내려서면 오른쪽으로 구린굴 표지판이 보인다. 구린굴은 용암동굴로 한라산 화산폭발 당시 백록담 분화구로부터 흘러나온 용암에 의해 형성된 동굴로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만이 갖고 있는 소중한 자원이라고 한다. 관음사지구 1.5km 이정표가 반긴다.


14시 30분 탐라대피소를 출발한지 1시간이 지나서 관음사코스 등산기점인 넓은 주차장에 도착하여 산행은 끝이 난다. 5.16도로(제1횡단도로)와 1100도로(제2횡단도로)를 잇는 제1산록도로 변에 있는 관음사코스는 코스 명칭이 관음사라해서 절에서 시작되는 것은 아니고, 등산로 입구에서 동쪽으로 약 1.2km지점에 관음사란 사찰이 있기 때문 관음사코스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차에 배낭을 내려놓고 관음사로 향한다. 1117번 포장도로를 따라 오른쪽으로 10분 정도 걸어가자 관음사 주차장에 닿는다. '한라산관음사'라는 현액이 걸린 일주문을 들어서면 여느 절처럼 사천왕문이 있다. 그런데 특이하게 사천왕상 대신에 사천왕 벽화가 그려져 있다.



제각기 다른 모습의 수많은 석불상이 도열해 있고 사천왕문을 통과하면 오른쪽으로 해월굴이 보인다. 이 토굴은 관음사를 창건한 안봉려관 스님이 3년 동안 기도 정진한 토굴이라고 한다.



대웅전 왼쪽에는 연산전이 자리하고 그 왼쪽에 석가모니부처님 다음에 이 세상에 와서 죄악과 고통으로 헤매는 중생을 구하기로 약속되었다는 미륵불상을 중심으로 만불(만개의 불상) 봉안이 진행중이다.



그 왼쪽으로 관세음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이 나란히 자리하고 경내를 내려다보고 있다.



16시 30분 마지막 일행이 도착하고 비행기 탑승 시간까지는 시간 여유가 있어 버스 기사아저씨에게 해안도로 드라이브를 부탁한다.



드라마 '인어아가씨'와 '러브인'의 촬영지였던 카페촌이 있는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하고 신비의 도로를 체험한다. 신비의 도로 혹은 도깨비도로라고 불리는 이곳은 제주시내에서 어리목으로 가는 1100도로 상에 있는데 나즈막한 언덕을 차로 넘어서면 약간 경사진 오르막길로 보이는 곳이다. 사실 이 도로는 착시현상으로, 실제 경사도가 낮은 곳이 시각적으로 높게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착시 구간이 100m 정도 되는 이 도로는 신비함을 맛볼 수 있어 관광객들이 꼭 한번씩 거쳐가는 단골 코스로 이름난 곳이다.



한라산 서쪽 허리를 가로질러 제주에서 중문을 연결하는 1100도로는 전장 37km, 1천1백 고지를 통과하는데 제주도의 식수를 해결하는 젖줄인 어승생 수원지와, 한 골짜기가 모자라 왕도 범도 아니 난다는 전설이 어린 경승지 아흔아홉 골을 지나 원시의 밀림 속을 헤치고 금강산의 만물상에 비길만한 영실 기암 가까이를 스쳐 지나간다.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한라수목원이다. 한라수목원은 신비의 도로에서 제주시 방향으로 약 5분 거리에 있다. 5만여 평의 규모에 산림욕장을 포함해 500여종의 목본류와 90여종의 초본류가 식재, 전시되어 있다. 또 관목원, 약식용원, 만목원, 화목원, 교목원, 희귀특산 수족원 등의 시설이 잘 가꾸어져 있다.


18시 30분 차내에서 배달된 도시락으로 저녁식사를 하고 공항으로 이동한다. 20시 제주공항을 이륙한 아시아나항공 청주행 비행기는 1시간 후 청주공항에 무사히 안착한다. 1박 2일 동안 좋은 사람들과 함께 한 제주도 여행의 아름다운 추억을 간직하고 대전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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