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 11일. 개교기념일이다. 가는 길...
전날 백두대간 팀과 무박으로 한계령을 출발하여 대청봉에서 죽음의 계곡을 거쳐 희운각으로 내려서고, 다시 가야동계곡으로 내려서 오세암을 거쳐 백담사까지 15시간의 설악산산행을 마치고 새벽 1시가 넘어서 귀가했다. 모처럼 늦잠을 잤다. 눈을 떠보니 아이들은 벌써 등교를 하고 집안은 조용하다. 빵 한 조각과 커피로 아침 식사를 대신하고 배낭을 챙긴다. 또 산에 가느냐는 아내의 핀잔을 애써 무시하고 집을 나선다.
산행...
간단하게 산행 준비를 마치고 운장산 구봉산 등산안내도 옆 표지리본이 주렁주렁 달린 들머리로 들어선다.
곧바로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양명교를 건너고 농로를 따라 50여m를 진행하면 본격적인 산행 초입으로 들어선다. 입구에 2봉 1.1km, 9봉 2km, 구봉산(천황봉) 3.3km라고 적혀 있는 이정표가 서있다. 처음부터 오르막길이다. 꾸준히 10분 정도 치고 오르면 돌계단이 이어진다. 숨가쁘게 돌계단을 오른다. 11시 38분 Y자 갈림길 양쪽으로 표지기가 많이 매달려 있다. 어느 쪽으로 오르던 상관없이 곧바로 T자형 갈림길을 만나고 오른쪽 나무계단을 오른다. 10분 후 벤치 3개가 놓여 있는 안부 쉼터에 도착한다.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달래고 3분간 쉬어간다. 7-8분 계속 오르면 왼쪽으로 조망이 트이고 정상이 눈에 들어오며 낭떠러지 밑으로 조그만 암자가 보인다. 천황암이다.
3-4분 후에 1봉 갈림길에 닿는다. 이정표에 의하면 1봉만 오른쪽(0.08km)에 있고 나머지 여덟 봉우리는 왼쪽(2봉-9봉 1.5km)에 포진하고 있다.
1봉까지는 80m정도 내려간 후 철제 가드레일과 연결된 밧줄을 잡고 오른다.
1봉(470m)은 사방이 확 트인 명당자리인 듯 뜻밖에 무덤 1기가 있고 소나무 세 그루가 묘지를 감싸고 있다. 멀리 용담호가 한눈에 들어온다.
다시 안부로 돌아와 2봉으로 향한다. 역시 밧줄에 의지한 채 5분이면 왼쪽으로 무너진 케언이 있는 2봉(506m)에 잠시 올라선다. 정면에 3, 4봉이 잇따라 보인다. 12시 20분 고개에서 오름길 올라 3봉(575m)을 지나 5분 정도 진행하여 밧줄을 잡고 암벽을 기어오르면 4봉(700)에 닿는다. 정상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다가선다.
4봉을 내려서면 3개의 벤치가 놓여있는 넓은 쉼터에 도착한다. 구봉산 천왕봉 1.3km 이정표가 서 있고 사방으로 탁 트여 전망이 좋다.
5봉(725m)에 오른다. 뒤돌아 4봉을 바라보니 용담호와 어우러져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인다. 소나무 세 그루가 그늘을 만들어 휴식하기 좋은 쉼터다. 그늘 밑에서 간식을 먹으며 10분간 휴식하고 6봉으로 향한다.
가파르고 위험한 암벽 내림길을 2분 정도 내려서면 이정표(9봉 0.2km)가 보이고 1분 정도 오르면 6봉(735m)에 닿는다. 다시 내림길로 들어선다. 반대쪽 절벽에 소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나그네의 눈길을 잡아끈다.
6봉을 내려선다. 6봉은 특히 내려올 때 아주 위험하다. 주차장 1.7km 구봉산 1km 상양명리 2km 이정표가 서 있고 왼쪽으로 천봉암 내림길이 보인다. 7봉(745m)과 8봉(755m)은 암봉으로 암벽 등반을 해야하는데 밧줄이 없어 위험하다. 왼쪽으로 비탈길을 따라 빙돌아 내려섰다 오르면 8봉 서편 쉼터에 닿는다. 바닥에 구봉산(천황봉) 0.85km 이정표가 나뒹군다. 잠시 쉬면서 가빠진 호흡을 달랜다. 천황봉으로 향한다. 13시 10분 완만한 내림길을 2분 정도 내려서면 초록빛 산죽군락이 나타난다. 이 곳이 돈내미재. 왼쪽은 상양명리(2km) 하산하는 길이고 오른쪽은 천황봉(0.75km)가는 길이다.
왼쪽 바위 절벽 밑에 샘터가 있고 식수를 보충할 수 있다. 양쪽 바위절벽 사이의 협곡으로 오르는 100여m는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아주 가파르다. 길옆 단애 아래를 지날 때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단애로부터 물이 떨어지고 가만히 서 있어도 미끄러지는 된비알이다. 밧줄이 있지만 별 도움이 안 된다. 악으로 오른다. 10분 정도 지나면 나무계단이 이어진다. 시원한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며 땀을 식혀준다. 계속되는 가파른 오름길을 밧줄에 의지해서 올라선다. 15분 정도 오르면 소나무가 그늘을 만드는 안부에 도착한다. 멀리 용담호가 시원하게 한눈에 조망되고 지나온 봉우리들도 역시 한 눈에 들어온다.
떡 한 조각으로 허기를 달래고 잠깐 내려섰다 가파른 오르막길을 7-8분간 숨가쁘게 치고 오르면 T자형 갈림길을 만난다. 이정표가 서 있고 오른쪽으로 북두봉을 거쳐 운장산(9.1km)가는 길이다.
왼쪽 천황사(3.3km)쪽으로 몇 걸음 옮기면 구봉산정상(천황봉)에 닿는다. 정상을 지키던 수십 마리의 까마귀 떼가 갑작스런 나그네의 출현에 놀라 까악까악 소리를 지르며 하늘로 날아오른다. 주차장에서 2시간 30분 정도 소요된다. 해발 1002m 구봉산 정상을 알리는 앙증맞은 표지석과 이정표 그리고 벤치 4개가 놓여있다.
동쪽엔 방금 올라온 8개의 봉우리가 비스듬히 보이고 그 뒤로 덕유산이 희미하게 조망된다. 남쪽엔 마이산이, 서쪽엔 복두산과 운장산이 손에 잡힐 듯 하다. 정면에 용당댐이 보인다. 의외로 규모가 크다. 전국에서 다섯 번째란다. 14시 남쪽 천황사방향으로 걸음을 옮긴다. 7-8분 내려서면 완만한 능선 전망대에 닿는다. 뒤돌아보면 구봉산의 깎아지른 절벽에 아름다운 단풍이 색동치마를 두른 듯하고 1봉-8봉 모습이 압권이다.
구봉산(九峰山)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여덟 개의 바위봉과 주봉인 천황봉으로 대표된다. 여덟 개의 바위봉은 한 능선에 나란히 이어져 마치 엄한 아버지 앞에 앉은 자식들을 연상시킨다.
구봉산 산곡사이 양명저수지에 햇살이 내려앉아 보석처럼 빛난다.
2-3분 지나 갈림길을 만난다. 바랑재다. 직진하면 천황사 (2.7km)가는 길이다. 천황사 가는길을 버리고 원점회귀를 위해 밧줄이 매어져 있는 급경사의 왼쪽 길을 택한다. 처음엔 가파르지만 이내 낙엽과 산죽이 번갈아 나와 발길을 가볍게 해준다. 뱀이 지나간다. 왼쪽으로 조그만 석굴이 보이고 5분 정도 내려서면 경사가 완만하게 변한다.
4분 정도 지나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내려선다. 다시 가파른 내림길이다. 붙잡을 만한 나뭇가지가 없는 가파른 길에는 밧줄이 설치되어 있고 지루한 내림길이 계속 이어진다. 두 번째 밧줄 구간이 끝나면 너덜지대를 통과한다. 10여분 뒤 조릿대 숲 사이로 들어서면서 경사가 완만해진다. 조릿대 숲을 빠져나와 너덜지대를 잠깐 지나고 길은 평탄해진다. 감이 주렁주렁 달린 감나무를 지나 물 마른 바랑골 계곡을 건넌다.
길 왼쪽으로 나무 담장한 별장 같은 집이 보이고 시멘트포장 농로와 만난다.
구봉산장 민박집이 보인다. 바랑재에서 50분 정도 소요. 선선한 가을바람이 누렇게 물든 들판을 흔들며 지나간다. 가을은 넉넉하고 풍요롭다. 너른 들판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가고 길가에는 코스모스가 한들거린다.
구봉산장을 돌아 마을을 거쳐 주차장으로 가도 되고, 날머리에서 바로 오른쪽으로 진행하여 725번 지방도로와 만나 왼쪽으로 돌아 주차장으로 가도 된다.
15시 10분 주차장에 도착하여 산행을 마무리한다. 정상을 출발하여 1시간 10분 정도 소요된다.
오는 길...돌아오는 길에 산을 오르면서 보았던 용담다목점댐으로 향한다. 용담호를 오른쪽으로 끼고 달리는 길은 드라이브코스로 그만이다.
군데군데 음식점인 듯한 멎진 집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한석규 주연의 영화 주홍글씨가 촬영되었던 용담댐전망대에서 가을 오후 용담호에 내려앉은 따사한 햇살을 바라보며 잠시 여유를 부린다.
용담댐전망대를 나와 2-3분 정도 진행하면 13번 국도와 만난다. 금산방향으로 달려 대진고속도로를 탄다. 인삼랜드 휴게소에서 차 한잔하고 대전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