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흐름에 큰 미련을 두지 않고 살다가도, 가끔은 아름답던 옛 시절이 사무치게 그립다. 무엇을 간직하게 된다는 것이 가끔은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그것이 아름다움이라면 그건 행복일 것이다. 그래서 난 행복하다. 수많은 벽들을 향해 닫혀있던 내 맘속의 문을 열고, 자연의 푸르름과 청명함으로 마음속을 닦아내기 위해 대전 근교 산행을 나선다.
오래 전부터 염두에 두었던 천등산을 가기 위해 안영요금소를 빠져나와 곧바로 좌회전하여 645번 지방도로를 타고 진행한다. 복수삼거리에서 17번 국도를 타고 오른쪽 전주/진산 방면으로 향한다. 대둔산을 지나 운주 방면으로 향한다. 17번 국도상의 배티재를 경계로 하여 북쪽은 대둔산, 남쪽은 천등산으로 나뉘어 있다. 완주군 운주면 평촌리 앞을 흐르는 냇가가 유명한 괴목동천인데 괴목동천 건너에는 무너질 듯 솟아있는 암벽이 제법 위압적이다. 일명 '하늘벽'이라 불리는 이 암벽 왼쪽으로 두 개의 암릉이 천등산 정상을 향해 이어진다. 길가에 가든 간판을 단 음식점들이 많이 보인다. 11시 23분 장선리 천등산 LG주유소에서 좌회전하여 천등산 방향으로 진행한다. 11시 25분 계곡휴게소 주차장에 주차하고 간단하게 산행준비를 마친다. 11시 30분 산행 들머리로 들어선다. 넓은 농로를 따라 조금 걸어가면 오른쪽에 정말 멎진 소나무 한 그루가 그 자태를 뽐내고 나그네를 반긴다.
11시 37분 갈림길에서 오른쪽 길로 접어든다. 11시 40분 치성을 드린 흔적이 남아있는 커다란 바위(석굴)를 지나 숲 속으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된다.
11시 50분 길이 가팔라지기 시작한다. 점점 경사가 심해지고 턱 밑까지 차 오르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 발 한 발 오른다. 12시 10분 산죽나무를 헤치고 오르면 너덜지대가 나타난다. 잠시 가던 길을 멈추고 바위에 걸터앉아 휴식을 취하며 호흡을 고른다.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달래고 간식으로 허기를 속인다. 가파른 오르막길은 계속된다. 12시 25분 갈림길이다. 청록님의 금당(?) 표지리본이 반갑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고 오른다. 3분 정도 치고 오르면 오른쪽으로 시야가 탁 트이는 전망바위에 올라선다. 굽이치는 산줄기가 한 눈에 조망되며 멀리 서해바다까지 가물가물 눈에 들어온다.
바로 코앞에 보이는 봉우리에서 흘러내린 산줄기 암벽에는 바위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들로 하나의 거대한 산수화 작품 같다.
전망바위에서 조망을 끝내고 내려와 곧바로 암벽을 기어오르고 조금 더 진행하여 또 다시 암벽을 기어오르면 약간 험한 암릉길이 이어진다. 왼쪽으로 안전한 우회로가 보인다. 12시 42분 오른쪽으로 시야가 확 트이면서 조망이 시원하다. 조금 진행하면 전망 좋은 바위에 도착한다. 잠시 숨을 고르고 암릉을 타고 진행한다. 대둔산 못지 않은 기암괴석을 자랑하는 바위산으로 이루어진 천등산은 산의 둥그스름한 모습과는 달리 곳곳에 너덜지대와 단애가 있고, 능선 중간 곳곳에 아슬아슬한 암릉길이 이어져 있어 짜릿한 스릴을 느낄 수 있는 게 묘미다. 12시 45분 천등산(天燈山 706.9m)에 도착한다. 후백제를 세우기 위해 견훤이 용계산성을 쌓고 전주성을 치려는데 연못 속에서 용이 닭 우는 소리를 내니 산신이 환한 빛을 발하여 앞길을 밝히므로 승리를 거두었다는데서 그 이름을 '하늘의 등'이란 의미로 천등산이라 하였다고 한다. 정상은 비교적 넓은 공터로 정상표지목이 돌무더기에 둘러 세워져 있고 전북산사랑회에서 세운 정상표지판에는 고산촌 2.3km 17번 국도까지 1,8km 라고 적혀있다.
대둔산 바위능선이 가까이 조망되고 마천대도 가물가물하게 보인다. 부드러운 곡선을 가진 산이 주는 포근함과는 다른, 패기와 위엄이 넘치는 대둔산은 자연의 위엄과 위대함이 또 한번 빛을 발한다. 진록의 나무들 사이로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기암절벽들이 대둔산의 장엄함을 한층 더하는 것은 바위를 깎아내고, 다듬으며 지금의 모양을 만들어냈을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묻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전북 완주군 운주면에 위치한 천등산은 대둔산의 명성에 가려져 있으나 대둔산의 절경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유일한 곳이라 한다.
잠시 조망을 감상하며 휴식을 취하고 점심식사를 한다. 13시 15분 점심식사를 마치고 기념촬영을 한 후 대둔산 방향으로 방향을 잡고 하산 길로 접어든다.
13시 25분 매우 험한 암벽 내리막길이다. 10m 정도 높이의 절벽이 천장을 이루는 암벽은 그 생김이 놀라워 잠시 그 아래에서 쉬어 가는 곳이기도 하다. 밧줄에 의지하여 조심조심 내리고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잠깐 오르막길을 올라섰다 내려선다.
13시 30분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산죽나무 사이로 난 길을 헤치고 나오면 너덜지대가 이어진다. 13시 42분 가파른 내리막길은 비박하기 좋은 바위까지 계속된다. 이어서 산죽나무 사이로 완만한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3-4분 정도 평탄 길에서 숨을 고르고 다시 가파른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길은 흙길이어서 비교적 내려서기 수월하다.
14시 5분 숲을 빠져나오니 키 작은 밤나무에 가을이 열려 있다. 뒤 돌아보니 천등산이 손짓한다.
농로를 따라 5분 정도 진행하면 남양가든 앞개울을 만난다. 다리 아래에서 탁족을 하면서 한 여름의 더위를 식히고 산행의 피로까지 씻어낸다. 괴목동천 맑고 차가운 물에 물놀이하는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잠시 어린 시절의 추억에 빠져든다. 사내아이들 계집아이들 할 것 없이 신이 나서 헤엄을 쳤던 어린 시절의 기억은 새삼 삶의 여유로움으로 젖어들게 한다. 이렇게 정신 없던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의 호젓함을 접하면 역시 산은 삶의 쉼터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한다. 다리를 건너 고산촌의 천등산 휴게소(운주 7km 전방에 위치함)에 도착하여 산행을 마무리한다. 이곳에서 대둔산까지 4km 대전까지는 43km 이다.
천등산(天燈山)
--송병완--
암 봉에 고고한 푸른 소나무야
하늘에서 불 켜고 기다려라
견훤장군 호령소리 들려오나니
엊그제 뿌려놓은 하얀 눈송이
바람 타고 가며 노래 부르네
기암절벽 바라보며 가슴이 조여
천등산 숨겨놓은 비경 알만하랴
쪽빛 타고 흐르는 그림이라
산수화에 타고 가는 우리들이라
하늘에 메 달린 인생 나그네야
아름다운 인생 행복이라네
살아생전 나눔에서 이뤄진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