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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산행일지

각호산-민주지산

2004년 8월 6일 (금)


여행은 ‘쉼과 성숙’을 위해 존재한다.
진정한 쉼이란 평상시의 자신과 다르게 해보는 것이다.
늘 쳇바퀴 도는 일상에서 자신을 일탈시켜보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 가운데 미처 자신이 발견하지 못했던 자신의 진짜 모습을 만드는 것이 여행이다.
그런 의미에서 여행은 진정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기회다.
더 나아가 진정한 자기 자신이 되는 기회다.
그래서 여행은 사람을 ‘나’ 되게 만든다.
한마디로 성숙시킨다.
--정진홍의 <여행>중에서--

보조의자로 통로까지 채운 소월산악회 버스는 8시 20분 대전요금소로 진입하여 경부고속도를 25분 정도 질주하고 황간휴게소에서 15분간 정차한 다음, 10여분을 더 달리고 황간요금소로 빠져나간다. 곧바로 물한계곡 이정표를 따라 우회전하여 49번 지방도로를 타고 무주방면으로 향한다. 상촌면 임산리를 지나고 하대삼거리에서 오른쪽으로 향한다. 왼쪽은 물한계곡으로 가는 길이다. 버스는 강원도 길을 연상시키는 산길을 굽이굽이 돌아 힘겹게 오른다.



9시 45분 도마령(해발 802m)에서 정차하여 산꾼들을 쏟아내고 회차하여 한천주차장으로 떠난다. 등산화 끈을 조이고 사진 한 장 찍는 사이에 일행들은 모두 산길을 치고 오른다. 9시 50분 왼쪽으로 각호산 등산안내도가 보이는 좁은 등산로로 들어선다. 1분 정도 오르자 삼각점이 박혀있고 산불감시초소가 보인다. 산책로 같은 길을 따라 10분 정도 걷는다. 10시 가파른 오름길을 5분 정도 오르자 오른쪽 소나무 아래에 2003년 말 고인이 된 한밭산악회 어느 회원의 진혼비가 보인다. 오르막길이 계속된다. 바람 한 점 묻어나지 않는 조용한 숲 터널 길을 새소리와 매미소리 친구 삼아 천천히 오른다. 지난 일요일 지리산산행, 수요일 낙영산과 도명산산행, 그리고 토요일 무박으로 대관령 진고개구간 백두대간종주를 해야하기 때문에 오늘은 민주지산에서 하산하여 물한계곡에서 피서를 겸하기로 마음먹고 여유로운 발걸음을 옮긴다. 얼굴에 땀이 하염없이 흘러내린다. 10시 30분 숲 터널을 빠져나오자 민주지산 석기봉 삼도봉으로 이어지는 부드러운 능선에 운해가 걸려 주저앉는 모습이 탄성을 자아낸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5분 정도 진행하면 각호산(1176m)에 도착한다. 정상은 두 개의 암봉으로 되어 있고 각호산 표지석이 설치되어 있다.



산허리에 걸려있는 운해로 인하여 왼쪽 조망은 전무하고 민주지산 석기봉 삼도봉으로 이어지는 능선만이 어서 오라 손짓한다. 매듭지은 로프가 나무에 매달린 험한 길을 1분 정도 내려섰다 다시 오르막길을 1분 정도 오르면 민주지산 3.4km 라고 표기된 각호산 이정표가 반긴다. 왼쪽으로 각호골을 거쳐 조동리로 하산하는 길이 보인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고 부드러운 산길을 따라 걷는다. 눈과 귀가 풍성해지는 계절 여름, 진녹색으로 단장한 나무들 사이로 매미 우는 소리가 시원하게 들린다. 10시 50분 가파른 내리막길을 5분 정도 내려오고 산책로 같은 길을 3-4분 정도 걸으면 나무계단 오르막길을 만난다.



계속해서 부드러운 길이다. 11시 4분 십자로갈림길 이정표가 반긴다. 왼쪽은 황룡사 (2.0km)로 하산하는 길이고 민주지산(2.9km)은 직진한다. 곧이어 나무계단을 오른다. 11시 8분 등산로 한 복판에 자리한 묘지를 지나고 나무계단을 올라서면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거친 숨 몰아쉬며 8-9분 정도 오른다. 나무 그늘에 자리잡고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달래고 간식을 먹으며 10분간 휴식을 취한다. 11시 40분 안부갈림길이다. 동물 형상을 한 바위가 눈길을 끈다.



왼쪽으로 보이는 하산길과 민주지산으로 향하는 직진길에도 표지리본이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려있다.



2분 정도 지나 오르막길을 1-2분 정도 오르고 길은 다시 순탄해진다. 11시 54분 나무계단을 내려서고 곧이어 오르막길을 1분 정도 오르면 오른쪽에 통나무 대피소가 눈에 띤다.



긴 나무계단을 오른다. 12시 정각에 도착한 대피소입구 이정표에는 민주지산 0.3km 석기봉 3.2km로 적혀있다.



이정표 앞에 2개의 나무의자가 지친 나그네를 쉬어가도록 잡는다. 물 한 모금 마시고 5분 정도 쉬었다가 100m 정도 걸으면 갈림길이다. 오른쪽으로 휴양림으로 내려가는 나무계단이 보인다. 12시 10분 민주지산(1241m)에 도착한다. 겹겹이 파도치듯 연이어진 능선들이 아름답다. 여름 햇살이 반짝이는 맑은 하늘아래 산의 능선들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뒤쪽으로는 지나온 각호산이, 앞쪽으로는 석기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사방으로 탁 트인 정상에서의 전망은 그지없이 좋다. 북동쪽의 황악산(1,111m)에서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삼도봉과 대덕산(1,290m)을 거쳐 덕유산(1,614m)까지 시원스럽게 펼쳐지며 한 눈에 들어온다.



민주지산(岷周之山)은 산 이름으로 네 글자를 쓰고 있는 몇 안 되는 산이다. 갈 지(之) 자를 쓴 것도 다른 산에서는 볼 수 없다. 민주지산의 유래는 이 고장의 사투리로 ‘민두룸한 산’을 일제강점기 때 지도를 만들면서 한자로 잘못 표기한 것이 오늘의 이름으로 굳어진 것이라고 한다. 산세가 부드럽고 덕스럽게 느껴지며, 굽어볼岷, 두루周, 갈之 자를 쓰는 것으로 보아, 민주지산이 각호산, 석기봉, 삼도봉 등 많은 연봉들을 거느리면서, 이 산들을 두루두루 굽어 살펴볼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이 된다. 높이로 보나 산의 품격으로 보나 산자락에 절이 자리잡을 법한데, 물한계곡 입구에 있는 볼 품 없는 황룡사라는 절이 유일하다. 민주지산 정상에는 가을을 맞으러 나온 잠자리떼의 군무가 장관이다.



간간이 부는 바람이 시원함을 던져준다. 표지리본이 주렁주렁 매달린 길을 따라 하산한다.



12시 20분 쪽새골갈림길에 도착하여 나무의자에서 점심 도시락을 펼친다. 20분간의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낙석위험 통행불가 경고판이 설치되어 있는 쪽새골로 천천히 내려선다. 실제로는 하나도 안 위험하다.



울퉁불퉁한 돌길이다. 12시 50분 민주지산 1km 이정표가 나타나고 너덜지대를 통과한다. 13시 5분 맑은 물 흐르는 계류와 만난다. 청류로 얼굴에 흐르는 땀을 씻어내고 잠시 쉬어간다. 계류를 왼쪽에 끼고 울퉁불퉁한 돌길을 따라 내려선다. 수량이 점점 많아지고, 조그마한 폭포와 소(沼)들도 만난다. 울창한 숲과 시원한 물이 흐르는 계곡을 끼고 있는 길에 청량한 기운이 감돈다.




13시 15분 계류를 건너고 왼쪽으로 다른 하산길과 만난다. 계류가 길 오른쪽으로 바뀌고 길이 넓어진다. 13시 20분 다시 계류를 건넌다. 13시 27분 민주지산 2.7km 이정표가 보이고 오른쪽으로 1145봉에서 하산하는 길과 만난다. 계곡 바위에 걸터앉아 탁족을 하며 더위와 산행에 지친 심신을 달랜다.



석기봉을 거쳐 삼도봉으로 종주하지 않는 후미 일행이 한 명 한 명 내려온다. 13시 55분 하산길을 재촉한다. 14시 3분 하늘을 찌를듯한 전나무숲 갈림길에 도착한다.



오른쪽 길은 삼도봉으로 향하는 길이다. 왼쪽으로 방향을 잡고 내려오면 물한계곡과 만난다. 민주지산은 산이 높아 뛰어난 계곡미를 지닌 골짜기를 여럿 거느리고 있지만 그 중에서 물한계곡은 가장 수려하면서도 시원스런 계곡으로 때묻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넓은 등산로 오른쪽은 계곡수 보호지역으로 철망이 설치되어 있다. 14시 20분 황룡사에 도착한다. 황룡사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대웅전과 삼성각만 있는 보잘 것 없는 조그마한 절이다.



포장도로를 따라 한천주차장으로 향한다. 14시 30분 버스에 올라 배낭을 벗어놓고 주차장 앞 계곡으로 달려가 계곡물에 발을 담근다. 물이 차다는 한천(寒泉) 마을 계곡 물은 5분 이상 발을 담그기 어려울 정도다. 권사장님이 준비한 컵라면과 삶은 계란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 시원한 수박으로 디저트까지 훌륭한 산행 뒤풀이를 한다. 석기봉을 거쳐 삼도봉까지 종주하는 사람들을 기다리며 피서를 겸한 오늘 산행을 정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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