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박 2일 지리산 종주를 계획했으나 태풍의 간접 영향으로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 때문에 종주 계획을 다음 기회로 미루고 산악회에 묻어 지리산 산행을 다녀오려고 집을 나선다.
8시 5분 남대전요금소로 진입한 산악회 버스는 한가한 고속도로를 힘차게 달려 8시 40분 덕유산휴게소에서 20분간 정차한다. 휴게소 뒤편으로 펼쳐지는 농촌 풍경이 평화롭다.
9시 50분 단성요금소를 빠져나가 곧바로 우회전하여 20번 국도를 타고 시천방면으로 향한다. 피서 차량들로 도로는 정체가 심해 거북이 걸음이다. 덕천강에서 물놀이하는 피서객들이 마냥 부럽기만 하다. 시천을 지나 중산리 방면으로 달리다 곡점에서 좌회전하여 거림으로 향한다. 10시 30분 거림마을 주차장에서 하차한다. 등산화 끈을 조이고 산행 준비를 하는 사이 일행들은 지체 없이 앞으로 치고 나아간다. 거림에서 백무동까지 주능선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산행은 지리산이 지닌 계곡의 빼어남이 어떠한지를 제대로 볼 수 있는 코스다. 거림골 코스는 지리산 주능선으로 붙는 가장 짧은 계곡길. 고도차도 심하지 않고 길 상태도 좋다.
등산로 왼쪽으로 계속 따라오는 거림골은 곳곳에 작은 폭포와 담을 간직하고 있어 시원함을 배가시킨다. 길 좋은 등산로가 계곡으로부터 멀지도, 가깝지도 않게 적당한 거리를 두고 이어진다. 날씨도 무덥지만 천천히 즐기면서 지리의 품에 안겨 보고자 여유를 부려본다. 짙은 숲길을 걷노라면 온 몸이 녹음에 물 드는 것 같고, 숲 향기도 더욱 상쾌하게 느껴진다. 녹음 속의 오솔길을 따라 산행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 아닐 수 없다. 혼자 걷는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걷는다. 10시 40분 세석 6.0km 이정표를 지나 계곡을 건너 본격적으로 등산로로 진입한다.
5분 정도 지나 국립공원 지리산 거림매표소를 통과한다.
울퉁불퉁 돌 박힌 등산로를 따라 여유로운 발걸음을 옮긴다. 왼쪽으로 거림계곡에는 맑은 물줄기가 시원스럽게 흘러내린다. 거림계곡은 세석평전에서 시작되는 거림골을 본류로 하여 연하봉과 촛대봉에서 발원한 도장골, 세석평전에서 삼신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한벗샘에서 발원한 자빠진골 등의 지류가 모여 형성된 커다란 계곡이다. 깊은 계류와 울창한 원시림을 따라 세석평전까지 8km에 이른다. 거림(巨林)이라는 이름처럼 아름드리 나무가 울창하게 계곡을 메우고 있는데, 일제시대는 군수용으로, 8·15광복 후에는 땔감으로 마구 베어져 한때 벌거숭이 계곡이 되기도 했다고 한다. 11시 돌탑과 세석 4.7km 이정표를 지난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발걸음도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한다. 11시 25분 세석 3.6km 이정표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달래고 숨을 고른다. 11시 40분 천팔교 나무다리를 건너 계곡 물에 세수를 하며 얼굴에 흐르는 땀을 씻어내고 잠시 쉬어간다.
철계단을 오르자 왼쪽 계곡에 조그만 폭포가 힘찬 물줄기를 뿜으며 시원함을 더한다.
곧바로 석문을 통과한다.
11시 50분 북해도교 나무다리로 계류를 건너면 세석 2.8km 이정표가 보이고, 계곡을 버리고 능선으로 등산로가 이어진다.
돌 박아 잘 정비한 가파른 오름길을 거친 숨 토해내며 10분 정도 숨가쁘게 오르고 간식을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간간이 부는 바람이 시원함을 던져주며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12시 15분 세석산장 2.1km 이정표 옆에 샘물에 도착한다. 한바가지 떠 타는 목마름을 달랜다. 목 줄기를 타고 시원하게 흘러내린다. 곧이어 나무계단을 오르면서 가파른 오름길이 이어진다. 5분 정도 가쁜 숨을 토해내며 오른다. 12시 30분 허기가 밀려온다. 가던 길을 멈추고 바위에 걸터앉아 빵 한 조각과 두유로 허기를 달래며 5분 정도 쉬어간다. 나무다리를 건너 15분 정도 진행하여 전망바위에 도착한다. 멀리 남해 삼천포가 희미하게 보인다.
12시 55분 세석 1.3km 이정표를 지나 세석교 나무다리 아래 계곡 물에 세수를 하고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달랜다. 13시 5분 갈림길에 도착한다. 왼쪽은 의신(8.6km)으로 가는 길이고 세석(0.5km)은 오른쪽으로 향한다.
13시 15분 세석평전이 푸르름을 뽐내며 나그네를 맞이한다.
13시 20분 세석대피소에 도착하여 나무 식탁에 자리잡고 점심식사를 한다. 13시 45분 산장예약을 취소하고 영신봉 대신 세석평전을 가로질러 촛대봉으로 향한다. 세석평전은 작은 돌밭의 토양이기 때문에 세석평전으로 불리지만 지금은 오랜 복원공사로 녹색 새살이 돋아 등산객들의 발길과 야영으로 허옇게 흘러내렸던 토사는 어디에서도 보이지 않는다.
국립공원 1호인 지리산의 등골인 세석평전(해발 1600m, 3만9천여㎡)은 남한에서 가장 넓은 고산평원인 까닭에 사람의 때를 가장 많이 타왔다. 신라시대 화랑도의 수련장에서부터 구한말 동학 농민군의 전장, 일제 징용과 징병 거부자들의 피난처, 빨치산의 근거지, 6.25 전후 화전민들의 보금자리까지 오랜 세월 인간의 간섭을 받아왔다. 촛대봉 오른편에 동물 모양을 한 바위가 눈길을 끈다. 14시 촛대봉에 도착한다.
천왕봉은 구름에 가려 정상을 쉽게 드러내 보이지 않지만 지리산의 장엄한 산줄기가 장쾌하게 이어진다.
지난 6월 지리산 종주의 추억을 되새기며 수많은 봉우리들을 짚어가며 또 한번 지리산을 눈으로 헤맨다. 조망을 즐기며 카메라를 들이대보지만 그 속에 다 담을 수는 없다. 떠나고 싶지 않지만 기념 사진 몇 장을 찍고 다시 세석대피소로 향한다.
통나무 세석산장이 아름답게 자리하고 알프스를 연상시킨다.
부상 환자를 수송하기 위해 헬기 1대가 헬기장에 내려앉는다. 14시 20분 세석대피소 식수장에서 바닥 드러낸 물통에 식수를 채우고 백무동으로 향한다. 백무동 6.5km 이정표가 보이고 나무계단을 천천히 오르면 가파른 내림길이 시작된다.
매우 가파른 경사의 험한 길을 약 1km 내려서야 한다. 거꾸로 오르면 코가 땅에 닿는 급경사이다. 야생화 산수국이 군락을 이루고 나그네의 눈을 즐겁게 한다.
14시 35분 나무계단을 내려서 한동안 물도 없는 마른 계곡의 급경사 돌길을 내려가다 보니 드디어 물소리가 들린다. 숲길이라 햇빛도 가려준다. 계곡으로부터 들려오는 시원한 폭류와 폭포 소리를 들으며 끝도 없는 숲의 터널을 걸어 내려간다.
한신계곡은 칠선계곡과 함께 폭포와 소가 많고 주위의 경관이 좋은 지리산의 대표적인 계곡중의 하나이다. 깊고 넓은 계곡 또는 한여름에도 한기를 느끼게 하는 계곡이라는 뜻으로 한신이 되었다고도 하고, 옛날에 한신이라는 사람이 농악대를 이끌고 세석으로 가다가 급류에 휩쓸려 죽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14시 40분 백무동 5.8km 이정표를 지난다. 14시 55분 철계단을 내려서고 5분 정도 지나 나무계단과 이어지는 나무다리로 계류를 건넌다. 15시 15분 가네소 1.8km 백무동 4.5km 이정표를 지나고 나무계단을 내려서 곧바로 긴 나무다리로 계곡을 가로지른다.
15시 30분 조그만 폭포와 맑은 계류가 발걸음을 잡는다. 세수를 하며 잠시 쉬어간다.
15시 40분 한신폭포(905m) 백무동 3.7km 이정표가 반긴다.
가던 길을 잠시 벗어나 왼쪽으로 1-2분 정도 가파른 길을 내려서면 암반을 흘러내리는 한신폭포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한신폭포는 숨겨진 폭포다. 우선 출입통제구역이라 그렇고, 또 등산로에서 꽤 떨어져 있어 쉽게 찾을 수 없다. 약 30m 길이의 비스듬한 경사의 바위를 타고 떨어지는 거침없는 폭포수는 양쪽으로 단애를 이룬 깊은 협곡 사이로 떨어져 폭포를 제대로 감상하기가 쉽지 않다. 울창한 태고적 원시림이 둘러싸고 있으며, 바닥이 보이지 않는 소(沼)는 들여다보는 이의 오금을 저리게 할 만큼 오싹하다. 하지만 이름처럼이나 한신폭포는 한신계곡을 대표할 만한 위용을 간직하고 있음은 틀림없다.
16시 철다리를 건너 조금 더 내려서면 오른쪽 계곡에 시원스럽게 떨어지는 물줄기가 렌즈를 들이대게 한다. 오층폭포(855m) 백무동 3.0km 이정표가 보인다. 이름은 오층폭포지만 크고 작은 일곱 개의 폭포로 이루어졌으며, 각 폭포마다 옥빛으로 빛나는 보석 같은 예쁜 소를 간직하고 있다.
16시 10분 나무다리를 건넌다.
다리 중앙에 서서 계곡의 모습을 카메라 렌즈에 가득 담는다. 녹음 짙은 골짜기 사이를 흘러 내려 온 물은 큰 바위와 암반을 씻으며 흘러와 다리 아래 암반위로 미끄러지다가 한줄기는 그대로 곤두박질하고 한줄기는 저만큼 아래 푸른 소로 부챗살처럼 물살이 퍼지면서 흩뿌린다.
간식을 먹으며 10간 휴식을 취한다. 2분 정도 지나면 왼쪽으로 가네소 폭포가 시원한 물줄기를 뿜어낸다. 자칫 신경 쓰지 않으면 그냥 지나치기 쉽다. 내려서 폭포를 감상하며 잠시 더위를 잊는다. 가내소폭포는 맑은 물줄기가 협곡을 파고들어 검푸른 깊은 소에 쏟아 붓는 아름다운 폭포로 소의 깊이는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깊어 보인다. 그 밑바닥에 용이 들어앉아 있다해도 모를 정도로 검푸른 소이다. 소 양쪽은 절벽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햇빛이 들어올 수가 없다. 높이는 10m정도이지만 수량이 풍부한데다 폭포로 떨어지는 쪽은 밝고 소(沼)쪽은 어두워 폭류의 물빛이 매우 검푸른 기운을 띤다.
철제다리를 건너면 가네소 이정표가 보이고 백무동까지 2.7km를 가리킨다. 한신계곡은 가내소폭포에서 두 계곡으로 나뉜다. 하나는 주계곡으로 세석으로 연결된 계곡이고 하나는 장터목으로 연결된 한신지계곡이다. 이곳에서 오른쪽으로 난 숲 속 길로 들어가면 한신지계곡으로 해서 장터목산장으로 갈 수 있다. 16시 25분 출렁다리를 건너고 2분 후 또 출렁다리를 건넌다.
16시 30분 나무다리를 건너면 백무동 2.1km 이정표가 반긴다. 5분 정도 지나 다시 나무다리를 건너면 백무동 1.9km 이정표가 보이고 길은 평탄하고 부드러워진다. 하산 발걸음이 빨라진다.
16시 45분 돌탑 있는 안부를 지나고 5분 정도 지나 비포장 임도와 만난다. 이 길은 1960년대 후반 벌채업자들이 도벌한 목재를 용이하게 운반하기 위해 닦아놓은 길이라고 한다. 임도를 따라 5분 정도 지나면 야영장에 도착한다. 오른쪽으로 장터목에서 내려오는 길이 보인다. 17시 백무동 매표소를 지나 5분 정도 내려서 주차장에 도착하여 버스에 오르면서 산행은 마무리된다.
배낭을 벗어놓고 계곡 물에 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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