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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

3. 지곡사-왕재-웅석봉-내리-지곡사

2004년 1월 23일 (금)

8시 5분 소월산악회 버스에 오른다. 8시 25분 시민회관에 도착하여 10여분간 등산객을 기다린다. 설 명절 연휴기간 때문인지 아니면 갑자기 추워진 날씨 탓인지 등산객이 별로 없어 차안은 썰렁하다.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긴다는 것. 이것이 등산의 매력이다. 운동으로 등산을 시작한지 반년이 지나간다. 운동을 시작해서 유지하는 것이 결코 쉽지는 않다. 조금 더 부지런해져야 할 수 있다. 시간을 맞추어 출근을 하는 것처럼 운동도 하루 일과에 정해 넣어야 한다. '시간이 나면 운동을 해야지' 라고 생각하면 평생 할 기회가 없을 수도 있다. 노후를 위해 저축을 하듯 평생을 같이 할 건강을 저축하는 것이 운동이다. 등산은 단순히 갔다온다는데 의미가 있는 아니라 산행 자체를 몸으로 느끼고 즐기는 것이다.

 

'생각을 열면 모든 것이 새롭고 자유롭다'


부사동에서 마지막 등산객을 태운 버스는 9시가 조금 안 된 시각에 남대전 요금소로 진입한다. 대진 고속도로를 달리던 버스는 9시 30분 덕유산휴게소에서 15분간 정차하고 다시 함양을 지나 10시 20분 산청요금소로 빠져나간다. 좌회전하여 3번 국도를 타고 산청읍을 지나 지곡 마을로 들어선다. 10시 30분 지곡사터 안내판이 서 있는 저수지(소류지) 옆 주차장에서 하차한다.


웅석봉의 주계곡인 지곡 아래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웅진 스님이 창건한 지곡사가 있었는데 당시 이름은 국태사였다고 한다. 이 사찰은 산청의 옛 지명인 산음현의 대표적인 사찰이었으나 지금은 절터에 거북머리 비석 받침대 2기와 부서진 석탑 조각과 주춧돌 그리고 석조우물, 돌계단, 석축재, 종 모양의 부도 등만 남아 대사찰의 흔적을 전해준다. 지금의 지곡사는 강덕이 보살이 1958년 절터 근처에 중건하였으며 대웅전, 산신각, 요사채 등을 갖추고 있다.


웅석봉을 오르는 가장 일반적인 등산로는 지곡사를 들머리로 삼아 산행을 한다. 웅석봉 군립공원 안내도를 살펴보고 임도를 따라 발걸음을 옮긴다.


10시 40분 웅석산심적사 입구에 웅석봉 5.3km 이정표가 보이고 5분 정도 더 임도를 따라 오르면 선녀탕과 만나게 된다. 

갑자기 찾아온 혹한에 꽁꽁 얼어붙어 있다. 
 
계곡으로 들어가면 곰골쪽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 산길이 왕재로 가는 길이다. 선녀탕에서 오른쪽 산길로 접어든다. 여름에는 시원하게 물줄기를 떨어뜨렸을 폭포가 얼어붙은 채 나그네를 맞이한다. 길은 가파르다. 숫가마터를 지난다. 11시 5분 나무다리로 계류를 건너 계속해서 오름길을 오른다. 

11시 15분 다시 나무다리로 계류를 건너고 가시 넝쿨이 무성한 잡목 지대를 헤치고 오르자 작은 너덜지대가 나타난다. 

눈 덮인 너덜지대 바위 길을 조심스레 오른다. 

숨가쁘게 계속되던 오름길은 11시 50분 왕재(925m)에 도착하여 잠시 여유를 갖는다. 갈림길이다. 오른쪽은 밤머리재(3.3km)에서 오르는 길이고 왕재에서 웅석봉까지 2km 능선길은 조금씩 고도를 높여간다. 

왕재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후 정상으로 가는 능선으로 걸음을 재촉한다. 사방으로 전망이 시원한 바위에 앉아 사방을 둘러본다. 웅석봉의 높이는 불과 1099m이지만 이쪽에서 보는 산세는 칼날 능선으로 보여 웅석봉에서 곰이 떨어져 죽은 사연이 이해가 된다. 산청읍의 벌판과 그 사이를 굽이도는 경호강이 보인다. 마을들이 그저 평화롭게만 보인다.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달뜨기 능선을 바라보며 발목까지 푹푹 빠지는 눈을 헤치고 내림길을 내려서 12시 30분 웅석봉 바로 아래 헬기장에 도착한다. 헬기장에서 오른쪽 청계로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50m 내려서면 우물이 있다. 웅석봉까지 남은 거리는 0.3km이다. 

지체하지 않고 치고 올라 12시 40분 정상에 도착한다. 통신 안테나와 산불 감시초소가 보이고 산불감시원이 반갑게 맞아준다. 이 추위에 고생이 많겠다는 생각이 스친다. 산의 모양새가 곰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 웅석봉(熊石峰)은 일명 곰바위산이라고도 하는데 깎아지른 듯한 절벽 낭떠러지에서 곰이 떨어져 죽었다해서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웅석봉은 남한 내륙의 최고봉인 지리산 천왕봉과 가장 가깝게 마주보고 서 있다.

 

웅석봉 정상은 온전히 천왕봉을 위해 만들어져 있는 듯 하다. 두 눈 가득히 천왕봉과 중봉을 바라본다. 하늘의 제왕은 세상의 구름들을 불러모아 제 얼굴을 숨기고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고, 호위하듯 중봉과 하봉이 이곳 웅석봉까지 꿈틀대며 이어진다. 천왕봉이라는 이름은 바로 이쪽에서 바라보고 붙인 이름이라고 한다. 바로 앞으로는 곰이 떨어져 죽었다는 절벽이 천길 단애를 이룬다. 산청읍내가 손에 잡힐 듯 하고 그 사이로 이리저리 굽이치는 경호강이 눈에 들어온다. 성심원쪽에서 오른 등산객 두 분과 반갑게 인사를 하고 곰 한마리가 그려진 정상석에서 기념 사진 한 장을 부탁한다.

바람이 몹시 매섭다. 오래 머무르지 못하고 하산을 서두른다. 아이젠을 착용하고 등산화 끈을 조이고 가파른 하산길을 조심조심 내려선다. 바람이 볼을 할퀴고 지나갈 때마다 발걸음이 빨라진다. 13시 15분 갈림길에서 아이젠을 푼다. 오른쪽은 어천(4.2km)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왼쪽은 내리로 가는 길이다. 왼쪽으로 방향을 잡고 1분간의 오름길을 올라서면 암릉지대이다. 암릉지대를 통과하는 내내 왼쪽으로 지나온 능선이 한눈에 펼쳐진다. 오른쪽으론 산청읍과 경호강의 풍광이 일품이다. 

암릉을 지나 숲 속으로 접어든다. 이곳은 눈이 없고 육산으로 걷기 부드러운 흙길이다. 점심을 거른 탓에 허기가 밀려온다. 빵 한 조각으로 허기를 속이고 빠른 걸음으로 내림을 재촉한다. 13시 45분 나무 계단을 만난다. 웅석봉이 군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산청 군청에서 등산로 정비사업 일환으로 축조된 계단은 끊어졌다 이어지면서 약간 지루한 감을 주며 계속된다. 13시 55분 왼쪽으로 너덜지대가 보이면서 두 번째 나무 계단은 끝나고 14시 임도와 만나면서 세 번째 나무 계단이 끝이 난다. 

임도를 버리고 곧바로 숲 속으로 접어든다. 낙엽 덮인 오솔길이다. 산죽나무길을 지나 14시 5분 다시 만나는 임도를 가로질러 철조망을 넘어 소나무 숲길로 내려선다. 

멀리 숲 속에 심적사가 조용히 자리하고 있고 소류지 건너편 주차장에 산악회 버스가 보인다. 
 
계곡을 건너 오를 때 지나쳤던 지곡사를 휑하니 한바퀴 둘러보고 버스가 있는 주차장으로 발길을 돌린다. 

14시 20분 버스에 오르면서 산행은 끝이 난다. 이 추위에 김치찌개를 끓여 놓고 하산한 산꾼들을 맞이하는 권사장님이 고맙기만 하다. 거의 모두가 점심식사를 하지 않고 하산하여 김치찌개 한 그릇씩을 게눈 감추듯 맛있게 해치운다. 쌍화차 한 잔을 마시자 얼었던 몸이 풀리면서 행복감이 밀려온다. 아이젠을 준비하지 않은 한 분의 하산이 늦어져 예정시간보다 1시간 늦게 대전으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