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나의 산행일지

적상산

2004년 1월 2일 (금)

9시 10분 시민회관을 출발한 소월산악회 버스는 9시 20분 부사동 인삼센터에서 마지막 등산객을 태우고 9시 30분 남대전 요금소로 진입한다. 햇님이 구름 뒤로 숨었다 내밀었다 하면서 숨바꼭질하는 사이 대진고속도로를 20분간 달린 버스는 무주 요금소를 나와 도로공사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기 위해 잠시 정차한다. 높은 산 위에 예상치 않은 설화가 모두의 탄성을 자아낸다. 

신호등 앞의 표지판엔 적상산이 오른쪽으로 되어 있으나 이것은 안국사까지의 도로 표지판이므로 왼쪽 진안 방향으로 향한다. 19번 국도를 따라 7-8분 정도 가면 위로 조금 전에 빠져 나온 고속도로가 지나가며 오른쪽 도로변에 넓은 공터와 함께 적상휴게소/여관/식당이 있고 그 맞은편이 서창리이다. 보통은 이곳에서 산행을 시작하지만 2-3분 더 진행해서 안새내 마을에서 오르기로 한다. 오랜만에 상여를 본다. 

10시 10분 산행이 시작되고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2-3분 걸어 도로가 끝나는 지점에서 왼쪽 산길로 들어선다. 

출입통제 안내문이 보이고 걷기 좋은 부드러운 산길은 조금씩 경사를 더해간다. 간밤에 이곳은 비 대신 눈이 내려서 산 중턱부터는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 있다. 

숲으로 햇살이 낮게 기어든다. 포근한 날씨 때문에 나무 가지 위에 내린 눈이 녹아 머리 위로 떨어지고 10시 40분 소나무 숲 사이 등산로를 따라 설국(雪國)으로 빠져 들어간다. 폐쇄된 등산로로 오랫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발목까지 낙엽이 쌓여 있고 간밤에 그 위로 눈이 내려 아주 미끄럽다. 산길은 점점 가파라지고 호흡도 거칠어진다. 

11시 25분 매우 가파른 오름길을 5분 정도 올라서 학송대에 도착한다. 설경이 동화 속에 나오는 설국으로 들어온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가지마다 피어난 눈꽃이 넋을 잃게 한다.


햇빛에 비췬 눈이 은빛으로 현란하게 반짝이고 소나무 위에 쌓인 눈은 함박꽃을 만들고 있다. 소나무는 저녁 내내 내린 눈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그대로 모아 놓으려고 남들이 낙엽질 때도 잎을 그대로 달고 있었던 모양이다. 푸른 잎과 하얀 눈의 만남 속에서 하나의 예술품이 만들어진다. 화가들이 겨울 풍경을 그릴 때 눈 쌓인 소나무를 소재로 삼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낙엽이 진 나목(裸木)들도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하얀 옷을 입고 있다. 
 
미끄러운 내림길이다. 가던 길을 멈추고 배낭에서 아이젠을 꺼내 착용하고 엉금엉금 기어 험한 암릉지대 바위를 올라서니 여유조차 주지 않고 급경사 오르막길이다. 

천혜의 비경인 남문이 반긴다. 옛날 안렴대를 지키는 성문 역할을 했을 이 남문은 자연석굴이다. 
 
11시 45분 적상산에서 가장 전망이 좋다는 안렴대에 도착한다. 

이름을 알 수 없는 노목이 바위를 감싸 안고 서 있어 주위 경관과 어울리는 절경을 연출한다. 

정상 남쪽 층암절벽 위에 위치한 안렴대는 사방이 천길 낭떠러지로 내려다 보여 이곳을 오르는 사람들의 가슴을 조이게 한다. 고려말기에 거란의 침공을 받았을 때 지방장관인 삼도 안렴사가 군사들을 이끌고 이곳으로 들어와 진을 치고 난을 피한 곳이라 하여 안렴대라 했다고 한다. 또한 병자호란 때는 적상산 사고 실록을 안렴대 바위 밑에 있는 석실로 옮겨 난을 피했다는 유서 깊은 사적지이다. 

평탄하게 바뀐 길을 조금 걸으면 갈림길이다. 12시 정각 오른쪽은 안국사(0.5km)로 가는 길이고 철계단을 오르면 향로봉(1,5km)으로 가는 길이다. 통신 철탑이 자리를 잡은 곳이 적상산 정상인 기봉이다. 정상은 예전과 달리 통신 철탑과 콘크리트 건물이 있어 정상다운 면모가 사라졌다. 한국 백경 중 하나로 손꼽히는 적상산, 적상이란 가을이면 여인네가 붉은 치마를 두른 듯 단풍이 아름답다하여 붙어진 이름으로 색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단풍나무와 참나무, 상수리나무 등이 적당히 어울려 이름처럼 수줍은 듯 아늑하고 부드럽다. 2년 전 가을에 올랐을 때는 불타오르는 듯한 강렬한 빛깔의 단풍이라기보다 여러 가지 색깔의 활엽수가 은은하게 다가오는 오색의 물결이었지만 지금은 온통 하얀 눈으로 덮여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온다. 

12시 5분 서문고개 갈림길이다. 

오른쪽 안국사(0.2km)가는 길로 빠른 걸음을 옮긴다. 산행 선두는 벌써 안국사를 돌아보고 향로봉을 향해 가고 있다. 눈 속에 묻혀 고요한 안국사는 겨울의 정취를 간직한 채 2층 누각 건물인 청하루가 반긴다. 

적상산성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고찰 안국사는 고려 충렬왕 3년(1277)에 월인화상이 창건하였으며, 조선 초기 무학대사가 중창하였다고 전한다. 적상산 사고로 조선왕조실록과 왕의 족보인 선원록이 봉안되고 사고를 방비하기 위하여 호국사(1949년에 불타 버림)를 지었으며, 호국사와 더불어 이 사각을 지키기 위한 승병들의 숙소로 사용되던 안국사는 양수발전소 건설 때문에 호국사지의 위치로 옮겨졌고, 이 곳에는 영산회괘불탱(보물 1267호)이 보관되어 있다. 안국사 영산회괘불탱은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을 그린 영산회괘불인데, 괘불이란 야외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 그림이라고 한다. 울창한 참나무와 단풍나무 숲을 배경으로 자리잡은 극락전(유형문화재 제42호) 왼편에 자리잡은 성보박물관에는 여러 나라의 불상들을 전시해 놓고 있다. 

적상호 치목 전암대 북창으로 내려가는 이정표가 보인다. 

발걸음을 향로봉으로 향한다. 

12시 25분 다시 서문고개 갈림길이다. 이정표에는 향로봉 0.5km 서창 2.8km 라고 쓰여 있다. 

10분 정도 걸어 오르자 적상산 향로봉(1025m)이다. 멀리 산 아래로 무주와 대진고속도로가 보인다. 적상산은 적상면 중앙에 우뚝 솟아올라 북쪽의 향로봉(1,034m)과 남쪽의 기봉(지도에는 적상산으로 표시되어 있음)이 마주하고 있는데 정상 일대는 흙으로 덮인 토산이고, 표고 800-900m 까지는 사방이 층층암벽의 깎아지른 절벽이 병풍처럼 둘러 쌓인 바위산이다.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간식으로 허기를 속이고 기념 사진을 남기고 하산을 시작한다. 

오동재로 향했던 산행 선두 그룹이 다시 되돌아온다. 12시 45분 서창으로 향하는 갈림길부터는 부드러운 내리막길이다. 10분을 빠른 걸음으로 내려서면 적산산성 서문지이다. 서문은 일명 용담문이라고도 하였으며, 성문밖에 서창과 고경사가 있었다는 기록이 남아있다고 한다 

가파른 내림길을 5분 정도 내려오면 장도바위가 눈앞을 막아선다. 고려말 최영 장군이 산정에 오르다 절벽에 부닥쳐 산을 앞으로 갈 수 없게 되자 장도로 내리쳐서 길을 냈다는 전설이 서린 곳이다. 

호젓한 산길이다. 경사도 그리 급하지 않은 낙엽 쌓인 숲 속 오솔길을 산보하는 기분으로 걷는다. 지그재그로 난 길이 계속되어 앞서 간 일행을 위에서 내려다 볼 수 있다. 샘터를 지나 잘 정비된 등산로를 따라 내려와 철조망 문을 통과한다. 

서창마을 내려가는 길에 들어서 되돌아보니 치마바위 암벽이 온몸을 들어 내보인다. 
 
임도 오른쪽으로 등산로가 나오며 안국사 3.8km 서창마을 0.1km의 이정표가 보이고 안국사 3.8km라는 간판이 석장승과 어울려 서 있다. 산성을 지키는 병사들의 곡식과 군수물자를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던 곳이라는 의미에서 성의 서쪽에 있는 마을을 서창, 북쪽 마을을 북창이라 하였다고 한다. 매표소를 지나고 멋들어진 소나무가 눈길을 끄는 의병장 장지현장군의 묘를 지나면 마을 입구에 수백 년 된 느티나무가 동네의 역사를 말해준다. 

길 왼편에 허름하게나마 슬레이트 지붕까지 씌운 당집 속에는, 위는 남근석(男根石)이고 아래는 여자의 음부 모양을 한 돌이 걸음을 멈춘다. 1km 정도를 시멘트 포장 도로를 따라 내려와 버스에 도착하니 2004년 첫 산행이라고 특별히 김치찌개에 밥까지 준비하고 하산한 산꾼들을 맞이한다. 권사장님과 총무님의 마음 씀씀이가 고맙기만 하다.

'나의 산행일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고루포기산  (0) 2008.07.11
계방산  (0) 2008.07.11
2004년 새해 일출-금수봉에서..  (0) 2008.07.11
천태산  (0) 2008.07.11
간월산-신불산-취서산  (0) 2008.07.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