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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산행일지

계방산

2004년 1월 11일 (일)

6시 55분 대전요금소로 진입한 일출산악회버스는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다 남이분기점에서 중부고속도로로 갈아타고 어두움을 밀어내며 힘차게 달린다. 불꺼진 차안은 모두들 단잠에 빠지고 고요한 적막이 흐른다.
8시 5분 호법 분기점에서 다시 영동고속도로로 바꿔 타고 쉼 없이 달린다. 아침 햇살이 넓게 퍼지며 조용히 감은 눈가를 간지러피며 스쳐 지나간다. 8시 35분 아침 식사를 위해 문막 휴게소에서 25분간 정차한다. 스키시즌이어서 휴게소는 넘치는 인파로 북새통이다. 

10시 10분 속사 요금소를 빠져나간 버스는 31번 국도를 이용하여 홍천군 내면방향으로 향한다. 5분 정도 달려 이승복기념관과 노동리를 지나고 운두령 정상(해발 1089m)을 향해 굽이굽이 산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차가 다닐 수 있는 고개로는 정선군 고한읍의 414번 지방도로 중 함백산 서쪽의 만항재가 해발 1,330m로 가장 높다고 한다.)


온몸을 비틀며 힙겹게 오르더니 10시 15분 운두령 휴게소에 도착하여 등산객들을 풀어놓는다. 운두령은 강원도 평창과 홍천의 경계. 이미 휴게소는 전국에서 달려온 수많은 산악회 버스에서 내린 등산객들로 왁자지껄하다. 계방산의 산행 기점인 운두령은 진부에서 내면으로 넘어서는 고갯마루로, 구름도 울고 넘는다는 곳이다. 

계방산의 산행은 해발 1089m나 되는 운두령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불과 500m의 고도차만 극복하면 되므로 1577m의 고산임에도 불구하고 정상을 밟는 것이 그리 어렵지는 않다. 휴게소 건너편 절개지에 설치된 침목으로 만든 계단을 오르면서 산행이 시작된다. 

완만한 경사의 산죽과 참나무길이다. 10분 정도의 오름길이 끝나면 다시 10분 정도의 평탄한 길이 이어지다 내림길이 2-3분 정도 이어지고  다시 완만한 오름길이 계속된다. 11시 안부 쉼터에 도착하여 아이젠을 착용한다. 내림길은 얼어붙은 빙판이 매우 미끄러워 아이젠 없이는 위험하다. 곳곳의 내리막길에서 아이젠 없이 내려가는 등산객 때문에 지체와 정체가 반복된다.

 

오르는 길에는 군데군데 안부 쉼터가 있다. 경사는 오를수록 가파라지고 급경사 코스를 지나 주능선에 이르면 왼쪽 경사면으로 심설 속에 드문드문 주목이 서 있는 것이 보인다. 설화와 주목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 다가간 발자국들이 유혹한다. 1492봉 바로 아래의 200여 m 구간은 경사가 심한 비탈이다. 11시 40분 넓은 공터로 되어 있는 1492봉을 지나 5분 정도 더 오르면 헬기장에 도착한다.

헬기장에서는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과 정상이 한눈에 들어온다. 구불구불한 능선길을 따라 동일한 목적지를 향해 줄지어 가는 등산객들의 모습이 흥미롭다. 기암괴석이 없는 밋밋한 육산으로 흙길이다. 주능선을 따라 걷다보면 끝없이 물결치는 백두대간의 위용에 절로 전율이 느껴진다. 파란 하늘과 새하얀 설원 사이로 차가운 공기도 동행한다.

 

12시 10분 계방산정상(해발 1577m)에 도착한다. 계방산은 강원도 홍천군과 평창군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전체적인 산세는 완만하지만 한라산, 지리산, 설악산, 덕유산에 이어 남한에서는 5번째로 높은 산이다. 계방산 정상 또한 넓은 헬기장으로 되어있고 사방이 탁 트여 전망이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남쪽방향의 차령산맥 줄기 외에도 북쪽으로 소계방산, 그 뒤로는 방태산(1444m) 이 건너다 보이고, 동북쪽으로는 오대산(1563m)을 비롯하여 만월산(1281m), 응복산(1360m), 약수산(1306m), 갈전곡봉(1204m)등의 백두대간 줄기가 너무나 장쾌하기만 하다. 정상은 작은 돌무더기와 표고를 알리는 조그만 표석만 있고 뚜렷한 안내 간판이나 정상 표지석 하나 없어 아쉬움을 더한다. 수많은 등산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다. 

경사면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고 앉아 간단한 점심 식사를 마친 후 아이젠을 착용하고 12시 35분 동쪽 능선 하산길로 접어든다.  10분 정도 내려서 만난 갈림길에서 나무 가지에 표시기가 많이 달린 오른쪽 길로 들어선다.  이승복 생가터를 지나 아랫삼거리로 내려서는 길이다. 길은 거칠고 경사진 데다 매우 미끄러운 빙판이다. 아이젠을 착용하지 않은 등산객들로 역시 곳곳에서 정체한다.

 

눈 덮인 겨울 산행은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한다. 가파르거나 미끄러운 구간이 나오면 모르는 사이라도 앞에서 손을 당겨주고 뒤에서 등을 밀어준다. 또 올라가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서로 마주치면 '안녕하세요, 힘내세요, 안녕히 가세요'라는 인사말을 잊지 않는다. 어느 누구도 빨리 올라가거나 내려가려고 서둘지 않는다. 한 발 한 발 조심스럽게 내딛는다. 내림길에서 앞서가던 술 취한 중년의 남자가 수도 없이 넘어진다. 내일 아침에 일어나면 온몸이 쑤시고 아플 텐데... 산에 힘들게 올라 담배 피고 술 마시는 사람들을 보면 이해가 안 된다. 아이젠을 착용했다 벗었다 하면서 내림길을 내려온다. 적설이 적어 밋밋한 산행에 그나마 함께 해 준 동행이 있어 지루함을 잊는다.

14시 20분 가파른 빙판 내림길을 지나 편안한 길로 접어들고 10분 더 걸어 노동리 국유림 관리소를 지나 계방교를 건너 14시 30분 이승복생가에 다다른다. 1968년 11월 2일 삼척ㆍ울진에 침투한 무장 공비에게 무참히 살해된 반공 소년 이승복 군이 태어난 곳이다. 
 
산 속에서 내려온 무장공비 잔당 5명에 의해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항거하던 이승복군과 일가족은 살해되고 몇 년 간은 빈집으로 있다가 1970년대 초 정부에서 철거하여 돌담과 집터만 남아 있던 것을 2000년 겨울 이승복 일대기 기록 영화를 촬영하면서 고증을 거쳐 복원한 집이다. 이승복 군의 비석이 그 날의 처절함을 대신해 주고 그의 넋을 위로한다. 

생가를 나와 시멘트 포장 도로를 따라 걷는다. 그림같이 예쁜 집들이 여기저기 눈에 들어온다. 별장지대이다. 

30분 정도 지친 발걸음을 터벅터벅 걸어 내려오자 아랫삼거리 주차장에 수 십대의 관광버스가 주차되어 하산하는 등산객들을 기다리고 있다. 아랫삼거리 하산 지점의 계방산 등산로를 새긴 안내 표지판은 흐릿해서 알아볼 수가 없다. 15시 일출산악회 버스에 오르고  산행은 마무리된다. 한 시간 뒤에 마지막 후미가 도착한다. 

산행 뒤풀이 없이 버스는 부지런히 대전을 행해 움직인다. 영동고속도로 원주 문막 구간에 정체가 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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