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년 12월 2일 (화)
등산객을 가득 실은 늘푸른 트레킹 버스는 7시 40분 안영요금소로 들어서서 경부고속도로로 바꿔 타고 8시 20분 추풍령휴게소에서 20분간 정차한 후 1시간 40분을 힘차게 달려 10시 20분 언양요금소를 빠져 나간다. 35번 국도를 타고 양산 방향으로 진행하다 작천교 직전에서 우회전하여 상북면 작괘천을 왼쪽으로 끼고 등억온천단지로 들어선다. 10시 40분 간월사 주차장에서 하차하여 산행을 시작한다. 산길 초입에 서 있는 이정표를 보고 계곡을 따라 정비된 등산로를 오른다.
10여분 오르면 다시 갈림길에 서 있는 이정표가 보인다. 왼쪽은 홍류폭포와 공룡능선이라고 부르는 칼바위를 거쳐 신불산으로 직접 오르는 길이고, 오른쪽은 간월산(3km)으로 가는 길이다. 간월산을 오르지 않을 산꾼들은 왼쪽으로 방향을 잡고 오르고 대부분의 산꾼들은 오른쪽으로 오른다.
11시 정각 다시 갈림길(간월산 정상 2.8km)에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고 계곡을 가로질러 가파른 비탈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길은 좁고 경사가 매우 심하여 오르는데 땀께나 쏟는다. 15분 정도 오르면 4그루의 커다란 노송이 둘러쌓인 처사동래정씨묘가 보이고 이곳부터 가파르던 경사는 약간 죽으며 너덜길로 이어진다.
10분을 더 오르면 임도와 만나게 되고 임도를 따라 50m 정도를 걷다 표시기를 따라 오른쪽 계곡으로 오른다. 급경사 너덜길 계곡을 5분 정도 오르면 다시 임도와 만나고, 임도를 가로질러 오른쪽 계곡으로 오르기를 서너번 반복하여 11시 50분 간월재에 도착한다. 노점상이 반가운 인사를 건네고 오른쪽으로 간월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억새밭 사이로 난 너덜길을 빠르게 치고 올라가 12시 10분 간월산(해발 1083m)에 도착한다.
간월산은 왕봉재(간월재)에서 천화현(배내고개) 사이에 해발 1068.8m 고봉 일대를 말하는 것으로 상북면 등억에서 배내에 걸쳐 있다. 간(肝)은 우리 민족이 오래 전부터 써오던 신성이라는 뜻이며 월(月)은 신명에서 유래되어 평원을 의미하는 벌의 뜻이다. 그러므로 간월산은 평원이 있는 신성한 산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또한 간월이라는 이름은 다음과 같이 肝月, 看月, 澗月, 澗越, 肝越 등 다양하게 쓰이기도 한다고 한다.
시야를 가릴만한 나무가 없어 사방으로 시원스럽게 확트인 시야에 신불산, 가지산, 운문산이 들어온다. 재약산 사자봉과 수미봉은 얼마전에 다녀와서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아침을 부실하게 먹은 탓에 허기가 밀려온다. 미숫가루와 호빵으로 허기진 배를 속이고 간단한 기념 촬영을 마친 후 따뜻한 햇살 비껴 받으며 빠르게 내림길을 걸어 12시 30분 다시 간월재에 도착한다.
간월재(해발 920m). 신불산과 간월산의 갈림길이다. 신불산의 유래가 적힌 안내판, 울산 12경 중의 하나인 신불산 억새평원이 사자평과 함께 영남알프스의 대표적 억새 군락지로서 산림청이 정한 100대 명산 중 하나라고 소개하는 안내판, 공비토벌 격전지 안내판과 돌무더기, 그리고 산불감시초소가 보이고 고 산악인 김종필씨의 추모비가 서 있다.
간월재를 떠나 신불산 가는 길은 오르막이 심하여 가쁜 숨을 몰아쉬며 오른다. 같이 산행을 시작한 일행의 후미와 만난다. 억새밭 능선길을 7∼8분 오르면 잡목나무 사이로 너덜길이 이어지고 얼었던 땅이 녹아 축축하다. 이어지는 암릉길을 5분 정도 걸으면 앉아 쉬어가라고 긴의자가 반긴다. 왼쪽으로 신불산 정상이 손에 잡힐 듯이 가까이서 손짓한다.
물 한모금 마시며 헐떡 거리던 숨을 돌리고 신불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에 오르는 순간 눈앞에는 광활한 억새 대평원(신불평원)이 멀리 시살등까지 펼쳐진다. 마루금따라 15분 정도 걸어 13시 5분 신불산 정상(해발 1208m)에 선다. 앙증막게 작은 정상 표지석이 반긴다.
어느 산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돌무덤이 아닌 미완의 돌무더기가 거대한 탑(塔)을 닮아 가고 있다. 수 십만 개의 돌을 모아 탑을 쌓는 마음들은 무슨 소원을 빌었는지 궁금하다. 이루고자 하는 마음으로, 보태고자 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자 하는 마음들이 모여서 쌓여가고 있다. 돌무더기 뒤쪽에 커피장수가 조그맣게 전을 벌였던 흔적이 새삼 치열한 삶을 상기시킨다.
삼남면인이 정성을 모아 세운 커다란 빗돌이 취서산을 향해 자리하고 있다.
신불산이 가지고 있는 뜻은 신(神)은 [신성지(神聖地)]라는 뜻이며, 불(佛)은 광명을 의미한다고 한다. 북서쪽 2km 지점의 간월산, 남쪽 2.8km 지점의 영취산(취서산)과는 연속된 형제봉을 이루며, 정상 부근에는 큰 절벽면이 있고, 간월산 사이의 비탈면에는 기암괴석이 많이 보인다. 영남알프스의 7개 산 가운데 해발 1,240m 가지산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토산(土山)이다. 1983년 12월 간월산과 함께 울주군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돌아오는길에 차창 밖으로 본 영남알프스는 통도사나들목에서 언양나들목까지 고속도로 왼쪽으로 나란히 길게 뻗어 있으며 신불산과 취서산은 같은 주능선에 가까이 붙어 있어 산행도 연결해서 한다.
양지 바른 곳에 자리잡고 점심 식사를 마친다. 13시 30분 취서산으로 향한다. 억새밭 사이로 10분정도 내려서면 신불재이다. 갈림길로 왼쪽으로 20m 쯤 내려가면 신불샘이고 그 길 따라 내려가면 가천마을(4.5km)이다. 직진해서 오름길을 3-4분 오르면 평탄한 능선길이 계속이어지고 취서산(영취산)까지는 2.3km이다.
왼쪽으로 군부대 사격장이 있어 등산로가 폐쇄되어 등산객 출입을 금하고 있다. 간간히 사격장에서 총소리가 들린다. 14시 5분 길이 가파른 오름길로 변하고 10여분을 걷고 암능을 올라서면 취서산(영취산 해발 1057m) 표지판이 보인다. 취서산(영취산)은 본래 부처님 재세(在世)시에 부처님께서 법화경을 설하시던 마가다국 왕사성의 동쪽에 있던 그리드라(Grdra)라는 산을 한자로 표기한 영축산으로도 불린다. 이 산의 산자락에는 3대 사찰 중 하나인 통도사가 자리잡고 있다. 신불산은 육산으로 모난 데가 없어 포근하고 아늑하게 느껴지는데 취서산은 독수리부리처럼 생긴 암봉이 정상이다. 눈이 시리게 푸른 하늘 아래 조망은 아득히 끝이 없고 가을이 아직 미련을 버리지 못한 영남알프스는 장엄한 파노라마가 되어 시간조차 멈춘 듯하다.
영축산은 산사면과 정상 능선에 바위가 많아 바위산이 라는 인상을 준다. 14시 20분 정상에서 조망을 감상하며 기념 사진 한 장 남기고 오른쪽으로 5분 정도 내려서면 갈림길 안부가 나타난다. 체이등이다. 계속해서 직진하면 죽바우등을 거쳐 시살등으로 가는 길이다.
안부에서 왼쪽으로 20m정도 내려서면 시원한 샘이 지친 등산객들의 갈증을 풀어준다. 배낭을 벗고 물 한바가지 떠서 목으로 넘기고 쉬어간다. 산죽나무 오솔길 사이로 난 등산로를 따라 가파른 내림길을 내려간다. 길은 울퉁불퉁 바위에 상당한 급경사길로 50여분간 쉼없이 계속되고 지루하다 느낄 때쯤 물소리가 들린다. 발걸음 머추고 흐르는 계곡물에 발담그고 여유를 피워보고 싶지만 통도사를 구경하고자 내림길을 재촉한다. 낙엽쌓인 너덜 오솔길로 바뀌면서 내리기가 편해진다. 15시 20분 비로암에 도착한다. 비로암은 극락암의 위에 있는 암자로 아름드리 소나무가 울창하다. 요사채 보수중인 경내를 휭하니 둘러보고 극락암을 향해 내려온다.
시멘트포장 도로를 10분 정도 걸으면 극락암에 다다른다. 극락암은 스님들이 마음을 수련하는 선원인데 입구에는 극락영지라 하여 영축산 연봉이 비치는 자그마한 연못이 있고 이 못 위에 홍교를 가로 질러 놓아 그림 처름 아름다운 풍경을 자아낸다. 암자뒤로 영축산에서 시살등으로 가는 암릉이 병풍 처럼 둘러쳐져 있고, 산사는 고즈넉함과 평화로움이 넘친다. 하얀 눈이라도 내려 지붕과 담장에 소복히 쌓이면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 될 것 같다.
까치밥 달린 감나무 고목 두 그루를 뒤로 하고 울창한 노송 숲을 지나면 시멘트 포장도로가 계속 이어진다.
길가에서는 시골 아낙네들이 등산객들을 상대로 찐쌀과 막걸리 그리고 호박엿을 판다. 세심교(洗心橋)를 건너면 아스팔트 신작로로 이어진다. 15시 50분 올라오는 산악회 버스를 보내고 아스팔트길을 빠르게 걸어 통도사로 향한다. 길을 따라 오르락 내리락 하다가 좌측으로 돌아 내려오니 16시 10분 통도사 취운선원이 보이고 5분정도를 더 걸어서 통도사에 도착한다.
불보사찰 통도사
대한불교 조계종 제 15교구 본사인 통도사는 우리나라 삼보사찰 (三寶寺刹) 중 으뜸인 불보종찰 (佛寶宗刹)이다. 646년(신라 선덕여왕 15년) 에 석가여래의 진신사리를 모셔온 자장 율사가 창건한 고찰이며,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사명대사가 재건하였다고 한다. 대웅전은 불단만을 마련해 놓고 법당 내부에 불상이 없는 것으로 유명한데 이는 대웅전 뒤 '금강계단(金剛戒壇)'에 모신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받들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계단(戒壇)이란 계를 수여하는 의식이 정해지는 장소로, 통도사 창건의 근본 정신은 바로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금강계단에 있다. 진신사리를 봉안할 때 밝힌 '법등'은 1300여년 동안 한번도 꺼지지 않았다고 한다.
절입구에서 일주문 앞까지 1km 계류에는 노송림이 늘어서 하늘을 가리고 있다. 삼성반월교(아치형다리)를 건너 '영축산 통도사' 라고 쓰인 일주문을 지난다.
노천유물관(입장료 어른 800원)이 있고, 통도사 전체의 대문인 천왕문이 나온다. 천상 세계에서 가장 낮은 곳에 산다는 사천왕상을 모신 천왕문 오른쪽으로 들어서면 3층 석탑을 안은 영산전이 눈에 들어오고 불이문을 지나면 관음전, 용화전등 수 많은 경남 유형문화재 건물이 산재해 있다. 특히 눈에 뛰는 것은 국보 제 290호 대웅전과 금강계단과 창건 설화를 담고 있는 조그만 연못 구룡지이다. 보물 471호 봉발탑은 석가모니의 발우(鉢盂)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석조물이다. 발우란 스님들이 공양할 때 사용하는 식기이자 스승이 제자에게 법을 전하는 전법의 상징물이다. 현존하는 건물들은 임진왜란 당시 대부분의 전각들이 손실된 후, 여러 차례의 중건과 중수를 거쳐 오늘날에 이른다고 한다.
빠르게 한 바퀴 둘러보고 되돌아서 일주문을 빠져 나오면 성보박물관(입장료 어른 2000원)이 있고 길은 통도사부도원으로 이어진다.
부도원에는 현 대웅전의 중건주 진희대사 부도를 비롯한 역대 선사 50분의 부도와 일주문 밖 여러곳에 흩어져 있던 사적비, 부도비, 공덕비 등을 함께 모셔 놓았다.
16시 40분 버스에 오르고 버스는 통도사 주차장으로 이동하여 먼저 산행을 마친 산꾼들을 태우고 산행은 끝이난다.
어디선가 읽은 글귀가 생각난다.
당신은 산에 왜 가느냐고, 오늘도 또 가느냐고 누군가가 묻는다. 나는 대답한다. 산에 가면, 나를 잊을 수가 있고, 산에 가면, 나를 찾을 수가 있고, 산에 가면, 정직해 지기 때문이라고. 산은 거짓말을 할 줄도 모르고, 나를 비웃거나 조롱하지도 않고, 언제나 웃으면서 반갑게 맞아 준다. 산에서는 돈도 권력도 명예도 소용없다. 오직 진실만이 통한다. 산 정상에 서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을 온 몸으로 부딪쳐 보라. 내가 살아 숨쉬고 있다는 사실에 감동하고, 감사 할 수 밖에 없다. 이끼 낀 바위들, 아름드리 노송들, 기암 괴석들은 전설을 이야기하고, 천년의 고목들은 죽은 듯이 조용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