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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산행일지

수도산

2003년 11월 30일 (일)

7시를 조금 지나 시민회관에서 마지막 일행을 태운 뚜벅이산우회 버스는 테미고개를 넘어 석교동을 지나 산내로 향한다. 창 밖이 어둡다. 7시 20분 남대전나들목을 빠져나간 버스는 대진 고속도로를 힘차게 달린다. 30여분간 깜박 잠이 들었다. 그 사이 날이 밝아지고 버스는 무주나들목을 통과하고 우회전하여 19번 국도를 따라 무주 시내로 들어선다. 다시 30번 국도로 갈아타고 설천면을 지나 한적한 왕복 2차선 시골길을 달리다가 8시 10분 라제통문 휴게소에서 15분간 정차한다. 라제통문은 신라와 백제의 국경을 뚫어 서로 왕래하던 문으로 지금도 이 통문을 경계로 언어와 풍습이 판이하게 다르다고 한다. 이곳이 무주구천동 제1경이다. 

휴게소 앞에는 의병장 강무경 동상이 세워져 있다. 건립기문에는 "조국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을 때 자신의 부귀영화보다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32세의 꽃다운 나이로 목숨을 바치신 강무경 의병장의 숭고한 애국애족정신을 후세에 기리고 자손만대에 이어갈 민족의 귀감으로 삼고자 동상을 건립하였다"고 쓰여 있다. 

다시 30번 국도를 타고 대덕으로 향한다. 8시 45분 덕산재(해발 644m)를 넘어 김천시로 들어선다. 도로 확포장 공사가 한창이다. 관기삼거리에서 좌회전하여 성주방면으로 20분 정도 달리다 유성면사무소 쪽으로 우회전 수도계곡을 옆에 끼고 수도리 마을로 들어선다. 지난 여름 태풍 매미가 할퀴고 지나간 수도 계곡은 엉망이 되어 버렸고 유실된 도로와 하천 복구 공사가 한창이다. 언제쯤 제 모습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 안타까운 마음이다.

 

9시 30분 수도마을에 도착한다. 등산화 끈을 고쳐 매고 산행 복장을 갖춘 후 산행을 시작한다. 수도리 마을을 지나 수도암을 향해 오른다. 수도암까지 1.5km 구간은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고 계속해서 오르막길이다. 20분간을 빠른 걸음으로 쉼 없이 오른다. 땀이 많이 흐른다. 한 꺼풀 벗어 배낭에 넣고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달래고 화장실에 다녀온다. 수도암은 매우 조용하며 한적한 곳으로 암자까지 걸어 오르는 숲이 우거진 오솔길은 아늑한 정취를 느끼게 해 준다.

 

수도암 대광보전 앞에 정상가는길 표시가 눈에 들어온다. 수도산은 도선국사가 이 도량을 보고 앞으로 무수한 수행인이 나올 것이라 하여 산과 도량 이름을 각각 수도산, 수도암이라 칭하였다는 데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경내에 있는 석불상과 석탑, 그리고 지형을 상징한 석물 등도 모두 천 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정상가는 길은 대웅전 뜰을 가로질러 한산교(寒山橋)를 건너서 왼쪽 산길로 접어든다. 

약간 경사진 흙길을 5분 정도 오르자 절고개 갈림길이다. 오른쪽은 청암사(1시간) 가는 길이고 직진하면 수도산정상(40분) 가는 길이다. 

산죽나무 오솔길을 따라 부드러운 흙길을 걸어 오른다. 잡목나무 숲으로 바뀌지만 길은 걷기 좋은 흙길이 계속된다. 10시 10분. 다시 갈림길이 나타나고 계속 오르기만을 강요하던 길은 이곳부터 5분 정도 숨돌릴 여유를 주고 다시 오름길이다. 정상 1000m 표지판 왼쪽으로 억새 우거진 헬기장이 나오고 이곳 조망이 훌륭하다. 구름모자 쓴 가야산 정상(해발 1430m)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쁜 숨소리에 맞춰 서서히 오름길을 오르면 육산은 산꾼을 품에 안는다. 길 막은 암봉 하나를 기어오르면 탁 트인 시야가 가던 길을 잠시 멈추게 한다. 노송 한 그루 서 있는 이 전망대 바위 위에 서면 멀리 가야산 정상이 뚜렷이 보이고 수도사가 발 아래에 놓인다. 

두 번째 조그만 암봉을 넘으면 정상으로 가는 길은 경사 없는 능선길이다. 10시 45분. 수도산 정상(해발1317m)을 밟는다. 키를 넘는 돌탑이 산의 주인인양 버티고 서서 반갑게 나그네를 맞이한다. 수도산(修道山 1316.8m), 경북 김천시 증산면과 경남 거창군의 경계를 이루면서 이름 그대로 참선 수도장으로 유명한 신라 천년 사찰 '수도암(지금은 수도사)' 이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수도산은 불령산, 선령산 이라고도 한다. 앙증맞은 자그마한 정상석이 산 높이에 비해 초라한 느낌이다. 단지같이 두리 뭉실한 '단지봉'이 지척에 보이고, '좌일곡령'과 혹같이 보이는 '용두암봉', 그리고 타오르는 횃불을 연상케 하는 가야산 정상의 자태가 한눈에 들어온다. 

함께 도착한 일행들과 사과를 나눠 먹으면서 기념 촬영을 한 후, 멀리 가야 할 단지봉을 보면서 담소를 나누며 한숨 돌리는 사이 먼저 도착한 선두가 능선을 따라 사라진다. 10시 50분. 서둘러 뒤따른다. 약간 험한 급경사 내림길을 3-4분 내려서고 산허리를 따라 나 있는 낙엽 쌓인 좁은 오솔길을 30분 정도 빠르게 치고 나간다. 반대쪽에서 오르는 산꾼을 만나서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이 길이 단지봉 가는 길이냐고 묻자 이 길은 양각산(소뿔산), 흰대미산으로 가는 길이고, 단지봉은 수도산 정상에서 반대 방향 능선으로 가야 한다고 한다. 아뿔사, 개념도를 확인하지 않고 선두를 따라 생각 없이 산행을 한 것이 이런 결과를 가져온다. 그 일행을 따라 다시 수도산으로 돌아간다.

 

12시 정각 수도산정상을 다시 밟는다. 1시간 10분을 알바한다. 오늘 산행 구간과 시간이 짧아 하나님이 주신 특별한 보너스라고 생각하고 감사한 마음으로 기쁘게 받아들인다.

정상에서 개념도를 살펴가며 바라보니 남으로는 양각산, 흰대미산, 회남령 넘어 보해산, 금귀산으로 뻗어 있고, 단지봉으로 가는 능선은 정상 바로 못 미처(50m정도) 왼쪽으로 난 능선길을 따라 가야 한다. 단지봉으로 향하는 능선에서 뚜벅이님이 오라고 손짓한다. 동봉을 넘어 가파른 비탈길을 내려서자 뚜벅이님이 수고했다고 한다. 떨어진 낙엽이 갈색 양탄자를 수놓아 푹신푹신한 능선길을 20여분 내려서자 잡목과 넝쿨나무 터널이 나타난다. 마음이 급한데 얼기설기 꼬인 터널을 지날 때면 배낭을 잡고 놓아주질 않거나 슬쩍 목덜미를 할퀴어 짜증나게 한다. 

13시 10분. 솔골재부터는 수도산에서 고도를 한참 떨구어 완만하게 이어지던 능선이 편해진 발걸음을 시기하듯, 지루한 발걸음을 보상하듯 급경사로 바뀐다. 초겨울, 낙엽을 밟으며 산에 오른다. 바싹 마른 낙엽들이 켜켜이 쌓인 산길. 발목까지 빠지는 낙엽의 촉감이 부드럽다. 바스락바스락, 낙엽 밟는 소리도 정겹다. 한 발 한 발 숨찬 발걸음을 옮기며 20여분 땀을 쏟자 넓고 넓은 단지봉이 이마를 내민다. 헬기장에서 먼저 도착하여 점심 식사를 하던 일행들이 알바하느라고 고생했다며 보온병에서 따뜻한 물 한잔을 따라 주며 자리를 내 준다. 점심식사를 마친다. 헬기장을 지나 50m 정도를 억새밭 사이로 지나야 단지봉 표지석이 보인다. 

고대하던 억새군락은 없었지만 빽빽이 들어차 있는 잡목들이 색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산세가 아래는 배가 불룩하고 정상은 뚜껑을 덮어놓은 것처럼 평평한 단지모양을 닮아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경상북도 김천시 증산면 평촌리와 경상남도 거창군 가북면에 자리잡은 단지봉은 거대한 육산으로 계곡 곳곳에 울창한 수림과 담소가 어우러져 철따라 비경을 연출하며 산 북쪽의 굽이친 계곡은 불령동이다.

 

단지봉이 일반인에게 크게 알려지지 않은 이유 중 하나는 지척에 국립공원인 가야산과 덕유산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뒤늦게 도착한 뚜벅이님이 주위 산세를 설명한다. 구름 모자 벗은 가야산정상은 당장이라도 달려가고 싶을 만큼 가까이서 손짓하고, 장군봉과 이어진 별유산 의상봉(의상대사가 참선하던 터로 알려진 곳)과 그 뒤쪽으로 오도산이 보인다.

14시 하산을 시작한다. 단지봉의 너른 품은 단지봉에서 멀어질수록 더욱 커진다. 오르던 길로 5분 정도 내려오자 알바한 선두가 올라온다. 대단한 체력과 산행 속도에 모두들 감탄한다. 25분 정도 내려와서 만나는 갈림길에서 오른쪽 계곡으로 15분 정도 내려서면 임도와 만난다. 곳곳에서 오래 전에 매달아 놓은 뚜벅이 표시기가 보인다. 15시. 임도를 가로질러 산길로 15분 정도 내려서면 다시 임도와 만난다. 임도를 따라 천천히 20여분을 걸으면 수도리 마을에 다다르면서 산행은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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