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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산행일지

천황산-재약산

2003년 11월 18일(화)

정해진 코스를 돌며 산행객을 태운 늘푸른 산악회 버스는 7시 30분 안영요금소를 빠져나가 경부고속도로로 바꿔 타고 부산을 향해 달리다 추풍령휴게소에서 15분간 정차한다. 

10시 20분 언양요금소를 빠져 나와 24번 국도를 이용하여 밀양으로 향한다. 차창 밖으로 영남알프스가 펼쳐진다. 경북 청도군 운문산(1188m), 가지산(1240m)에서 경남 밀양시 천황산(1189m), 재약산(1018m)을 거쳐 울산 울주구 신불산(1209m), 취서산(1059m), 간월산(1083m), 고헌산(1033m)으로 이어지는 산줄기를 흔히들 ‘영남 알프스’라고 부른다. 산 높이가 모두 1,000m를 넘고 능선을 따라 펼쳐지는 경치가 알프스산 못지 않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영남알프스엔 울창한 숲과 깊은 계곡은 물론 사자평 억새군락지 등 곳곳에 비경이 많아 사시사철 산행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고 한다.


카페촌으로 변한 태화강 상류의 덕현천을 거슬러 올라 가지산 자락에 둥지를 튼 석남사 입구에 도착하자 갑자기 하늘이 손바닥만큼 작아진다. 버스는 굽이굽이 산허리를 돌면서 힘겹게 오른다. 마치 강원도 한계령을 오르는 느낌이다.

10시 50분 석남 터널을 지나 밀양시 산내면으로 다시 굽이굽이 내려가 고개 아래 남명검문소에서 죄회전하여 얼음골입구 주차장에 도착한다.

산행 코스 ( 산행시간 5시간 소요) : 매표소 - 얼음골 - 안부 - 천황산(사자봉) - 재약산(수미봉) - 고사리분교 - 층층폭포 - 흑룡폭포 - 표충사 - 매표소 - 공용주차장

11시 5분 산내천을 가로지른 아치형 다리를 건너 5분 정도 포장도로를 오르자 얼음골관리소가 나오고 다시 5분 정도 잘 정비된 돌길을 오르면 갈림길이다. 왼쪽은 불가볼협곡(폭포)으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얼음골로 향하는 길이다. 이곳에서 약수를 받아 수통에 채우고 목으로 한 모금 넘긴 후 오른쪽으로 길을 잡고 돌계단을 오른다. 

5분 정도 숨가쁘게 오르자 천혜의 절경을 간직한 천연기념물 제 224호로 지정된 얼음골에 다다른다. 천황산 북쪽 기슭 해발 600-750미터의 험준한 계곡 60°경사진 돌밭 가운데 위치하고 있으며 삼복한더위에 얼음이 얼고 처서가 지나면 얼음이 녹는다고 한다. 더위가 심할수록 얼음이 많이 언다는 이곳은 바위틈마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신비한 이상 기온지대이다. 

돌계단이 끝나고 전형적인 등산로와 너덜길을 오르다 동의굴 0.2km 표지판이 있는 곳부터 길은 다시 가파른 돌계단으로 변한다. 11시 50분 명의 허준의 집념이 서려있는 동의굴에 오른다. 이곳은 소설 동의보감에 기록된 허준의 스승 유의태를 해부하였다는 장소의 배경과 일치하는 점이 있어 살신성인의 정신이 깃든 동의굴이라 불려지는 곳이다. 

암벽 틈을 갈라 뿌리내린 외로운 소나무는 비틀어진 몸 위태하게 걸쳐놓고 있다. 물 마른 계곡길을 15분 동안 쉼 없이 거친 숨 몰아쉬며 오르자 안부 쉼터가 나온다. 윈드스토퍼를 벗어 배낭에 넣고 물 한 모금으로 거친 숨을 달랜다. 

12시 25분 삼거리 갈림길이다. 표지판에는 배내골 6.0km 천황산1.4km라고 쓰여 있다. 오른쪽 천황산 사자봉으로 향한다. 키 작은 상수리나무와 우거진 잡목 사이로 난 경사 없는 능선길을 걷다보면 사자봉에서 재약산 수미봉으로 연결되는 능선길이 한 눈에 들어온다. 어느새 정상이 가까워진다. 

12시 45분 천황산 사자봉(해발1189m)에 선다. 재약산은 재약산, 수미봉, 사자봉, 천황산으로 혼동되어 부르고 있다. 천황산이 일제 때 붙여진 이름이라 하여 우리 이름 되찾기 일환으로 천황산 사자봉을 재약산 주봉으로 부르면서 위와 같은 혼돈이 생기게 되었다고 한다. 지형도나 대부분의 등산지도에는 재약산(수미봉 1,018m)과 천황산(사자봉 1,189.2m)이 따로 표기되어 있다. 정상에는 天皇山 이라고 씌여진 부드러운 곡선미를 자랑하는 표지석과 오랜 세월 하나 둘씩 쌓아올린 커다란 돌탑무더기가 보인다. 

옛 문헌에 "광활한 평원이 가을 파도 같다"고 해 廣平秋波(광평추파)로 묘사되고 있는 사자평고원의 억새밭 너머로 멀리 영남알프스의 우람한 산세가 시야에 들어온다. 정상 아래에는 밀양 얼음골 풍경과 해발 800m의 산마루에 100만평이 넘는 사자평 억새군락지가 펼쳐진다. 국내 최대 규모의 사자평 억새밭이 가을 햇살을 받아 금빛 벌판으로 변했다. 금빛을 머금은 벌판에 바람이 불어도 억새는 하늘거릴 뿐 꺾이지 않는다. 소박하면서도 강한 힘을 가진 민초의 모습을 보는 듯 하다. 그래서 더욱 정이 간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소박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억새는 단풍과는 또 다른 가을의 색깔이다. 단풍이 화려하다면 억새는 수수하다. 붉거나 노란 원색을 뽐내는 단풍에 비해 억새는 살색에 가깝다. 단풍과 비슷한 시기에 제철을 맞는데도 억새가 다소 밀리는 것도 소박함 때문일 것이다. 

재약산 수미봉으로 향하는 능선 내림길은 비교적 수월하다. 갖가지 소원들을 빌면서 쌓아올렸을 돌탑들이 수 십 군데 산재해 있는 내림길을 20여분 내려서자 천왕산과 재약산 사이 안부에 산더덕과 동동주를 파는 가게 두 곳(알프스 쉼터, 털보산장)이 있다. 땀이 식어 추위가 느껴진다. 다시 자켓을 꺼내 걸치고 식탁에 앉아 점심식사를 한다. 

13시 40분. 능선을 따라 질퍽한 흙길을 계속 걸어가다 만나는 바위지대를 기어올라 재약산 수미봉(1108m)에 닿는다. 載藥山 이라고 쓰여 있는 표지석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하산길로 내려선다. 

30분 정도는 산행길이 잡목 숲으로 이루어져 조금은 지루하지만 산 정상에서부터 숨가쁘게 내려오고 있는 만추에 몸과 마음을 맡기면 지루함이 사라진다. 사자평 억새밭 사이에 약초를 재배하는 모습이 보인다. 고사리분교까지 사자평이다. 

14시. 고사리분교 0.4km 표지판이 보이고 10분을 더 내려가면 고사리분교터에 이른다. 정확한 명칭은 산동초등학교 사자평분교(해발 850m)다. 몇몇 가구가 등산객을 상대로 민박을 치며 생계를 이어갔으나 1997년 모두 철거됐다고 한다. 학교 역시 마을의 운명에 따라 사라지고 황량한 교정에는 1966년 개교하여 36명의 졸업생을 배출하고 1996년 폐교되었다는 교적비만 남아 이곳이 학교였음을 말해준다. 

내려가는 길은 영남알프스라는 이름 값을 하는 코스다. 사자평 끝자락에서 10분 정도 내려가다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파른 돌계단을 내려가면 층층폭포를 만난다. 출렁다리 위에서 층층폭포가 일으키는 물보라를 넋 놓고 바라본다. 계곡 아래로 떨어지는 2층 짜리 폭포가 자아내는 경관이 발길을 묶는다. 끝없이 추락할 것 같은 계곡과 계곡너머로 펼쳐지는 바위들 또한 눈을 한없이 즐겁게 한다. 한풀 기세가 꺾인 가을 햇살이 얼굴에 닿고 시원한 바람이 이마에 흐른 땀을 씻어낸다. 

곳곳에 나무들이 수해의 상처를 입고 뿌리째 뽑히고 허리가 꺾인 채 쓰러져 길을 막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을 보며 내려오다 바위 아래 틈새에 수 십 개의 페트병이 양심과 함께 버려진 모습에서 씁쓸함을 느낀다. 

길은 급경사의 너덜길로 바뀌고 계곡을 가로지르는 출렁다리를 건너자 길은 다시 순해진다. 15시. 층층폭포에서 1.2km를 더 내려오면 요란한 굉음과 함께 흰 물보라를 일으키며 시원한 물줄기를 자랑하듯 쏟아지는 흑룡폭포(지도상에는 흥룡폭포인데 표충사 등산안내도에는 흑룡폭포로 쓰여 있다)가 반긴다. 전망 시설이 되어 있고 계곡 건너편 산자락에는 아직 가을이 남아있다. 표충사 2km 표지판이 보인다. 
 
계곡을 따라 길을 표충사로 향한다. 계곡을 가로지르며 놓인 징검다리를 건너자 길은 산책로 같은 오솔길로 바뀌어 표충사까지 이어진다. 15시 30분. 표충사가 보이고 계곡을 흐르는 물이 유혹한다. 배낭을 벗어 던지고 흐르는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얼굴의 땀을 씻어내며 여유를 부린다. 차가울 것 같았는데 시원하다.

 

15시 50분. 표충사에 들어선다. 천황산과 재약산 기슭에 자리한 표충사는 신라 흥덕왕 때 창건되어 1천년의 역사를 가진 고찰로 고려 때는 삼국유사의 저자인 일연이 수도하였고, 임진왜란 때 충성을 바친 서산, 사명, 간허대사의 충의를 표창하여 표충사라 하였다고 한다. 

험상궂고 무서운 얼굴의 사천왕이 지키고 있는 사천왕문을 들어서자 삼층석탑(보물 제467호)과 석등이 반긴다. 석탑은 통일신라시대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는 높이 7.7m의 3층짜리 석탑이고, 석등은 높이가 2.4m다. 
  
사명당의 충의를 새긴 표충비각은 「나라에 큰 일이 있을 전후로 비석에서 땀이 난다」는 설이 있다. 표충사에는 국보 제 75호인 청동함은향완을 보고 표충사 일주문을 나서자 등산안내도가 보이고 송림이 울창하다. 

특히 주차장으로 이어지는 길 양옆으로 수 백년 된 노송 숲이 일품이다. 16시 30분.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공용주차장까지 터덜터덜 내려가 산악회 버스에 오르면서 산행은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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