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3. 10. 26(일)
아침 7시. 평송청소년 수련원 주차장을 출발한 산악회 버스는 오정동 오거리-홍도육교-파라다이스 웨딩홀-검문소를 거치면서 회원들을 태우고 7시 30분 동대전 톨게이트를 빠져나간다.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로 갈아 탄 버스는 8시 20분 덕유산 휴게소에서 10분간 정차하고, 다시 시원스럽게 뚫린 고속도로를 질주하여 9시 10분 산청 IC를 빠져나간다.
길을 잘못 들어 20여분을 헤매며 시간을 소비한 후, 물어 물어 59번 국도 차황 방향으로 길을 잡는다. 10시 정각. 산행은 장박마을을 기점으로 시멘트 포장된 도로를 따라 10여분 오른 후 오른쪽으로 꺾어(표시기가 보임) 산길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낙엽과 솔잎으로 덮힌 좁다란 흙길로 전형적인 등산로이다. 가파른 오솔길을 10여분 오르면 묘지가 보이고 약간 평지길이 이어지지만 여유 없이 다시 가파른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이마에 땀이 흐르기 시작한다. 자켓을 벗어 배낭에 넣는다. 봄에 한껏 아름다운 자태를 뽐냈을 철쭉나무가 지금은 앙상한 가지만 드러내고 산을 뒤덮고 있다. 그렇게 20분을 치고 오르면 하늘이 뚫리고 시야가 확 트이며 이번에는 억새가 산을 뒤덮고 있다.
누군가가 억새를 베어내고 길을 내 주어 등산객이 오르기 좋게 한 그 마음 씀씀이를 고마워 하면서 10여분을 오르면 너백이 쉼터에 도달한다. 합천호가 보이고 그 뒤로 가야산이 시야에 들어온다.
합천호 푸른 물에 하봉, 중봉, 상봉의 산 그림자가 잠기면 세 송이 매화꽃이 물에 잠긴 것 같다고 수중매라는 별칭으로도 불리는 황매산은 합천을 대표하는 산이며, 화강암 기암괴석과 소나무, 철쭉, 활엽수림이 잘 어우러져 조화를 이룬다. 억새와 철쭉 군락지 길을 따라 황매산 능선이 웅장하게 펼쳐진다.
바람이 차다.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고 다시 자켓을 꺼내 입는다. 오른쪽 철쭉 군락지 능선을 따라 호젓한 오솔길을 걷고 또 걷는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태양은 고개를 들 때마다 점점 다가온다. 전망 바위를 지나 11시 35분 가파른 돌계단이 굽이굽이 이어지는 가파른 오르막길을 오른다. 경사가 심해지는 것을 보니 정상이 가까워진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산길에 머루가 꽃을 피우고 길손을 맞이한다.
10여분 숨가쁘게 오르면 커다란 암봉의 황매산 정상에 도달한다. 정상은 세 개의 암봉으로 되어 있고 표석과 케른이 있다. 우뚝솟은 세 개의 봉우리에는 황매산의 정기를 받고 태어날 3현(三賢)의 전설이 전해져 온다고 한다. 황매산 정상에 서면 잔잔한 합천호와 금성, 허굴 3산, 산청군 차황면 쪽의 산과 들이 한눈에 보인다. 수려한 경관에도 가야산과 해인사의 명성에 가려져 그 동안 찾는 사람이 적었지만 1983년 군립 공원으로 지정되고 철쭉제가 열리면서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정상 아래로 벌써 가을 깊숙이 들어와 있는 황매평전이 넓게 펼쳐지고 영화 '단적비연수'를 촬영했던 세트장이 있는 영화 주제 공원이 눈에 들어온다.
불쑥 솟아오른 암봉을 지나 황매평전으로 내려선다. 황매평전은 목장지대와 고산 철쭉 자생지로 소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과 같다.
한가로움을 같이 느끼며 바람을 피해 양지바른 곳에 자리잡고 둘러앉아 점심식사를 마친다. 천천히 황매평전을 지나 산불감시초소 쪽으로 향한다. 내림길을 조금 내려서니 말 세 마리가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이 오래 전 여행한 스위스를 연상케 한다.
정상 1.8km 모산재 0.7km. 모산재로 향하는 팻말이 보이고 철쭉제단 옆에 황매대장군과 여장군이라고 새겨진 장승이 반긴다.
소나무가 하늘을 덮은 오솔길을 지나 경사가 심한 오르막을 10여분 오르면 황매성터 안내판이 보이고 100m를 더 가면 모산재이다.
모산재는 전체가 기암괴석과 암릉으로 이루어져 있다. 곧바로 넘어서면 순결바위가 나온다. 사람이 들어갈 정도로 바위가 갈라져 있는데 사생활이 순결하지 못한 사람이 들어가면 바위가 오므라져 못 빠져 나온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바위다.
모산재에서 다시 오던 길로 20여m를 뒤돌아 나와 오른쪽으로 오솔길을 따라 300m를 가면 천하의 명당자리라는 무지개터가 넓게 펼쳐진다. 풍수지리설에 의하면 이곳에는 용마바위가 있어 비룡상천하는 지형이므로 옛부터 묘를 쓰면 천자가 되고 자손만대 부귀영화를 누린다고 한다. 하지만 이곳에 묘를 쓰면 온 나라에 가뭄이 들기 때문에 명당 자리라도 누구도 써서는 안될 자리라고 한다. 시야가 확 트인 이곳에서는 황포돛대 바위와 영암사가 보인다.
암벽과 암릉을 타고 내려서면 황포돛대 바위가 벼랑 끝에 아슬아슬하게 서 있고, 청자 빛 하늘을 배경으로 천년풍우에 씻긴 모산재의 해맑은 모습이 병풍처럼 둘러쳐 있는 주변 풍광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산아래 대기저수지 물은 탁하게 보인다.
2시 정각 다시 하산길에 오른다. 바위 절벽에 붙어있는 철계단을 내려와서 암릉이 이어지는 암능선을 타고 30여분을 내려오면 황룡사 입구가 나타난다. 암능선 구간은 잡을 곳도 없고 제대로 된 로프도 매달려 있지 않아 위험하다.
시멘트 포장길을 조금 걸어 내려와 약수터에서 목을 축이고 일행은 오른쪽 황매산 군립공원 주차장으로 향하는데 혼자 왼쪽 영암사지로 발길을 돌린다. 수령 600년 된 보호수 느티나무를 지나자 사적 제131호 영암사지가 발굴을 중단한 채 파헤쳐져 있다.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쌍사자석등(보물353호)과 삼층석탑(보물480호)만이 이곳에 그 옛날 절이 있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쌍사자석등은 속리산 법주사 쌍사자석등(보물5호)과 함께 우리나라의 석등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주위의 수려한 산새와도 잘 어울린다. 조금 떨어진 곳에 영암사 극락보전만 다시 중건되어 있다.
발길을 돌려 주차장으로 향한다. 늘어선 음식점과 가게를 지나 공원주차장에 도착하면서 산행은 끝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