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16(일)
DMZ평화의 길 21코스(12.7km) : 풍차펜션(화천DMZ쉼터) -(3.8km)-구운리 경로당-(2.5km)-신대교-(6.4km)-화천대교
새벽 6시. 아직 어둠이 채 물러가지 않았고, 비마저 추적추적 내린다. 따뜻한 이불 속에 더 머물고 싶지만, 배낭을 메고 집을 나선다. 오늘은 DMZ 평화의 길을 걷는 날이다. 어제까지만 해도 봄기운이 완연했는데, 오늘부터 사흘간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린다고 한다. 강원도에는 폭설 예보까지 있어 걱정스럽다.
이런저런 사정으로 몇몇이 참여하지 못해 버스 좌석에는 여유가 생겼다. 덕분에 창가에 기대어 창밖 풍경을 조용히 감상한다. 빗방울이 창문을 타고 흐르고, 길가의 나무들은 아직 겨울의 흔적을 품고 있다.
버스는 고속도로를 달려 죽암휴게소에 멈춘다. 휴게소 정자에 둘러앉아 아침식사를 한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콩나물국, 고슬고슬한 찰밥, 김치, 그리고 바삭한 김. 단출한 한 끼지만 꿀맛이다. 정성껏 밥과 국을 퍼주는 여성 회원들의 봉사가 더욱 감사하게 느껴진다.
오전 8시, 버스는 다시 출발하여 목적지를 향한다. 2시간 반을 달려 풍차펜션에 도착하니, 어느새 빗방울이 잦아들었다. 단체사진을 찍고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한다.


산천어밸리 체험장 앞에 DMZ평화의길 21코스 안내판과 시작점 인증QR코드가 있다.



강원도의 산은 여전히 겨울을 품고 있다. 멀리 보이는 능선에는 하얀 눈이 소복이 쌓였고, 낮은 곳의 나무들은 아직도 마른 갈색 옷을 벗지 못했다. 그 사이로 짙은 안개가 흐르듯 내려와 산의 숨결을 감싼다. 따뜻한 봄을 기대했지만, 이곳에는 아직 늦은 겨울이 머물러 있다.
안개는 모든 소리를 삼켜버린 듯하다. 새들의 지저귐도, 나뭇가지의 바람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저 고요함이 산을 감돌고 있을 뿐이다. 자연이 조용히 숨 쉬는 모습을 지켜보는 듯한 느낌이다.
이렇게 계절이 맞부딪히는 순간, 우리는 자연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낀다. 어제와 같은 오늘은 없고, 오늘과 같은 내일도 없다. 안개는 결국 걷힐 것이고, 저 산에도 곧 연둣빛 새순이 돋아날 것이다.
그 순간이 오기 전, 이 조용하고도 몽환적인 풍경 속에서 한 걸음 더 머물러 본다.



구운천과 화천천 따라 걷는다. 풍광은 계곡뿐 특별히 볼 건 없다.
다행히 비도 그치고 바람도 없어 걷기에 그만이다. 주변은 고요하다. 도심에서 들리던 자동차 소음도, 인적도 거의 없다.

구운천 다리를 건너 좌회전하여 천변길을 걷는다.




길을 걷다 비닐하우스 한쪽에서 잠시 쉬어간다. 각자 준비해 온 도시락을 꺼내 놓고 점심을 즐긴다. 차가운 공기 속에서 톡 쏘는 막걸리 한 잔이 더해지니 행복하다.




화천 토고미마을은 비옥한 토양과 만산동 계곡물이 흐르는 청정한 환경에서 친환경 농법으로 쌀, 옥수수, 감자 등 유기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품을 팔면 품삯을 쌀로 받았다고 하여 토고미(土雇米)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곳은 겨울에 유명한 산천어 축제장이다.

산천어축제는 원래 구운리 작은 마을에서 시작됐다는 겨울 동네축제가 2003년도부터 지자체 규모로 확대되어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해를 거듭할수록 명성을 쌓아가고 있는 산천어축제는 이제 해마다 100만명이 참가하는 대한민국 대표 축제로 자리를 잡았다.



어느덧 화천대교가 보인다. 이곳에서 DMZ 평화의 길 21코스는 끝이 난다. 여정의 끝자락에서 바라본 북한강의 물빛이 유난히 깊고도 차갑게 느껴진다.








트레킹을 마친 후, 화천시장 끝자락에 자리한 작은 식당으로 향한다. 찬 바람 속에서 걸어왔더니 뜨끈한 국물이 간절하다. 큼직한 양푼에 보글보글 끓는 동태탕이 테이블 위에 올라온다. 얼큰한 국물에 몸이 녹아내리는 듯하다. 송어회가 곁들여지고, 자연스레 소주잔이 오간다.





화천군은 인적 드문 군사 지역이다. 그도 그럴 것이 군 전체 인구라고 해봐야 2만5,000명 남짓이니 공휴일을 제외하면 북적이고 번잡한 때가 없다. 그나마 공휴일에 붐비는 것도 군인들 덕분이다. 군내에 주둔하는 사단 규모 부대가 3곳이나 돼 외출 나온 장병들이 오가니 제법 북적일 수 있는 것이다.

귀갓길, 고속도로 휴게소는 한산하다. 강원도에 내린 눈 소식 때문인지 나들이객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창밖을 바라보니 바람이 거세지고 기온이 뚝 떨어졌다. 두툼한 옷깃을 여미며 창문에 기대어 눈을 감는다. 오늘 하루, 몸은 피곤하지만 마음은 한결 가벼워진다.
꽃샘추위 속에서 걸었던 DMZ 평화의 길. 그 길 위에 남겨진 발자국처럼, 오늘의 기억도 오래도록 선명하게 남을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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