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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스케치

스리랑카3일 차 : 핀나왈라 ⇒ 시리기야(Sigiriya) 요새 ⇒ 캔디(Kandy)

2025. 2. 12(수) 3일 차 : 핀나왈라 ⇒ 시리기야(Sigiriya) 요새 ⇒ 캔디(Kandy)

아침 일찍 시기리야로 이동하여 시기리야 요새 투어. 

- 일출을 보고 호텔로 복귀하여 아침식사 후 캔디로 이동. 약 3시간.

- 불치사 관광 후 칸디 춤(Kandyan Dance) 관람.

- 5성급 호텔 Grand kandayn Hotel 체크인(2인 1실). 저녁 식사 후 휴식.

 

스리랑카 내륙 깊숙이 들어가면 높은 산맥과 밀림이 혼재해 있어 장소에 따라 기온의 차이가 심하므로 경량 패딩이나 바람막이 한 벌 정도는 반드시 챙겨 가야 한다.

 

아누라다푸라-폴론나루와-캔디 등 고도(古都)가 역삼각형을 그리는 '문화 삼각지' 첫 관문이 시기리야 (Sigiriya)다. 

중부의 정글 가운데 우뚝 솟아 있는 높이 약 180m의 거대한 화강암 덩어리 위에 만들어진 시기리야 요새(Sigiriya Fortress)세계 8대 불가사의다. 

 

기원전 475년 이복동생에게 왕위를 뺏길까 봐 아버지 다투세나 왕(455~473)을 죽이고 왕이 된 카사파 1세 (Kashyapa I, 477~495)가 동생의 보복을 피해 해발 고도 350m 위에 궁궐과 요새를 지어서 살았던 곳이다. 그런데 10여 년이 흐른 뒤 군대를 이끌고 온 동생 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비극적인 이야기가 전해진다. 영원할 것만 같던 권력도 죽음 앞에선 초라했다. '사자(Sinha)'와 '목구멍(Giriya)'의 합성어로 ‘사자의 목구멍’이라는 뜻을 가진 천연 요새 시기리야는 그렇게 탄생했다.

 

누구도 접근할 수 없는 천상의 성에서 11년간 은신했던 카사파 1세는 결국 인도에서 용병을 끌고 돌아온 동생 목갈라나에게 쫓기다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그의 사후, 시기리야는 불교 사원으로 운영되다가 폐허가 되어 전설로만 전해졌다. 발굴은 400여 년이나 흐른 19세기 후반 영국 식민지 시절에 발굴되어, 1982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밀림 한가운데 거대한 직사각형의 바위가 존재한다는 것도 신기하지만, 그 꼭대기에 바위를 깎아 궁전과 밭, 저수지를 만들어 수백 명이 기거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스리랑카의 물가는 전반적으로 태국이나 인도보다 높은 편이다.

숙박비도 물가 대비 비싼 편이고, 입장료는 아시아에서 가장 비싼 수준이다. 모든 유적의 입장료는 미국 달러를 기준으로 한다. 루피 입장료는 환율에 따라서 해마다 변경된다. 외국인에게는 자국민보다 훨씬 높은 무자비한 입장료를 받는다.

가이드가 입장권을 구입하는 동안 인솔자 조나단이 주의 사항을 전달한다.

일출을 보기 위해 랜턴 불빛으로 어둠을 밀어내고 부지런히 바위산 꼭대기로 연결된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한 사람만 간신히 지나갈 수 있는 계단을 계속 올라가야만 정상이 나온다. 

 

비록 안타깝게도 구름에 가려 일출을 볼 수 없었지만, 그러나 정상에 남겨진 흔적에서 수천 년 전 이곳에 숨겨진 역사의 숨결을 느낀다.

정상에서 일출을 기다리는 전 세계 여행자들.
현지가이드 로리따와 기념사진
안타깝게도 구름에 가려 일출을 볼 수 없었다.
Water Garden

정상에는 약 4800평 공간에 궁전터, 연회장, 목욕탕 등의 유적과 카사파 왕이 무희들의 공연을 감상했다는 돌의자가 그대로 남아 있다.

▲ '세계  8대 불가사의' 천연의 요새 왕궁 '시기리야'는 약 400년간 전설로만 전해오다 19세기 후반 실제로 발견됐다.
요가하는 서양 여행객들 모습이 눈길을 끈다.
넓은 수영장(목욕장이라고 한다). 그만큼 많은 여인이 함께 유희를 즐기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카사파 왕이 무희들의 공연을 감상했다는 돌의자
정작 시기리야 근처로 가면 시기리야의 진면목을 못보지만, 피두랑갈라는 최고의 전망을 제공하고, 일출의 장관을 덤으로 준다.
위에서 내려다본 테라스는 사자의 발과 발톱 형상이다
처음에는 거대한 바위가 거대한 사자처럼 보이도록 만들어졌는데, 지금은 사자의 머리가 풍화되어 떨어져 나가서 사자의 몸통과 발톱만 남아있다.
정상의 왕궁까지는 거대한 사자의 앞발 사이로 난 계단(라이언 플랫폼)을 통과해야 한다. 총 계단 수는 1200개.

 

시기리야 벽화 아래쪽에는 '미러 월(mirror wall)'이라 불리는 회랑 벽이 있으며달걀흰자와 꿀석회 등을 이겨 칠했다는 '거울 벽'에는 역대 왕조의 흥망을 노래한 서사시와 시기리야 벽화의 여인을 칭송하는 시들이 가득 새겨져 있다이 시들은 싱할라어로 쓰인 최초의 문학작품으로 알려져 있다.

The Mirror Wall

시기리야 유적 감상의 압권은 거울 회랑에서 나선형 계단을 타고 수직으로 올라 만나는 미인도 벽화다젖가슴을 내놓은 여성을 중심으로 주위에서 화려한 장식과 옷을 갖춰 입은 시녀들이 시중을 드는 모습인데거의 원형 그대로를 간직한 또렷한 선과 선명한 색채들이 탄성을 자아낸다주인공은 천국의 요정 압살라를 그린 것이라고 한다이 '시기리야의 숙녀들'은 애초 500명이 넘었지만지금은 훼손돼 18명만 남아 있다. 사진 촬영은 금지되어 있다.

A Sigiriya Painting(미인도 벽화)
회의장소
코브라바위

 

호텔로 복귀하여 아침식사 후 캔디로 이동한다. 캔디까지는 약 3시간 걸린다.

 

한번 들으면 쉽게 잊히지 않는 캔디라는 독특한 지명은 영국 식민지 시대 산악지역을 뜻하는 '캔다 우다 라타(Kanda Uda Rata)'의 영국식 발음에서 비롯됐다. 캔디(Kandy)는 스리랑카 제2의 도시로 14세기 스리랑카의 수도였으며 수많은 유적이 남아 있는 도시다.

 

콜롬보가 교역, 행정의 중심으로 스리랑카 제1의 도시라면 캔디는 풍부한 역사 유물을 가진 스리랑카 제1의 문화 중심지다

 

과거 스리랑카 도시 중 가장 마지막으로 영국군에 함락된 캔디는 외세에 끝까지 대항하며 버틴 강인하고 끈질긴 역사를 가진 곳으로써 그 자부심은 대단하다. 여느 도시와 달리 유럽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 전통적인 면모를 간직하려 애쓴 흔적이 곳곳에 역력하다.

 

스리랑카 중부 해발 600m의 구릉지대에 있는 캔디는 비교적 시원한 기후를 가지고 있다. 

호퍼(Hopper). 쌀가루와 코코넛 밀크를 섞어 구운 것으로 보통 아침이나 저녁에 먹는 스리랑카의 전통음식이다. 쌀가루에 코코넛 밀크를 뿌려 하루 동안 발효시킨 후 반죽을 만들고 뜨겁게 달군 둥근 주물 팬으로 굽는다. 달걀을 넣어 구우면 에그 호퍼가 된다. 우리 입맛에도 잘 맞는다.

 

담블라에서 캔디로 가는 A9번 도로에는 스파이스가든 아유르베다 농원 (AYURVEDIC VILLAGE)이 여러 곳 있다. 마치 동일 업종의 가게가 모여 있듯이 아유르베다 농원이 한 지역에 여러 개 있다.

 

한 곳에 들려 쉬어간다. 스리랑카에서는 공중화장실을 이용할 때 사용료 50Rs(=250원)을 지불해야 하는데 이곳은 무료다.

아유르베다 농장이름은 ‘SINGHE SPICE GARDEN’이다. 우리말로 해석하면 ‘싱헤 향신료 농장’.

약초를 직접 재배하는 농장으로 향신료뿐만 아니라 허브와 전통 의약품을 판매하는 곳이다.

 

육두구(肉荳蔲) 또는 너트멕(nutmeg)은 인도네시아가 원산지인 향신료이다. '너트멕'이라는 이름은 ''사향 냄새가 나는 호두'라는 의미에서 붙여졌다. 치질을 한방에 치료할 수 있는 효능이 있다고 설명한다. 믿거나 말거나.

잭푸룻열매
코코넛열매

산달우드(백당)는 이곳에서 가장 비싼 나무이며 이 나무열매에서 추출한 오일은 기미, 주근깨 등 피부미용(미백)에 탁월한 효과가 있다고 직접 시현해 보여준다.

 

캔디는 ‘센카다가라푸라(Senkadagalapura)’ 시로 널리 알려진 불교의 성지다.

캔디 신성 도시(Sacred city of Kandy)는 싱할라(Sinhala) 왕조의 마지막 수도로서, 1815년에 영국이 스리랑카를 점령할 때까지 싱할라 왕조의 후원을 받아 2,500년 이상 디나할라 (Dinahala) 문명을 꽃피웠다.

 

중국식당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불치사로 향한다.

 

1603년에 지어진 스리랑카 국보 1호 불치사(佛齒寺ㆍDalada Maligawa 달라다 말리가와)는 캔디 시가지 동쪽 호숫가에 있으며, 부처의 치아 사리가 모셔져 있는 유명한 불교 성지다.

 

불치사는 분홍빛 벽에 붉은 기와를 얹은 전형적으로 싱힐라 건축양식의 사원으로 내부에 부처의 치아를 담은 금빛 사리함이 있다. 탑 모양의 사리함은 루비와 사파이어, 다이아몬드 등으로 장식되어 있고, 둘레에 7겹의 황금 띠를 둘렀다.

 

사원은 2개 층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홀 안에 홀이 있고 해자로 둘러싸여 있으며 포탑으로 보호되고 있는데 이는 싱할라 국가 건축의 전형적인 스타일이다.

 

이곳에 모셔진 부처의 치아는 362년 인도 남부 칼링가 왕국에서 보내온 것이다. 당시 칼링가 왕국은 대기근과 전쟁이 그치질 않았는데, 어느날 국왕의 꿈에 부처가 불치를 스리랑카로 보내면 기근과 전쟁이 없어질 것이라 하였다. 왕은 신통력이 있는 헤마말라 공주를 시켜 불치를 스리랑카로 보냈다고 한다.

 

이 불치는 스리랑카 사람들에게는 가장 큰 신앙의 대상이다. 옥쇄를 대신하기 때문에 불치는 권력을 상징했다. 수도를 옮길 때마다 불치도 옮겨졌다. 1815년 영국 식민지가 되기 전까지 신할라왕조의 마지막 수도인 캔디로 옮기게 된 것이다.

기원전  543 년 열반에 든 부처의 치아를 담은 금빛 사리함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사원은 항시 개방되지만불치가 모셔진 곳은 하루에 세 번으로 개방이 제한된다이곳이 개방될 때는 의식이 행해진다화려한 악기 소리가 퍼지고예불에 참여하는 스님들이 발을 씻는다사람들은 사리함에 공양을 바친다이때는 신청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다.

사리함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신도들

 

흰 옷 신도들로 도량이 가득하다. 정월대보름 불교행사가 진행중이라고 한다.

스리랑카는 일상에서도 종교의 영향을 크게 받는데, 스리랑카 달력으로 매달 보름은 불교의 뽀야데이(poya days)로 공휴일로 지정되어 있다. 불교는 국교는 아니지만 헌법상 국가로부터 우선하여 보호와 장려를 받는다.

 

사원 내에는 세계 불교 박물관이 있어 방문객들에게 세계 불교의 확산과 발전상을 보여준다.

 

사원에 갈 때는 꽃공양을 위해 꽃을 준비한다. 래서 사원 앞에는 꽃가게가 줄지어 있다주로 연꽃이다다섯 송이에 200루피정도우리 돈으로 1000원 정도이다.

 

사원을 방문한 뒤 호수 주변을 산책하다 카페에서 잠시 쉬면서 더위를 식히고 스리랑카 전통 댄스공연을 관람한다.

 

스리랑카 전통 민속 공연 칸디 춤(Kandyan Dance)은 원래 캔디 왕조의 궁전 연회 때 추던 춤으로, 전통 복장을 걸친 남성 악사들의 북연주로 시작한다. 그리고 10여 명의 남여 댄서들이 의상을 바꿔가며 교대로 여러 종류의 춤을 춘다. 북소리의 강렬함과 전통 타악기가 만들어 내는 음률이 흥을 돋우는 음악과 댄스로 많은 관광객으로 연중 붐비는 공연이다. 1시간 정도 진행된다.

 

5성급 호텔 Grand kandayn Hotel 체크인(2인 1실). 저녁 식사 후 휴식.

호텔이 산 중턱 높은 곳에 위치해 있어 뷰가 멋지다. 해가 지고 있는 서쪽 하늘에는 환상적인  노을이 펼쳐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