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9. 1(일)
반구정에서 출발한 경기평화누리길 8구간 '반구정길'을 따라 걷는다. 반구정을 벗어나 사목리 들판길을 따라 자유로를 이웃 삼아 3km를 걷다 보니, 임진강역에 다다른다.
역사 옆에는 휴전선(休戰線) 시비가 있는데, 동그란 모양이다. 박봉수 선생의 시와 신영복 선생 글씨를 새겼다. 그 앞 목이 달아난 문인석이 민족의 비극을 상징하는 듯하다.
임진강역(Imjingang station, 臨津江驛)은 경의중앙선의 최북단 역으로 민간인이 자유롭게 출입할 수 있는 대한민국 마지막 역이다. 문산역과 임진강역을 반복 운행하는 셔틀 전철 형태로 운행되며, 평일 2회, 주말 4회 운행되고 있다.
드디어 임진각이다.
입구엔 ‘미얀마 아웅산 순국 외교사절 기념탑’이 우뚝 솟았다. 그 옆에 ‘국립 6.25전쟁 납북자기념관’이 있고, 그 너머 소공원인 ‘통일공원’엔 ‘임진강지구 전적비’ ‘파주시 6.25 참전비’ ‘미 제2사단 6.25 참전비’ 등 여러 기념비와 기념물들이 있다.
‘철마는 달리고 싶다’고 새겨진 경의선 철도중단점(鐵道中斷點) 비석, 그 옆 철길에 세워진 낡은 증기기관차, 옛 임진역 재현 매점은 굳게 닫힌 모습이다.
종합관광센터에서 출입신청서를 작성하고 제3땅굴 투어 버스를 예매한 후, 임진각 평화 곤돌라를 탑승하기 위해 탑승장으로 이동한다.
탑승객 인적사항을 작성하여 매표소에 제출하고 곤돌라 탑승권을 구입한다.
3층 곤돌라 탑승장(임진각 스테이션)으로 올라간다. 곤돌라는 10명씩 탑승한다. 임진강을 건너며 임진강과 주변 일대가 한 눈에 조망된다. 왼쪽에 ‘자유의 다리’, 임진강 철교 상행선과 다리 기둥만 남아있는 철교 하행선, 일부만 복원된 ‘독개다리’가 모여 있다.
왼쪽으로 길게 뻗은 철길이 하나 보인다. 그 철길을 따라가면 자유의 다리와 임진강 철교 하행선, 그리고 최근 일부만 복원한 독개다리가 시야에 들어온다.
독개다리는 6·25전쟁 때 폭격으로 파괴돼 덩그러니 남아 있던 다리기둥을 활용해 전쟁 전 철교와 객차의 형태를 재현한 것이다.
임진각 역사의 상징인 자유의 다리는 1953년 포로 교환 당시 북한에 억류됐던 전쟁포로들이 이 다리를 건너 자유를 찾으며 붙여진 이름이다. 자유의 다리 끝은 굳게 닫힌 철문이 있고 철문 너머에는 군사용 망루가 있는데, 그곳부터 민간인 통제구역이다.
“여러분은 지금 육로가 아니라 하늘길로 민통선을 통과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개성까지 20km, 평양까지 160km입니다.”
탑승한 케이블카에서 흘러나온 음성이다. 6·25전쟁의 총탄 흔적이 남은 철교, 지뢰 매설을 경고하는 철조망 표지판이 폭풍전야의 긴장감을 간직하는 듯하다.
DMZ 스테이션에서 내려 밀리터리 로드를 따라 제1전망대로 오른다. 소망리본존을 지나면 녹슨 월경방지판이 보이고 아담한 임진강 평화 등대가 반긴다.
전망대 옆에는 조금 뜬금 없는 등대가 서 있다. 이 평화등대는 DMZ와 민간인 통제 구역이 평화의 땅이 되길 기원하는 의미로 설치된 조형물이라고 한다.
평화정 뒤쪽에는 2018년 남북정상회담 당시 판문점에서 남북 두 정상(문재인대통령과 김정은)이 만나 산책했던 도보다리를 재현한 다리가 있다.
예전 미군 기지를 개조해 만든 캠프그리브스 갤러리 전시관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다시 곤돌라를 타고 출발지점으로 건너온다.
탑승장 2층에는 프로방스 베이커리 전망대 카페가 1층에는 편의점이 있다. 편의점 그늘막 아래 탁자에서 간단하게 점심식사를 한다.
투어버스는 반드시 정해진 좌석번호에 앉아야 한다. 중간에 헌병이 버스에 올라와 신분증 검사를 한다.
투어 버스가 출발하기 전 버스 기사가 안내를 한다. 버스가 이동할 때는 사진촬영을 할 수 없고, 북한의 오물 풍선 사건으로 도라 전망대는 관람할 수 없어 땅굴 투어 소요시간은 약 2시간 30분 정도 소요.
버스는 통일대교를 건너 DMZ로 향한다.
전쟁이 낳은 DMZ는 인간에게 비극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자연에는 70년 동안 인간의 손이 닿지 않은 낙원이 되었다.
통일대교는 1998년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의 ‘소떼 방북’이 이루어졌던 역사적인 장소이다.
방북 하루 전날 개통된 이 통일대교를 지나 소를 몰고 방북한 정주영 회장은 분단 이후 판문점을 통과해 북한 땅을 밟은 첫 번째 민간인이 되었다.
투어버스를 타고 통일대교를 달리는 기분이 색다르다. 헌병의 삼엄한 신분 확인을 거쳐 통문을 넘어 진짜 비무장지대로 들어간다. 남방한계선을 알리는 파란 선이 바닥에 그어 있다. 이제 진짜 비무장지대에 들어온 것이다.
2km만 지나면 군사분계선, 또 거기서 다시 2km를 가면 북한 땅이다. 통문으로 민통선 안으로 들어서자 철조망 밖으로 드넓은 논밭에 벼가 익어간다. 군에 허가를 받은 주민들이 농사를 진다. 일몰 후에는 이곳에 아무도 못 들어간다.
남북 출입사무소가 보이고 그 옆으로 쭉 뻗은 도로는 개성공단을 오가던 길이란다.
해외에 나갈 때 출국, 들어올 때 입국이라고 표현한다. 이곳에서는 출경·입경이라고 한다. 남북 간 관계는 국가 간 관계가 아니라 민족 내부 간 특수관계로 경계를 넘어선다고 해서 출경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곳의 명칭도 남북출입국사무소가 아닌 나라 국(國)자가 빠진 남북출입사무소다.
뉴스에서만 보던 것들이 실제 눈앞에 펼쳐지니 신기하다.
임진각을 출발하여 약 25분 후에 제3땅굴에 도착한다. 이곳은 민간이 통제구역이기 때문에 출입이 제한되지만, 파주 DMZ 평화투어로 관람할 수 있다.
가방과 휴대폰, 모자를 사물함에 보관하고 안전모를 착용하고 땅굴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사진 촬영 금지.
제3땅굴은 북한 귀순자의 땅굴 공사 첩보를 근거로 1978년 10월 17일 비무장지대 안에서 발견되었다. 군사분계선의 서쪽 1.2km지점으로 추정되는 북한 지역에서 지하 평균 73m의 암석층을 굴착하여 1.6km가량 남쪽으로 내려와 있다.
폭 2m, 높이 2m의 아치형 구조로 1시간당 3만 명의 병력 이동이 가능한 규모로 서울까지는 불과 52km 거리에 있었기 때문에 규모 면에서는 다른 땅굴과 비슷하나 서울로 침투하는 데 있어서는 훨씬 위협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땅굴의 총길이는 1,635m이나 관광객 안전상 265m만 공개하고 있으며 북한 쪽 방향에는 3개의 콘크리트 차단벽을 설치하여 북한으로부터의 침입을 완전히 차단하고 있다.
버스는 도라전망대 대신 통일촌을 한바퀴 돈다.
통일촌은 1973년 당시 제대 장병 40가구와 실향민·원주민 40가구 등 총 84가구 348명이 입주해 형성된 마을이다.
외부인의 드나듦이 자유롭지 않고 남북관계가 긴장 국면에 들어갈 때면 "지금 무사하냐"는 안부 전화가 쏟아지는 곳이다.
통일촌은 집에 대문을 만들 수 없고 집집마다 태극기를 걸오 두어야 하며, 도둑이 없다고 한다.
50여년의 세월을 거치면서 통일촌은 민통선 이북에 고립된 마을에서 이제는 DMZ 안보관광지로 연중 내외국인 관광객으로 북적이고 있다. 부동산, 교회, 식당 등이 보인다.
농산물 직판장에서 잠시 쉬어간다.
버스에서 줄지어 내린 이들은 통일촌의 특산품인 장단콩 아이스크림과 장단콩 팥소빵 등을 사 먹거나 마을에서 재배한 각종 농산물을 구입한다.
시그니처 메뉴인 장단콩 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해 줄을 선다. 미숫가루 맛이다.
임진강을 건너오면 통일대교 끝부분에 정주영 회장의 소 한마리가 동상으로 서서 그날을 기념하고 있다.
이름도 없이 빛도 없이 스러져간 수백만의 영혼 위에 세워진 우리의 자유는 당연한 게 아니었다. 자유와 평화의 소중함을 깨닫고 나니, 일상에서 누리는 모든 것들이 새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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