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모닝콜에 잠을 깬다. 여정의 피곤함때문이지 긴장이 풀려서인지 숙면을 취할 수 있었다. 커튼을 젖히자 마닐라만이 한 눈에 들어온다. 루손섬 남서부에 있는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는 세계에서 가장 좋은 항만으로 일컬어지는 마닐라만(灣)에 접한 항구도시다.
수영장 옆 스포츠센터의 밀(런닝머신)에 올라 40분 정도 달리고 객실로 돌아와 샤워를 한 다음 가족들과 조식당으로 향한다. 조식당 ILANG ILANG은 매우 만족스럽다. 필리핀 음식부터 다양한 양식까지 수십 가지 메뉴가 제공되고, 특히 한국 손님들의 입맛에 맞는 한식 코너도 있다. 작은 베이커리를 능가하는 다양한 빵들이 제공되어 골라먹는 재미가 쏠쏠하고, 여러가지 과일이 디저트로 제공된다.
아침 식사를 마칠 즈음 갑자기 폭우가 쏟아진다. 필리핀은 우기다. 하루에도 여러 번 스콜(국지성 강우)과 같은 게릴라성 비가 왔다가 그친다.
필리핀은 1년 내내 한국의 여름 날씨에 해당한다. 계절이 우리나라처럼 명확하게 나뉘지는 않지만, 계절풍의 영향에 따라 건기와 우기로 나뉜다. 3월부터 5월까지는 1년 중 가장 덥고 건조하며, 6월에서 10월까지는 비가 많이 내리는 우기이며, 10월부터 2월은 대체적으로 건조하나 약간의 비와 함께 그리 덥지 않으면서 맑고 시원한 날씨이다.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는 필리핀의 겨울에 해당하는 12월에서 2월사이이다. 이 시기는 우리나라의 초가을 날씨이며 약간의 비가 내릴 수도 있지만, 아마도 찌는 듯 한 더위 속에서 여행하는 것보다 훨씬 수월할 것이다.
마닐라호텔은 총 500개의 객실을 보유하고 있고 인근에 리잘공원, 인트라무스 등의 관광지가 있어 도보로 관광할 수 있다.
△마닐라호텔은 필리핀 우표에도 소개되었다.
8시. 체크아웃 후에 마닐라 시티 투어에 나선다.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는 행정의 중심인 동시에 산업, 문화의 중심지이다. 정확한 명칭은 메트로폴리탄 마닐라 (Metropolitan Manila), 간단히 줄여서 메트로 마닐라라 부른다. 물론 명칭에 걸맞게 마닐라는 총 17개의 도시와 마을이 포함되어 있으며 인구 역시 일천만이 넘는 거대 도시다.
마닐라는 스페인 시대부터 필리핀의 중심지였다. 지금도 스페인 통치 시대의 사원이나 건물이 남아 있다. 명칭의 유래는 마닐라의 중심을 동서로 흐르는 파시그 강(PASIG RIVER)에 망글로브 나무의 한 종류인 닐라드(nilad)가 많이 있다는 뜻의 마이닐라(Maynilad)가 '마닐라'로 되었다고 한다.
언어는 필리핀어(타갈로그)이고 111개의 방언이 있지만 오랜 기간에 걸친 식민지 지배 영향으로 교과서 및 주요 방송에서는 공용어인 영어를 주로 사용하며, 중국어, 스페인어 등도 널리 사용되고 있다.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리잘공원(Rizal Park)이다. 리잘공원은 아직도 많은 마닐라 시민들에게는 루네따공원(Luneta Park)으로 불려진다. 이 말은 옛날 스페인 식민시대때 인트라무로스에는 7개의 성문이 있었는데, 그중 Puerto Real성문을 방어하기 위해서 초생달 모양의 보루를 쌓은데서 유래한다. 곧 스페인어로 초생달을 의미하는 말이기도 하다.
필리핀의 국민적 영웅 호세 리잘(Jose Rizal)을 기리는 공원으로 마닐라만 근교 로하스 거리에 있다. 호세 리잘은 필리핀의 해방에 대한 열망으로 필리핀 민족동맹을 결성하여 스페인 식민통치를 비판하였다. 그는 스페인의 압제하에 필리핀의 노예 상태에 통분, 저서를 통하여 민족의 해방 기운을 촉진시켰다.
1892년 필리핀 독립 운동의 지도 기관인 필리핀 연맹을 결성하여 독립 운동을 지휘하던 중 그의 활동을 주목한 스페인 총독부에 의해 체포되어 민다나오 섬 다피탄으로 유배되었고, 무장 투쟁론자들의 배후로 몰리게 되었다.
그 뒤 인트라무로스(Intramuros)내에 있는 산티아고 요새(Fort Santiago) 감옥으로 이감되어 수감생활을 하던 중 1896년 필리핀 혁명의 배후 조종자로 지목되어 마닐라 시내(현재의 리살 공원지)에서 공개 총살형을 당하였다. 그의 죽음은 필리핀인들에게 독립 의지를 불사르는 계기가 되었고, 호세 리살은 필리핀 독립의 아버지로 추앙되었다.
로하스 볼리바드 대로에서 볼 때 오른쪽에 위치한 리잘 기념비의 앞쪽에는 높이 31m의 국기게양대가 서있다. 24시간 필리핀 국기가 펄럭이는 이 국기 게양대는 마닐라에서 루손섬 각지로의 거리를 산정할 때 기준점이 되는 자리이기도 하다. 필리핀 국기에 노란 별 3개는 루손, 비
자야스, 민다나오를 표현하며 필피핀 섬(국토)전체를 의미한다고 한다. 평상시에는 평등을 상징하는 파란색 부분이 위쪽, 열정을 상징하는 붉은색 부분이 아래쪽으로 게양되지만 국가 위기시에는 국기가 거꾸로 게양된다고 한다.
리잘공원 옆에 있는 해양공원 스타디움은 잇단 막말로 '필리핀의 트럼프'라고 불리는 로드리고 두테르테(71) 필리핀 대통령이 16대 대통령에 취임하면서 대국민 선서하던 장소였다고 한다.
필리핀 인구의 약 80%는 스페인 통치의 영향을 받은 가톨릭 신자들이다. 약 15%는 회교도들이며, 이들은 주로 남쪽 민다나오에 살고 있다. 나머지 필리핀인들은 다른 소수의 기독교인들과 불교신도들이다.
인트라무노스(성벽도시) 내 로마광장에 있는 바로크 양식의 마닐라 대성당(Manila Cathedral)은 스페인 식민지배시대인 1581년에 처음 건축되었으며 이후 여러 차례 재건되었다. 필리핀 카톨릭의 총본산이다. 섬세한 돌 조각, 스테인글라스 모자이크가 잘 어우러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파괴되었으나, 그 후 재건 되었고 태풍, 화재, 지진 등으로 인해 7번 붕괴와 재건축을 반복한 비운의 성당이다. 넓은 공간의 내부는 매우 엄숙하고 고요한 분위기를 풍기며, 뒤 편에 커다란 파이프 오르간을 보유하고 있다.
△제단 중앙에 성모마리아상이 보인다.
△피에타상
△베드로(피터) 동상
△파이프오르간
"성벽도시(Walled City)"로 불리는 인트라무로스(Intramuros)는 마닐라 중심부를 흐르는 파시그강(Pasig River)의 남쪽제방을 따라 16세기 말 스페인 정복자들이 세웠다. 성벽 길이는 약 4.5km, 내부 면적은 약 19만4천 평으로 외부의 공격으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거주지, 교회, 학교, 정부청사가 있었고 외부인의 출입을 철저히 통제하여 1898년 미국에 점령당할 때까지 번성하였다. 그 후 2차 대전이 발발하자 일본의 점령 하에 놓이게 되고 1945년 필사적으로 대항하던 일본군에 대한 미국의 포격으로 많은 부분이 파괴되어 방치하다가 1979년 복구가 결정되었다.
비도 오고 시간도 절약할 겸 칼레사 마차투어를 하기로 한다. 마부가 짧은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가면서 유머스럽게 설명해 준다.
마닐라에서 스페인과 유럽을 만나다. 마닐라의 맛집과 멋집으로 꼽히는 "바바라스"는 스페인 지배당시 스페인 사람들이 살던 곳이라 바닥도 벽돌이고 건축양식도 유럽과 스페인풍이다.
△마닐라 맛집으로 유명한 스페인식 뷔페 식당 바바라스 - 공연도 관람할 수 있다.
△역대 필리핀 대통령들의 모습
△예전 대통령 궁
시티투어를 마치고 팔라완으로 가기 위해 국내선 전용 터미널인 터미널4(올드 도메스틱 터미널)로 이동한다. 비가 계속 내린다. 공항 근처 슈퍼마켓에 들려 신미구엘 캔맥주와 땅콩, 과자, 빵 등 공항 대합실에서 먹을 간식을 준비한다.
검색대를 통과하여 대합실로 들어서자 고속버스터미널처럼 작은 대합실에는 승객들이 만원이다. 11시 45분 발권을 하고 수화물을 부치고 탑승 대기실로 들어간다. 환전소, 면세점 따위는 없다. 간단한 음식 파는 스넥코너와 작은 기념품 가게 등은 있다. 이제 부터는 지루한 기다림과의 전쟁이다. 필리핀 국내선은 보통 2시간 지연은 기본이다. 지금처럼 우기는 지연시간이 길어진다. 흰색 플라스틱 의자에 여행객들이 활주로 쪽을 향해 앉아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지연시간이 3시간이 넘어서면 물과 도시락을 배급한다.
승무원도 기다리기는 마찬가지다.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30분 동안 맹인들이 하는 등과 허리 안마를 받았다. 1인 30분 200페소. 침대에 엎드려 편안한 시간을 보냈고 피곤함도 덜었다.
대합실 스낵코너에서 파파존스 피자 1판(420페소)과 커피(빅사이즈 135페소)를 주문하여 점심을 대신한다.
오후 1시 15분 출발 예정인 푸에르토 프린세사행 에어아시아는 약 3시간 지연된 4시 20분이 돼서야 보딩이 시작된다.
탑승을 완료하고도 40분 정도 지나서 오후 5시에 이륙한다. 기다리다 지친 승객들은 쪽잠을 이룬다.
필리핀 저가 항공은 기내식을 아무것도 제공하지 않고 승무원이 카트를 밀고 다니며 커피와 컵라면, 스낵, 생수 등의 기내식을 판다. 가격은 비싸다. 한 시간쯤 날자 비행고도가 낮아지기 시작했다. 하강은 빠르고 급작스러웠다.
오후 6시. 너무 지연되어 기장이 속도를 높였는지 예정 비행시간 보다 조금 빠르게 팔라완 푸에르토 프린세사 공항에 안착한다.
팔라완의 주도인 푸에르토 프린세사(Puerto Princesa)의 이름은 섬 발견 당시 태어난 스페인 공주의 이름을 따서 붙인 것이는 이야기가 있다.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서 약 586km 떨어진 최서단에 위치한 외딴 섬 팔라완은 필리핀 국경을 이루고 있는 매혹적인 섬이다.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토박이들만 살고 있을 뿐 외지인들의 왕래가 거의 없던 필리핀에서 오지 중에 오지였단다.
팔라완은 'The Last Ecological Frontier in the Philippines(필리핀의 마지막 개척지)'라 일컬어지는 곳이다. 그만큼 덜 오염됐다는 말이다. 필리핀의 서쪽 끝 지역이다. 넓이 50km, 길이는 450km의 길고 좁은 섬 지역. 본섬의 지형이 접힌 우산 모양이다. 'Palawan'의 뜻과 어원을 설명하는 몇 가지 가설이 있다. 스페인어의 'Paragua'에서 왔다는 게 가장 일반적인 가설이다. 그 뜻이 '접힌 우산'이다.
살아 있는 생태계의 자연 환경과 비경이 알려지면서, 관광객이 몰려오기 시작한 지도 고작 5, 6년쯤 됐다고. 2014년 <론니 플래닛>에서 뽑은 '꼭 가봐야 할 세계 여행지 10곳'에 팔라완이 포함되기도 했다.
팔라완이 오랫동안 오지로 남았던 가장 큰 이유는 '말라리아' 때문이었다. 팔라완은 말라리아 위험 지역이다. 그러니 말라리아 예방 백신이 발견되기 전에는, 목숨을 걸어야만 올 수 있는 곳이었다. 그 때문인지 팔라완엔 4개의 교도소가 있고, 식민지 시절 정치범들의 유배지였다.
짐을 찾고 공항을 빠져나와 기다리던 가이드와 조우한다. 결혼 30주년을 축하하는 커다란 케이크를 준비하여 선물한다. 세명대학교 호텔 관광학과 4학년 최재선 학생인데 6개월 동안 인턴사원으로 실습하고 있다고 한다. 과일가게에 들려 람부탄과 망고스틴을 사고 약국에 들려 바르는 모기약을 샀다. 이곳은 마닐라보다 과일값이 비싸다. 밴을 타고 숙소인 쉐리단리조트로 향한다. 한계령을 연상시키는 길이다. 도로는 다행히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는데 작년에 한국 GS건설에서 무상으로 공사했다고 한다.
어두운 밤길을 약 2시간 정도 달려 쉐리단리조트에 도착한다. 야경이 멋지다. 방에 여행가방만 던져넣고 곧바로 식당으로 향한다.
식당에서는 손님들을 위해 노래 공연이 한창 진행중이다. 식사를 끝내자 너무 지친 여정에 피곤함이 밀려온다. 샤워 후에 곧바로 침대에 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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