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 2013년 3월 10일(일)
대부분의 현대인들은 회색 도시에 갇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반복되는 인생을 피곤하게 살아간다. 누구나 마음 한 곳에는 무거운 현실의 짐들을 모두 내려놓고, 잠시나마 벌거벗은 ‘자연인’으로 돌아가고픈 소망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욕심을 훌훌 벗고 순수 자연인으로 변화시켜주는 깨달음의 길이 있다. 지리산 둘레길이 그곳이다. 전라도와 경상도가 사이좋게 품고 있는 민족의 명산으로, 그 이름만으로도 편안한 삶의 여유를 느끼게 만드는 매력을 지니고 있다. 하지만 잠시 주어진 시간으로 지리산을 모두 알려고 하는 것 또한 인간의 욕심일 것이다. 그러나 지리산에는 수많은 둘레길들이 만들어져 있어 잠시만 짬을 내면 영산의 기운을 충분히 느낄 수 있고 자연을 벗삼은 삶의 여유도 즐길 수 있다.
둘레길은 시작과 끝을 구분하지 않기에 '종주'나 '완주'의 개념이 없다. 길은 끝나지 않기에 오늘 선 자리가 언제나 시작점이다. 지리산 둘레길은 제3구간과 4구간이 가장 먼저 연결됐다.
전북 남원 인월면에서 경남 함양 금계마을을 잇는 3구간은 전북 남원시 인월면과 함양군 마천면 금계마을을 잇는 19.8㎞ 구간이다. 이 길은 정상인 등구재를 중심으로 지리산 주능선을 조망하고 넓게 펼쳐진 산촌마을을 지나가는 길이다. 일반적으로 7~8시간이 걸린다.
애초부터 전라도와 경상도는 옆 동네라 지역감정이 뭔지도 모르고 정다운 이웃으로 오갔고, 그 정겨운 옛길, 추억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는 그 길이 지금의 ‘둘레길’이다. 전라도 산내 색시가 경상도 마천 총각에게 시집을 왔던 길이기도 하고 산내면을 지나 인월 5일장으로 새벽밥 먹고 넘나들던 길이기도 하다.
여행의 시작지인 인월은 예부터 영호남을 잇는 교통의 중심지 역할을 해 왔다. 인월 지리산 둘레길 안내센터에서 월평마을 앞 강변길로 접어들면 황금빛으로 물든 논이 눈앞에 펼쳐진다. 저 멀리 보이는 천왕봉 자락을 향해 나가다 보면 어느새 중군마을에 들어서게 된다. 전투시에 전군(前軍), 중군(中軍), 후군(後軍)이 있듯이 임진왜란 때 중군이 이곳 마을에 주둔한 연유로 붙여진 이름이다.
중군마을에서 둘레길은 2개 코스로 나뉜다. 하나는 임도를 따라 삼신암과 수성대로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산길을 따라 황매암을 거쳐 수성대로 가는 길이다. 보통 뒤 코스를 많이 택한다. 농로를 따라 언덕길을 오르다 보면 황매암이라는 작은 암자가 나온다. 그 앞의 숲길을 걸어 올라가면 수성대가 나오는데 수성대 계곡물은 중군마을과 장항마을 식수원으로 사용될 만큼 맑고 깨끗하다.
수성대의 맑은 물을 뒤로하고 다시 고갯길에 오르면 배너미재를 만나게 된다. 운봉이 호수일 때 배가 넘나들었다고 해서 '배너미재'라는 이름을 얻었다. 배너미재의 내리막을 따라 내려가면 장항마을 입구 소나무가 여행자를 반겨준다.
이 코스는 제방길, 농로, 차도, 임도, 숲길 등이 전 구간에 골고루 섞여 있어 걷는 재미가 있다. 특히 3구간은 지리산 서북쪽 능선을 조망할 수 있어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데다 경사도가 완만하고 노면이 잘 정비되어 있어 어린아이들을 동반한 가족 나들이에도 무리가 없다.
인월에서 시작한 길은 중군마을을 지나 다시는 마을이 나올 것 같지 않은 산길만 걷다가 눈앞에 거대한 산맥과 마주하는 산내면 장항 마을에 접어든다.
장항마을의 당산 소나무는 수령이 400년으로 높이가 18m, 둘레가 28m로 나무 가지들이 아래로 뻗어 있고, 지리산 천왕봉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자태를 드리우고 있다. 특히, 소나무 아래에는 지나가는 길손들이 돌탑에 돌을 얹어 안녕을 빌고 소원을 기원한 돌탑이 정갈하게 쌓여있다. 편안한 듯 신성한 느낌을 줘 탐방객들의 중간 쉼터로 그만이다.
마을에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장항마을은 지금으로부터 약 4백년전 장성이씨가 처음 이주해 오면서 마을을 이루었다고 한다. 산세가 노루의 목과 같다고 하여 노루 장(獐)자와 목 항(項)자를 합하여 장항이라 하였으며, 지금도 노루목이라고 부른다.
▲ 수령이 400년으로 높이가 18m, 둘레가 28m 인 장항 당산소나무
장항마을에서 시멘트길을 따라가다 보면 매화꽃을 닮은 명당이라는 뜻을 지닌 매동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고려 말부터 조선 중기에 걸쳐 네 개의 성씨(서 김 박 오) 일가들이 들어와 이룬 씨족마을이다. 각 문중 소유의 제각과 울창한 송림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어 뛰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장항 마을에서 등구재를 오르기 전에 숨 한번 돌리고 쉬었다 가기 안성맞춤인 곳에 '히말라야' 카페가 자리 잡고 있다. 지리산 둘레길 3구간 중간쯤에 자리한 '히말라야'는 지리산 둘레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소박한 쉼터 역할을 하기 위해 지리산에 자리 잡은 지 10년째 되는 손성진, 지숙현씨 부부가 마련한 카페다.
지리산 둘레길 제3구간은 숲길은 물론 제방과 농로 등이 적절히 놓여 있다. 또 산골마을과 계곡을 지나니 생명의 속삭임을 듣는 데 제격이다.
전북 상황마을과 경남 창원마을 사이를 잇는 등구재( 해발 700m)를 넘을 때는 약간 숨이 가쁘다. 등구재를 오르는 길목에 시골 아낙이 구절초 막걸리와 식혜를 권한다.
등구재에 오르면 바로 경상남도 함양군 마천면이다.
'거북등 타고 넘던 고갯길, 서쪽 지리산 만복대에 노을이 깔릴 때, 동쪽 법화산 마루엔 달이 떠올라 노을과 달빛이 어우러지는 고갯길. 경남 창원마을과 전북 상황마을의 경계가 되고, 인월장 보러 가던 길, 새색시가 꽃가마 타고 넘던 길'
등구재 안내판에 쓰인 글이다. 오랜 세월 사람들의 이야기와 삶이 전해지던 등구재는 여전히 수많은 사람들의 삶과 여행의 현장이 되어주고 있다. 옛적 숱한 사람들이 갖가지 기구한 사연을 안고 넘었을 등구재를 지금의 사람들은 수많은 이야기를 품고 넘고 있다.
함양 창원마을을 향하는 길은 빽빽이 들어선 삼나무와 소나무 덕에 한층 더 상쾌하게 느껴진다. 3구간에서 산골마을 풍경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 창원마을이다. 조선시대 마천골 일대에서 새로 거둔 물품을 보관한 창고가 있었던 마을이라 해 '창말'이라고도 하고, '창촌' 이라고도 불렸던 이 마을에는 고풍스런 돌담이 고스란히 남아있으며 계단식 다랭이 논을 보고 있노라면 인간의 의지가 얼마나 대단한지를 알 수 있게 해 준다.
창원마을에서 금계마을까지는 지리산 둘레길에서도 아름답기로 손꼽히는 구간이다.호두나무와 감나무가 늘어선 마을을 지나 마지막 코스인 금계마을로 가기 위해 산을 올라야 하지만 지난번과 달리 이번에는 도로를 걷는 길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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