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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산행일지

[스크랩] 산호빛 해변을 간직한 비진도(比珍島)


2011년 3월1일 오전 8시48분
전날 밤부터 봄 비가 촉촉히 내리는 중에 대전을 출발해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를 달리던 차량이 덕유산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해발 500m를 넘는 이곳에는 비가 눈으로 바뀌어 내린다.
아직은 이른 봄철이라 새순이 돋아나지 않은 황량한 풍경뿐인 산자락에
흰 눈이 쌓이며 한 폭의 동양화를 그려 낸다.




오전 10시53분
경남 통영시 서호항에 정박해 있는 비진도행 여객선에 몸을 싣는다.
다행히 비가 그쳐 비진도에서의 산행 및 관광에는 지장이 없을듯하다.

정원 100여명 정도인 저 작은 배는 대략 40여분 후면 비진도에 도착할 것이다.
종착지인 매물도와 소매물도까지는 그 후에도 40여분을 더 달려야할게다.




오전 11시6분
조선시대 "삼도수군통제사(三道水軍統制使)"의 군영(軍營)있었던 이유로
통영(統營)이라는 이름을 얻은 동양의 나폴리 통영항을 떠난 작은 배는
우측 미륵도와 좌측 한산도 사이의 좁은 해협을 따라 남으로 향한다.

고(故) 노산 이은상 시인은 통영의 앞바다를
“결결이 일어나는 파도/파도 소리만 들리는 여기/
귀로 듣다 못해 앞가슴 열어젖히고/부딪혀 보는 바다”라고 읊은 적이 있다.




오전 11시32분
조금은 거칠은 바다를 30여분간 내달려온 여객선이 통영에서 13km떨어진
경남 통영시 한산면 비진도의 내항마을 선착장을 향해 방향을 바꾸며
속도를 서서히 줄여 간다.
궂은 날씨임에도 작은 섬을 찾는 산행객과 관광객을 환영하듯
갈매기 몇 마리가 여객선 주위를 선회한다.




북쪽의 내항마을과 남쪽의 외항마을이 길이 500여m에 불과한 비진해수욕장으로 연결되어
마치 운동기구 중 하나인 '아령'처럼 생긴 비진도의 자그마한 외항마을에
불과 몇몇의 승객만을 내려 놓은 여객선은 재빨리 나의 목적지인
외항마을 선착장을 향해 방향을 돌린다.

아침까지 내렸던 비가 그친 후 야트막한 산자락에 옅은 안개가 피어 오른다.




오전 11시53분
외항마을 선착장에서 대전에서부터 버스편으로 동행한 일행들과 함께
산행을 시작한다. 전날 밤부터 비가 내리면서 쌀쌀해진 날씨 때문인지
우리 일행들 외의 산행객들은 전혀 눈에 띄지 않는 조용한 산행길이다.
외항마을 서쪽 해안선을 따라 남으로 이어지는 산행로를 향해
마을 입구의 포장도로를 따라 걸음을 옮긴다.




낮 12시1분
포장도로가 끝나면서 바로 동백나무 군락지가 이어진다.
수년 째 매년 이맘때면 방문했던 거제도 앞바다의 동백섬 지심도에 비해
이곳 비진도의 동백꽃은 개화 시기가 조금 늦은 품종인듯
잎사귀 사이사이 아직 피지 않은 꽃봉오리가 유난히 많이 눈에 띈다.




어두운 동백나무 군락지를 따라 걷는 길.
우측으로 드문드문 시야가 트이는 곳으로는
이처럼 멋진 코발트 빛 바다 풍경이 펼쳐지는 곳이다.




눈이 부시도록 짙푸른 바다 색깔에서도
이곳이 한려해상국립공원이 시작되는 곳임을 알 수 있다.
행정구역상 통영시 한산면인 이 부근에서부터
전남 여수시 돌산도 부근까지의 맑고 깨끗한 바다를
한려해상국립공원이라 칭한다.




낮 12시23분
이곳 비진도의 유일한 사찰인 비진암에서 잠시 걸음을 멈춘다.
10년 전인 지난 2001년 "꽃담(푸른 섬 비진도의 작은 스님 이야기)"이라는
책을 펴 낸 '해담'스님이 이곳에서 수행을 했었다는데..
인적은 없고 이끼 낀 돌과 암자 주위를 감싸 안은 동백나무만이
시야를 가득 채운다.




암자의 좁은 뜰로 향하는 돌로 뒤덮인 길에는
붉은 선혈 빛을 띈 동백꽃이 바닥을 뒤덮고 있다.

동백꽃이 질때는 꽃봉오리째 뚝뚝 떨어진다.
낙화(落花)가 아닌 절화(切花)이다.
그래서 애절한 마음을 동백꽃에 비유한 시와 노래가 많다.
또한 동백이 떨어지는 모습이 사람의 머리가 뚝 떨어지는 것과 같다하여
불전에 바치거나 병문안 때 가지고 가지 않는다.




암자 앞 좁은 뜰에서는 북서쪽으로 조망이 트인다.
동백나무 아래로 보이는 바다 가까이에 오곡도가 작은 몸을 옆으로 누이고 있고
그 뒤 멀리 연대도,학림도의 윤곽이 보인다.




동백꽃 붉게 핀 나뭇가지 사이로
파도치는 바다쪽으로 길게 뻗어나간 암초.
그 위에서 낚시를 즐기는 낚시꾼이 어찌 보면 위태로워 보이기조차 한다.




낮 12시34분
비진암을 벗어나 '슾픈치'라는 이름이 붙은 아름드리 자생 잣밤나무 군락지를 지나
비교적 평탄하고 밝은 해안가로 나선다.
예전 샛파람이 불면 고개를 넘어 갈수없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치(峙)" 라는 한자어는 '언덕,고개'의 뜻이다.
예전 순 우리말로는 "티"였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티'를 한자로 표기할 수가 없어 그네들이
마음대로 고쳐 쓰게된 연유로 "치(峙)"로 바뀌었다 한다.
우리나라 곳곳의 고개 이름에 붙은 '티'의 이름을 되찾아 주었으면 싶다.
더구나 오늘이 삼일절일진대...




낮 12시38분
시원한 해풍이 산길을 오르느라 흘린 땀을 씻어주는 멋진 곳이다.
우리나라 남,서해안의 작은 섬을 산행지로 택했을 때만
경험할 수 있는 절경이다.




남쪽 바다로 눈을 돌리면 또 다른 절경이 펼쳐진다.
앞에 보인 절경에는 '노루강정(노란강정)'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

"강정"이란 파도와 풍화작용으로 해안가의 암반이 오랫동안 침식되어
파인 동굴모양의 것들을 일컬음이다.




낮12시49분
노루강정 부근을 지나면서 무척 가파른 오르막길이 이어진다.
좁은 길 우측은 이처럼 깎아지른듯한 절벽이다.
눈앞에 연이어 펼쳐지는 비경을 감상하며 오르는
급경사 오르막에서 숨이 턱에까지 차 오른다.




오후 1시17분
해수면에서 불과 몇십미터 지점에서 해발고도 300m에 가까운 지점까지
오르는 급경사가 끝나고 능선 길에 올라선 후
갑자기 주위가 밝아진다.
비교적 세차게 부는 바람이 서쪽 하늘에서부터 구름을 쓸어가기 시작한다.
삼일절을 맞은 오늘 처음으로 밝은 햇빛과
파란 하늘을 접한다.
주위 일행들의 얼굴들이 마치 약속이나한듯
환하게 미소 띈 표정으로 변한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진다.




오후 1시38분
따스한 햇빛을 받으며 이처럼 멋진 조망이 있는 공터에
삼삼오오 둘러 앉아 준비해온 도시락으로 늦은 점심과 휴식을 취한다.
처음으로 섬산행을 온 이들은 맑은 공기와
멋진 조망에 경탄을 금치 못한다.




오후 1시55분
이곳 비진도의 최고봉인 선유대에 올라 남동쪽으로 눈을 돌린다.
수년 째 매년 한 두번씩 다녀오는 곳인
군산 앞바다의 선유도와 더불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매물도가 눈에 들어온다.

자그마한 소매물도 좌측의 길다란 섬이 매물도이며
소매물도 우측에 보일듯 말듯 희미한 작은 섬이 동화속에나 나올듯 아름다운 등대섬이다.




남서쪽 방향으로는 해안선 부근에 짙게 드리운 구름이 조망을 방해한다.
지난 2009년에 다녀온바 있는 연화도가 어렴풋이 보이고
그 너머로 연화도보다 훨씬 큰 섬인 욕지도가 길게 드러누워 있다.
욕지도 산행시 맛 보았던 명품 고구가마 기억에 생생하다.




북서쪽으로는 시계가 훨씬 깨끗한 멋진 조망이 펼쳐진다.
오곡도와 그너머로 연대도,학림도 등이 뚜렷이 보인다.

미인도라고도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섬인 이곳 비진도는
산수가 수려하고 아름다울뿐 아니라 해산물 또한 풍부하여
"보배(珍)에 비(比)할만한 섬"이라하여 "비진도(比珍島)"라는
이름을 얻었다고하며
이순신 장군이 왜적과의 해전에서 승리한 보배로운 곳이라는 뜻에서 라고도 한다.




오후 2시10분
비진도의 최고봉임에도 번듯한 정상석 하나 없이
작은 나뭇가지에 조그만 팻말만 붙어 있는 선녀가 놀다갈 정도로 아름다운 곳이라는
선유대를 떠나 비진도해수욕장 방향인 북쪽을 향해 하산하는 길에서
흔들바위라는 이름이 붙은 멋진 바위 너머로도 남해 바다의 비경이 펼쳐진다.




오후 2시15분
은식기 두껑(은복죽)처럼생겼다해서 붙여진 이름인 은복죽바위 부근에서
북쪽으로 비진도 최고의 환상적인 풍경이 펼쳐진다.
이곳 외항마을과 해수욕장을 사이에 두고 나란리 붙은 내항마을 전경이다.




90여가구 400여명의 주민이 삶의 터전을 이루는 비진도의 인구
태반이 모여사는 내항마을 중심부의 모습이 가까이 다가온다.
좌측 서쪽 방향에는 고운 모래가 해수욕장을 이루고
우측 동쪽 방향에는 크고 작은 몽돌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
주변 바다물 색깔이 선명한 산호빛이다.




오후 2시51분
이처럼 키 작고 운치있는 대숲길을 지나
산행이 끝나고 외항마을 마을 어귀에 도착하며 3시간 남짓한
선유대를 거치는 산행을 마쳤다.
찌뿌듯하던 몸이 풀리고 눈이 무척 즐거웠던 산행이었다.




오후 2시56분
3시간만에 돌아온 외항마을 선착장은 너무나 조용하다.
비록 하늘은 구름으로 덮여 있지만 잔뜩 찌푸렸던 오전과 달리
상당히 밝아진 풍경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수일간 비교적 거세게 몰아치던 파도가
낮부터 좀 잠잠해지긴했지만 아직 그 여파가 남은듯
해변으로 밀려오는 파도는 남해안 작은섬의 파도치고는 좀 거칠다.
마치 동해안에 온듯한 착각을 일으킬 정도이다.
피부로 느끼는 바람 또한 오전보다 차갑게 느껴진다.
기상청의 일기예보대로 꽃샘추위가 시작되는 모양이다.




오후 3시11분
세찬 바닷바람이 추위를 느끼게하는 날씨이긴하지만
백사장 길이 500~600m남짓한 이곳 비진해수욕장의 백사장을 따라
남쪽 끝에서 북쪽 끝까지 천천히 거닐어본다.
올 여름에도 이곳에서 수많은 젊음들이 정열을 불태우리라 생각하니
지나간 나의 젊은 시절이 새삼 그리워진다.




해수욕장 뒷편 내항마을 한 가운데 자리잡은
소나무공원은 아늑한 풍경이다.
여름철 해수욕객들이 뜨거운 태양을 피해
이곳에서 더위를 식히기에 적당한 장소일듯하다.




해수욕장으로 이용되는 백사장 반대편인 동쪽 해안은
크고 작은 몽돌로 이루어져 있다.
가까운 거제도 해변에 여러곳 있는 몽돌해수욕장의 몽돌처럼
작고 예쁜 돌만 있는 것은 아니지만
다양한 크기의 둥근 몽돌의 어울림도 깨끗한 바닷물과 잘 어울리는듯 하다.




바닷가 몽돌에는 쉴새없이 파도가 부딪치며
흰 포말을 이룬다.

수적천석(水滴穿石)이라 했던가?
저 흰 포말을 이루는 파도가 오랜 세월 끊임없이 밀려와
뾰족하고 날카롭던 돌을 저토록 둥글게 만들었다니...




오후 3시43분
발 밑에 느껴지는 모래를 밟으며 걷는 느낌이 마음에 들어
세찬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다시 한 번 모래사장을 천천히 걸어
남쪽 끝 외항마을로 되돌아 왔다.
너른 바다는 항상 사람의 마음을 푸근하게 해 준다.




바닷가 가까이에 텃밭을 가진 마을 할머니 한 분이
방금 밭에서 캐 온 시금치를 팔고 있다.
남쪽 섬마을에서 해풍을 맞으며 자란 시금치 맛의 뛰어남을 잘 알기에
냉큼 한 봉지를 샀다.

저녁에 집에 돌아와 아내에게 3천원에 산 것이라고 하니
시장에 나가 사려면 이보다 못한 품질의 시금치도 만원이 훨씬 넘을 것이라며
조금 사 온걸 아쉬워 한다.
내 속마음은 시세를 알았더라면 할머니에게 셈을 조금 더 해주었을걸 한다는
사실을 집안 살림을 꾸려가는 아내는 이해를 못하리라.




이곳 비진도의 북쪽인 내항마을과 남쪽인 외항마을은
오래 전 옛날에는 각각의 섬이었다고 한다.
오랜 시간이 지나며 서쪽에는 모래가 퇴적되고
파도가 비교적 센 동쪽 해안에는 자갈이 퇴적되어 연결됨으로써
하나의 섬이 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이곳 비진도 해수욕장은 아침 일출과 저녁 일몰을 한 곳에서
즐길 수 있는 멋진 곳으로 알려져 있다.




오후 4시48분
통영항으로 돌아가는 4시40분발 여객선이
오전에 도착했던 비진도 와항 선착장을 떠난다.
기회가 된다면 금년 여름에 다시 찾아와
며칠 머물고 싶은 깨끗하고 아담한 곳이다.




서쪽 하늘에는 태양이 빠른 속도로 기울어 간다.
산호빛깔 혹은 코발트 빛깔의 짙푸른 바다위로 태양빛이 내리쪼이며
은빛 물결을 이룬다.




오후 5시15분
전체 해안선 길이가 9km에 불과한 작은 섬인 비진도가 점점 멀어진다.
선미 난간에서 과자 부스러기를 던져주는 젊은 커플 덕분에
수많은 갈매기떼가 여객선 뒤를 한참동안 졸졸 따라오며
구경거리를 제공한다.

육식 조류인 갈매기가 인간이 만든 인공식품에 입맛을 들이면
야성을 잃어버리고 나약해지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잠시 해 본다.




오후 6시1분
통영항에 도착 후 잠시 시간을 내어 중앙시장에 들러
멍게,광어,숭어 등 싱싱한 해물로 장만한 생선회에
소주 한 잔을 곁들여 추위와 허기를 달랜다.

청정해역인 통영에서 맛보는 싱싱한 생선회의
그 맛은 아마 경험해본 이들의 입맛을 다시게 하고도 남으리라.




오후 6시40분
이제 해는 서쪽으로 완전히 자취를 감추고
통영항에도 어둠이 깃들기 시작한다.
매년 산행이나 여행을 다니며 십여차례씩 들리는
나에게는 무척 익숙한 통영항이지만
비릿한 바닷가의 갯내음이 언제나 친근감을 주는 곳이다.

그런 푸근한 마음으로 휴일 하루를 보낸
산호빛 해변을 간직한 비진도 산행 및 여행을 끝내고
행복한 마음으로 귀가 길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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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한밭산사랑산악회
글쓴이 : 온누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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