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 : 2010년 9월 12일(일)
산행코스 :덕주사 주차장-덕주사-마애불-송계사삼거리-영봉-송계사삼서리-동창교-덕주사주차장
가을 장맛비 치고는 빗줄기가 세차다. 오전에 비가 그치고 날이 갠다는 일기예보를 믿고 배낭을 챙겨 집을 나선다. 탑승지에서 산악회 버스에 오르자 비 때문에 예약을 취소한 사람들이 많아 좌석이 많이 빈다. 운영진들한테는 미안하지만 덕분에 두 좌석을 차지하고 편안하게 갈 수 있을 뿐 아니라 도시락도 2개를 받아 아침까지 해결한다.
19명의 회원을 태운 버스는 7시 25분 대전요금소로 진입하여 30분간 경부고속도로와 중부고속도로를 질주하고 아침식사를 위하여 오창휴게소에서 25분간 정차한다.
오창휴게소에서 5분 정도 진행하여 증평요금소를 빠져나가 510번 지방도로에서 좌회전하여 충주방면으로 향한다. 비는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는 듯 하다가 굵어졌다를 반복한다.
대전에서 2시간. 597번 지방도로를 타고 송계계곡으로 들어선다.
월악산 국립공원은 1984년 12월 31일에 17번째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행정구역상으로 충북 제천시, 충주시, 단양군과 경북 문경시 등 4개 시·군에 걸쳐 있으며 북으로 충주호반과 청풍호반이 월악산을 휘감고, 동으로 단양8경과 소백산국립공원, 남으로 문경새재와 속리산 국립공원과 같은 아름다운 자연경관으로 둘러싸여져 있다.
월악산은 신라의 마지막 태자 김일과 그의 누이 덕주공주가 망국의 한을 품고 은거한 산이다. 달이 뜨면 주봉인 영봉(靈峯)에 걸린 달 모양이 아름답다고「월악」이란 이름을 갖게 되었다고 한다.
비결잡록에는 "충주월악산하송계 불입병화보신산수"라고 하여 병화를 피해 숨어 살만한 곳으로 기록되어 있고, 그런 연유로 백제나 후백제가 이곳에 궁궐을 지으려 했는데 대신들의 반대로 무산되었다고 한다. 그래서 수도가 될 뻔했다가 "와락" 미끄러졌다고 해서 한때 와락산으로 불리다가 "와락"이 "월악"으로 변했다는 재미있는 유래도 있다.
덕주골 주차장에 도착한다. 버스에서 잠시 산행 준비를 마치는 사이 비가 그친다. 일명 '월악용아'라고 불리는 만수봉 암릉을 타는 일행들이 바삐 시야에서 사라지고 월악산 영봉을 타는 6명은 덕주골을 향해 여유로운 발걸음을 옮긴다.
수경대와 학소대에는 속살 드러낸 암반을 타고 우렁찬 소리를 내며 세찬 계류가 흘러내린다. 방금 전까지 비가 내려 수량이 엄청나다.
마애교를 건너 500m을 진행하자 영봉 5.4km 이정표가 보이고 "덕주루"라는 현액이 걸린 덕주산성 동문과 성벽이 눈에 들어온다.
덕주산성(德周山城)
덕주((德周)란 신라의 마지막 비운의 왕자 마의태자(麻衣太子)와 덕주공주(德周公主)와 연관된다. 신라가 망하고 덕주공주는 금강산 행을 포기하고 오빠와 떨어져 월악산에 머물면서 망국의 슬픔을 달랬다고 한다. 그래서 덕주사와 덕주골은 그때 덕주공주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다.
길 왼쪽에 덕주사가 자리하고 있다. 시간이 넉넉하여 바쁘게 진행할 이유가 없다. 길 왼쪽으로 계단으로 올라섰다가 덕주사 대웅보전을 보고 등을 돌리자 멋진 산수화가 펼쳐진다.
다른 쪽 계단으로 내려서면 약수가 있다. 갈증을 달래고 동양의 알프스라 불리는 월악산의 영봉(4.9km)으로 안내하는 커다란 돌표지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한다.
두 번째 나타나는 나무계단을 건너면 "월악산에는 산양이 살고 있어요"라는 안내문이 보이고 영봉 4.4km 이정표가 반긴다. 이곳부터는 완만한 오르막길이 시작된다.
덕주골을 떠난 지 35분. 성벽사이를 통과하고 오르막길은 계속된다. 10분을 더 오르면 해발 560m 영봉 3.4km 이정표가 보이고 나무계단을 지나면서 길은 점점 가팔라진다. 3분 정도 진행하면 왼쪽은 영봉으로 오른쪽은 마애불 가는 길로 갈라진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고 100m 정도 진행하면 덕주사 마애불이 반긴다.
보물 제406호 덕주사 마애불은 바위에 조각한 불상이다. 불상은 입상으로 얼굴은 두드러지게 새겼지만 전체는 얕게 새기었다. 전설에 의하면 통일신라 말기 마의태자의 누이 덕주공주가 망국의 한을 품고 이곳에 들어왔다가 자기의 형상을 마애불로 조성하였다고 전해지나 머리가 크고 비만하게 표현된 양식을 살펴볼 때 고려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예전에 없던 암자가 새로 생겼다.
갈림길로 되돌아 나와 왼쪽 자연경관로를 따라 가파를 산길을 치고 오르기를 30여분. 철난간이 오르막길을 돕는다. 힘겹게 올라서면 노송이 쉼터를 제공하고 주변과 어우러져 아름다운 풍광을 연출하는 곳인데 운무에 가려 답답하다. 잠시 휴식을 취한 후 한 번 더 가파른 오르막을 철난간의 도움을 받아 올라서면 능선에 닿는다. 나뭇잎에 맺혀있던 빗방울이 바람에 떨어지고, 사방은 농무 커튼이 속세와 차단시켜 신선의 세상을 걷는 듯하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능선을 따라 진행하면 곧바로 960봉에 닿는다. '탐방로 아님' 입간판 뒤로 만수봉 암릉길이 이어진다.
5분 정도 진행하면 해발 925m 영봉 1.9km 이정표가 나타나고, 10분 더 진행하면 해발 950m 송계삼거리에 닿는다. 왼쪽은 동창교(2.8km)로 내려가는 하산길이다.
이재민 수용소를 연상시키며 점심식사를 하는 다른 산악회원들이 왁자지껄하다.
영봉(1.5km)은 그대로 직진한다. 거대한 암봉이 코앞으로 다가선다. 5-6분 진행하면 "영봉 1.2km" 이정표가 보이고 암봉의 허리를 크게 감아 돌면 "영봉 0.8km 신륵사 2.8km 덕주사 4.2km" 이정표가 서 있다. 나무계단 왼쪽 바위 벼랑 끝에 운무 속에서 노송이 멋진 모습으로 눈길을 끈다.
해발 980m 지나 5분 정도 걸으면 해발 980m 갈림길이다. 직진하면 보덕암(3.7km)이고 영봉(0.3km)은 왼쪽으로 해발 1054m 이정표까지 가파른 철계단을 오른다.
신라 때는 월형산(月兄山)이라고 했고 지금은 한국의 마타호른(Materhorn)이라고도 하는 월악산의 영봉(1093m)이 보이기 시작한다. 빙하로 깎인 스위스의 삼각형 모양의 바위 정상의 산 마터호른(Materhorn, 4,477m)을 닮았다 해서 생긴 말이다. 옛날에는 월형산(月兄山)이라고 한 것을 보면 그 봉우리 모양이 둥그스름한 달[月)] 같이 생겼다 해서 달 ‘月(월)’ 큰 산 ‘岳(악)’ 月岳山(월악산)이라 한 것 같다. 그 영봉(靈峰) 좌측으로 보이는 호수가 육지의 바다라는 충주호이다.
산행을 시작한지 약 3시간 30분. 월악산 정상인 영봉에 올라선다. 송계8경 중 하나인 월악산 영봉은 월악산 주봉으로서 일명 국사봉이라고도 한다. 장대한 기암괴석이 장관(壯觀)을 이루어 남성적인 산이라 표현되고, 예로부터 신령스런 산으로 여겨져 "영봉" 이라고 불리어지고 있다. 해발 1,097m로 험준하며, 가파르기로 이름 나 있고 암벽 높이가 150m, 둘레가 4km나 되는 거대한 암반으로 형성되어 있다.
앙증맞은 정상 표지석이 서 있고, 사방은 짙은 운무에 가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맑은 날에는 치악산 남대봉까지 조망된다고 한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정상표지석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한다.
영봉 아래 공터에서 자리를 잡고 점심식사를 마치고 빠른 걸음으로 오던 길로 되돌아간다. 송계삼거리에 닿는다.
10분 정도 내려서면 동창교 2.4km 이정표가 보이고 이곳부터 매우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20분 정도 더 내려서면 동창교 1.2km 이정표 보이고 길은 완만한 내리막길로 바뀐다.
쉼터에 도착하자 운무가 걷히고 시야가 열리면서 월악의 멋진 풍광이 한 폭의 산수화를 그려내면서 눈을 즐겁게 한다.
계곡은 물론이고 등산로까지 물이 넘쳐흐른다.
5분을 더 내려서면 월악산 산신각이 보인다. 다시 10분을 더 내려서면 자광사에 도착한다. 새로 단장한 고즈넉한 모습의 절 집에서 스님 한 분에 미소 지으며 반갑게 인사한다.
아스팔트도로를 따라 100m 정도 내려서면 예전 동창교매표소에 닿는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20여분 걸어가서 덕주골 주차장에 닿으면서 산행은 끝이난다.
비개인 파란 하늘과 구름 사이로 비치는 햇살이 어우러져 약을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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