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 : 2010년 8월 17일(화)
산행코스 : 미륵리사지- 하늘재- 포암산 정상 - 북쪽 봉우리 - 백두대간 능선길 - 마골치삼거리- 헬기장 - 산죽밭 - 묏등바위(병풍바위) - 만수암릉 갈림길 - 만수봉정상 - 용암봉 - 만수계곡 - 만수교
복은 검소함에서 생기고, 덕은 겸양에서 생기며, 지혜는 고요히 생각하는 데서 생긴다는 말이 있다. 조용하고 맑은 공기 쐬면서 내 삶을 돌아하고, 마음의 쉼을 통해 앞으로 살아갈 자세를 다듬을 수 있어 일주일에 한 번씩 찾는 산은 내 삶의 휴식처다.
오늘 산행은 미륵리 주차장에서 시작하여 하늘재에서 포함산과 만수봉을 거쳐 만수교로 하산하는 코스다.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아 고려초기의 석굴사원터, 중원미륵사지를 만난다. 미륵리 사지는 북향을 하고 있는 절로 북쪽 입구에서부터 당간지주, 귀부, 오층석탑, 석등, 석불입상이 차례로 이어진다.
안심당 옆 다리를 지나면 처음 만나는 것이 귀부다. 귀부는 보통 비석 받침이다. 그런데 이 귀부는 좀 특이하다. 조각이 정교한 것도 아니고 그 위에 비석이 세워져 있지도 않다. 지금까지는 비석받침으로 여겨져 왔지만 최근에 이 귀부가 천문관측용 기구라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충주 미륵리 절터 귀부(龜趺)-우리나라 최대 규모의 거북모양 비석 받침돌
귀부에서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이 오층석탑이다. 고려시대 세워진 6m 높이의 5층탑으로 조금은 둔중한 느낌이 든다.
▲보물 제95호 미륵리 5층 석탑
미륵불 바로 앞의 8각 석등으로 연화대석과 상대석의 연꽃 조각이 특히 아름답다.
▲미륵리 석등
북쪽 월악산을 향해 있는 거대한 미륵석불입상이 시선을 끈다. 신라의 마지막 왕자인 마의태자를 형상화한 것이라고 한다. 신라가 망한 뒤 경주를 떠나 금강산으로 가던 마의태자가 이곳에 절을 짓고 자신을 꼭 닮은 불상을 세웠다는 설화가 전해지는데 확인된 것은 아니다.
▲보물 제96호 미륵리석불입상
미륵사지를 나와 오른쪽에 미륵대원터를 끼고 걷는 평평한 산길은 전나무와 굴참나무로 우거진 숲길이다. 이내 대광사로 오르는 길과 하늘재로 향하는 길의 갈림길을 만난다.
하늘재 안내 석상이 세워진 곳 왼편으로는 장승과 솟대가 길손을 반긴다. 장승과 솟대는 마을의 안녕과 수호, 풍년을 바라는 마음에서 세워진 것이다. 솟대 위의 새는 보통 오리 또는 간혹 까마귀라고도 전해진다.
하늘재로 방향을 잡으면 아담하고 오붓한 오솔길이 나타난다. 왼쪽으로 흐르는 송계계곡의 물소리를 들으며 하늘재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볍기만 하다.
작은 구름다리가 나타나고, 다시 두 갈래의 갈림길이다. 방향은 어디로 잡아도 상관없다. 금세 이정표가 보인다. 하늘재까지 1km 남았음을 알려준다.
하늘도 제대로 보이지 않고, 조금 지루하던 길이 끝나고 시야가 트인다. 하늘재다. 고구려와 신라가 마주한 국경지대에 위치한 계립령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하늘과 맞닿은 곳' 이란 뜻의 하늘재로 바뀌었다. 고갯길 왼쪽으로 포암산 등산로가 열려있다. 정상까지는 1.6km로 그리 멀지 않다.
'하늘재'는 충청북도 충주시 수안보면 미륵리에서 경상북도 문경시 문경읍 관음리를 연결하는 길로 마을이름 또한 예사롭지 않다. '관음'은 '현세구복의 부처'이고' 미륵'은 '미래에 올 부처'로서 하늘재는 현재와 미래를 잇는 통로를 의미한다.
하늘재(계립령 鷄立嶺, 630m)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개로 알려졌다. 소백산의 죽령(竹嶺)이 역시 비슷하게 신라시대에 뚫렸지만 그보다 몇 년 앞선다고 한다. 하늘재는 신라와 고구려의 패권 각축장이었다. 신라 패망 후 마의태자가 울고 넘었다는 설이 있다.
백두대간 하늘재는 삼국사기에 "계립령(鷄立嶺)" 이란 이름으로 '아달라이사금 3년(서기 156년)'편에 기록돼 있는 것이 확인돼 명승 제49호로 지정됐다.
하늘재에는 포암산이 굽어보고 있는 하늘재산장이 나그네를 반긴다. 백두대간 종주자들의 리본이 외벽을장식하고 있어 눈길을 끈다.
포함산을 향해 오르기 시작하면 곧바로 하늘샘을 만난다. 한 바가지 떠서 목으로 넘기자 시원함이 온 몸에 전해진다.
포함산 정상을 약 1km 정도 남겨놓은 지점. 조망이 탁 트이는 시원한 바위 전망대에서 뒤돌아보면 주흘산 주봉과 영봉이 손에 잡힐 듯 가깝다.
조금 더 오르면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가 당당한 위용을 자랑한다. 소나무 아래 넓은 바위에 걸터앉아 간식을 나누어 먹으며 잠시 휴식을 취한다.
월악산국립공원의 가장 남쪽에 있는 포암산(布岩山·962m)은 월악산, 신선봉, 조령산, 주흘산과 더불어 조령 5악으로 불리는 산이다.
산 전체가 큰 바위 덩어리인 포암산은 멀리서 보면 부처가 손을 벌리고 중생을 맞이하는 형상이다. 이 산은 오래전부터 '베바우산'으로 불려왔는데 한겨울 눈발이 날려 바위에 붙은 모습이 마치 베옷을 입은 것처럼 질감이 거칠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白頭大幹 布巖山" 이라 적힌 작은 정상석과 돌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물 한 모금으로 거치러진 호흡을 가다듬은 후 만수봉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음을 옮긴다.
포암산 옛이름이 마골산이다. 마골치란 마골산(포암산)과 연관이 있는 지명인 듯하다. 이곳에 서식하는 산양을 보호하기 위해 오른쪽 부리기재, 대미산, 황장산으로 이어지는 백두대간 길은 폐쇄되어 출입금지이고, 왼쪽이 만수봉으로 가는 길이다.
나무에 눌러 붙어 매미가 울어댄다. 귀 막고 눈 막고 푸를 뿐 나무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 처서(處暑)가 가까운데도 매미의 울음소리는 더욱 거세다. 헬기장가 묏등바위를 차례로 지나면 만수봉 삼거리와 만난다. 왼쪽으로 만수봉을 거치지않고 만수교로 내려서는 길이 열려있다.
▲헬기장
▲묏등바위(병풍바위)
그대로 직진한다. 오른쪽 덕주봉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에는 등산로 아님 출입금지표지판이 가로막고 있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나무 통로를 지나면 곧바로 만수봉 정상에 닿는다.
포암산을 따라 이어진 백두대간이 마골치에서 북쪽방향으로 틀어 월악산 영봉까지 이어지는 암릉구간을 월악공룡이라 부르는데 만수봉(萬壽峰 983m)은 만수암릉이 시작되는 봉우리다. 만수봉이라는 이름은 만수계곡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만수교방향으로 하산한다. 전망이 좋은 바위에 걸터앉아 잠시휴식을 취한다. 지나온 포함산과 멀리 주흘산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용암봉을 내려서면 눈 앞에 만수계곡이 펼쳐진다. 만수계곡은 만수봉에서 흘러내린 물이 만드는 계곡으로 깨끗한 계곡물이 시원스럽게 흘러간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은 턱없이 부족한 화석연료를 대체하기 위하여 우리나라 전국에서 송유를 확보하는데 혈안이 되었다. 송진을 재취하여 열을 가해 얻어지는 송유(소나무에서 추출한 기름 - 테레빈유)는 가솔린을 대신하여 항공기연료로 사용되었다. 오래된 아름드리 소나무 하단부 껍질에 난 V자형 생채기는 당시의 가슴 아픈 상황을 말해준다.
▲송탄유굴(송유채취가마) : 관솔(송진이 많이 엉긴 소나무의 가지나 옹이, 뿌리)에 열을 가하여 송유를 뽑아내는 가마
전국적으로 폭염이 기승을 부리고 더위에 지친 발걸음은 무겁기만 하다. 산행은 만수교에서 끝을 맺는다. 약 5시간 30분소요.
▲만수교
▲만수휴게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