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 2009년 11월 22일(일) -22명
산행코스 : 관광단지 주차장-돌탑갈림길-공덕비갈림길-보리암-상봉(692mm)-추월산(729m)-726봉-수리봉-복리암정상-무넘기재-용치리-견양동(5시간 10분소요)
어느새 가을이 바람 끝에 묻어 멀리 달아나고 갑자기 찾아온 추위가 깜짝 기승을 부리더니 다시 풀린 날씨 덕분에 한결 여유롭다. 조금 이른 시간 때문인지 추월산관광단지 주차장은 한가롭다. 상봉을 배경으로 단체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약수터에서 목을 축인 후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사진촬영 : 靑 山]
추월산 (秋月山 731m)은 전남 담양군 용면과 전북 순창군 복흥면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호남정맥 상에 자리하고 있으며 동으로 줄지어 뻗은 병풍산, 산성산을 옆에 두고 있다.
이 산은 밑에서 올려다볼 때 바위로 이뤄진 험준한 봉우리가 달에 닿을 정도로 높게 보인다 해서 이름이 추월산으로 지어졌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전라남도 5대 명산 중의 하나로 손꼽힌다.
추월산은 인근 금성산성과 함께 임진왜란 때 치열한 격전지였으며, 동학란 때에도 동학군이 마지막으로 항거했던 곳이기도 하다. 의병전적지를 지나면 군데군데 돌탑들이 쌓여져있고 쉬어갈 수 있는 긴 의자도 놓여있다. 가을이 절정일 때 도도한 추색을 뽐내던 추월산도 어느덧 겨울색이 완연하다.
보리암중창공덕비 옆에는 누군가 인공적으로 만든 바위굴이 눈에 띤다. 왼쪽으로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나무계단을 올라 전망대에 서자 상봉아래 까치집처럼 가파른 절벽에 둥지를 틀고 있는 보리암이 위태위태하게 보인다. 발아래 담양호는 물론 건너편 강천산 금성산성과 담양온천까지 시원하게 조망된다. 담양호는 전국에서 가장 맑은 담수호란다.
추월산 풍광의 백미는 해발 600m의 깎아지른 절벽위에 자리 잡은 보리암이다.
보리암은 임진왜란 때 김덕령 장군의 부인 흥양이씨가 왜적에게 쫓기자 이곳 절벽에서 몸을 던져 순절한 곳으로도 유명하다. 1840년(헌종 6년)담양부사 조철영이 흥양이씨의 순절을 기리는 비문을 바위에 새겨 놓았다. 지금도 이 암벽에는 "김충장공덕령부인흥양이씨만력정유매담양추월산왜적순절처(金忠壯公德齡夫人興陽李氏萬曆丁酉罵潭陽秋月山倭賊殉節處)"라는 명문이 남아있다.
보리암은 상봉에 오르기 전 암벽 위에 자리하고 있다.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했다고 전해지며 백양사의 말사다. 보조국사가 지리산 상무주암에서 나무로 깎은 매 세 마리를 날려 보냈는데 한 마리는 장성 백양사 터에, 또 한 마리는 순천 송광사 터에, 그리고 한마리가 바로 여기 보리암터에 내려앉았다는 전설이 있다.
보리암 앞마당 대나무 담장 너머 담양호가 내려다보인다.
다시 삼거리로 나와 로프지대와 철계단을 지나 보리암 암봉 (692m)에 오르면 담양호와 담양읍, 앞에 강천산이 그림처럼 펼쳐지며 일대 장관을 이룬다.
상봉을 오르다보면 가야할 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상봉 바로 밑에는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약수터가 있다.
상봉. 숨 가쁘게 올라와서 모든 근심을 내려놓고 바라보는 발아래 펼쳐지는 세상은 너무나 평온하다. 일망무제. 거칠 것 없는 시원스런 조망이 펼쳐진다. 멀리 순천 조계산과 그 뒤로 광양 백운산 그리고 오른쪽으로 광주 무등산이 조망된다. 이런 아름다운 모습을 만나는 것은 산에 오른 자들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일 것이다.
△광양 백운산과 순천의 조계산쪽 전경
△광주 무등산쪽 전경
[사진촬영 : 靑 山]
추월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능선은 부드럽다. 온몸으로 따뜻한 햇살 듬뿍 받으며 여유로운 걸음을 옮긴다.
추월산 정상은 표지석 대신 이정표가 반긴다. 밀재로 가는 길이 열려있다. 분기점으로 돌아와 수리봉으로 향한다. 사면에는 눈이 살짝 덮여있다.
수리봉아래 전망이 좋은 바위지대에 모여앉아 점심도시락을 편다. 한쪽에서는 돼지고기 김치찌개를 끓이고 다른 한쪽에서는 소고기 불고기를 요리하며 왁자지껄하다.
수리봉까지 또 다시 여유로운 발걸음을 옮긴다.
복리암정상에서 보리암마을로 내려서는 길을 버리고 그냥 진행하여 무넘기재에서 용치리 마을로 내려선다.
쏟아질 듯 가파른 내리막길이다. 조심조심 내려서 용치리 마을에 닿는다.
마치 발을 쳐 놓은 듯 줄에 엮인 말랑말랑한 감이 눈을 즐겁게 하고, 감나무에 주렁주렁 달린 홍시가 고운 빛깔로 유혹한다.
뒤돌아보는 추월산의 모습은 위풍당당한 모습이다. 견양동 버스주차장 옆 공터에서는 먼저 하산한 선두 일행이 굽는 도루묵 냄새가 고소하다.
"도루묵"이라는 이름의 유래.
조선의 14대 임금이었던 선조 때 임진왜란이 발발하여 왜구에 밀려 신하들과 동해안까지 몽진을 떠났다. 아무래도 피난길이라 음식이 변변치 못했던 차에 하루는 선조가 생전에 먹어본 적이 없는 생선 요리를 반찬으로 들게 되었는데 그 맛이 천하일품이라고 생각되어 신하들에게 그 이름을 물으니 "묵"이라고 하였다. 선조는 그 맛에 비해 이름이 너무 초라해서, 그 생선의 배가 하얀 것을 보고 즉석에서 "은어(銀魚)"라는 이름을 하사했다.
그 뒤 왜구들을 물리치고 환궁한 선조는 그 옛날 피난길에서 맛있게 먹었던 은어가 생각나 그 은어를 반찬으로 올리도록 명하였다. 그래서 신하들은 멀리 동해안까지 가서 싱싱한 생선을 진상하기 위해 물이 새지 않는 통속에 은어를 넣고 운반하는 중간마다 싱싱한 바닷물로 갈아주며 임금에게 바치게 되었다. 그런 천신만고 끝에, 은어를 수랏상에 올렸지만 예전의 그 맛이 아니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왕궁으로 복귀한 후에는 진수성찬으로 인해서 그 입맛이 까다로워진 터에 "은어"가 아니라 "금어"라도 입맛에 맞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생선은 변함없으되 그 입맛이 예전과 달라 "은어(銀魚)"라고 하사 했던 그 이름을 도로 "묵"으로 물리도록 하여 "도로묵"이 됐다는데, 나중에 그 "도로묵"이 발음하기에 편하도록 "도루묵"이 되었다.
모든 고생과 노력이 그렇게 허사가 되어 "도로 물리는 처지"가 되었다고 해서,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았을 때 흔히 "말짱 도루묵이 되었다"라고 한다.
도루묵 뒤풀이를 끝내고 대전으로 돌아오는 길에 담양의 명물 메타세쿼이아 가로수 거리에 들려 기념사진도 촬영하고 함께 걸으며 추억도 남긴다. 신록이 울창했던 지난여름에 왔을 때와 또 다른 느낌이다.
[사진촬영 : 靑 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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