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 : 2009년 9월 6일(일)
산행코스 : 오색-대청봉-소청산장-봉정암-오세암-영시암-백담사-용대리
여름이 닫히고 가을이 열리는 길목에서 설악을 향해 배낭을 꾸린다. 설악은 근 1년만이다. 반가운 얼굴들이 많이 보인다. 대전을 출발한지 3시간 만에 내설악 광장에 도착한다. 된장국에 밥 한 숟가락 말아 배를 채우고 한계령을 넘어 오색에서 내린다.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각. 등산화 끈을 조이고 산행준비를 하는 사이 모두들 시야에서 사라지고 맨 후미에서 혼자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오색에서 대청봉 오르는 길은 정상에 이르는 가장 짧은 코스다. 따라서 길이 매우 가파르고 계속 오르막길이다.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걸음 자체가 고행길이다.
어둠이 서서히 걷힌다. 오늘 함께 동행하기로 한 닐님이 먼저 도착하여 정상 아래에서 기다린다. 오색에서 3시간이면 대청봉에 닿는다.
방금 전에 떠오른 태양이 동해바다를 자신의 몸으로 아름답게 물들이고 언제나 그렇듯이 대청봉 정상은 인파로 넘쳐난다. 막 잠에서 깬 내설악이 기지개를 켜며 그 웅장한 모습을 드러낸다.
중청대피소를 지나 소청으로 향한다.
오늘 산행은 대부분 공룡능선을 타고 마등령에서 오세암을 거쳐 백담사로 하산하지만 공룡은 여러 번 타본 길이고 아직 지난여름 부상을 입은 발목이 걱정이 되어 좀 더 여유로운 산행코스를 택했다.
봉정암에서 오세암을 거쳐 영시암과 백담사에 이르는 내설악의 깊숙한 속살을 따라 조용히 여유롭게 걷고 싶어서다.
봉정암은 고도 1224m인 설악산의 마등령에 위치한 우리나라 5대 적멸보궁(寂滅寶宮) 중 하나로, 선덕여왕 13년(644년) 신라의 고승자장율사에 의해 창건되었다.
자장율사가 당나라 청량산에서 3.7일(21일)기도를 올리던 마지막 날, 문수보살이 현신하여 부처님의 진신사리와 금란가사를 전해주며 해동에서 불법을 크게 일으키라 하여 진신사리를 모실 길지를 찾아 이곳저곳을 순례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아름다운 빛을 내는 봉황이 나타나 어느 높은 봉우리를 선회하다가 갑자기 어떤 바위 앞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 바위는 부처님의 모습이었으며 봉황이 사라진 곳은 바로 부처님의 이마에 해당하는 부분이었다. 그 바위에 부처님의 뇌사리를 봉안한 뒤 오층석탑을 세우고 암자를 지은 곳이 봉정암이다. 봉정암(鳳頂庵)이란 봉황이 부처님의 이마로 사라졌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봉정암 오층석탑은 부처님의 뇌사리를 봉안했다고 해서 불뇌보탑(佛腦寶塔), 혹은 불뇌사리보탑이라 불린다. 바위를 뚫고 나온 형상을 한 이 불뇌사리탑 앞에서면, 설악산 정상에 이 같은 탑을 세운 불심과 그 형상의 신묘함에 절로 감탄과 숙연함이 우러나온다.
석탑은 자연암석을 기단부로 삼아 그 위에 오층의 몸체를 얹었으며, 일반적인 탑과 달리 기단부가 없어서 마치바위를 뚫고 탑이 솟아 오른 듯하다. 맨 위에는 연꽃이 핀 듯한 원뿔형 보주를 올려놓아 영원한 불심을 향하는 마음을 그리고 있다.
▲살아생전 꼭 한번 참배해야 한다는 불뇌사리보탑(佛腦舍利寶塔)
오새암으로 가기위해 석탑을 뒤로하고 바위길로 올라서면 왼쪽으로 용아와 오른쪽으로 공룡이 그 위용을 드러낸다. 장관이다. 발아래로 수려한 가야동계곡이 끝없이 이어진다.
탑골에서 오세암까지는 4km 거리다. 이 숲길은 예사로운 길이 아니다. 1400여 년 전, 문수보살로부터 진신사리를 전해 받고 귀국한 자장율사가 진신사리를 모실만한 길지(吉地)를 찾아 나선 구도의 길이었다. 또한 3.1 독립운동마저 실패로 끝나고 민족 전체가 절망의 늪으로 빠져들었던 1920년 대 중반, 만해가 사색과 명상으로 마음을 다스리며 <님의 침묵>을 잉태시킨 유서 깊은 그 숲길이기도 하다.
이 길은 자장율사와 만해선사의 숨결을 더듬어 가는 불교 성지 순례길로 대부분 불자들이 이용한다. 한 무리의 순례객이 지나가자 숲속은 고요하다. 도란도란 세상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걷는 동행이 있어 외롭지 않아 좋다.
가야동계곡을 가로지르는 나무다리를 건너면 서서히 오르막길이다. 세 번째 언덕을 올라서면 오세암의 파란 기와지붕이 눈에 들어오고 독경소리가 은은하게 온 산에 울려 퍼진다.
오세 동자의 성불 이야기로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오세암은 우리나라 5대 관음 성지 중의 하나로, 인연 있는 중생이 아니면 발길이 닿지 못하는 불교성지라고 한다. 그래서 많은 불자들이 생애 한번이라도 찾고자 간절히 서원(誓願)하는 곳이기도 하다.
오세암은 선덕여왕 12년(643년)에 자장율사(慈藏律師)가 창건하여 관음암(觀音庵)이라고 했다. 1643년(인조 21) 설정(雪淨)이 중건하고 오세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이름을 바꾼 데 따른 전설이 전하고 있다. 설정이 고아가 된 형님의 아들을 이 암자에서 키웠는데, 어느 날 월동 준비를 하기 위해 혼자 양양까지 다녀와야 했다. 그 동안 혼자 있을 4세된 어린 조카를 위하여 며칠 동안 먹을 밥을 지어놓고, 조카에게 밥을 먹고 난 뒤 법당에 있는 관세음보살상에게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면 잘 보살펴줄 거라고 일러주고 암자를 떠났다. 그러나 설정은 밤새 내린 폭설로 이듬해 눈이 녹을 때까지 암자로 갈 수 없게 되었다. 눈이 녹자마자 암자로 달려간 설정은 법당에서 목탁을 치면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는 조카를 보게 되었다. 어찌된 연유인지 까닭을 물으니 조카는 관세음보살이 때마다 찾아와 밥도 주고 재워 주고 같이 놀아 주었다고 하였다. 그때 흰옷을 입은 젊은 여인이 관음봉에서 내려와 조카의 머리를 만지며 성불(成佛)의 기별을 주고는 새로 변하여 날아갔다. 이에 감동한 설정은 어린 동자가 관세음보살의 신력으로 살아난 것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암자를 중건하고 오세암(五歲庵)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천진관음보전
이곳을 지나는 길손들을 위해 주먹밥을 준비한 절집 인심이 고맙다. 영시암으로 걸음을 옮긴다. 만경대 들머리를 놓쳤다.
이곳 영시동(永矢洞) 마을은 6.25때 폐동 되었다. 영시암의 찬모가 어느 해 호랑이에게 물려가 호식동(虎食洞)이라고 하기도 한다.
영시암은 조선 인조 26년(1648)에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1653-1722)이 어지러운 세상을 떠나 영원히(永) 세상과 인연을 끊고 이곳에 살기로 맹세(矢)하고 창건한 것이라 한다. 그래서 일명 삼연정사(三淵精舍)라고도 한다.
△흰물봉선
계곡물에 잠시 발을 담그고 피로를 씻어낸 후 길을 이어간다. 그동안 설악산 산행은 늘 시간에 쫓기며 속도산행을 했지만 오늘은 한껏 여유를 부리며 널널한 산행을 한다.
백담사까지 이어지는 완만한 숲길은 등산로라기보다는 차라리 산책로에 가깝다. 하늘까지 치솟은 미끈한 아름드리 금강송과 늠름한 전나무가 우거진 완만한 숲길은 백담사까지 계속된다.
어찌 보면 역사의 아픔이며 부끄러움이기도한, 전직 대통령이 유배를 함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진 백담사(百潭寺)는 동학란에 가담했다가 실패한 만해 한용운(1879-1944)이 숨어 지내다 1905년 출가하여 불도를 닦고 《님의 침묵》을 집필한 곳이다. 백담사는 신라 제28대 진덕여왕 원년(647년) 자장율사가 한계사란 이름으로 개창한 사찰로, 창건 이후 여러 차례의 화재를 당하자 그를 막아보자는 뜻에서 백담사로 이름을 바꾸었다 한다.
사찰 이름을 바꾼 주지가 꿈에 백발노인이 나타나 대청봉에서 절까지 웅덩이를 세어보라 하여 확인해 보았더니 꼭 100개 이었다고 한다. 6·25전쟁 때 소실되었다가 1957년에 재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중심 법당인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산령각, 화엄실, 법화실, 정문, 요사채 등이 있으며, 뜰에는 삼층석탑 1기가 있고 옛 문화재는 남아 있지 않다.
한 번쯤 백담계곡을 다녀 온 사람이라면 한국의 계곡을 말할 때 어김없이 아름다움과 깨끗함의 첫 번째로 손꼽을 만한 곳이다. 백 개나 되는 소(웅덩이)가 있기에 백담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유래에서 알 수 있듯 백담계곡은 크고 작은 웅덩이의 연속이다. 천년 세월의 물길에 크고 작은 바위는 하얀 속살을 부끄럼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온통 바위뿐인 계곡에 움푹 팬 웅덩이에 고이고 넘치며 흐르는 물은 맑다 못해 서럽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깨끗하다. 백담사에서 강원도 인제군 북면 용대리에 있는 매표소까지 그렇게 맑고 경이로운 계곡이 7km쯤 이어진다. 셔틀버스 운행(요금은 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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