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 : 2008년 6월 22일(일)
산행코스 : 성삼재-노고단-천왕봉-로타리산장-순두류-청소년수련원(법계사 셔틀버스)-중산리
도전은 삶이다.
부상으로 올림픽 출전이 힘들어졌을 때 장미란 선수에게 의지가 되었던 것은 “고통이 너를 강하게 만들 거야”라는 어머니의 한마디였으며, 아나운서 정세진 씨는 라디오에서 들은 푸시킨의 시구 “지나간 것은 언제나 그리워지리니”를 통해 삶의 희로애락을 소중하게 껴안자고 다짐하게 되었고 한다. 또한, 사계절 출판사 강맑실 대표는 “너는 가능성이야”라는 말이 해야 할 일들에서 겁먹고 도망치려 할 때마다 용기를 주었다고 한다.
2004년 멋모르고 얼떨결에 시작한 백두대간종주. 지금은 병원에서 요양 중인 플러스님과 밤머리재에서 시작하여 천왕봉을 거쳐 성삼재까지 1박 2일 종주가 나의 지리산 종주에 시작이었다.
나는 왜 지리 종주를 하는가? 대답은 간단하다. 힘은 들지만 흐르는 땀이 좋고 걷는 것이 행복하기 때문이다.
『지금도 지리산과 연애 중』(대원출판사)이라는 책을 펴낸 산악인 이광전(66·대한산악연맹 부산시 연맹 자문위원)님은 지리산 종주를 200회나 했다고 한다.
이광전님은 자신의 산행을 모두 기록해 놓고 있는데, 200회 종주를 마치고 “산에 가면 작은 욕심도 부질없이 느껴지고, 대자연 앞에서 겸손을 배우게 된다. 이제 배낭을 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300회 종주를 마치고 산에 묻히고 싶다”라고 적었다고 한다.
지리산 전체를 조망하며 걷는 지리산 종주 코스의 고전(古典)으로 꼽히는 주능선 종주는 성삼재에서 시작하여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25.5km 주능선을 걷고 중산리로 하산하는 총 거리 약 35km 로 체력도 중요하지만 정신력이 필요하다.
힘은 들지만 변화무쌍한 날씨와 환상적인 운해, 그리고 갖가지 들꽃들과 만나고, 구름 속을 오르내리는 듯한 느낌이 산꾼들을 유혹하는 지리산 종주는 진짜 산꾼으로 거듭나는 관문이기도 하다.
새벽 1시.
오늘 산행대장인 청산님의 인사와 산행 안내 멘트가 끝나고 불 꺼진 차안은 정막이 흐른다. 눈을 감고 토막잠을 청해 보지만 신통치 않다.
성삼재에 도착하니 새벽 3시 30분. 어둠속에 주차장은 닫혀있고 인적이 없다. 지리산 종주에 나선 사람들로 늘 북적이는 곳인데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 때문이다.
오늘 지리산 종주에 나선 귀연산꾼들을 위해 나선생님이 준비한 찰밥과 김 한 봉지를 챙겨 배낭에 넣고 버스에서 내리자 안개비가 내리고 약간 쌀쌀하다. 배낭 커버를 씌우고 산행 준비를 한다.
3시 50분 성삼재 출발. 오늘 종주에 나선 귀연산꾼은 총 38명.
랜턴불빛으로 어둠을 밀어내며 노고단으로 향한다. 노고단대피소에서 노고단까지도 녹녹치 않은 오르막길이다.
노고단은 신라시대 때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仙桃聖母)를 지리산 산신으로 받들고 나라의 수호신으로 모셔 매년 봄, 가을 제사를 올렸던 곳이다. 이런 연유로 해서 선도성모의 높임말인 노고와 제사를 올리던 신단이 있었던 곳이라는 뜻으로 '노고단'이라 부르게 되었다.
돼지평전을 지나고 피아골로 빠지는 임걸령삼거리에서 숲 터널을 이룬 오솔길을 따라 임걸령 샘터에 닿는다. 해발 1,320m의 높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우뚝 솟은 반야봉이 북풍을 막아주고 노고단의 능선이 동남풍을 가려주어 산속깊이 자리한 아늑하고 조용한 천혜의 요지이며 샘에서는 언제나 차가운 물이 솟고 물맛 또한 좋기로 유명하다. 임걸령이란 이름은 조선 명종 때의 초적두목 임걸년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단다.
샘터에서 목을 축이고 식수통에 물을 담는다. 지리산 주능선 상에는 노고단대피소, 임걸령샘터, 연하천대피소, 벽소령대피소, 선비샘, 세석대피소, 장터목대피소 등 한 두 시간 간격으로 식수를 보충할 수 있어 식수 걱정을 하지 않아 좋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앞질러 지나간다. 배낭 뒤에 “100회 마라톤 클럽” 표시가 붙어있다. 대단한 사람들이다.
반야봉으로 오르는 삼거리 갈림길이 노루목이다. 반야봉의 지세가 마치 노루가 머리를 치켜들고 있는 암두(岩頭)를 이루고 있는듯하다 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산에서의 세 갈림길을 흔히 노루목이라 부른다. 운해가 장관이다.
노루목을 출발하여 용수골 사거리를 지나면 운봉 소금장수 무덤이 있고 곧바로 삼도봉에 닿는다. 해발 1,550m 삼도봉(三道峯)은 지리산을 삼도로 구분하는 기점이다. 봉우리에 황동으로 만든 삼도를 상징하는 삼각뿔이 세워져 있고 각 방향에 3도(경상남도와 전라남도, 전라북도)의 이름이 적혀 있다.
원래 이 봉우리는 정상 부분의 바위가 낫의 날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해 낫날봉으로 불렸다한다. 낫날이란 표현의 발음이 어려운 탓에 등산객들 사이에선 '낫날봉'이 '날라리봉' 또는 '늴리리봉' 등으로 더 알려져 있었다. 조금 천박한 느낌의 날라리봉 보다 삼도의 경계기점이란 뜻의 삼도봉이 훨씬 어울린다.
짙게 깔린 운무는 모든 산을 뒤덮어 조망이 전무하고 안개비가 걸음을 재촉한다.
화개재로 이어지는 551개의 나무계단을 내려선다. 잠에서 깨어난 새들의 노랫소리가 청아하게 귀전에 전해오고 지천으로 깔린 범의 꼬리가 눈을 즐겁게 한다. 화개재는 옛날 화개장터에서 소금 등 해산물이, 역으로 산내와 운봉지방에서는 내륙 특산물이 서로 거래되었던, 즉 양측의 주민들과 상인들이 분주히 넘나들었던 일종의 물물 교역루트였다.
▲범의꼬리
토끼봉 오르는 길은 온몸을 땀으로 적시고 숨 가쁘게 한다. 토끼봉이란 명칭은 주변에 토끼가 많다거나 봉우리가 토끼 모양이라서 그러는 게 아니고 반야봉을 기점으로 동쪽, 즉 24방위의 정동(正東)에 해당되는 묘방(卯方)이라 해서 토끼봉(卯峯)으로 부르는 것이다. 헬기장에서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달래고 거치러진 호흡을 가다듬는다.
▲꿩의다리
연하천으로 내려서는 숲속 나무 계단은 정겹고 편안한 느낌이 든다.
▲함박꽃(산목련)
숲속을 누비며 흐르는 개울의 물줄기가 마치 구름 속에서 흐르고 있는 것 같다 하여 연하천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해발 1,480m에 위치한 연하천은 토끼봉에서 6km 남짓한 거리며 벽소령에서도 6km 거리에 있다.
아담한 연하천 산장은 5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초미니 산장이다. 어젯밤 제자들과 백두대간 구간종주를 하고 연하천대피소에서 묵은 칸님이 반갑게 일행들을 맞는다. 연하천대피소는 물이 풍부하다. 통에 넘치는 물로 세수를 하자 얼굴에 소금기가 혀에 전해진다. 찰밥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잠시 휴식을 취한 후 길을 나선다.
이정표 하나가 나온다. 여기서 왼쪽으로 갈라져 이어진 능선길은 음정리로 빠지는 길이다. 이정표에서 직진하여 앞의 봉우리를 살짝 올라서면 바로 전망 좋은 삼각고지이다. 삼각고지란 말은 이곳이 남원시 산내면, 함양군 마천면, 하동군 화개면의 경계지점이라서 그렇게 붙여졌다. 칠암자코스 도솔암으로 이어지는 길이 희미하다.
해발 1,115m의 형제봉은 높이가 10m가 넘는 두 개의 바위이며 우뚝 솟은 봉우리가 우애 깊은 형제와 흡사하다해 붙여진 이름이다.
형제바위는 언 듯 보기에는 한 개의 큰 석상으로 보이나 자세히 살펴보면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두 개의 석상이다. 이 석상에 얽힌 전설이 전해져 온다. 지리산에서 두 형제가 수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이들에 반한 지리산요정이 두 형제를 유혹하였으나 형제는 유혹을 물리치고 득도하였다. 그러나 성불한 후에도 집요한 지리산요정의 유혹을 경계해 형제가 서로 등을 맞대고 너무 오랫동안 부동자세로 서 있었기 때문에 그만 몸이 굳어 그대로 두 개의 석불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
연하천을 출발한지 1시간. 빨간 우체통이 반기는 벽소령대피소에 도착한다. 벽소령은 지리산 중심부의 허리처럼 잘록한 고개로 높이가 1,350m이다. 벽소령을 둘러싸고 있는 주위의 높고 푸른 산들이 겹겹이 쌓여 깊은 달밤이면 푸른 숲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너무나 희고 맑아 오히려 푸르스름해 보이기까지 하여 벽소명월은 지리산 10경중의 하나로 꼽힌다.
재작년 지리산 종주에 나선 귀연산꾼들이 폭우로 종주를 접고 음정으로 하산한 아픈 기억이 있는 곳이다.
▲찔레
이곳에서 구벽소령까지는 지리산 주능선에서 가장 편안하고 부드러운 길이다.
▲국수나무
▲정향나무(수수꽃다리의 어미나무)
옛날 선비샘 아래 상덕평마을에는 평생 동안 가난하고 천대받으며 살아온 한 노인이 살았는데 이 노인의 유언이 죽어서라도 사람대접 한번 받아보는 것이었다. 결국 아들들이 이 샘터 위에 무덤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샘에서 물을 뜰 때면 반드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므로 결과적으로 이 노인의 무덤에 절하는 격이 되게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무덤도 안보이고 샘도 파이프로 연결하여 서서 받도록 조처하였기 때문에 이 씁쓸한 전설은 잊혀져 가고 있다.
덕평봉으로 향한다. “지리산 제일봉 천왕봉을 찾아보세요” 라는 안내판이 덩그레 서 있는 덕평봉에 도착하지만 운무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백당나무
▲눈개승마
둘레에 7개의 암봉이 기묘한 조화로 우뚝 서 있는 칠선봉은 일곱 선녀가 노닐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정향나무
▲노린재나무
영신봉으로 이어지는 길에 놓인 나무계단은 20여 km를 걸어 온 산꾼들에게는 공포의 계단이다. 금마타리를 비롯하여 눈 맞춘 들꽃에서 창조주의 오묘하고 섬세한 솜씨를 느낀다.
▲금마타리
▲부게꽃나무
▲병꽃
영신봉은 멀리 반야봉과 지나온 주능선 길이 한 눈에 조망되고 가야할 천왕봉이 조망되는 곳인데 사방이 하얗다.
영신봉(1651m)에서 세석대피소까지는 0.6km 지척이지만 대피소까지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 오는 것이 싫은 칸님과 나선생님은 촛대봉으로 향하고 빈 수통을 받아들고 혼자 세석대피소로 내려선다.
▲점나도나물
2.?
▲쥐오줌풀
3.?
작은 돌밖에 없는 토양지대라 해서 잔돌고원, 그것의 한자표현으로 세석평전(細石平田)이라고도 하는데 ‘평전’이라는 말이 일본식 표기라는 의견이 있어 그냥 세석고원이라고 부르는 게 합당할 듯하다.
▲미나리아재비
먼저 도착한 일행들과 세석대피소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식수를 보충 한 다음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잠시 피로를 푼다. 조금 늦장을 부린 사이 산삼해님과 둘만 남아 촛대봉을 향해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촛대봉에서 식사를 마치고 휴식을 취하던 나선생님과 만나 종주를 마칠 때까지 동행한다.
일행은 모두 시야에서 사라지고 두 분 고문님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동행하며 진행한다. 연하봉가는 길은 지리 10경(천왕봉 일출, 피아골 단풍, 노고단 운해, 반야봉 낙조, 벽소령 명월, 세석평전 철쭉, 불일현폭, 연하선경, 칠선계곡, 섬진청류)중에 하나인 연하선경답게 아름답다.
헬기장으로 내려서기 전 멋진 풍광이 눈에 들어온다. 운무가 연하봉을 넘고 있다. 운무는 멈추지 않고 보일 듯 보이지 않을 듯 천천히 이동하며 몽환적 분위기의 장면을 연출한다.
▲몰려드는 운무가 신비스런 황홀경을 연출하며 선경을 방불케 한다.
연하봉을 지나 장터목 대피소에 도착한다.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달래고 인적이 없는 천왕봉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장터목은 옛날 시천 주민들과 마천 주민들이 매년 봄·가을 이곳에 모여 장을 열고 서로의 생산품을 물물교환을 했다고 한다. 이곳은 여러 개의 등반로가 모이는 집결점이기도 하고, 천왕봉 일출을 고집하는 사람들이 하루 묵어가는 곳이라 늘 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린다.
제석봉 일대를 뒤덮고 있는 고사목군락을 지난다. 10만 여 평의 완만한 비탈에 고사목들이 서 있고 바닥은 풀밭뿐이다. 6. 25전 세력가에 의해 벌목되었으며, 그 증거를 없애려고 방화했다고 하니 고사목이 아니라 실은 횡사목인 셈이다. 제석봉의 고사목을 천수를 다 누리고 자연적으로 생겨난 고사목이 아니라는 데서 아름다움보다는 처연함이 앞선다.
천왕봉은 동쪽에 중봉을, 서쪽에 제석봉을 나란히 거느리고 있다. 제석봉은 높이가 1,806m로 지리산에선 중봉 다음으로 세 번째 높은 봉우리이다.
제석봉에는 몇 걸음 뒤에서 꾸준히 진행하시는 나선생님과 단 둘뿐이다. 산악인의 백서에 글귀처럼 "언제나 절망도 포기도 없다. 온갖 고난을 극복할 뿐". 그렇게 인내하며... 거친 숨을 내쉬며 오르고 또 오르고 있을 뿐이다.
제석봉의 이정표에서 철사다리를 내려서면 좌우로 암벽 비탈길이 고산 특유의 정취를 느끼게 한다. 소위 “톱날능선”이라고 부르는 길이다.
통천문을 지나 세 번의 철계단을 오르자 시원한 풍광이 펼쳐지며 눈을 즐겁게 한다.
칠선계곡으로 이어지는 들머리에는 커다란 자물통이 채워져 있다.
성삼재를 출발한지 12시간. 마침내 한국인의 기상이 시작되는 곳 천왕봉에 올라선다. 생각보다 늦어졌지만 지리와 함께 한 오늘 하루 마냥 행복하다. 내년 봄에 또 올 것이다.
천왕봉은 한산하다. 기념사진을 찍고 휴식을 취하는 사이 산삼해님이 도착한다. 정상은 언제나 오래 머물 수 없는 곳, 빵 한 조각으로 허기를 달래고 하산길로 들어선다.
생각보다 시간이 늦어져 걸음을 재촉하지만 법계사 길은 공포의 너덜로 무릎에 무리가 가기 때문에 속도를 낼 수 없다.
문창대 바위에 고운 최치원선생의 각자를 카메라에 담고 나무계단을 내려서자 지난달 공사가 한창 중이던 법계사 일주문이 멋진 모습으로 서 있다. 법계사는 국내서 가장 높은 곳인 해발 1450m에 위치한 사찰로 544년(신라 진흥왕 5년)에 연기조사가 창건했다고 전하지만 정확한 창건연대는 알수 없다. 샘터에서 갈증을 해소하고 로타리산장으로 내려서자 청산님이 기다린다.
▲문창대에는 고운최선생 장구지소(孤雲崔先生 杖屨之所 : 최치원이 지팡이와 짚신을 놓아두었던 곳)라는 문구가 암벽에 새겨져 있다.
칼바위 길보다 부드러운 순두류쪽으로 하산 길을 잡는다. 가까이 계곡 물소리가 들린다. 내려갈수록 불어난 물이 엄청난 굉음을 내며 흐른다. 덕분에 시원한 폭포를 감상하며 편안한 하산길을 걷는다.
왼쪽으로 보이는 출입금지 표시는 중봉골(속칭 마야계곡)이라 불리는 비경의 험난한 계곡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길이 20m의 출렁다리를 건너 부드러운 오솔길을 걷는다. 순두류는 해발 900m 지대에 3만여 평의 완만한 평지를 말하며 이름 그대로 두류산의 지세가 순하게 흘러서 산속의 평원을 이룬 곳이다.
화장실과 홍수 예경보 시스템이 있는 곳에서 넓은 비포장길이 이어지고 자연학습원과 갈림길에 1996년 8월 9일 헬기 추락사건으로 사망한 소방대원들의 위령비가 서 있다.
길고 인내와의 싸움이 필요한 지리산 종주를 낙오자 한 명 없이 모두 완주한 귀연인들은 이제 산꾼이라 할 만하다.
참고로 법계사가 국립공원관리공단의 협조를 받아 25인승 중형버스 2대를 구입하여 청소년수련원입구에서 중산리까지 셔틀버스를 운행하는데 평일에는 1시간 간격으로, 주말에는 30분 간격으로 운행하며 오후 6시가 막차다. 덕분에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1시간 넘게 걷던 길을 천 원 정도의 시주만하면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다.
하산이 늦어져 막차가 끊어졌다. 산삼해님의 수고로 우리 일행을 태우기 위해 셔틀버스가 특별 운행을 하기로 한다. 2008 귀연산꾼들의 지리산 종주는 그렇게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로즈마리님을 비롯하여 많은 분들이 수고를 아끼지 않아 행복한 뒤풀이는 길어진다. 이번 종주를 위해 수술 날짜까지 미루고 참여하여 무사히 완주한 호나우드 총무를 비롯하여 생전처음 지리 종주를 한 많은 분들은 밀려오는 감동에 감격하며, 밀린 숙제 하나를 해결한 홀가분한 기분일 것이다. 모두에게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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