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 2008년 5월 15일(목)
산행코스 : 성삼재-천왕봉-중산리
스승의 날-스승의 은덕에 감사하고 존경하며 추모하는 뜻으로 제정한 날이다.
최근 몇 해 전부터 많은 학교에서 스승의 날이 임시휴교일로 정해지고 있다. 덕분에 하루를 쉬게 되었지만 왠지 찝찝한 마음이 앞선다.
스승의 날에 하루를 쉬는 이유는 알다시피 교사와 학부모간 촌지 수수를 봉쇄하기 위해서이다. 대가성 금품과 선물 및 향응제공이 우려되어 이를 원천봉쇄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일부 지역의 일부 학부모의 경우가 문제가 되긴 하지만 학교에서 그간 촌지의 규모는 점점 커졌고 급기야 휴교라고 하는 이런 극단적 조치까지 스스로 내리기에 이르렀다. 서로 존경하며 감사하고 감사받고 할 수 있는 스승의 날은 온데간데 없고 모두에게 부담스러운 날이 되고 말았다.
아무튼 황금의 휴일 갑장 직장동료 2명과 지리산 종주에 나섰다. 등산을 시작하면서 연례행사처럼 매년 한 번씩 하는 지리 종주지만 함께하는 갑장들은 처음 도전이라 많이 걱정하며 긴장하고 있다.
새벽 3시 30분. 드디어 성삼재 출발
지리산 종주 대장정을 축하하듯이 하늘에는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별들이 보석처럼 영롱한 빛을 발한다. 별빛을 벗 삼아 랜턴 불빛으로 어둠을 밝히며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새벽바람이 서늘하다.
성삼재에서 노고단대피소까지 이어지는 약 2.5km 시멘트 포장길과 돌길은 지루한 오르막길이다.
노고단 대피소에 닿는다. 일제 강점기에는 외국의 선교사들이 피서용 별장을 50여 채나 건립하고 이곳에서 여름을 났다. 6․25동란을 거치며 대부분 파괴되었다. 간식으로 허기를 속이고 노고단으로 향한다.
노고단은 천왕봉, 반야봉과 더불어 지리산 3대 주봉 중에 하나로 해발 1,507 m이다. 노고단 정상은 길상봉이라 불리며 정상에서부터 서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는 약 30만평의 넓은 고원이 있다.
신라시대 때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仙桃聖母)를 지리산 산신으로 받들고 나라의 수호신으로 모셔 매년 봄, 가을 제사를 올렸던 곳이다. 이런 연유로 해서 선도성모의 높임말인 노고와 제사를 올리던 신단이 있었던 곳이라는 뜻으로 '노고단'이라 부르게 되었다.
[2007년 가을 사진]
돼지평전으로 올라선다. 멧돼지들이 종종 출몰한다고 일명 돼지령이란다.
노고단에서 임걸령까지 3km는 옛날 화랑들이 말을 타고 달려 화살보다 더 빨리 도착했다는 과장된 전설이 있을 만큼 순탄한 편이다.
어느새 밤하늘을 곱게 수놓은 별들은 자취를 감추고 서서히 어둠이 걷히기 시작한다.
피아골로 빠지는 임걸령삼거리에서 숲 터널을 이룬 오솔길을 따라 임걸령 샘터에 닿는다.
해발 1,320m의 높은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우뚝 솟은 반야봉이 북풍을 막아주고 노고단의 능선이 동남풍을 가려주어 산속깊이 자리한 아늑하고 조용한 천혜의 요지이며 샘에서는 언제나 차가운 물이 솟고 물맛 또한 좋기로 유명하다. 임걸령이란 이름은 조선 명종 때의 초적두목 임걸년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단다.
샘물 한바가지 목 줄기를 따라 시원하게 흘려보내고 잠시 여유를 부린다.
동쪽하늘에 붉은 선이 가로지른다.
반야봉으로 오르는 삼거리 갈림길을 지나면 노루목이다. 반야봉의 지세가 마치 노루가 머리를 치켜들고 있는 암두(岩頭)를 이루고 있는듯하다 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발 1,550m 삼도봉(三道峯)은 지리산을 삼도로 구분하는 기점이다. 봉우리에 황동으로 만든 삼도를 상징하는 삼각뿔이 세워져 있고 각 방향에 3도(경상남도와 전라남도, 전라북도)의 이름이 적혀 있다.
원래 이 봉우리는 정상 부분의 바위가 낫의 날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 해 낫날봉으로 불렸다한다. 낫날이란 표현의 발음이 어려운 탓에 등산객들 사이에선 '낫날봉'이 '날라리봉' 또는 '늴리리봉' 등으로 더 알려져 있었다. 조금 천박한 느낌의 날라리봉 등보다 삼도의 경계기점이란 뜻의 삼도봉이 훨씬 어울린다.
551개의 나무계단을 따라서 화개재로 내려선다. 화개재는 옛날에 뱀사골 사람들이 화개장을 보기 위해 넘던 고개라고 한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토끼봉을 오른다. 연하천산장까지 3km.
토끼봉이란 명칭은 주변에 토끼가 많다거나 봉우리가 토끼 모양이라서 그러는 게 아니고 반야봉을 기점으로 동쪽, 즉 24방위의 정동(正東)에 해당되는 묘방(卯方)이라 해서 토끼봉(卯峯)으로 부르는 것이다. 멀리 여성의 둔부처럼 솟구친 반야봉이 한 눈에 들어온다.
연하천 산장에 도착한다. 숲속을 누비며 흐르는 개울의 물줄기가 마치 구름 속에서 흐르고 있는 것 같다 하여 연하천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해발 1,480m에 위치한 연하천은 토끼봉에서 6km 남짓한 거리며 벽소령에서도 6km 거리에 있다.
아담한 연하천 산장은 50명 정도를 수용할 수 있는 초미니 산장이다. 2004년 여름 종주 길에서 갈증을 날려버린 시원한 캔 맥주(1캔 3500원)는 지금은 판매하지 않아 아쉽다.
산장 주변에는 동의나물이 군락을 이뤄 노란 꽃밭이 눈길을 끈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형제봉.
바위위에 뿌리를 내린 소나무가 눈길을 끌고 끝없이 이어지며 시원스럽게 펼쳐지는 지리의 장대한 산줄기가 꿈틀거린다.
해발 1,115m의 형제봉은 높이가 10m가 넘는 두 개의 바위이며 우뚝 솟은 봉우리가 우애 깊은 형제와 흡사하다해 붙여진 이름이다.
형제바위는 언 듯 보기에는 한 개의 큰 석상으로 보이나 자세히 살펴보면 서로 등을 맞대고 있는 두 개의 석상이다. 이 석상에 얽힌 전설이 전해져 온다. 지리산에서 두 형제가 수도를 하고 있을 때였다. 이들에 반한 지리산요정이 두 형제를 유혹하였으나 형제는 유혹을 물리치고 득도하였다. 그러나 성불한 후에도 집요한 지리산요정의 유혹을 경계해 형제가 서로 등을 맞대고 너무 오랫동안 부동자세로 서 있었기 때문에 그만 몸이 굳어 그대로 두 개의 석불이 되고 말았다고 한다.
형제봉 아래 연하굴이 있다.
벽소령은 지리산 중심부의 허리처럼 잘록한 고개로 높이가 1,350m이다. 벽소령을 둘러싸고 있는 주위의 높고 푸른 산들이 겹겹이 쌓여 깊은 달밤이면 푸른 숲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너무나 희고 맑아 오히려 푸르스름해 보이기까지 하여 벽소명월은 지리산 10경중의 하나로 꼽힌다.
옛날 선비샘 아래 상덕평마을에는 평생 동안 가난하고 천대받으며 살아온 한 노인이 살았는데 이 노인의 유언이 죽어서라도 사람대접 한번 받아보는 것이었다. 결국 아들들이 이 샘터 위에 무덤을 만들어 많은 사람들이 샘에서 물을 뜰 때면 반드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므로 결과적으로 이 노인의 무덤에 절하는 격이 되게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지금은 무덤도 안보이고 샘도 파이프로 연결하여 서서 받도록 조처하였기 때문에 이 씁쓸한 전설은 잊혀져 가고 있다.
둘레에 7개의 암봉이 기묘한 조화로 우뚝 서 있는 칠선봉은 일곱 선녀가 노닐었다는 전설을 가지고 있다.
잘디잔 돌이 10만여 평에 걸쳐 광활한 평원을 이루고 있다 해서 세석(細石)평전이다. 지리산 주능선에 자리 잡고 있는 최대의 평원지대다. 이 평원은 신라 때는 화랑의 수련도장으로, 한국전쟁 시절에는 빨치산의 활동 무대였던 곳이다.
세석평전과 영신봉을 배경삼은 세석산장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엽서처럼 평온한 모습으로 다가온다.
아고산대 특유의 황량함이 감도는 촛대봉에 오르면 천왕봉이 그 위용을 드러낸다.
촛대봉에서 바라본 천왕봉의 위용
연하봉 가는 길에는 얼레지가 군락을 이루고 멋진 자태를 뽐낸다.
연하선경(烟霞仙境)으로 유명한 연하봉.
옛날 시천 주민들과 마천 주민들이 매년 봄·가을 이곳에 모여 장을 열고 서로의 생산품을 물물교환을 했다는 장터목은 한산하다.
나무로 만든 빨간 우체통이 정겹다. 하늘아래 첫 우체통...
제석봉 일대를 뒤덮고 있는 고사목군락을 지난다. 10만 여 평의 완만한 비탈에 고사목들이 서 있고 바닥은 풀밭뿐이다. 6. 25전 세력가에 의해 벌목되었으며, 그 증거를 없애려고 방화했다고 하니 고사목이 아니라 실은 횡사목인 셈이다.
천왕봉은 동쪽에 중봉을, 서쪽에 제석봉을 나란히 거느리고 있다. 제석봉은 높이가 1,806m로 지리산에선 중봉 다음으로 세 번째 높은 봉우리이다.
제석봉에서 바라본 천왕봉
깎아지른 벼랑 속으로 작은 통로를 비집고 철다리를 타고 갈지자로 오른다. 신선들까지도 이 문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하늘에 오르지 못한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통천문이다.
해발 1,915m 지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에 닿는다.
지리산은 누구에게나 품을 열어주어도, 천왕봉은 아무나 오를 수는 없다고 했던가!
남명 선생이 "하늘이 울어도 아니 우는 뫼(萬古天王峰 天鳴有不鳴)" 라고 지리산 영봉의 장엄함을 찬탄했듯 천왕봉은 여전히 제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동서남북 사방을 둘러보아도 거칠 것 하나 없는 천왕봉 정상에서의 전망은 장엄하기 이를 데 없으며 지리산의 웅장한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천왕봉의 해돋이는 천지개벽을 보는 것 같은 천하의 장관으로 지리산 10경중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탁 트인 시야가 온갖 잡념을 날려버리고 시원한 바람이 온 몸을 스치고 지나간다. 정상에 올라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느끼는 그 기분, 자연이란 그 어느 것보다 우리를 감동시키고 우리 마음을 가라앉혀 주는 재주를 가진 마법사인 듯하다.
개선문(凱旋門). 천왕봉 서쪽의 통천문과 함께 천왕봉을 오르는 관문인 셈이다. 마치 개선하는 기분이 든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달리 개천문(開天門)이라고도 불린다.
이틀전 새로 준공된 로터리산장 식수대.
법계사. 법계사에서 천왕봉까지 이정표상 거리로는 2km밖에 되지 않지만 매우 가파른 오르막길이다.
등산로변에 홀로 서 있는 망바위. 마치 경계병처럼 망을 보고 있는 듯해서 붙여진 이름인 것 같다. 1489년 4월 중산리로 해서 천왕봉을 올랐던 조선시대 김일손의 지리산 기행문에도 나오는데 그는 이 바위를 세존암이라 부르고 있다고 한다.
중산리 탐방지원센터. 지리종주 완료. 14시간 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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