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17일(일)
간드럭-번시카르카-따다파니
새벽 2시 30분 소변 때문에 잠이 깼는데 다시 잠이 오지 않는다. 이리저리 뒤척이다 다시 잠이 들어 5시 30분 잠자리에서 일어난다. 좋은 침낭 덕분에 따뜻하게 밤을 보낼 수 있었다.
아침식사 준비를 위해 스텝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바뿐 가운데서도 방마다 돌아다니며 따뜻한 밀크차 서비스를 한다. 매우 친절하다. 고생하러 온 것이 아니라 호강하러 온 것 같다. 몸도 마음도 눈도 정신까지도 호사를 누린다.
포터(쿨리)들은 짐을 대바구니에 넣어서 진다. 그 대바구니는 위가 넓고 아래가 좁다. 무게를 위에서 분산하는 효과가 있어서 아주 과학적이다.
이들은 이마로 짐을 진다. 그 이유는 그들이 고산족이기 때문에 가슴이 좁다. 폐가 작다는 뜻이다. 산소가 희박한 고산지대에서 적은 산소를 마시고도 살아 갈 수 있게 신체구조가 그렇게 되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쿨리가 우리처럼 지게를 이용한다면 가슴에 압박을 받아 견딜 수가 없게 된다.
안개비가 내린다. 고레파니에는 눈이 내리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스텝들이 정성스럽게 준비한 아침식사를 하고 숭늉과 순달라로 마무리하고 대충 짐정리를 한다.
스텝들은 아침 식사를 찌야(홍차와 우유를 섞은 차) 한 잔을 마시는 것으로 끝내기 때문에 식사시간이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그래도 배가 고프지 않는다고 한다.
먼저 출발하는 포터들에게 초코파이와 기념 볼펜을 선물하고 커피를 마시며 휴식을 취한다.
휴대폰을 사용하는 롯지 주인아주머니의 모습에서 낯설음이 느껴진다.
9시 정각. 힘찬 파이팅을 외치고 숙소를 출발한다. 가방을 메고 등교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보인다. 이곳은 금요일에 오전 근무만하고 토요일은 휴뮤이며 일요일부터 한 주가 시작된다고 한다. 2, 3, 5학년 남학생들에게 볼펜과 초콜릿을 나누어주자 “나마스테”하며 얼굴 가득 함박웃음을 띤다.
뿌연 안개 속을 줄지어 오른다. 울퉁불퉁한 돌길이 이어진다. 숙소를 출발할 때부터 누렁이와 검둥이가 계속 따라온다.
어제와 달리 태곳적 느낌이 드는 원시 밀림의 울창한 숲 사이로 난 길을 따라 안개 속을 헤치며 한걸음씩 내딛는다. 공기가 상큼하다. 걸으면서 살아있음에 또 이렇게 걸을 수 있도록 건강을 허락하심에 신께 감사한다. 향기가 천리까지 퍼진다고 하여 이름 붙여진 천리향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고가의 화장품 원료로 사용된다고 한다.
계곡이 가까워지고 콘크리트 다리를 건너 천천히 돌계단을 오른다. 지리산의 어느 계곡을 걷는 듯한 느낌이다. 약간은 음산하다.
11시 20분 버이시카르카(Bhaisi Kharka) 힐사이드 파라다이스 롯지에 닿는다. '버이시'는 물소를, '카르카'는 오두막을 의미한다. '버이시카르카'는 물소를 키우는 사람들이 임시로 모여 살던 오두막이 있던 곳이다. 두 개의 작은 롯지가 영업을 하고 있다.
먼저 도착한 스텝들은 점심식사 준비가 한창이다. 일행은 롯지 난롯가에 모여 앉아 땀에 젖은 옷을 말리며 휴식을 취한다. 나무를 연료로 사용하는 난로인데 고구마나 떡가래를 구어 먹으면 좋을 것 같다.
점심 메뉴는 김치전과 수제비다. 롯지의 주인 딸 마야는 올해 18살의 처녀인데 매우 개방적이고 활기찬 성격이다. 한국에 가는 것이 소원이란다. 주인 부부가 나를 보고 결혼했나고 묻는다.
점심 식사 후에도 난롯가에서 오랫동안 휴식을 취한다. 안나푸르나 라운딩 트레킹에 도전했다가 고소증세가 와서 실패하고 푼힐전망대 코스를 트레킹하는 한국 대학생 두 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롯지를 출발하여 정글지대로 들어서자 엄청나게 커다란 나무들이 안개와 어우러져 신비스럽다. 네팔의 국화인 라리구라스(Lariguras : 철쭉과의 Rhododendrhon)와 자작나무 숲으로된 밀림지대를 지난다. 깊은 고요가 흐르고 사색에 잠긴다. 가랑비가 내린다.
점심 식사를 마치고 출발한지 1시간 만에 따다파니(Tadapani)에 도착한다. 이곳은 삼거리 갈림길로 오른쪽은 안나푸르나 베이스캠프(ABC)트레킹 코스이고, 왼쪽은 푼힐 전망대가 있는 고레파니로 가는 길이 갈라진다.
따다파니는 안나푸르나 사우스(Annapurna South, 7219m), 히운출리(Hiunchuli, 6441m), 마차푸차레(Machhapuchhare, 6993m)를 다른 각도에서 방해물 없이 볼 수 있기 때문에 인기가 좋은 View Point인데 짙은 안개로 조망이 없어 무척 아쉬움이 남는다.
숙소인 파라다이스 롯지에 여장을 푼다. 방에는 냉기가 흐르고 화장실은 수세식으로 밖에 있으며 공동으로 사용한다.
스텝들이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사이 주인아주머니가 우리가 앉아 있는 '다이닝룸' 식탁 밑으로 불이 벌겋게 붙어있는 숯 덩어리를 넣어준다. 식탁에는 따로 커튼이 둘러쳐 있어 뜨거운 공기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는다. 그 안에다 발을 넣고 있으면 금세 다리가 뜨끈뜨끈 해진다. 탁자에 둘러 앉아 담소를 나눈다.
이곳 주인 딸 로비따(17세)는 아주 미인이다. 네팔은 16-7세 정도가 결혼 적령기라고 한다.
전구에 불은 5시가 되어야 들어온다고 한다. 먼저 켜는 곳만 들어오고 늦게 켜면 전력이 부족하여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고 한다. 전력은 거의 수력발전을 통해 공급된다. 건기에는 저수량 부족으로 수력발전이 원활하지 못해 수도인 카트만두에서도 전력 공급이 제한되고 있다.
저녁메뉴는 감자전과 육개장이다. 점심 때 만난 대학생들을 초대하여 함께 저녁식사를 나눈다. 아래에서 따뜻한 온기가 전해오는 탁자에 둘러앉아 노래를 합창하며 무료함을 달랜다.
9시에 잠자리에 들었으나 새벽 3시 소변 때문에 잠에서 깼는데 컨디션이 엉망이다. 낮에 비를 피해 걸음을 빨리 했던 것이 원인인 모양이다. 타이레놀을 복용하고 다시 잠을 청한다.
Tip 고산병(고소증세)
트레커들 중에서 고산병에 걸리는 사람들의 태반은 너무 빨리 걸었기 때문이다. 히말라야 트레킹 시, 국내산행을 다니던 속도로 올랐다가는 90% 이상 쓰러진다. 그러므로 무조건 천천히 걸어야한다.
처음 시작할 때 체력 좋다고 서두르지 말자. 고산 트레킹에서는 처음 2~3일이 제일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 때 고소적응에 실패하면 트레킹 내내 고통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빨리 걷고 쉬고를 반복하지 말고 똑같은 걸음으로 쉬지 않고 천천히 걸으며 안정된 호흡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체력을 보강한다고 저녁에 과식을 하면 고산병에 걸릴 확률이 높다. 위장은 사람이 잠을 자고 있는 동안에도 멈추지 않고 계속 소화운동을 한다. 운동하는 동안 산소가 필요하다는 것은 당연한 일, 위장을 빨리 쉬게 해야 한다.
술은 고산병 극복의 최대 적이다. 등산 중에 담배를 줄여야 한다는 얘기는 따로 할 필요가 없다.
고산지역은 습도가 적고 자외선이 강해 몸에서 수분이 빨리 빠져나간다. 신체 내의 수분이 부족해지면 신진대사가 느려지고, 그러면 몸의 각 기관에 원활한 산소 공급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틈나는 대로 물, 차, 음료 등을 자주 마셔 수분을 보충해 줘야 한다. 한 번에 많이 마시지 말고 갈증이 생기지 않도록 미리, 자주 마셔야 한다.
따뜻한 옷가지, 침낭, 윈드 재킷 등 트레킹 장비를 충실하게 준비해야 한다. 고산지대는 언제든지 날씨가 악화될 수 있다. 준비 없이 악천후를 만날 때 고산병도 함께 찾아온다. 고산병은 장비 부족으로 인한 심리적인 불안 상태에서 급격히 증세가 악화될 수도 있다.
체온을 잃게 되면 몸은 제대로 기능을 발휘할 수 없으므로 아프거나 쉽게 지치게 된다. 수면을 취할 때도 몸을 따뜻하게 해줘야 하고, 트레킹 도중 휴식을 취할 때는 꼭 몸이 식지 않도록 겉옷을 입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