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여행스케치

윤증선생 고택

조선 숙종 때 학자 윤증선생고택(尹拯先生故宅)은 충남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에 위치하며, 이곳은 17세기 말 소론의 거두였던 윤증을 중시조로 모시는 파평 윤씨 노종파 종갓집이다.


윤증고택의 명칭이 2007년 1월 30일자로 논산명재고택으로 바뀌었다.


명재(明齋) 윤증(尹拯) 선생(1629~1714)은  조선 인조 시대의 문신 윤황의 손으로 김집, 송시열에게서 수학하였고  여러 차례 임금의 교지를 받았으나 벼슬자리에 나아가지 않고, 평생을 청빈하게 살아 ‘백의 정승’이라고 불렸던 조선시대의 유명한 성리학자이다.  숙종 때에는 소론의 거두가 되었다.


선생은 관직에 오른 적이 없었으나, 사실상 소론을 이끈 정치개혁의 기수이었다. 윤증 고택의 입지는 특별한 장소성을 가지고 있다. 곧, 노성 향교가 윤증고택의 왼쪽(서쪽)에 자리 잡고 있고, 노성 궐리사가 오른쪽에 자리 잡고 있다. 궐리사란 공자의 영정을 봉안한 건물을 이르는데, 우리나라에는 수원과 노성 두 곳에 있다.


중요민속자료 190호로 지정되어 있는 윤증 고택은 18세기 초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윤증 고택은 ㄷ자 모양의 안채와 일자형의 문간채가 튼 ㅁ자 모양을 이루고 있으며 여기에 사랑채가 연결되어 있고 사랑채 후면, 높은 곳에 사당이 배치되어 있다. 윤증 고택은 조선시대 중기의 가장 전형적인 상류주택이라고 할 수 있다.


구조가 간결하면서 견실해 신선한 맛을 풍기는 조선 후기 한옥으로 후손들이 고택에 그대로 살고 있어 깨끗하게 보존됐다. 담장과 행랑채 대문이 없는 독특한 모습이다.


그 고택 앞마당, 널찍한 연못 인공 섬 위에 네 그루 배롱나무가 있다. 배롱나무는 여름 100일 동안 붉은 꽃을 피우는 나무. 원래 백일홍나무로, 발음이 편한 배롱나무로 바뀌어 불리다 그대로 굳어졌다. 명재 고택 배롱나무들은 꽃을 두 군데에 틔운다. 가지 끝에 하나, 연못 위에 또 하나. 가지가 수면과 멀지 않아 물에 비친 꽃 그림자가 하나하나 뚜렷하다. 짙푸른 연못, 붉은 배롱나무 꽃, 그 머리 위로 펼쳐지는 새파란 하늘은 명재 고택이 주는 값진 선물이다.


윤증 고택은 200년간 이어 온 장맛이 일품이다. 새로 담근 장을 묵은 간장에 부어 만든 되매기 장은 전국적으로 유명한 건강식이다. 묵은 항아리에 햇장을 첨장해 간장독째 전(傳)한다고 해서 전독간장으로도 불린다.


종택이라는 믿음에 더하는 엄격한 장맛 관리를 하는 교동간장.

校東. 윤증고택의 서쪽에 향교가 있다는 뜻이란다. 400개의 큰 장독이 보무도 당당히 열병을 하고 있는 장독이 향교 동쪽이라서 [교동]이라 브랜딩이 되었단다.


음력 10월에 메주를 떠 이듬해 추석에야 간장을 만들어 낸다. 직접 담근 된장, 간장, 고추장 등은 판매도 하고 있다. 사랑채는 전체를 일반에 개방하고 있다. 1박에 6~8만원.


충남 논산시 노성면 교촌리.(041)735-1215, www.yunjeung.com





























윤증은 제자들이 정성껏 지어준 이 집에 기거하지 않았다. 윤증 고택은 정작 윤증이 기거하던 곳이 아니어서 더 감동적이다. 조선후기 소론의 기초를 다진 대학자였던 윤증은 평생 단 한 번도 벼슬길에 나서지 않고 청빈하게 살았다. 초라한 집에 거주하는 스승이 송구스러워 제자들이 정성껏 집을 지어 내주었지만, 정작 윤증은 ‘큰 집이 내겐 과분하다’며 기거하던 초라한 집에서 나오질 않았다.



▲고택 정면 왼쪽에 방형의 연못이 있으며, 우측에는 전나무와 향나무로 단장된 우물이 자리한다.











▲명재고택에서 멋은 역시 연못이다. 배롱나무 몇 그루마저 손님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징검다리로 연결시켜 두었다.



'여행스케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대만여행1  (0) 2008.08.01
공주 영평사  (0) 2008.07.23
대자연의 아름다움  (0) 2008.07.23
일본 북알프스5  (0) 2008.07.23
일본 북알프스4  (0) 2008.07.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