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 2007년 10월 7일(일)
산행코스 : 오색-대청봉-무너미고개-공룡능선-마등령-오세암-백담사
가을이 오는 길목 입니다.
멀리서 아주 멀리서 새끼 강아지 걸음처럼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나 바다 끝에서 연분홍 혀를 적시고
떨리듯 다가오는 미동 괜스레 가슴이 미어집니다.
가을이 오고 있습니다.
내 마음 안달이 났습니다.
차마 전하지 못했던 사랑 가을보다 먼저 전하고 싶어서
내 마음 안달이 났습니다.
-김용채님의 시 가을편지 중에서-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바람 속에는 성큼 다가선 가을 냄새가 묻어난다. 진해진 풀벌레 소리, 익어가는 홍고추, 조금씩 고개를 숙이며 누렇게 익어가는 벼들…. 계절은 그렇게 소리 소문 없이 조심스레 우리 곁을 지나치기도 하고 다가서기도 한다.
비가 온다는 일기 예보가 있어 다소 심난했지만 예정대로 설악산 공룡능선 산행을 떠난다.
차내는 소등을 하고 버스의 흔들거림에 엷은 잠을 헤맨다. 자정 음성휴게소에서 10분간 정차하고 호법분기점에서 영동고속도로로 들어서 원주방면으로 약 30분 동안 달리고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로 들어선다. 홍천요금소를 빠져나와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접어들어 44번 국도를 타고 홍천·속초방향으로 향하다가 국도변에 위치한 홍천 만남의 광장 휴게소에서 한 번 더 정차한다.
한계령휴게소를 지나고 굽이굽이 내리막길을 지그재그로 서서히 내려간다. 고요하던 차내가 산행 준비에 갑자기 분주해진다.
새벽 3시 30분 산행 들머리인 오색에 도착하여 설악산 국립공원 남설악탐방지원센터 앞에서 산행객들을 내려놓는다.
‘오색’ 이라는 지명은 성국사(일명 오색석사) 뜰에 다섯 가지 색의 꽃이 피는 오색나무(→오상나무)가 있었다고 해서 유래된 이름이라 한다. 일설에는 다섯 가지 색의 돌 또는 여러 가지 색깔의 돌들이 주변에 많이 있기 때문에 오색석사라 부르게 되었다고도 한다.
아침식사용으로 제공된 찰밥 도시락을 받아 배낭에 넣고 탐방지원센터로 들어서 랜턴 불빛으로 어둠을 밀어내며 진행한다. 동료의 모습들은 어둠 속에서 보이지 않고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걷는 사람들의 목소리만 조용히 바람을 타고 들려온다. 설악폭포을 통과한다. 정상인 대청봉까지는 2.5km. 계곡을 시원스럽게 흐르는 물소리만이 귓가에 전해온다.
길은 넘치는 등산객들로 정체된다. 인생이 그러하듯 정상을 오르는 길은 혼자 걸어야 할 만큼 좁다. 성급한 마음에 서두르면 앞사람을 길옆으로 밀쳐야하며 자칫 사고를 일으킬 수 있다.
5시 계단 공사 중인 구간에서 극심한 정체가 일어나자 성질 급한 한 두 사람이 옆으로 새치기하고 그 뒤를 따르는 사람들로 차례를 지키던 줄이 엉망이 되어 순간 아수라장으로 변한다. 어둡고 울퉁불퉁한 바위 구간이라 사고가 걱정된다. 지난여름 일본의 북알프스를 산행하면서 보았던 일본 사람들의 서로 양보하고 배려하는 산행 문화가 부럽기만 하다.
제3쉼터(해발 1300m)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경사가 훨씬 가파르다. 제3쉼터를 지나면서 랜턴 없이 진행한다.
6시 30분 멋진 구상나무가 보인다. 정상이 그리 멀지 않았다. 마지막 오르막을 오르고 7-8분 진행하면 옛날 대피소로 사용되던 벙커가 폐허로 방치되어 있었는데 깔끔하게 철거되었다. 곧바로 대청봉에 닿는다. 들머리에서 약 3시간 소요.
대청봉 표지석을 배경으로 증명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 없이 인산인해다. 1708m 대청봉이라고 빨간색으로 음각된 글씨를 바라보고도 이제는 무덤덤하다.
설악산은 삼국사기에 설화산(雪華山)이라는 이름으로 나온다. “아침 햇살이나 노을이 비낄 때에는 마치 눈이 내린 듯 하얗게 빛난다” 해서 설산, 설화산이란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설산(雪山), 또는 설봉산(雪峰山)이라고 불러왔다. 지금은 이 산을 대개 설악산이라고 하지만, 옛 지도들에선 대부분 뒤에 산 자가 빠진 설악(雪岳)이라고 표기해 놓고 있다.
세찬 바람에 등 떠밀려 중청대피소로 향한다. 중청은 마치 붉은 카펫을 펼쳐놓은 듯하다. 오른쪽으로 공룡이 모습을 드러내고 동해바다도 아스라이 시야에 들어온다.
7시 중청대피소 도착. 아침식사를 하는 산행객들로 북새통이다. 중청산장에서 본 대청봉은 마치 피라미드처럼 대칭 삼각형을 이루고 있는 형상이다.
1분쯤 지나면 끝청갈림길(해발1600m)이다. 왼쪽은 한계령(7.7km) 가는 길이다. 중청봉 허리를 오른쪽으로 돌면 바위 조망지대가 나타나고 설악의 꽃으로 불리는 공룡능선과 용아장성이 유혹한다. 소청으로 내려가는 길은 완만한 능선으로 조망도 아주 좋다.
7시 30분 소청봉(해발1550m)에 도착한다. 갈림길에서 왼쪽은 소청대피소(0.4km)를 거쳐 백담사(11.7km)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희운각대피소(1.3km)를 거쳐 비선대(6.8km) 또는 공룡능선 가는 길이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선다. 예전에는 가파른 내림길이었으나 지금은 계단을 설치하여 편하게 내려설 수 있다.
7시 50분 조망이 좋은 바위에 올라 앉아 공룡을 감상하며 아침식사를 한다. 이 순간은 세상 누구도 그 어느 것도 부러울 게 없다.
8시 35분. 희운각에 도착한다.
희운각 대피소를 지은 사람은 최태목씨 라는 분이다. 산을 좋아한 아들이 어느 해 겨울 희운각 위에서 불행하게도 조난을 당하여 세상을 떠났다고 한다. 대피소가 있었으면 살았을 아들을 생각하며 또 다른 조난을 막기 위하여 최씨가 지은 대피소라고 한다. ‘희운(熹雲)’은 최씨의 사랑하던 아들 이름이라고 한다. 설악산이 5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기 이전의 이야기라고 한다. (희운각 매점에서 채록)
식수를 보충하고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고 무너미고개로 향한다. 무너미고개는 천불동계곡과 가야동(伽倻洞)계곡의 경계에 위치하여 내외설악을 구분 짓는 곳이다. 무너미의 무는 물에서, 너미는 넘는다(건넌다)에서 왔다. 물을 넘는다(건넌다)란 뜻의 무너미를 한자(漢字)로 수유(水蹂), 수월(水越)이라고도 표기하는데, 이 지명도 전국에 무수히 많이 분포한다.
무너미고개는 갈림길이다. 오른쪽은 천불동계곡을 거쳐 비선대로 가는 길이고 왼쪽이 공룡능으로 가는 길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곳이다. 그래서인지 이곳에서는 다람쥐가 사람을 피하지 않는다. 사람들이 던져주는 음식 부스러기에 길들여진 탓이리라.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간섭이 드리우는 어두운 그림자의 한 부분이다.
왼쪽 길로 들어서 20분을 숨 가쁘게 올라서면 신선봉에 닿는다.
갑자기 눈앞에 펼쳐지는 대자연의 파노라마.... 내설악의 장엄한 경관이 한눈이 들어온다. 눈앞으로 펼쳐진 공룡 등에 기암괴석과 첨봉들이 사열하듯 늘어서 있고, 매봉, 1275봉, 그리고 저 멀리 마등령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오른쪽으로 울산바위와 동해 바다가 보이고, 왼쪽으로 깊고 깊은 가야동계곡과 용아릉이 웅장한 자태를 뽐내며 펼쳐진다.
천만 년을 내려오면서 자연 그대로 간직한 기암괴석의 경치가 아름다움의 극치를 이루며 봉우리마다 보는 각도에 따라 모습이 달라지는 신비함에 매혹된다. 한 마디로 신의 걸작품이요, 명작이다. 공룡능선을 오르지 않고는 설악을 이야기 말라고 했던 말의 의미가 마음에 와 닿는다. 생긴 모습 그대로 공룡이 용솟음치는 것처럼 힘차고 장쾌하게 보인다.
이곳을 찾은 게 몇 번째지만 눈앞에 펼쳐지는 모습은 늘 감탄사를 자아낸다.
공룡릉은 보통 무너미고개부터 마등령까지의 능선구간(5.1km)을 가리키는데, 이 능선을 경계로 동쪽지역을 외설악, 서쪽지역을 내설악이라 부르며, 그 생긴 모습이 공룡이 용솟음치는 것처럼 힘차고 장쾌하게 보인다하여 공룡릉(恐龍稜)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대자연의 파노라마에 넋을 잃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박선생님과 시원한 배 한 조각씩 나누어 먹고 신선봉을 내려선다.
두 번째 봉우리를 올라섰다 내려서 노인봉을 오르기 전 뒤돌아보면 왼쪽으로 커다란 공룡 한 마리가 숲속을 지나가는 모습이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앞 만 보고 진행하기에 미처 보지 못하는 장면이다.
거친 숨을 토해내며 노인봉(老人峰 해발 1,120m)에 도착한다. 저 멀리 비선대 위에 신선암이, 그 멀리에는 울산바위가 흰 속살을 다 드러내고 동해는 이들을 떠받들고 있는 듯하다.
뒤쪽으로는 천화대(天花臺 북동쪽으로 뻗은 20개의 암봉 )범봉의 웅장한 자태와, 인간들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아 왔던 내설악의 용아장성이 손에 잡힐 듯 하고, 저 멀리 서북능선을 따라 귀때기청과 끝청, 그리고 대청봉의 장엄한 모습이 아스라이 멀게만 느껴진다.
10시 정각 “희운각 2.4km 마등령 2.7km" 이정표가 보이고 왼쪽으로 샘터가 있다. 공룡능선 상에서 식수를 보충할 수 있는 유일한 샘터인데 갈수기에는 물이 마른다. 지금은 등산로 복구공사 중인 인부들의 임시 숙영지로 사용 중이다.
등산로 오른쪽 바위 전망대에 오르면 1275봉의 모습을 아무런 방해도 받지 않고 카메라에 담을 수 있다.
10시 15분 1275봉을 오른다. 암반에 난간을 설치하여 안전하게 잡고 오를 수 있다. 샘터에서 약 20분이면 1275봉에 닿는다.
공터에는 마등령 2.1km이정표(누군가 이정표에 양각봉이라 써 놓았다.)가 서 있고 엄청난 높이의 수직 암벽이 병풍처럼 둘러싸여 있다. 곰바위 위에 올라서서 조망을 즐기는 산행객의 모습이 여유롭게 느껴진다. 예전에는 매우 가파르고 미끄러운 내리막길이었는데 지금은 돌로 잘 정비되어 있어 어려움 없이 내려설 수 있다.
동행한 박선생님의 배낭에서 어린아이 머리만한 배가 나온다. 그 배를 둘이 나누어 먹으니 배가 부르다. 이제 나한봉까지 3개의 봉우리만 넘으면 된다.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어 걱정을 많이 했는데 가을 날씨에 조방도 좋아 멀리 대청봉과 중청봉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모습이 한 눈에 들어온다. 햇빛도 없어 산행하기는 그만이다.
외설악 북쪽에 위치한 해발 650m의 거대한 바위산인 울산바위는 6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방이 절벽이고 암벽이 험난하여 일반 사람은 등반하기 어려웠으나, 오 수영 씨가 쇠다리를 가설하여, 지금은 쉽게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이름의 유래에 대하여는 3가지 전설이 전해진다.
첫째, 조물주가 금강산을 만들 때, 경상남도 울산지방의 거대한 바위가 금강산으로 찾아가다가 여기에 자리 잡게 되었기 때문에 울산바위라고 한다.
둘째, 거대한 바위가 마치 울타리처럼 우뚝 솟아 있으므로 울산이라고 한다. 다른 말로 '울타리 리(籬)'자를 써서 이산(籬山) 이라고도 한다.
셋째, 우는 산, 울고 있는 산이란 의미의 울산이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천둥이 치면, 산 전체가 뇌성에 울리어 흡사 산이 울고 하늘이 으르렁거리는 것 같다고 하여 울산, 또는 한자로 천후산(天吼山)이라고 한다.
다음 봉우리 내리막은 정체구간이다. 계단 설치가 필요한 구간인데 난간만 설치되어 있다.
10여분 더 진행하면 커다란 소나무 한 그루가 바위에 뿌리를 내리고 위태한 모습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공룡능선에서 가장 정체가 심한 곳으로 예전에는 나무에 밧줄만 매어 있었는데 쇠난간을 설치하고 새롭게 정비하여 오르기가 훨씬 수월해졌다.
성벽처럼 둘러친 바위의 밑을 따라가다 한차례 더 가파르게 오르막길을 치고 오른다.
11시 35분 나한봉(1250m) 도착한다.
나한봉(羅漢峰)에 올라서면 험하기로 소문난 용아가 부드러워 보인다. 그 너머로 귀때기청봉, 대승령, 안산으로 이어지는 서북능선이 눈에 들어오고, 용아 아래로 가야동계곡(지금은 휴식년)이 보인다. 용아능 너머의 구곡담계곡, 백운골, 귀때기골 등이 모여 수렴동으로 수렴하고 이어서 백담으로 이어진다. 나한봉은 불교의 수호신인 나한(羅漢)에서 그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설악의 모습과 멀리 울산바위와 그 뒤의 동해바다까지 시원스러운 조망을 감상하며 마등령에 도착한다. 무너미고개에서 꼭 3시간이 소요.
마등령은 내설악과 외설악을 연결하는 고개로 동으로 금강굴, 비선대, 서로는 오세암, 백담사, 남으로 공룡능선, 대청봉, 북으로는 저항령, 황철봉, 미시령으로 연결되는 교통의 중심지이다.
지금은 등산객들만이 넘어 다니나, 옛날에는 행상인, 민초들이 동서를 넘어 다닐 때 이용하였다고 한다. 말 등처럼 생겼다고 하여 마등령이라고 하기도 하고, 《설악(雪嶽)의 뿌리》에는 산이 험준하여 손으로 기어 올라가야 한데서 유래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늘에 앉아 떡과 간식거리로 허기를 채우고 박선생님이 집에서 직접 담근 거라며 주시는 복분자주를 한 잔 마시니 나른함이 밀려온다.
살아 있음이 행복한 나의 생의 가장 젊은 날,
존재함이 아름다운 나의 생의 가장 고귀한 날,
오늘은 가득 찬 기쁨 느낄 수 있도록 웃으며 바라본다.
20분간의 점심식사를 마치고 왼쪽 오세암을 향해 걸음을 옮긴다. 돌로 잘 정비해 놓은 길을 따라 30여분 내려서면 봉정암(4km) 갈림길 이정표가 보이고 곧바로 오세암에 도착한다.
2004년 가을 등사대모 팀과 백두대간 종주를 하면서 산행객이 너무 많아 공룡을 타지 못하고 무너미고개에서 가야동계곡으로 내려오다가 오세암을 거쳐 백담사로 하산한 적이 있다. 온 산을 빨갛게 물들인 단풍이 정말 아름다웠던 기억이 떠오른다.
1643년(인조 21) 설정(雪淨)이 중건하고 오세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는데, 이름을 바꾼 데 따른 전설이 전하고 있다.
설정이 고아가 된 형님의 아들을 이 암자에서 키웠는데, 어느 날 월동 준비를 하기 위해 혼자 양양까지 다녀와야 했다. 그 동안 혼자 있을 4세 된 어린 조카를 위하여 며칠 동안 먹을 밥을 지어놓고, 조카에게 밥을 먹고 난 뒤 법당에 있는 관세음보살상에게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이라고 부르면 잘 보살펴줄 거라고 일러주고 암자를 떠났다.
그러나 설정은 밤새 내린 폭설로 이듬해 눈이 녹을 때까지 암자로 갈 수 없게 되었다. 눈이 녹자마자 암자로 달려간 설정은 법당에서 목탁을 치면서 관세음보살을 부르고 있는 조카를 보게 되었다. 어찌된 연유인지 까닭을 물으니 조카는 관세음보살이 때마다 찾아와 밥도 주고 재워 주고 같이 놀아 주었다고 하였다.
그때 흰옷을 입은 젊은 여인이 관음봉에서 내려와 조카의 머리를 만지며 성불(成佛)의 기별을 주고는 새로 변하여 날아갔다. 이에 감동한 설정은 어린 동자가 관세음보살의 신력으로 살아난 것을 후세에 전하기 위하여 암자를 중건하고 오세암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오세암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박선생님이 오시길 기다리는데 오랜만의 장거리 산행에 처음 타는 공룡능선으로 힘드시는지 늦어진다.
백담사에서 용대리행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시간을 위하여 먼저 출발한다. 그늘 짙게 드리운 숲속 부드러운 길을 6-7분 진행하면 오세암 고개에 닿는다. 예전의 뚝 떨어지는 가파른 내리막길 대신에 왼쪽으로 휘어져 내려가는 길을 다시 내 놓았다.
0.5km 마다 설치한 이정표를 스쳐 지난다. 오세암 갈림길(백담사 3.9km, 오세암 2.5km, 봉정암 7.1km, 마등령 3.9km)까지는 약 40분이 소요된다. 곧이어 영시암이 보인다.
이곳 영시동(永矢洞)은 백담리 동쪽에 있는 마을로 6.25때 폐동 되었다. 영시암의 찬모가 어느 해 호랑이에게 물려가 호식동(虎食洞)이라고 하기도 한다.
영시암은 조선 인조 26년(1648)에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1653-1722)이 어지러운 세상을 떠나 영원히 세상과 인연을 끊고 이곳에 살기로 맹세하고 창건한 것이라 한다. 그래서 일명 삼연정사(三淵精舍)라고도 한다.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달래고 길을 재촉한다. 철다리 밑을 흐르는 계곡물에 잠시 발을 담그고 피로를 씻어낸 후 걸음을 재촉한다. 영시암에서 백담사까지는 약 40분 정도 소요.
14시 40분. 백담사에 도착하여 11시간의 산행은 끝이 난다.
어찌 보면 역사의 아픔이며 부끄러움이기도한, 전직 대통령이 유배를 함으로 세간에 널리 알려진 내설악의 명찰 백담사(百潭寺)는 만해 한용운 스님의 ‘님의 침묵’ 집필로 더욱 유명하다.
백담사는 신라 제28대 진덕여왕 원년(647년) 자장율사가 한계사란 이름으로 개창한 사찰이다. 창건 이래 지금의 명칭으로 불리기 시작한 1783년까지 무려 일곱 차례에 걸친 화재를 만났는데 그때마다 터전을 옮기면서 이름을 바꾸었다.
주지스님의 꿈에 나타난 백발노인이 일러준 대로 대청봉에서 절까지 물웅덩이(潭)를 세어 백 번째가 되는 현재의 자리에 절을 세우고 ‘백담사(百潭寺)’라 이름 지은 후부터 좀처럼 화재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중심 법당인 극락보전을 비롯하여 산령각, 화엄실, 법화실, 정문, 요사채 등이 있으며, 뜰에는 삼층석탑 1기가 있고 옛 문화재는 남아 있지 않다.
용대리행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다리 끝까지 늘어선 줄 뒤에 선다. 혼자라면 한 시간 정도 기다리는 셔틀버스 대신에 걸어서 가고 싶은데 뒤에 오는 박선생님을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린다. 40분 정도 지나서 박선생님이 도착하여 20분을 더 기다려 셔틀버스에 오른다.
용대리까지 셔틀버스 요금은 1500원.
'설악산' 카테고리의 다른 글
18. 널협이골 (0) | 2008.08.28 |
---|---|
17. 대청봉-독주골 (0) | 2008.08.28 |
15-2. 백운동계곡 (0) | 2008.07.23 |
15-1. 독주골 (0) | 2008.07.23 |
14. 음지백판골 (0) | 2008.07.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