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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15-2. 백운동계곡

백운동 계곡


한계령 삼거리를 지나면 곧바로 넓은 공터가 나타나고 오른쪽으로 곡백운 초입이 있다. 직진하여 약 1시간이면 귀떼기청봉에 닿는다.

 

10시 55분 태곳적 원시미가 느껴지는 숲 속 희미한 길을 따라 내려서 계곡을 향해 진행한다.


 

40분 정도 내려서면 지난 3년간 계속된 폭우로 산사태가 나서 엉망이 된 지계곡을 만난다.

 

10여분 더 내려서면 백운동계곡 층층암반 지대에 닿는다. 암반에 자리를 잡고 삼삼오오 모여 앉아 점심도시락을 펼친다.


약 30분간의 점심식사가 끝나갈 무렵 하늘을 점령한 구름이 부슬비를 흩뿌리기 시작한다. 단체 기념사진을 찍고 걸음을 재촉한다. 미끄러지듯 암반을 타고 흘러내리던 물살은 낙차가 생기면 폭포로 변하고 그 밑에 소를 이룬다.


 

설악산의 등산코스 중 험난한 길 중 하나다. 그러나 절로 탄성을 자아내는 풍경들이 펼쳐진다. 백운폭포가 걸려 있는 곡백운 코스를 따라 내려간다.


 

서북능선 귀때기청봉과 1.474.3m봉 북사면에서 발원한 모든 물줄기가 모여들어 구곡담계곡의 지류를 형성하고 있는 백운동계곡은 웅장하면서도 수려한 자연미를 지니고 있는 골짜기로 유명하다.


 

인심 좋은 여편네처럼 ‘아름답다’는 꼬리표를 마구 퍼주고 나니 정말 아름다운 풍광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상선약수(上善若水)’, 즉 최고의 선은 물과 같다고 했다. 항상 낮은 곳으로 흐르며, 모나지 않고 모든 것과 조화를 이루는 물의 포용력에는 당해낼 재간이 없다. 물처럼 부드럽고 무위(無爲)하게 살아가면 그 보다 더 현명한 인생은 없을 듯하다.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 류 시 화

               

                세상을 잊기 위해 나는

                산으로 가는데

                물은 산 아래

                세상으로 내려간다

 

                버릴 것이 있다는 듯

                버리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있다는 듯

                나만 홀로 산으로 가는데

 

               채울 것이 있다는 듯

               채워야 할 빈 자리가 있다는 듯

               물은 자꾸만

               산 아래 세상으로 흘러간다

 

               지금은 그리움의 덧문을 닫을 시간

 

               눈을 감고

               내 안에 앉아

               빈 자리에 그 반짝이는 물 출렁이는 걸

               바라봐야 할 시간

 

약 1시간 후 곡백운 코스 중 가장 위험구간인 백운폭포 오른쪽으로 가파른 내리막길을 로프에 의지해 조심스럽게 내려선다.


높이가 약 30m의 백운폭포는 백운동계곡에서 가장 규모가 큰 폭포로 아래에서 쳐다봐야 폭포의 미를 제대로 감상할 수 있다.


 

폭포 상단부는 암반이 넓고 길게 형성돼 있고, 이곳에서 아래쪽으로 바라보이는 내설악의 자연은 설악산을 대표하는 풍광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웅장하면서도 아름답다.

 

백운폭포에서 약 30여분 내려서면 두 갈래의 계곡이 만나는 지점에 닿는다. 오른쪽 직백운계곡과 우리가 걸어온 곡백운계곡이 만나는 곳이다. 이곳부터 구곡담계곡에 이르는 구간은 백운동 계곡의 백미 구간이다.

 

 


 

암반이 넓고 길게 이어지는 가운데 널찍널찍한 소가 곳곳에 들어서 있고, 골짜기 양옆으로 거대한 암봉들이 우뚝 솟아 있어 계곡의 아름다움과 대자연의 장엄함을 함께 맛볼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와폭을 지나 10분 정도 더 내려서면 푸른 빛깔의 소 왼쪽 암벽의 사면을 조심조심 통과한다.


 

정면으로 용아장성의 옥녀봉이 눈에 들어오고 서북능선에서 백운동계곡 초입으로 들어선지 약 4시간 만에 백운동계곡을 빠져나와 대청봉에서 백담사로 이어지는 수렴동 계곡 정규등산로 상에 나무다리에 올라서면 백운동 이정표가 반긴다.


 

폭우로 끊어진 철다리는 계곡에 방치되어 있고 대신 나무다리가 새롭게 설치되어 있다.


 

백담계곡과 가야동계곡 중간에 위치한 수렴동(水簾洞)계곡은 백담산장에서 수렴동 대피소에 이르는 5㎞ 정도의 계곡으로 수량이 풍부하다.

 

옛 기록에 의하면 “수렴동 계곡은 영시동 동남쪽에 있는 골짜기로 폭포가 있는데 그 모양이 발(簾)을 쳐 놓은 것 같다”고 하여 유래된 이름이다.


 

만수담(백담사 6.5km)을 지나 수렴동대피소(영시암 1.2km 백담사대피소 4.7km)에서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달랜다. 수렴동대피소를 지나면서 빗줄기가 조금씩 굵어지고 걸음이 빨라진다.


 

오세암 갈림길(백담사 3.5km, 오세암 2.5km, 마등령 3.9km)까지는 20분이 소요된다. 곧이어 영시암이 보인다.


 

이곳 영시동(永矢洞)은 백담리 동쪽에 있는 마을로 6.25때 폐동 되었다. 영시암의 찬모가 어느 해 호랑이에게 물려가 호식동(虎食洞)이라고 하기도 한다.


영시암은 조선 인조 26년(1648)에 삼연(三淵) 김창흡(金昌翕·1653-1722)이 어지러운 세상을 떠나 영원히 세상과 인연을 끊고 이곳에 살기로 맹세하고 창건한 것이라 한다. 그래서 일명 삼연정사(三淵精舍)라고도 한다.


 

폐쇄된 백담산장을 지나 백담사에 도착하면서 12시간 30분간의 산행은 무사히 끝이 난다.


 

내설악의 명찰인 백담사(百潭寺)는 전두환 전 대통령과 만해 한용운 스님의 ‘님의 침묵’ 집필로 더욱 유명하다.


창건 이래 지금의 명칭으로 불리기 시작한 1783년까지 무려 일곱 차례에 걸친 화재를 만났는데 그때마다 터전을 옮기면서 이름을 바꾸었다.


이사 도중, 떨어뜨린 청동화로와 절구가 춘성군 절구골과 한계리 청동골의 유래가 되기도 했다.


주지스님의 꿈에 나타난 백발노인이 일러준 대로 대청봉에서 절까지 물웅덩이(潭)를 세어 백 번째가 되는 현재의 자리에 절을 세우고 ‘백담사(百潭寺)’라 이름 지은 후부터 좀처럼 화재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한다.


백담사에 들어가 법당과 전대통령이 기거했던 법당 앞 요사채를 둘러본다. 교만해지면 자신이 얻을 수 있는 즐거움과 행복이 줄어드니 결국은 인생에 막대한 손해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머리 속을 맴돈다.


 

셔틀버스 주차장으로 걸음을 옮긴다. 용대리까지 셔틀버스 요금은 1500원. 부슬부슬 비가 내리고 80년대 유행하던 음악이 흘러나오는 식당 앞 빨간색 파라솔 아래 원탁에 둘러앉아 산에가자님과 칸님이 준비한 싱싱한 회를 안주삼아 산행 뒤풀이를 한다.

 

나의 추억에 또 한 페이지를 멋지게 장식한 설악과 올 가을에는 진한 사랑을 나눌 기약을 하며 설악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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