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에는 조금 멀리 떨어진 롤루우스 유적을 찾았다.
롤루오스는 '하리하랄라야(Hariharalaya, 하리-하라[비슈누와 시바의 합체]가 사는 곳)'로 알려진 크메르 문명의 고대 중심지였다. 802년에 자야바르만 2세가 도읍지를 프놈 꿀렌에 정하면서 앙코르 시대가 막을 여는데, 이로부터 70년쯤 후에 왕이 도읍지를 이 곳으로 옮기게 된다. 농사가 잘 되어 식량 확보가 용이하고, 또 외적으로부터 방어하기에 좋은 위치였던 것이 이유였던 것 같다.
롤레이 유적의 양옆에는 스님들이 수양하고 있는 사원이 있다. 때마침 침례예식을 하는지 스님들이 사원계단에 주민들을 앉혀 놓고 머리부터 온몸에 물을 쏟아 붓는 모습이 이채롭다.
유적26. 롤레이
훼손이 심한 롤레이는 지금은 메워졌지만 과거에는 커다란 인공호수 한 가운데 세워져 배를 타고 사원을 드나들었다고 한다.
유적27. 쁘리아꼬
'신성한 소'라는 뜻으로 시바가 타고 다니던 소를 의미한다. 이름에 걸맞게 사원 앞에 등에 혹이 달린 소 3마리가 앉아있다. 왕실의 화장터와 묘지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꼬리 안에 있는 보물을 약탈하기 위해 꼬리를 뽑아낸 사자석상이 눈길을 끈다.
유적28. 바꽁
롤루우스 유적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중후한 건축물로 영혼의 안식을 위해 세워진 듯 하다. 기단 가장 위에 있는 중앙탑의 모습은 연꽃 모양을 하고 있다. 유적의 오른편에는 스님들이 수행하는 사원이 자리하고 있다.
똔레삽 호수로 가는 길가에 사는 사람들은 관광객들을 차량들이 다니면서 흙먼지를 일으켜도 불평하지 않았다. 비참한 그들의 삶과는 너무나 낯선 여행객의 모습이 뒤엉켜 있다.
가난하고 불편할 것이라는 동정심은 일방통행의 감정이다. 척박한 자연 환경에 적응한 삶의 양식이 이제는 관광상품이 되어 외화를 벌어들이고 있었다.
그들의 힘든 생활이 마음 아프지 않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마음은 아프되, 그들을 동정하고 싶지는 않았다. 동정심이란 저 사람과 나는 다르다는 것을 전제로, 나와 다른 그들의 삶을 힘들게 느껴지는 감정이 아닌가. 사실 크게 달라보여도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삶이 힘들게 느껴지는 것은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의 몫이다. 그저 그들을 통해 세상 살아가는 모든 이들의 공통적인 애환이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을 뿐이다.
똔레삽
'거대한 호수'라는 뜻의 똔레삽은 살아있는 생명체다. 메콩강의 영향을 받아 일년 중 6개월은 성장하고 6개월은 줄어드는 것이 이 호수의 라이프사이클이다. 11-3월 건기에는 서울의 5배정도 되는 면적이지만, 4-10월 우기에는 경상남북도를 합친 크기만큼 커진다.
모든 생활이 물 위에서 이루어진다. 그 물로 설거지와 빨래를 하고, 목욕도 한다. 대소변도 그대로 흘려보낸다. 자연의 정화능력에 철저히 의존해 사는 방식이다.
가난하지만 있을 것은 다 있다. 학교, 슈퍼마켓, 보트수리센터, 철물점, 당구장, 교회 등 육지의 여느 마을과 다르지 않다. 전기가 공급되지 않지만 자동차 배터리를 매일 충전해 불을 밝히고 텔레비전도 본다. 집집마다 주소가 있어 우편배달도 가능하다고 한다. 선상촌에 사는 사람들 중의 약 30%는 베트남 난민이라고 한다.
구걸을 하며 쫓아오는 아이들의 눈망울을 보면서 차마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돌아오는 길에 빅마트에서 3일 동안 우리를 태우고 다닌 승용차 기사(르왓)와 아쉬운 작별을 하였다. 빅마트는 이미 파장이었다. 뚝뚝을 타고 다시 올드마켓으로 향했다. 간단하게 저녁식사를 하고 호텔로 돌아오자 누군가 마치 왕궁에 돌아온 것 같다고 한다. 오랫동안 머릿속에서 그들의 모습이 맴돌았다.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누리고 사는지? 적어도 물질적인 풍요는 더 이상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2월 23일(목)-여섯째날
아침 식사를 하고 곧바로 25인승 미니버스를 타고 다시 방콕으로 돌아가는 긴 하루 여정을 시작한다. 거리의 모습들이 올 때보다 훨씬 정겹게 다가온다. 국경도 훨씬 편안하게 다가왔다.
뜨랑호텔에서 여정을 풀고 곧바로 DDM(방람푸 카오산지역 한인업소)에서 타이맛사지를 받았다. 이런 호사가 있을까. 발끝부터 머리까지 2시간 동안 이어지는 타이맛사지는 캄보디아여행의 피로를 한꺼번에 날려버렸다. 요금은 320밧.
예전에는 바트와 함께 달러가 통용됐었는데 위조지폐가 많아지면서 지금은 바트화만 사용된다. 그러나 시내 곳곳에서 쉽게 환전할 수 있다. 1달러=약 40밧
내일 칸자나부리 1일 트레킹(550밧)을 신청하고 박선생가족과 함께 성영씨가 안내하는 중국음식점을 찾았다. JE-HOY라는 간판을 내 건 중국집은 이곳에서 아주 이름난 곳이라고 한다. 한국인을 위해 한글 메뉴까지 있다. 세계 3대요리로 꼽힌다는 푸팟퐁커리(이름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를 안주 삼아 럼주에 콜라를 탄 술잔이 돌아가며 밤은 깊어만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