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행일시 : 2005년 10월 3일 (월)
산행코스 : 흘림골-0.9km-여심폭포-0.3km-등선대-0.4km-등선폭포-0.5km-무명폭포-0.5km- 십이폭포-0.8km-주전골삼거리-(용소폭포)-금강문-선녀탕-1.9km-오색(약 6.5km)
가을이 깊어가면서 산으로의 유혹도 짙어진다. 설악산. 누구나 한번쯤 꿈꾸는 산이다. 오늘 산행은 금강산 못지 않은 비경을 품고 있다는 흘림골을 택했다. 자연보호를 위해 출입이 통제되어 오다 지난해 20년 만에 개방된 곳이다. 신선이 올라가는 곳이라 하여 이름 붙여진 등선대를 거쳐 주전골로 내려가 오색약수터까지 이르는 길은 약 6.5km로 쉬엄쉬엄 걸어 4시간 정도 걸린다.
경부-중부-영동고속도로를 힘차게 달려온 버스는 만종분기점에서 중앙고속도로 갈아타고 홍천나들목을 빠져나가 44번 국도를 타고 진행하다가 화양강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위해 20여분 정차한다. 휴게소 뒤쪽으로 화양강이 흐르고 가을이 익어 가는 들판에서는 풍요로움이 전해진다.
우동 한 그릇으로 아침식사를 대신하고 계속해서 44번 국도를 타고 진행하여 한계리민예단지 삼거리에서 오른쪽 길로 들어서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힘겹게 한계령을 오른다.
한계령휴게소에서 대청봉으로 오르는 산꾼들을 하차시키고 양양방향으로 내려가다 길 한쪽에 잠시 정차하여 풍광에 넋을 놓는다.
흘림골입구는 한계령 휴게소에서 양양 방향 2km 지점에 위치한다.
9시 20분. 매표소를 통해 흘림골로 들어서자 울퉁불퉁 돌 박힌 완만한 오르막길이 오른쪽으로 옥류가 흐르는 계곡을 끼고 이어진다. 살랑살랑 부는 바람을 타고 싱그러운 숲 속의 아침 내음도 함께 코끝에 전해지고, 20년 동안 꼭꼭 감추어져 있던 비경들이 곳곳에서 속속 그 모습을 드러낼 때마다 달콤한 새벽잠을 반납하고 집을 나선 충분한 대가를 보상한다.
입구에서 여심폭포까지는 25분 정도 소요된다. 여심(女深)폭포는 높이 30m로 여성의 깊은 곳을 닮았다하여 그런 이름이 붙었다. 여신(女身) 폭포라고도 부른다. 보기에 조금 민망한 모습이지만, 여기서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 마시면 아들을 낳는다는 속설이 있어 한때 이 폭포는 신혼부부들의 단골경유지였다고 한다. 흘림골이라는 지명은 이 물이 흘러 들어가는 골짜기라고 해서 붙었다고 한다.
여심폭포에서 등선대까지 0.3km는 일명 깔딱고개라고 부른다. 숨이 턱까지 차 오른다는 뜻의 깔딱고개는 흘림골의 절정인 등선대에 올라 남설악의 비경을 구경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고된 고갯길이다.
선녀가 하늘로 오른다는 등선대(登仙臺 1,002m)는 흘림골 산행의 절정이다. 기암괴석의 바위덩어리를 힘겹게 오르면 설악에도 이런 절경이 있었나 눈을 의심할 정도로 남설악의 비경이 눈앞에 펼쳐진다. 벌써 고운 빛깔의 가을 옷으로 갈아입기 시작한 봉우리는 초록과 주황색 물감을 흩뿌려놓아 한 폭의 수채화가 되었다. 일곱 개의 암봉이 도열하듯이 서서 조화의 미(美)를 자랑하는 칠형제봉 뒤로는 안산에서 귀때기청봉을 거쳐 대청봉으로 이어지는 서북능선이 부드러운 곡선미를 자랑한다. 서북능선에 운무가 끼어 신비감을 더해 준다. 오색방향으로 내려 보이는 만물상 바위는 수만 개의 꽃송이를 연상케 한다.
30분이 넘도록 넋을 잃고 바라보다 아쉬움을 남긴 채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다시 고갯마루로 옮겨 등선폭포를 향해 계단을 내려선다. 등선대부터 오색주전골까지는 계속해서 내리막길이다. 나무 사이로 보이는 봉우리들은 서로 경쟁이나 하듯이 하늘높이 치솟았다.
20분이면 등선폭포에 닿는다. 20m 높이의 등선폭포는 좁게 파인 홈을 타고 폭포수가 흘러내린다.
다시 20분 정도면 역시 20m 높이를 자랑하는 무명폭포에 닿는다.
간식을 먹으며 10분간 휴식하고 잠시 가파른 오르막길을 올라 고갯마루에 서서 뒤돌아보니 만물상의 바위들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선다. 반대쪽에서 오르는 등산객들의 거친 호흡소리가 귀가를 스친다. 곳곳에 설치된 철계단이 안전한 산행을 돕는다.
무명폭포에서 20분 지나면 실타래를 풀어놓은 것 같은 와폭이 굽이굽이 방향을 바꾸며 부드러운 물보라를 만들어내는데 열두 굽이를 이어가며 물줄기가 힘차게 암반을 타고 흘러내려 이름 붙여진 십이폭포다.
등선폭포와 무명폭포를 지나 십이폭포에 이르면 설악의 또 다른 비경인 주전골을 만난다. 주전골은 옛날 도적들이 이 골짜기 바위 동굴에서 위조 주전을 만들다가 붙잡힌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십이폭포에서 주전골삼거리까지 0.8km는 외설악의 천불동, 내설악의 가야동과 함께 설악산 3대 단풍명소로 이름난 곳이다.
조그만 소 앞에 자리를 잡고 점심도시락을 펼친 일행 두 분과 함께 한 30분간의 점심식사는 과일 후식에 따뜻한 커피로 마무리된다.
주전골삼거리에서 왼쪽으로는 용소폭포, 오른쪽으로는 큰고래골이 이어진다. 금강문, 선녀탕, 오색제2약수, 오색약수터로 연결되는 이 곳을 한때 일부 등산객이 주전골로 잘못 알기도 했다. 주전골이 한때 출입이 통제되자 이 일대를 지명도에서 앞서는 주전골로 부르던 것이 와전된 까닭이다.
주전골삼거리 갈림길에서 왼쪽으로 2-3분 다리품을 아끼지 않으면 용소폭포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5m 정도의 와폭을 이루면서 내려온 폭포수는 바위가 푹 파인 공간을 안에 두고 4m 높이의 직폭을 만든다. 폭포는 검푸른 소와 조화를 이루고 부드러운 암반 위를 굽이굽이 흘러 내려간다.
옛날에 이 곳에서 천년을 살던 이무기 두 마리가 용이 되어 승천하려 하였으나 암놈 이무기는 준비가 안되어 하늘에 오르는 시기를 놓쳐 용이 되지 못하고 폭포 옆의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주전골삼거리로 돌아 나와 몇 걸음 옮기면 금강문이 나타난다. 예로부터 불교에서는 잡귀가 미치지 못하는 가장 강한 것이 가장 아름다운 것으로 생각하였으며, 주전골의 한 가운데에 위치한 이곳을 지나면 십이폭포, 용소폭포 등 주전골의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다하여 이곳을 금강문이라 부른다.
금강문을 통과하여 15분 정도면 선녀탕이다. 선녀탕(仙女湯)은 옥같이 맑은 물이 암벽을 곱게 다듬어 청류로 흐르다 목욕탕 같은 깨끗하고 아담한 소(沼)를 이룬다. 밝은 달밤 선녀들이 내려와 날개옷을 반석 위에 벗어 놓고 목욕을 하고 올라갔다는 전설이 서려있다.
때마침 선녀탕으로 외출을 나온 세 명의 천사들이 디카를 건네며 사진 촬영을 부탁한다.
등산화를 벗어놓고 한기가 감도는 물에 발을 담그자 뼛속까지 시원해지는 느낌과 함께 산행의 피로가 풀리는 듯하다.
선녀탕에서 뒤돌아보면 만물상 바위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촛불처럼 타오르기도 하고, 병풍처럼 펼쳐지기도 한 만물상은 주전골 풍경과 함께 아름다운 산수미를 과시한다.
선녀탕에서 오색약수터까지는 1.9km 큰고래골은 주전골에 비해 명성은 뒤지지만 역시 절경을 자랑한다. 울퉁불퉁한 근육처럼 튀어나온 바위 틈새마다 어떻게 나무들이 자리잡았는지 신기할 정도다.
오색제2약수터에 도착한다. 오색약수라는 이름은 약수에서 다섯 가지의 맛이 난다고 해서 불렀다는 설과 주변에 다섯 가지 색깔의 꽃이 피는 나무가 있어 오색이라는 이름이 등장했다는 얘기가 있다.
이 물은 철분이 많아서 위장병, 신경쇠약, 신경통, 빈혈 등에 효염이 있다고 하며, 가재나 지렁이를 담그면 곧 죽어버릴 만큼 살충력이 강하여 뱃속의 기생충이 없어지기도 하고 아무리 많이 마셔도 배탈이 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오색제2약수터에서 200m 떨어진 망경대 아름다운 바위와 낙락장송 아래에 성국사가 자리 잡고 있다. 옛날에는 오색석사로 불렸던 절이다. 상륜부가 없어져 아쉽기는 하지만 경쾌하고 간결한 삼층석탑(보물 497호)이 예스러움을 간직하고 있다. 물맛 좋기로 유명한 오색약수 한 모금은 힘든 산행의 고단함을 해소시켜주는 감로수이다.
오색약수터 옆에 자리한 망월사를 한바퀴 둘러보고 길가에 즐비하게 늘어선 상가를 지나 주차장으로 향한다.
14시 20분. 오색주차장에 도착해서 놀며 쉬며 5시간 산행은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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