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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8. 상하신리말아먹기

머리 속의 기억보다는 가슴속의 느낌이 더 오래 남는다. 산행을 시작하고 나의 삶이 풍요로워지고 여유로워졌다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일요일에 산에 다녀오고 또 산에 가려니 식구들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식구들과 가까운 곳에 봄나들이를 다녀와야겠다고 생각했지만 8시가 다 되어도 아이들은 공휴일의 달콤한 늦잠을 즐기느라 세상 모르고 잔다. 배낭에 물 한 병만을 챙겨 넣고 서둘러 집을 나선다. 가까운 슈퍼마켓에 들려 김밥 두 줄과 간식을 사서 아무렇게나 배낭에 넣고 103번 좌석버스를 탄다. 일행들과 만나기로 한 유성파출소 앞에 도착하니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강산에님한테 전화를 하니 재넘이님 승용차를 이용하여 하신리로 이동중이란다.


5번 공주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버스는 국립묘지를 지나고 박정자 삼거리에서 우회전 32번 국도를 타고 공주 방면으로 달린다. 온천리에서 하차하여 하신리로 들어서는 희망교를 건너자 먼저 도착한 일행들이 산행 준비를 막 끝내고 출발하려고 한다. 강산에님, 재넘이님, 풍선님, 신샘님, 가이아님 그리고 재활 훈련중인 거브기님과 반가운 인사를 나눈다.


9시 정각. 논두렁을 따라서 들머리로 향한다. 계룡산의 연봉들이 병풍처럼 펼쳐진다.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는 곳이라 중간 중간 길은 형편없다. 산행을 시작한지 30분지나 고청봉에 닿는다. 가야할 능선이 한 눈에 들어온다. 정상에서 5분간 휴식을 취하며 주변 조망을 감상하고 길을 잇는다.


30분 정도 진행하여 충남학생수련원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나고 오르막길을 10분 정도 숨가쁘게 치고 오른다. 고청봉을 출발한지 50분. 무명봉 정상에 도착하여 간식을 나누며 휴식을 취한다. 산아래 마을이 평화롭게 보이고 계룡산 주능선 봉우리들이 한 눈에 조망된다.


높이 600에서 800미터에 이르는 20여개의 봉우리들이 파도가 일렁이는 모습으로 능선의 뼈대를 이루는 암릉위에 적당한 거리에 걸쳐 솟아있어서 경관이 아름답다. 봉우리들은 거의 암봉이지만 숲이 무성하여 육봉으로 보이기도 한다. 암릉과 숲이 조화를 이룬 경관은 계룡산의 특징 중의 하나이다.


거브기님이 준비한 공주 밤먹걸리가 한잔씩 돌아가고 각자의 배낭에서 꺼낸 간식을 나누며 휴식을 취한다. 10분간 휴식을 끝내고 두 번에 거쳐 가파른 내리막길을 내려선다. 이어서 곧바로 숨가쁘게 10여분의 오르막길을 올라서면 부드러운 능선길이 이어진다.


작은구재를 지나 와룡암으로 향하는 길은 넓고 잘 정비되어 있다. 와룡암을 통과하고 한 번 더 오르막길을 오른 다음 점심식사를 위해 자리를 잡는다.


30분 동안의 밤막걸리를 곁들인 달콤한 점심식사를 마치고 길을 재촉한다. 큰구재를 지나면서 산행 속도가 빨라진다. 13시 30분 거침 숨을 토해 내며 오르막길을 오른다. 갈림길 안부에서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달래고 휴식을 취하며 거친 숨을 고른다. 조용한 숲속 길을 따라 조금 진행하자 정면 나뭇가지 사이로 삼불봉이 눈에 들어온다. 갈림길에서 오른쪽 금남정맥으로 이어지는 길을 버리고 왼쪽 수정봉으로 향한다.


14시 정각 수정봉에 도착한다. 소나무와 잡목으로 덮여 있는 조그만 암봉이다. 깊은 계곡들이 손에 잡힐 듯 정겹다. 1분 거리에 있는 또 다른 수정봉은 노송이 꽉 들어찬 널찍한 암반이다. 수정봉에 서니 삼불봉이 코 앞으로 다가서고 노송 사이로 헬기장과 금잔디고개가 바로 밑에 보인다. 


혹시 국립공원 관리공단 단속요원이 있나 살피고 조심스럽게 돌길을 따라 금잔디 고개로 내려선다.


벤치에서 간식을 나누며 10여분 동안 휴식을 취하고 삼불봉 고개를 넘어 남매탑에 도착하니 산행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신샘님과 재넘이님이 빠르게 치고 나간다. 상원암에서 식수를 보충하고 남매탑고개를 지나 큰배재에 도착한다. 동학사 주차장 2.7km, 남매탑 0.6km, 장군봉 3.6km라고 적힌 안내팻말이 보인다. 직진하면 동학사 주차장으로 내려서게 되고 왼쪽으로 올라서면 갓바위를 거쳐 장군봉으로 가는길이다. 강산에님은 일행을 기다리고 혼자서 왼쪽 오르막을 오른다. 흙길에 이어 바위길이 이어지고 신선봉 정상에 닿는다.


신샘님과 재넘이님이 계룡의 정기를 받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다.


삿갓봉에서 장군봉까지 암봉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 길은 험하지만 경관이 뛰어난 능선 길로 암릉 구간이 많아 아기자기한 산행과, 조망이 뛰어나 계룡산 산세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 바위틈에서 분재처럼 자란 소나무 한 그루에서는 자연에 무한한 힘과 오묘함을 느낄 수 있다.


천황봉 능선을 조망하며 잠시 숨을 고르는 사이 신샘님이 쏜살같이 앞으로 치고 내뺀다. 재넘이님과 동행하며 계룡산 산행 코스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눈다. 지금 하고 있는 상신리 말아먹기, ㄷ자종주, 4대 사찰종주, 남북종주 등 다양한 코스가 있음에 새삼 놀라게 된다. 지나온 고청봉이 이름대로 외롭게 푸르름을 자랑하고 있다.


뒤따라 온 강산에님이 거브기님과 풍선님, 그리고 가이아님이 큰배재에서 동학사주차장으로 하산했다고 한다. 


안부와 작은 암봉을 차례로 지나면 슬랩과 크랙 구간이 이어진다. 암봉 직전 안부에서 왼쪽 사면으로 우회하는 길이 있다.


내리막과 오르막을 번갈아 진행하면 안부에 도착한다. 오른쪽 길을 따르면 작은배재를 거쳐 천장골로 내려서고, 삿갓봉을 우회하면 지석골을 거쳐 학봉 마을로 내려서게 된다. 3시 20분 지석골로 올라와 기다리던 뫼꿈이 회장님과 맨 앞에서 사정없이 치고 나가던 신샘님이 미소지으며 반긴다. 밤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10여분간의 달콤한 휴식을 끝내고 삿갓봉을 올라선다.


삿갓봉 안부 갈림 지점에 장군봉 1.6km, 지석골 1.5km 표지판이 서 있고 길은 점점 거칠어지면서 장군봉 암릉길로 들어선다. 로프 설치 구간을 두 차례 지나고 세 번째 암봉에 올라서자 장군봉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 봉우리는 실제로 장군봉보다 더 높은 곳으로 정상은 조그만 묘가 차지하고 있다. 10분간 휴식을 취하고 잠깐 내려섰다가 장군봉을 오르기 시작하여 7-8분 후 장군봉에 도착한다. 국립공원에서 세운 표지판이 예전에 귀연산우회에서 세운 장군봉 표지판을 대신하고 있고, 산꾼들의 표지 리본은 모두 제거된 상태이다.


오른쪽 병사골 하산로를 버리고 왼쪽 하신리로 이어지는 하산로로 들어선다. 조금 내려서면 다시 오른쪽으로 병사골로 내려서는 길이 갈라지고 직진하는 길에는 출입금지 줄이 길을 가로막는다.


따뜻한 봄 햇살이 쏟아지는 양지바른 산기슭엔 진달래가 분홍 꽃불을 밝히고 나그네를 반긴다. 청주지씨묘를 지나 계속되는 내리막길을 빠른 걸음으로 내려선다.


장군봉을 출발한지 30여분 지나 하신리 날머리에 도착한다. 날머리에는 새로 설치한 철조망이 길을 막는다.


철조망을 넘어서자 개울에서 세수를 하는 신샘님의 모습이 보인다. 신샘님이 선두에 서면 산행 속도는 걷잡을 수 없이 빨라진다. 8시간 20분간의 계룡산 상하신리 말아먹기 원점회귀 산행은 끝이 난다. 뒤풀이 장소인 텃밭농장으로 이동하자 먼저 하산한 거브기님 일행이 기다린다. 약속이 있는 신샘님, 재넘이님과 아쉬운 작별을 하고 나머지 일행은 오리로스를 안주 삼아 하산주를 나눈다.

 

간단한 뒤풀이가 끝나고 다음 산행을 기약하며 103번 시내버스에 오르는 모두의 얼굴 표정은 활짝 핀 꽃만큼이나 환하다. 소중한 사람들과 함께 했던 행복한 산행은 어느 것 하나 그냥 버릴 수 없는 추억을 남기고 그렇게 마무리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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