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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6. 갑사구곡

2004년 11월 14일 (일)

용산구곡이 끝나는 지점에서 10분 정도 오르면 해발 380m 갈림길이다. 왼쪽은 남매탑 0.9km 오른쪽은 금잔디고개 1km 주차장 2.1km 이정표가 서 있다. 오른쪽 금잔디고개로 들어선다. 길은 조금씩 가팔라진다. 천천히 10분 정도 오르면 금잔디고개 0.5km 이정표가 보이고 다시 10분 정도 더 오르면 오뉘탑에서 오는 길과 만나는 금잔디 고개에 닿는다. 왼쪽 길은 남매탑을 거쳐 동학사로 향하는 길이고 직진 길은 갑사로 내려가는 길이다. 헬기장이 조성된 금잔디고개는 동학사에서 오뉘탑을 거쳐 갑사로 넘거나 그 반대로 산행하는 사람들로 꽤 붐빈다.



모두들 행복하고 웃음이 넘치는 모습이다. 11시 40분 단체 기념 사진을 촬영하고 오른쪽 출입금지 밧줄을 넘어 수정봉으로 향한다.



2-3분 정도 오르면 멎진 소나무 숲이 나타난다. 갑사 아래 계룡저수지가 한 눈에 들어오고 삼불봉이 색다른 모습으로 조망된다. 삼불봉(775m)은 세 분의 부처님을 상징하는 세 개의 봉우리를 말한다. 세 개의 봉우리는 조물주가 만들었을 것이고, 그 의미는 인간이 부여했을 것이다. 수정봉이 그렇고, 관음봉과 연천봉이 그렇듯이 계룡산은 자비가 넘치고 신령스러운 기운이 감도는 산이라는 것을 봉우리 이름들에서도 알 수 있다.



오른쪽 금남정맥길을 따라 조용한 숲길로 들어선다. 마치 양탄자를 깔아놓은 것처럼 낙엽이 쌓여있다. 찾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아 올 가을 떨어진 낙엽이 그대로 남아 나그네들을 반긴다. 부드러운 길을 따라 20여분 동안 진행하면 오른쪽으로 마티재 내려가는 길이 보이고 곧바로 수정봉에 닿는다. 조금 내려서면 조망 좋은 넓은 바위가 있다. 통신탑이 세워진 천황봉과 쌀개봉, 그리고 문필봉과 연천봉이 한 눈에 조망된다. 이 능선이 마치 닭의 볏처럼 생겼고, 봉우리들의 모습이 용처럼 생겼다 하여 계룡산(鷄龍山)으로 불린다. 계룡산은 신령스러운 산이다. '날이 어두울지라도 닭(鷄)은 반드시 울고야 말 것이요, 구름이 가린다 할 지라도 용(龍)은 하늘로 올라 갈 것이다. 바다는 태평양이 사해(四海)의 중심이요, 산은 계룡산이 모든 산의 중심이 될 것이다.' 이 말은 풍수지리를 연구했거나 정감록에 심취한 사람들 속에서 입버릇처럼 되뇌던 말이라고 한다. 조망을 감상하며 간식을 나누고 휴식을 취한다. 이파리를 다 떨군 성긴 나뭇가지 위로 시리도록 파란 11월 하늘엔 비행기에서 뿌려놓은 비행운 한줄기가 가로지른다.




오던 길로 10여분 되돌아가 오른쪽 산비탈로 내려선다. 숲 사이로 살랑대는 바람소리, 발아래 버석대는 낙엽소리를 들으며 산 향기에 취해 걷다보면 신흥암이 보이고 나한굴 앞에 갑사구곡 중 구곡(九曲) 수정봉(水晶峰)이 음각된 바위에 닿는다. 전하는 바에 따르면 조선조 말기 문신으로 친일 매국에 앞장섰던 벽수(壁樹) 윤덕영(尹德榮)이 이곳 절경에 취하여 간성장(艮成莊)을 짓고 머물면서 구곡의 이름을 지어 바위에 새겼다고 한다.



지난 봄 폭설로 가지가 부러져 안쓰러운 모습을 하고 있는 큰 소나무 뒤로 천진보탑이 있다. 이 탑은 인공으로 만든 탑이 아니고, 탑 모양을 한 자연 바위이다. 전설에 의하면 석가모니 부처가 열반한 후, 인도의 아육왕(阿育王)이 구시나가라국에 있는 사리탑에서 많은 양의 부처의 사리를 발견하였다고 한다. 이를 시방세계에 나누어 줄 때 사천왕 가운데 북방을 담당한 비사문천왕(毘沙門天王)을 계룡산에 보내어 이 천연석탑 안에 사리를 두었는데 아도화상(阿道和尙)이 이 사리를 발견하고서 천진보탑이라 불렀다고 한다. 천진보탑은 그 앞에서 진실한 마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빛을 발하는 방광(放光) 현상이 나타난다고 하여 유명하다. 이 사실은 6.25 전쟁이 끝난 후 계룡산을 찾은 한 미군 병사가 천진보탑이 방광하는 모습을 최초로 카메라에 담아 세상에 전하므로 써 알려지게 되었다.




제 9곡 수정봉은 신흥암 산 위쪽으로 한 덩어리로 이루어진 듯한 맑고 깨끗한 큰 바위를 일컫는다.



산신각 오른쪽 암벽에 간성장(艮成莊)이란 글씨가 음각 되어 산신각 풍경과 어울린다. 풍경은 옛날 중국에서 전래한 것으로, 작은 종처럼 만들어 가운데 추를 달고 밑에 쇳조각으로 붕어 모양을 만들어 매달아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며 맑은 소리를 낸다. 전설에 의하면 아주 옛날에 공부하던 스님 한 분이 잘못을 하여 벌을 받고 물고기로 환생하였는데 그를 본 법력이 높은 스님 한 분이 그를 안쓰럽게 여겨 그를 절간에 옮겨다 주어 부처님을 공부하게 하였다는데서 유래하였다고 한다.



신흥암은 비로전 중창불사가 한창 진행 중이어서 어수선하다. 샘터에서 목을 축이고 고개를 들면 비로전 뒤쪽으로 천진보탑과 노송이 어우러져 멎진 그림으로 한 눈에 들어온다. 수정봉의 모습이 한 장의 그림엽서처럼 아름답다.


 


13시 40분 8곡 용문폭포(龍門瀑布)에 도착한다. 아무리 심한 가뭄에도 물이 마르지 않고 흐르는 영험함 때문에 기우제나 산제의 장소로 많이 쓰인다고 한다. 지금은 가느다란 물줄기로 그 명성을 부끄러워해야 할 지경이지만 폭포 밑의 소(沼)는 제법 크고 깊어 보일 뿐 아니라 주변의 수려한 경관이 가세하여 허명(虛名)이 아님을 느끼게 한다.



조금 내려서면 길 왼쪽으로 대성암이 보이고 갈림길이다. 왼쪽 연천봉 관음봉 가는 길로 들어선다. 가을이 깊어간다. 잎이 진 감나무엔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잘 익은 붉은 감들이 더욱 선명하다.



최근에 세워진 의승장 영규대사 및 108의승 추모지 역식비(역사가 쉬어 가는 곳)가 보이고 7곡 계명암(鷄鳴 )은 왼쪽 산 속에 자리하고 있다.




7곡을 찾아내고 다시 갑사 쪽으로 계곡을 따라 내려선다. 둥그런 보름달이 물 속에 비칠 때 아름답다는 6곡 명월담(明月潭)은 석조약사여래입상 있는 곳에 있다. 수능 수험생을 둔 부모님들이 석조약사여래입상에서 치성을 드리는 모습이 안쓰럽기까지 하다.



100여보 내려서면 윤덕영의 별장이 보인다. 한일합방 당시 순종과 순정황후를 위협하여 옥새를 강탈, 강제 조인케 한 윤덕영에게 공주 갑부 홍원표가 당시 돈 4만원을 들여 지어준 것인데, 갑사로부터 30년 임대 계약을 맺고 갑사 계곡의 암반 위에 건물을 세운 뒤 약사여래입상과 공우탑(功牛塔)을 별장 주위로 옮겨 놓았다. 갑사 공우탑(甲寺 功牛塔)은 백제 비류왕 4년 계룡산 갑사에 속한 암자를 건립할 때 자재를 운반하던 소가 군자 냇물을 건너다 기절하여 죽자, 소를 현 위치에 매장하고 그 넋을 위로하기 위해 건립하였다고 전한다. 2층 옥신에는 "우탑(牛塔)", 3층 옥신에는 "공(功)"이 음각 되어 있다.



공우탑을 보고 다리 아래로 내려서 계곡을 따라 몇 걸음 옮기면 5곡 군자대(君子臺)에 닿는다. 갑사구곡 중 최고의 절승지로 꼽힌다. 군자대라는 각자가 다른 곳의 글씨체와는 다른데, 효종 때의 학자 송시열이 어렸을 적에 이곳에 들어와 공부하다가 계곡이 너무 좋아 임금이 머물만하다 하여 군자대로 이름하고 손수 바위에 새겼다는 설이 있다. 5곡과 군자대는 다른 바위에 새겨져 있다.



4곡 달문택(達門澤)은 연못이며 뒤쪽으로 갑사가 있다. 갑사는 옛 문헌에‘갑사(甲寺)’혹은‘계룡갑사(鷄龍甲寺)’로 표기되는데,‘갑사’라는 말뜻 자체가‘첫째가는 절’이고 보면, 역시 계룡산에서는 가장 크게 지속적으로 번창하였던 절이 갑사였다고 생각된다. 백제 아도화상이 창건하고 무령왕 3년(503)에 천불전을 지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통일신라의 철당간과 고려시대의 부도, 조선시대의 동종 등으로 봐서 오랜 역사와 번창한 사세를 자랑하던 갑사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 영규대사의 분전에도 불구하고 전부 소실되었다. 이후 1604년 대웅전과 진해당을 중건하였고 1654년과 1899년 크게 중수하였다. 그러므로 지금의 절 집들은 조선시대 중·후반기에 세워진 것들이다.



4곡은 달문택에서 120보 정도 떨어진 곳에 위치한 3곡 백룡강(白龍岡)은 계곡에서 약간 위쪽으로 대나무 숲 속에 있고 2곡인 이일천(二一川)은 두 개울물이  합쳐지는 합수지점에 있다. 




갑사 계곡의 맑은 물과 빨갛고 노란 단풍이 어울려 그런 대로 갑사의 만추 풍경을 드러내 주고 있다. 갑사에서 일주문에 이르는 약 1km 정도 쭉 뻗은 길은 주위에 울창한 거목이 늘어서서 그윽한 숲길을 연출하고 있어 예로부터 5리 숲이라 불러올 정도로 정감 넘치는 길이다.





2곡에서 계곡 아래로 200보쯤 내려서면 만나는 1곡은 용유소(龍遊沼)로 용추교 아래에 있다. 용들이 여유롭게 노닐 수 있는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이곳에도 간성장(艮成壯)이 음각 되어 있다.




15시 일주문을 빠져나온다.



음식점들이 즐비하고 군밤과 은행을 파는 노점상들과 흥정하는 등산객들의 모습이 정겹다.



비목나무 등의 고목(古木)이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고사목(枯死木) 한 그루가 작별 인사를 한다. 그 고사목에 새끼가 둘러 처져 있다. '귀목대신(鬼木大神)'이라는 팻말과 함께. 죽은 나무 한 그루에도 신이 내려 있음이다.



용산구곡과 갑사구곡을 찾아 떠난 가을 산행은 공주 임립미술관 내에 음식점(미술관 그리고 풍경)에서 때늦은 점심식사를 끝으로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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