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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룡산

4. 향적봉


사람은 자기 마음의 눈에 따라, 같은 현실이라도 전혀 다르게 받아들인다. 주어진 현실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각자의 삶은 확연하게 달라진다. 삶은 행복한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행복해진다. 하지만 삶은 불행한 것이라고 보는 사람은 불행해지기 마련이다. 삶은 어떻게 보느냐, 어떤 삶을 선택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대부분 개인 자신에 달려있다. -서진규 자선 에세이 <나는 희망의 증거가 되고 싶다> 중에서--



한가한 토요일 오후
4시 20분 만안골 가든(T. 841- 8840) 앞 공터에 차를 주차하고 물 한 병과 디카만을 챙겨 산행에 나선다. 짚차 한 대 지나다닐 정도의 넓은 길을 따라 10분 정도 오르자 '원무사' 라는 간판을 내건 점집이 보인다. 차는 이곳까지 갈 수 있다.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2분 정도 걸으면 오른쪽으로 '대한불교계룡산 만안사'라는 민가 암자가 보인다. 그 옆으로 귀천(龜泉)약수가 개울처럼 흐른다. 텃밭을 가꾸던 처사 한 분이 물맛이 좋다고 자랑한다. 물 한바가지 떠서 목을 축이고 본격적으로 숲 속으로 들어선다.



얼마 가지 않아 오른쪽으로 돌탑 2기와 무속인들이 기도하는 기도터가 눈에 띤다.



15분 정도 걸으면 첫 번째 헬기장에 도착한다. 향안리(2.2km 32분) 만안사거리(0.8km 15분) 만안사사거리(0.5km 8분) 향적산 국사봉 2.7km 엄사리청송약수 1.8km 이정표가 서 있다.



간간이 오른쪽으로 조망이 터지는 곳에선 미국방성 펜타곤을 닮은 팔각형의 삼군본부가 위용을 드러내는데 그 옛날 이곳에 있었던 부처마을 부남리는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산책로 같은 평탄한 길을 10분 정도 더 진행하여 5시 정각 두 번째 헬기장에 도착한다. 엄사리(2.2km 40분) 향적산(2.3km 50분) 이정표가 서 있다. 5시 8분 맨재로 갈라지는 삼거리 갈림길에 다다른다. 오른쪽은 부대(0.4km 7분)로 가는 길이고 직진하면 513번 고지(2.8km  55분)로 오르는 길이다. 이곳부터 조금씩 경사가 더해지는 오름길이다. 4분 정도 오르면 오른쪽으로 513고지(1.9km 30분)가는 갈림길이 나타나고 향적산(1.3km 25분)은 그대로 직진한다. 5시 30분 산허리를 길게 돌아서 이재호씨댁 앞의 측간(뒷간, 정낭)을 지난다. 전통화장실인 측간이 옛 모습 그대로 어린 시절 추억을 떠오르게 한다. 간이 목욕실도 눈길을 끈다. 식수를 보충할 수 있다.





등산로는 오른쪽으로 오른다. 가파른 오름길을 5분 정도 숨가쁘게 오르면 잘 정비된 넓은 헬기장에 도착한다. 오른쪽은 천황봉 가는길이다. 향적봉으로 가기 위해 왼쪽 밧줄이 설치되어 있는 가파른 계단을 2분 정도 숨가쁘게 치고 오르면 능선에 도착한다. 산 아래로 넓은 상원 들판이 그림처럼 시원스럽게 펼쳐진다.



왼쪽으로 방향을 잡고 3분 정도 더 오르면 어느덧 향적봉에 도착한다. 사람들은 이곳을 국사봉과 향적봉으로 혼동하여 부르지만 실제 국사봉은 논산 쪽으로 이어지는 계룡의 능선을 타고 더 가야 하며 결국 백제와 신라의 마지막 격전지였던 황산벌에 이른다. 계룡산 주봉인 천황봉에서 왼쪽으로 내려와 암용추 서쪽으로는 신원사 남쪽으로는 숫용추를 남기고 남으로 달려 두마면 향안리에 우뚝 솟은 봉우리가 향적산(香積山, 해발574.0m) 향적봉이다. 천황봉은 통신중계탑에 가려 시야를 방해받지만 비교적 조망이 좋고 가까이 계룡시와 신도안이 내려다보이며 멀리 대전시가지도 한 눈에 들어온다.




정감록(鄭鑑錄)에 의하면 '신도(新都)는 산천이 풍부하고 조야(朝野)가 넓고 백성을 다스림에 모두 순하여 8백년 도읍의 땅이다'라고 예언했다. 600년 전 조선의 태조 이성계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바로 그 땅. 충남 논산 상월과 공주 계룡지역은 신도안(新都內)과 계룡산을 사이에 두고 서로 등을 맞대고 있다. 신도안은 태조 이성계가 계룡산을 답사한 후 새 도읍지로 정하고 공사를 시작한데서 지명이 유래됐다고 한다. 그러나‘정씨를 가진 왕조가 집권하면 좋을 땅’이라는 도참설과 뱃길, 교통이 불편해 도읍으로 부적합하다는 무학대사의 말에 따라 결국 한양에 도읍지를 정했지만 ‘명당’은 분명했던 것으로 보인다.



산정에는 1948년에 세웠다는 "천지창운비(天地創運碑)"와 "오행비(五行碑)"가 서 있고 무속인들의 기도터로 이용된다. 이곳에서 매일 기도하던 조씨 할머니께서 묘향산과 구월산에 산재하던 단군의 넋이 이곳으로 옮겨왔다며 신격화하면서 기도터로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그는 8.15광복과 6.25전쟁을 정확히 예언하였다고 한다. 그의 사후에 며느리가 시어머니의 공덕을 기리는 목적으로 탑을 세웠는데 그 비(碑)안에는 "우리나라가 천년이상 동방예의지국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단군 성조의 깊은 뜻을 담았다"고 한다. 동쪽에는『天鷄黃地』 서쪽에는『佛』 남쪽에는『南斗六星』 북쪽에는『北斗七星』이라는 글이 음각 되어 있다.





6시 5분 순한 길을 따라 내림길로 내려선다.


삶에 청량함을 안겨주는 자연을 품에 한아름 안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