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가까워 손만 뻗으면 닿을 듯 싶은, 입김만 불어도 전해질 것 같은 가까운 산으로 가는 여정이기에 마음은 편안하다. 7시 45분 서대전역에 도착한다. 가이아님이 반갑게 맞이해 주시고 놀며쉬며님, 뫼꿈님, 청록님, 전천후님과 홀대모의 달님까지 차례로 인사를 나누고 청록님의 안내로 개찰구를 빠져나간다. 시산제 제물과 회원들 간식을 챙기고 8시 5분 광주행 무궁화호에 승차한다.
서울, 수원, 천안에서 이번 시산제에 참석하기 위해 7호차 칸에 타고 계신 대충산사 회원님들 몇 분과도 인사를 나눈다. 두계역에서 하차하여 미리 대기하고(예약) 있던 4대의 택시에 분승하여 산행기점인 전주대가로 이동한다. 대충산사 회장님이신 뫼꿈님의 인사에 이어 회원들이 돌아가며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개인 간식 겸 점심식사 대용 으로 시루떡과 귤이 분배되고 8시 45분 산행을 시작한다. 청록님의 금남정맥 노란색 표시기가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다. 솔잎과 낙엽이 덮인 소나무 오솔길을 모두들 힘차게 오르기 시작한다.
평탄하고 한적한 산책로 같은 오솔길 등로를 따라 걷는다. 9시 갈림길에서 왼쪽 송전탑을 지나 국사봉 오르는 길은 약간 경사가 있고 이정표에는 향적산 3.7km 라고 쓰여있다. 봄 날씨처럼 포근하다. 벌써 이마와 등에 땀이 배기 시작하고 한 사람 한 사람 가던 길을 멈추고 쟈켓을 벗어 배낭에 쑤셔 넣거나 매단다. 9시 15분 330고지 0.5km 이정표가 보이고 청록님은 맨 뒤에 쳐진 홀대모 고문이신 박달령님 걱정에 잠시 산행을 멈추고 기다린다.
9시 25분 헬기장이 있는 넓은 공터에 도착한다. 시산제를 지낼 향적봉이 보이고 오른쪽으로 천황봉이 뿌연 시야에 들어온다.
물 한 모금으로 가빠진 숨을 달래고 제물을 가진 회원님들이 먼저 출발하고 잠시 후에 다른 회원들이 뒤따른다. 5분 정도 오르자 향적산 2.3km 이정표가 서 있는 두 번째 헬기장이 나오고 내림길이다.
눈이 있어 미끄러운데 아이젠을 꺼내 착용하기가 귀찮아 그냥 내려선다. 5분 정도 내려서면 사거리 갈림길이다. 왼쪽은 향한리(2.9km) 오른쪽은 부대(0.4km) 직진하면 513고지(2.8km)로 향하는 길이다.
직진하여 5분 정도 오르면 다시 산허리에서 갈림길이 나타난다. 오른쪽으론 513고지로 가는 길이고 향적산(1.3km)은 계속 직진한다.
산허리를 감싸고돌아 무속인의 집이 보이는 곳에서 간식을 먹으며 잠시 숨을 돌리고 오름길을 치고 오른다. 10시 10분 넓은 공터에 도착하여 사방을 조망한다. 향적봉 방송 중계탑이 손에 잡힐 듯하고 천황봉도 한 눈에 들어온다.
대간을 졸업하신 조진대님이 계룡산에 오르기 전에 닭고기를 먹거나 계란을 먹으면 꼭 탈이 난다며 그래서 오늘도 삶은 계란은 가져오지 않았다고 하신다. 맞는 이야기인가? 마지막으로 오르던 박달령님이 도착할 무렵 제물을 가진 청록님과 전천후님을 선두로 향적봉을 향해 오르기 시작한다. 지난밤에 과음하고 감기까지 겹쳐 힘들다고 하시던 뫼꿈님이 이제 좀 살 것 같다고 한다. 역시 산꾼은 산에 와야 기운을 얻는 모양이다. 가파른 오름길에서도 땀 한 방울 흘리지 않으며 가벼운 발걸음을 옮기는 뫼꿈님의 여유로운 산행 모습에 부러움을 느끼며 뒤따라 오른다. 10시 20분 향적봉 정상에 도착한다. 직육면체의 낡은 탑에는 동쪽에 천계황지(天鷄黃地) 서쪽에는 불(佛) 북쪽에는 북두칠성(北斗七星) 남쪽에는 남두육성(南斗六星)이 음각으로 새겨져 있다.
북쪽인 천황봉을 향해 시산제 플랑카드가 걸리고 돼지머리를 비롯한 제물이 진설된다.
회장님이신 뫼꿈님이 강신 잔을 올리고 3배(천제는 4배, 산신제는 3배를 올린다고 함)에 이어 청록님의 축문낭독 그리고 아헌관이신 박달령님, 종헌관이신 거브기님의 잔이 차례로 올라가고, 작년 시산제 때 장난을 쳐서 대간을 하시며 많은 비를 맞았다던 조진대님부부가 올 산행에는 비 맞지 않게 해달라고 계룡산 산신님께 정성스레 3배를 올린다.
홀대모의 달님과 홍수염님, 참소리님이 합동으로 잔과 3배가 올려지고, 미소짓는 돼지머리 입과 코, 귀에까지 회원들의 정성이 모아진 배추잎을 꽂고 합동으로 절을 올린다.
돼지머리를 안주 삼아 술 한잔씩 권하고 떡과 과일을 나누며 정겨운 대화가 오고간다. 1시간에 걸친 시산제를 마치고 본격적으로 산행은 시작된다. 11시 20분 눈 덮인 가파른 내림길을 밧줄에 의지하며 조심조심 내려선다. 오를 때 잠시 쉬었던 공터를 지나 숲 속 길을 1km쯤 지나자 사방으로 시야가 뚫린 곳이 나타난다. 오른쪽 아래로 미국의 펜타곤을 연상시키는 군사 건물이 보이고 왼쪽으로 상원들판이 시원하게 펼쳐지며 천황봉은 코앞으로 다가온다.
11시 50분 출입통제지역으로 들어선다. 12시 10분 금남정맥 갈림길 조망이 좋은 바위에서 잠시 지나온 길을 뒤돌아본다. 멀어진 향적봉에서 굽이굽이 이어진 능선이 시야에 가득 들어오고 스쳐 지나가는 바람이 땀을 식혀주며 상쾌함까지 더해준다. 곧이어 신원사 3.2km 이정표가 보이고 12시 30분 헬기장을 지나 12시 50분 쉬어가기 좋은 너른 바위에서 모두들 아이젠을 풀고 간식을 먹는다. 아직 정상에 도착하지도 않았는데 물통이 바닥이 보인다. 겨울산행이라 물을 500ml 한 통 준비했는데 봄 날씨 때문에 다른 때 산행보다 갈증을 더 많이 느낀다. 고개를 들자 오른쪽에서부터 황적봉, 천왕봉, 머리봉과 천황봉 그리고 쌀개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빨리 오라며 손짓한다.
오르락내리락하며 20분을 걷어 13시 10분 갈림길에 다다른다. 왼쪽으로 신원사로 가는 길이고 그 길 따라 10m 정도 내려가면 약수가 나온다. 시원한 약수를 한 바가지 떠서 벌컥벌컥 들이키고 빈 물통도 채우니 마음이 든든하다. 가파른 오름길이다. 박달령님이 따스한 숲 속 낙엽에 앉아 피리로 구슬픈 가락을 뽑아낸다. 삶의 여유가 묻어난다.
가파른 오름길은 쉴 틈을 주지 않고 40여분 계속된다. 햇살이 닿은 양지바른 길은 어설프게 눈이 녹아 흐른다. 14시 커다란 암봉이 길을 가로막는다. 암봉을 기어오르는 서바위님의 모습이 보인다.
소요유님을 따라 왼쪽으로 산허리를 감아 도는 우회도로로 접어든다. 암봉 위에 고고하게 홀로 뿌리내린 소나무가 눈길을 끈다.
너른숲님과 서바위님은 쌀개봉으로 향하고 가이아님과 정상을 밟아보려고 천황봉으로 향한다.
14시 25분 천황봉에 도착한다. 출입통제 지역이어서 오지 못했던 천황봉과의 만남. 새로운 사물이나 그리워했던 것들과의 만남은 더 없는 청량제나 다름없다. 전천후님을 비롯하여 강산에님과 근자님 등 여러분이 정맥길을 따라 올라온다. 한국통신 계룡산 중계소 중계탑이 우뚝 솟아있고 천단(天壇)이라고 쓰여진 정상석이 산꾼들을 맞이한다.
계룡산은 예로부터 풍수지리적으로 대길지(大吉地)로 여겨져 왔고 조선시대부터 지리산, 묘향산과 함께 우리나라 3악(嶽)으로 불려왔다. 특히 천황봉 정상은 통일신라시대 이래 제단을 설치하고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기원하기 위해 제사를 지냈던 곳이다. 나라에 환란이나 질병 등이 닥쳤을 때는 어김없이 이곳에서 제사를 올렸다고 한다. 천황봉 천단(높이 1백20㎝. 폭 70㎝)의 재질은 계룡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강암으로 표지석에 새겨진 '天壇'이란 글씨의 서체는 조선시대 유학자인 동춘당 송준길 선생의 친필에서 집자(集字)했다고 한다.
단체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전천후님의 설명을 들으며 눈앞에 펼쳐지는 능선을 바라본다.
연천봉, 문필봉, 쌀개봉, 관음봉, 자연성릉을 거쳐 삼불봉까지 능선이 장쾌하다. 푸른 하늘에 빛나는 눈들, 그리고 눈 덮인 암벽 위에 아슬아슬하게 버티고 선 소나무들이 그곳에 도착하기 전에 감싼다.
14시 50분 쌀개봉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15시 금강 홍수통제소 무인 중계소에서 거브기님이 회원들에게 따끈한 커피를 한 잔씩 주신다. 정말 오랜만에 맛있는 커피를 마신다. 점심 시간 없이 강행된 산행으로 약간 지친 모습들이다. 떡과 과일로 늦은 점심을 대신한다. 15시 10분 암릉길을 지나 가파른 내림길에서 아이젠을 착용한다. 자연석문인 통천문을 지나 관음봉으로 향하는 가파른 경사를 오르면 조망 좋은 암릉이다.
잠시 걸음을 멈추고 조망하며 숨을 고른다. 관음봉까지 이어지는 능선과 관음봉에서 자연성릉을 따라 삼불봉까지 두 눈 가득 들어오고 신선봉, 임금봉, 장군봉으로 이어지는 능선도 시원스럽게 이어진다.
숲 속에 빠져있는 동학사와 멀리 산 중턱에 자리한 심우정사도 눈에 들어온다.
심우정사는 계룡산중의 가장 명당자리로 따끈한 두충차를 마실 수 있도록 산중 나그네들에게 배려를 아끼지 않았던 老스님으로 유명했으나 음기가 센 명당이어서 천수를 다하지 못했다고 한다. 눈으로 능선들을 이어가면서 계룡산 ㄷ자 종주 계획을 품는다. 15시 30분 예정 시간보다 산행이 늦어져 먼저 떠나 관음봉으로 향한 선두 그룹과 만나기 위해 지름길로 하산하기로 의견을 모은다. 눈 덮인 내림길은 갈수록 경사가 심해지고 울퉁불퉁한 돌길은 내리는 속도를 더욱 느리게 한다.
출입통제 산길이라 사람이 많이 다니지 않아 발목까지 쌓인 눈이 그대로 남아있다. 뒤돌아보니 밧줄을 타고 조심조심 내려오는 허허자님의 모습이 보인다.
16시 20분 은선폭포에서 내려오는 돌계단과 만나는 지점에 도착한다. 뫼꿈님과 강산에님 그리고 근자님이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며 기다리고 잠시 후 허허자님이 도착하여 함께 주차장으로 향한다. 관음봉으로 향했던 소요유님과 서바우님이 뒤따라와 합세한다. 16시 35분 오성대를 지난다. 왼쪽 계곡길은 심우정사로 오르는 길이다.
16시 40분 향아교를 건너고 동학사 길 옆 약수터에서 시원한 약수 한 바가지 들이키고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터벅터벅 지루하게 걷는다. 시끌시끌한 집단 시설지구를 지나고 17시 5분 반포농협 동학지소 앞에서 먼저 하산한 청록님이 대기시켜 놓은 뒤풀이 장소 식당 차량에 오르면서 8시간 20분(산신제 1시간 포함) 동안의 대충산사의 시산제 산행은 끝이난다.
보만식계(보문산-만인산-식장산-계족산)의 60km 능선을 22시간에 말아먹은 준족의 사나이 강산에님과 백두대간을 43일에 거쳐 연속으로 종주를 끝낸 경력의 소요유님, 발걸음이 가벼워 눈위에도 발자국이 남지 않는다는 뫼꿈님, 산행도 부족하여 마라톤을 하신다는 서바위님과 강산에님의 제자를 자칭하는 근자님, 대간을 이어가는 허허자님, 금남정맥을 이어가는 청록님과 동승하여 뒤풀이 장소로 향하는 차안에서 기가 죽는다.
참으로 기억에 남을 만한 계룡산 시산제 산행을 마치면서 지금하고 있는 명산 100산 오르기 다음에 금남정맥과 백두대간을 이어볼 욕심을 가슴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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