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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조각맞추기

16. 덕치-고남산-매요리


누군가 산을 좋아하는 사람을 일컬어‘산행의 고통을 기꺼이 즐기는 사람’이라고 했다. 단 한 번도 무거운 배낭을 지고 마냥 즐거워하는 대간 종주자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란다. 누가 시켜서 하는 일이라면 난동이라도 부릴 그 고통을―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가면서―즐긴다. 왜? 그것은‘중독성’때문이다.


등사대모를 따라 강원도구간부터 진행했던 백두대간 조각맞추기는 작년 가을 진부령에 도착하여 남쪽 대간의 마침표를 찍으면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 이제 다시 조각을 맞추려고 한다.


새벽기도회를 마치고 주섬주섬 배낭을 챙겨들고 집을 나선다. 8시가 조금 지나 남대전요금소로 진입한 버스는 35분 정도 대진고속도로를 달려 덕유산휴게소에서 20분간 정차한다. 휴게소 주차장은 수많은 산악회버스와 향락객들로 북새통을 이룬다. 남부지방은 비가 온다는 일기예보가 있어 걱정하고 있는데 가랑비가 차장을 스친다. 9시 40분 지리산요금소를 빠져나와 20분 정도 진행하고 덕치마을 버스정류장에서 하차한다.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린다.
 
시멘트포장길을 따라 덕치보건진료소를 지나 노치마을로 향한다. 마을 뒷산의 우람한 소나무를 기준 삼아 마을길로 들어서면 ‘노치샘’(해발 550m)이 나오고 여원재 6.6km 이정표가 보인다. 



노치마을의 당산 소나무 앞에서 산줄기들을 바라본다. 사실 차례로 지나게 될 수정봉이나 고남산은 백두대간이 아니었다면 동네 뒷산으로 머물렀을 산이다.
낮은 산이 없이는 높은 산도 없는 법. 대간, 정간, 정맥의 산줄기 체계가 강과 산의 유기체적 관계를 통찰한 결과물이듯, 산의 높낮이 또한 거대한 생명체로서 산줄기의 꿈틀거림이다.
완만하지만 계속되는 오르막길은 턱밑까지 숨가쁘게 한다. 배낭에서 우비를 꺼내 입고 계속 진행한다.


산행을 시작한지 1시간 남짓 수정봉(804m)에 도착한다. 수정봉 정상은 이름의 분위기와는 달리 두루뭉실하다. 수정봉에서 여원재까지는 올망졸망한 봉우리를 오르내리며 양탄자 위를 걷는 것처럼 푹신푹신하고 계속되는 소나무 숲이 운치를 더한다.



헬기장을 지나고 숨가쁜 오르막길 끝에 685봉 정상에 닿는다. 벽돌(블록)이 산재해 있고 소나무가 있어 쉬어가기에 아주 좋은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물 한 모금으로 갈증을 달래고 간식으로 허기를 달래며 5분간 휴식을 취한다.
오르막길이 있으면 내리막길도 있는 법. 3-4분 정도 내려섰다가 다시 완만한 오르막길을 오르면 성벽으로 둘러 쌓인 봉우리에 닿는다.
수정봉과 입망치를 지나 여원재(해발 480m)에 이른다.



여원재는 남원에서 운봉을 거쳐 함양으로 이어지는 24번 국도가 지나는 고개로서 길가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남원과 운봉, 더 나아가 영남과 호남을 연결해 주는 중요한 고개인 여원재는, 고려 말 왜구의 희롱을 거부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한 여인이 산신이 되어 이성계의 전승을 도왔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황산대첩시 여원치에서 이성계 장군이 행군 도중 백발이 성성한 노파로부터 전승(戰勝)의 날짜와 전략을 계시 받았다. 그녀는 왜장 아지발도가 자신을 희롱하며 젖가슴에 손을 대자 칼로 가슴을 베어 자결한 원신(怨神)이었다.
후에 이성계는 노파가 산신령이라 여기고 이를 기리기 위해 벽에 여상(女像)을 새기고 산신각을 지었다. 지리산 산신령은 여자로 알려져 있고 이러한 산신령이 사는 곳을 여원(女院)이라 불렀고, 이곳을 여원치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운봉의 옛 이름 가운데 운성(雲城)이 있다. 높고 험한 천혜의 수비성이라는 뜻이 담긴 이름이라고 한다. 운봉 사람들에게 여원치는 연재라는 이름으로 더 깊게 남아 있다. 흥부에게 박씨를 준 제비가 넘은 고개라는 뜻이다. 운봉은 <흥부가>뿐 아니라 <춘양가> <변강쇠전> 등에도 자주 등장한다. 판소리 동편제의 고향인 비전마을을 품은 탓일 것이다.


여원재 마루에 선 돌벅수 ‘운성대장군’에 눈인사를 건넨 후 다시 대간 길을 잇는다. 버스정류장에서 남원쪽(왼쪽)으로 잘려진 나무 울타리가 있는 곳이 대간 진입로다. 나뭇가지에 주렁주렁 매달린 대간 표지기가 나그네를 안내한다. 숲 속으로 오르면 곧바로 울창한 소나무 숲이다. 소나무 숲 사이로 진행하면 왼쪽 아래로 수많은 무덤과 제각이 내려다보인다.


소나무 숲이 끝나면 밭이 시작된다. 농로를 건너 소나무 숲 사이로 잠시 진행하면 능선이 왼쪽으로 휘어진다.


수많은 산줄기들이 첩첩이 산그리매를 이루며 부드러운 곡선미를 드러낸다.
산을 오르며 머리에 떠올리는 환상 가운데는 중첩한 산그리매의 아름다움도 그 하나다. 바로 앞산은 어둠처럼 짙고, 그 앞산은 감청색, 그 다음은 남색, 그리고 그 앞산은 청색으로 차차 엷어지다가 종내에는 희뿌연 하늘에 합쳐지는 겹겹의 산릉의 농담(濃淡)이 그려내는 산의 윤곽선을 시인 송수권은 '산그리매'라 하였다.



비에 젖은 온몸은 오르막이 나타날 때마다 점점 걸음을 느리게 한다. 조망이 모두 사라지고 표지리본이 안내하는 대로 아무런 생각 없이 걷고 또 걷는다.


밧줄이 설치되어 있는 작은 암릉을 만난다. 첫 번째 암릉을 지나면 곧 두 번째 암릉에도 밧줄이 설치되어 있는데 오른쪽 사면으로 우회길이 있으나 오히려 우회길이 더 위험해 보인다. 잠시 후 간이 무선 안테나 시설이 보이고 고남산 정상에 다다른다. 첫 번째 암릉에서 고남산 정상까지는 약 5∼6분 정도 소요된다. 정상에는 [고남산(846.4m) / 백두대간] <매요리4.0km / 여원치4.3km / 전북산사랑회>의 스테인레스 정상표식이 있다.



오래 전부터 고남산은 인간의 역사에 깊숙이 관여했다. 한때는 태조봉 혹은 제왕봉이라고도 불렸다고 한다. 고려 말 우왕 6년(1380) 황산대첩 당시 이성계 장군이 이 산에 천제단을 세우고 전승을 기원했는데, 동행한 정도전이 이 산의 기운으로 권세를 널리 펴라 했다고 해서 아랫마을의 이름이 ‘권포(權布)’가 됐다고 한다.
바람도 거세고 빗줄기와 안개 때문에 정상에서 조망과 휴식은 포기하고 기념사진 한 장 만을 남기고 서둘러 걸음을 옮긴다. 
고남산 정상에서 조금 내려서면 산불감시초소와 헬기장이 나온다. 점심을 대신한 떡 한 조각으로 허기를 속인다. 헬기장 왼쪽으로 표지기가 보인다. 조금 진행하자 고남산 송신소의 헬기장이 나온다. 중계소는 대간 능선을 차지하여 길을 없애버렸다. 중계소 철조망을 오른쪽에 끼고 질퍽하여 미끄러운 길을 억지로 내려서니 시멘트도로로 내려온다. 고남산 정상에서 도로까지는 약 5∼6분 정도 소요된다. 왼쪽으로 방향을 잡고 도로를 따라 5∼6분 정도 내려서면 왼쪽으로 등산로 입구가 보인다. 수많은 표지기가 능선길을 가르쳐 준다. 순탄한 등산로가 한동안 이어지고 등로 왼쪽에 삼각점(운봉 403)이 보인다.



삼각점을 지나 약 6∼7분 정도 진행하면 묘지를 지나게 되고 2분 정도 더 진행하면 능선 오른쪽 아래로 벌목지역이 나오며 잠시 시야가 트인다. 벌목지역을 지나 약 6∼7분 정도 내려서면 밭과 농로가 나오고 바로 앞에 농로고개가 보인다. 농로고개 지나며 농로 따라 2분 정도 곧장 진행하면 매요마을의 고개가 나온다.


비가 조금씩 걷히는 와중이어서 그런지 산은 참으로 그 색깔을 선명하게 드러내며 산새에 살포시 걸리어 있는 운해가 너른 품으로 깔려 장관을 연출한다.




왼쪽으로 매요리로 가는 백두대간 능선길이 이어진다. 고남산에서 매요리까지는 1시간이 채 걸리지 않는 편안한 길이다.



백두대간의 등마루에 걸터앉은 매요리는 대간 종주자들에게는 매력적인 쉼터다. 마을 인심도 좋아서 경로당은 곧잘 종주자들의 잠자리로 변하곤 한단다. 마을 끄트머리에서 매점을 하는 칠순의 신순남할머니가 비에 젖은 나그네들을 반갑게 맞이한다.
수돗가에서 등산화와 바지가랑이에 묻은 진흙을 털어 내고 버스에 오르면서 약 5시간의 우중산행은 끝을 맺는다. 시작부터 끝까지 줄기차게 내린 비로 우비를 입었지만 온몸은 흠뻑 젖어 추위가 느껴진다. 버스 히터가 고장이란다. 2호차로 옮겨 후미 일행을 기다리며 휴식을 취한다. 2시간 정도 지나 후미 일행이 도착하고 버스는 대전으로 향한다.


일상적인 삶 속에서 우리는 둘일 때 충돌과 마찰, 그리고 분쟁을 만나게 된다. 나를 둘러싼 것들을 내가 아닌 다른 것으로 생각할 때 그것은 나와의 관계 속에서 희로애락을 만들기도 하고 주체할 수 없는 감정의 요동을 가져오곤 한다. 그러나 있는 그대로 그것을 받아들여 하나가 되면 그 순간 고요하게 평화가 찾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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