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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산행일지

월여산

2004년 5월 14일 (금)

봄 소풍날이다. 남자 고등학교에서 담임이 아닐 때 소풍을 따라가면 점심 굶기가 십상이다. 학생들은 대다수가 자신의 도시락도 지참하지 않기 때문이다. 소풍을 대신하여 특별휴가를 얻어 산행에 나선다.

보조의자까지 부족하여 몇 명의 등산객을 태우지 못하고 8시 정각 시민회관을 떠난 소월산악회 버스는 부사동 인삼센타 앞에서 총무님을 태운다. 8시 30분 남대전 톨게이트 앞에서 자스민님 자매를 태우고 남대전요금소로 진입하여 자욱한 안개 속을 헤치고 달린다. 9시 10분 덕유산 휴게소에서 20분간 정차한다. 자스민님이 반갑게 인사를 청한다. 권사장님이 잠시 산행에 대한 안내 설명을 한다. 9시 55분 함양분기점에서 88고속도로로 진입한다. 소월산악회는 차내에서 노래방 기기는 물론 라디오도 틀지 않는다. 산꾼들을 위한 권사장님의 특별한 배려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은 산꾼들의 요청을 받아들여 예외적으로 라디오를 튼다. 사상 초유의 사건인 대통령 탄핵에 대한 헌재의 판결을 듣기 위해서이다. 모두들 숨죽이며 라디오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결과는 대부분의 예상대로 기각 판정.

10시 15분 그 사이 버스는 거창요금소를 빠져나와 우회전하여 24번 국도를 타고 합천방향으로 향하다 1089번 지방도로로 들어서 차황·가회 방면으로 달린다. 10시 25분 버스는 힘겹게 고개를 오른다. 10시 30분 밤티재를 내려서 5분 정도 달리다 만나는 갈림길에서 우회전하여 59번 국도를 타고 산청방면으로 향한다. 10시 40분 도로 오른쪽으로 담배가게 왼쪽으로 신기교가 있는 삼거리에 닿는다. 왼쪽 신기교를 건너 구사리 원평 마을 표지석 앞에서 하차한다. 시멘트 포장된 농로를 따라 농가를 지나 10분 정도 걸으면 정면으로 큰 정자나무가 나온다. 바로 옆에는 원만저수지가 있고 둑길을 5백여m 더 걸으면 또 다른 정자나무가 보이는데 바로 원만 마을이다. 현재는 다 허물어진 돌담만이 길손을 맞이한다. 11시 정각 시멘트 포장 농로가 끝나고 길은 밤나무밭을 지나 마을 끝 계곡으로 이어진다. 계곡은 옥처럼 맑은 물이 흐르고 있어 보기에도 시원하다. 오른쪽으로 계류를 건너 숲 속으로 접어들면서 본격적인 등산로가 이어진다. 가파른 오름길이다. 

11시 20분 묘지가 있는 안부에 도착한다. 넓은 공터 가운데에 있는 무덤이 눈길을 끈다. 무덤을 향해 7개 바위가 마치 병풍을 두른 듯이 자리하고 있다. 

바위에 올라서면 조망이 훌륭하다. 정면으로 암봉 3개로 이뤄진 월여산 정상부가 한눈에 들어온다. 바위 옆으로 작은 나무들이 절벽과 멋진 조화를 이뤄 밑에서 쳐다보면 절경이다. 

11시 25분 능선을 따라 오른다.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조금씩 고도를 높인다. 이 능선길은 소나무 숲으로 이루어져 솔밭사이로 걸으니, 간간이 부는 바람이 얼굴을 스치면서 신선함을 준다. 12시 두 손으로 바위를 잡고 암릉을 기어오르면 멎진 풍광이 펼쳐진다. 

12시 15분 가지를 부챗살처럼 펼친 외딴 소나무 아래에 삼각점(거창 316)이 박혀 있는 정상에 도착한다. 경남 거창군 남쪽 지맥에 우뚝 솟아 있는, 해발 8백62m인 월여산은 무학대사가 금학포란의 형이라 하여 예로부터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으며, 옛날 이곳 주민들이 이 산에 올라 달맞이를 했다하여 월영산(月迎山)으로 불리기도 했고, 정상이 3개 암봉으로 이뤄져 삼봉산(三峰山)으로 불리기도 한다. 조망은 막힘이 없다. 북서쪽 사천천 건너로는 송신탑을 머리에 이고 있는 감악산이 하늘금을 이루고, 감악산에서 오른쪽 아래로는 마치 분화구를 연상케 하는 원평마을과 신기마을이 평화롭게 내려다보인다. 
 
신기마을 위 밤티재능선 너머로는 오도산, 비계산, 의상봉이 시야에 들어온다. 의상봉 능선 너머 멀리로는 수도산과 가야산이 하늘금을 이룬다. 12시 20분 월여산 제2봉에 도착한다. 하얗고 깨끗한 화강암들이 여러 형태를 이루고 있다. 

동쪽으로 피라미드처럼 우뚝 솟은 소룡산, 악견산, 금성산이 은빛 출렁이며 거울처럼 빛나는 합천 호반과 함께 시야에 들어온다. 남으로는 떡갈재 방면 깊고 긴 계곡 너머로 황매산이 마주 보인다. 

2봉에서는 서쪽 정상과 거대한 수석처럼 아름다운 3봉도 보이기 때문에 경치가 가장 빼어난 곳이다. 잇몸에서 이빨이 돋아나듯 바위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12시 30분 제 2봉을 조심스레 내려섰다 오르면 제 3봉에 도착한다. 

바윗길은 조금 험하고 오른쪽으로 우회하는 길이 있다. 2봉이 분재와 같은 노송과 어우러져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온통 바위로 뒤덮인 3 봉 정상 또한 조망이 일품이다. 2봉과 전망이 비슷하다. 하산은 급경사 바위사면을 조심스레 내려선다. 유난히 소나무가 많이 나타나고 바윗길은 까다로운 곳이 있어 밧줄이 설치되어 있다. 

나뭇가지가 온몸을 스칠 정도로 빽빽하게 철쭉 군락을 이룬 가파른 내리막을 10분 정도 내려오면 수천 평 넓이의 억새군락이 펼쳐진다. 안부에서 햇빛을 피해 나무 그늘에 앉아 도시락을 펼친다. 13시 정각 20분간의 점심 식사를 마치고 길을 재촉한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야생화 군락을 지나면 희미한 등산로가 보인다. 

이 산은 등산객의 출입이 적어 등산로가 희미하고 그로 인해 길 찾기가 쉽지 않다. 이 곳은 취나물 고사리 머우 등 산나물이 지천으로 널려 있어 아주머니들은 산나물 재취에 정신이 없다. 13시 25분 합천이씨 여리산산소입구 표지석을 지나면 짚차가 다닐 수 있는 산판길이 이어진다. 

길옆에서 빨갛게 익은 뱀딸기가 유혹한다. 

12시 30분 갈림길이다. 

왼쪽으로 3채의 페가가 보이는 길로 접어든다. 앞서 가던 선두 일행이 알바하고 되돌아온다. 폐가에서 오른쪽 산길로 들어선다. 하늘을 가리는 송림 터널 속으로 뚜렷한 능선길이 이어진다. 햇볕이 들지 않아 어둠침침한 분위기인 송림 터널 속을 지나 가파른 내림길을 내려서고 계류를 건너는 지루한 하산이 계속된다. 

14시 10분 시멘트 농로와 만나고 농로를 따라 걷는다. 마을 주민한테 물으니 대지리 2구 라고 한다. 유전천을 가로지른 외시2교 다리부터는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이어진다. 감골 내시(안감골) 외시(바깥감골) 표지석을 지나 터벅터벅 포장도로를 따라 걷는다. 

14시 40분 화수당에 도착한다. 원래 청주 곽씨 문중에서 후세 교육장으로 쓰기 위해서 세운 건물로 유전리에 있었는데, 합천댐 공사로 인한 수몰을 피해 이곳으로 옮겨 복원한 것이다. 

14시 45분 지루한 아스팔트 도로 행군을 마치고 유전노인회관 앞에 주차된 버스에 오르면서 산행은 끝이 난다. 간단한 하산주로 갈증을 달래며 산행 후미를 기다린다. 후미가 하산 길에 길을 잃어 1시간 반이 지난 16시가 조금 지나 버스는 대전으로 향한다. 총무님 덕유산 휴게소 한방차 잘 마셨습니다.


디지탈 카메라에 이상이 생겨 앞 부분 사진이 모두 사라져 안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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