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시 35분 어두움이 짙게 깔린 시각 소월산악회 버스에 오른다. 여느 때처럼 권사장님이 반갑게 맞이한다. 7시 20분 3대의 산악회 버스는 대전요금소로 진입하여 경부고속도로를 시원스럽게 35분간 질주하고 천안삼거리 휴게소에서 20분간 정차한다.
다시 왕복 8차선의 곧게 뻗은 고속도로의 버스 전용차선을 거침없이 달린다. 8시 40분 안성분기점에서 새로 뚫린 평택-안성 고속도로(40번 고속도로)로 바꿔 타고 왼쪽 서평택 방면으로 접어든다. 10여분 후 서해안 고속도로 서평택 분기점에서 오른쪽 서울방면으로 접어들어 20분간 달리고 서서울요금소로 빠져나가 곧바로 조남분기점에서 왼쪽 일산방면(100번 고속도로)으로 들어선다. 9시 20분 시흥요금소를 통과하고 9시 35분 김포요금소를 나와 48번 국도를 타고 김포·강화방면으로 향하다 보면 올림픽대로와 만나고 통진과 월곶을 지나 10시 15분 강화대교를 건넌다. 강화와 김포를 가르는 바닷길에는 강화대교가 있어 강화도에서는 '섬'을 느낄 수 없다. 강화읍을 지나 찬우물 삼거리에서 우회전하여 4번 지방도로를 타고 달려 10시 40분 외포리 선착장에 도착한다.
10시 50분 강화도의 끝, 외포리 항구에서 버스에 탄 채 배에 오른다. 배가 시동을 켜니 주위를 호위하던 갈매기들이 반사적으로 튀어 오른다. 배 위에서 새우깡 등을 들고 서 있으면 갈매기가 떼를 지어 달라 들어 새우깡을 낚아 채가는 묘미가 볼만하다. 원을 뱅글뱅글 그리며 과자를 받아먹는 갈매기 떼를 배경으로 여기저기 플래시가 터진다.
외포리 나루에서 페리를 타고 갈매기떼 춤추는 뱃길을 10분 정도 가면 석모도의 석포리 나루에 닿는다. 석모도(席毛島)는 강원도 정동진과 정 반대인 서쪽으로 위도가 같아 서해 낙조 감상지로 손꼽히는 곳이다. 11시 10분 석포리 선착장에서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도로를 따라 넘어가다 등산안내도가 보이는 전득이고개에서 하차하여 산행을 시작한다.
산행코스 : 전득이고개 - 해명산 - 새가리고개 - 낙가산 정상 - 절고개 - 눈썹바위 - 보문사 - 주차장
처음부터 오름길을 쉼 없이 숨가쁘게 10분 동안 올라 전망 좋은 230봉 바위에 선다. 따스한 햇살을 반사하며 손짓하는 바다가 지친 눈의 피로를 씻어준다. 동해 같은 웅장함은 없지만 운치는 서해 바다를 따라 올 수 없다. 점점이 흩어져 있는 자그마한 암초들과 무인도는 절로 경탄을 자아낸다. 이 광경은 일찍이 강화 8경으로 알려졌을 정도로 뛰어나다.
가빠진 숨을 고르며 능선을 탄다. 11시 30분 조각난 바위들이 널려있는 암능을 5분 정도 오르고 잠시 내렸다가 다시 오른다.
11시 45분 해명산(해발 327m) 정상에 도착한다. 낙가산과 상봉산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고 서쪽바다에는 이름 모를 섬들이 아른거린다. 누에고치처럼 나지막이 자리잡은 섬 석모도에는 300m 남짓한 산들이 섬 가운데에 길게 누워있다.
석모도의 주봉은 해명산이지만, 낙가산이 줄기를 같이하는 해명산과 상봉산(316m)에 비해 더 잘 알려진 까닭은 유명 사찰인 보문사가 있기 때문이다. 조그만 해명산 표지가 땅에 박혀있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바다에 떠 있는 섬, 발 아래로 펼쳐지는 산자락과 그 끝자락을 잇고 있는 바다가 육지 산행에서 느끼지 못하는 새로운 느낌으로 다가온다. 뺨을 스치는 시원한 바람이 길동무하면서 이마에 흐르는 땀을 식혀준다. 12시 정각 삼각점이 박혀있는 303봉에 도착한다. 산책로 같은 등산로가 이어지고 길옆에 고인돌이 보인다.
12시 10분 사방으로 확 트여 조망이 좋은 넓은 바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다. 산은 야트막하고 작지만 주변 풍광이 정갈하고 친근하여 산행을 하기엔 안성맞춤이다.
이곳에서 잠시 숨을 돌리고 계속해서 능선길을 걷다보면 산을 완전히 하산하다 시피 내려가는 길목에 왼쪽으로 마을로 빠지는 길이 나온다. 방개고개이다. 방개고개부터 다시 오름길이다. 12시 40분 새가리봉에 도착한다. 마을에서 올려다보면 새의 머리 모양을 하고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12시 50분 커다란 암반에 올라서니 보문사가 한 눈에 들어온다.
정상을 가기 전에 왼쪽으로 보문사로 하산하는 등산로가 나타나는데 이곳으로 하산하면 보문사 정문까지 완전히 하산하게 된다. 주능선에 올라서면 서해의 섬들과 능선상의 높은 봉우리인 상봉산이 다가선다.
능선에는 회백색 넓적 바위인 천인대가 펼쳐져 있으며 서북쪽으로 이어진 능선 끝에는 상봉산이 우뚝 솟아 있다. 천인대는 길이 40m, 폭 5m의 큰 바위로, 이 절의 창건 당시 인도의 한 큰스님이 이 천인대에 불상을 모시고 날아왔다는 전설이 있다. 그 뒤 이 바위는 법회 때 설법하는 장소로 사용되었는데, 이 바위 위에 1,000명이 앉을 수 있다고 하여 천인대(千人臺)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13시 10분 조그만 공동묘지에서는 바다를 배경으로 소나무 한 그루가 자태를 뽐내며 서 있고 그것을 지나 내려서면 절고개이다.
입산금지 표시가 보이고 상봉산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산불감시초소에서 감시원이 하산을 유도한다.
아쉬움을 안고 발길을 돌린다. 눈썹바위가 온 몸을 드러낸다.
뒤따르던 동행 한 분이 낙가산 정상은 보문사로 가는 능선의 반대쪽에 비교적 뾰족한 느낌을 주는 봉우리로 솟아 있다며 안내한다. 낙가산은 관음보살이 상주한다는 보타낙가산의 줄임말이다. 정상에 서면 강화도 마니산과 매음리 염전,주문도가 보인다.
아주머니 한 분이 나의 산행기를 읽었다며 인사를 건네고 떡 한 조각을 주신다. 13시 30분 눈썹바위로 향한다.
낙가산의 보문사, 남해 금산의 보리암, 낙사의 홍련암은 우리나라 3대 관음기도도량이다. 1928년 일명 눈썹바위 아래 암벽에 새겨놓은 높이 9.7m 폭 3.64m의 마애석불좌상(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9호)은 1928년 금강산 표훈사 주지 이화응과 보문사 주지 배선주가 조각한 것이다. 네모진 얼굴에 커다란 보관을 쓰고, 손에는 정병을 들고 연화대좌 위에 앉아 있다. 얼굴에 비해 넓고 각이진 양쪽 어깨에는 승려들이 입는 법의를 걸치고 있으며 가슴에는 만(卍)자가 새겨져 있다. 전체적으로 섬세하나 예술감각이 미약하여 문화재적 가치보다는 성지로서 더 중요시되고 있다고 한다.
13시 50분 마애석불에서 정확히 425개의 계단을 내려오면 석모도의 자랑인 고찰 보문사에 도착한다. 계단 중간에 관음성전계단불사공덕비문이 있다.
신라 선덕여왕 때에 지은 보문사는 야트막한 낙가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다. 극락보전이 있고 왼쪽으로 보문사 석실이 보인다. 커다란 바위 안에 법당을 모신 석굴 암자는 매우 드문 양식으로 입구는 좁지만 법당 안은 호리병 구조로 상당히 넓다.
보문사석실(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27호)은 신라 선덕여왕 4년(635) 회정대사에 의해 창건되고 조선 순조 12년(1812)에 다시 고쳐 지은 석굴사원이다.
천연동굴을 이용하여 입구에 3개의 홍예문을 만들고 동굴내에 감실을 설치하여 석가모니불을 비롯한 미륵·제화갈라보살과 나한상을 안치하였다. 이들 석불들은 신라때 어떤 어부가 고기를 잡다가 그물에 걸린 돌덩이를 현몽대로 안치했더니 부자가 되었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으며, 우리나라 3대 기도 사찰중의 하나이다. 석굴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635년에 삼산면에 살던 한 어부가 바다 속에 그물을 던졌더니 인형 비슷한 돌덩이 22개가 함께 올라왔다. 실망한 어부는 그 돌덩이들을 즉시 바다에 던지고 다시 그물을 쳤지만 역시 건져 올려진 것은 그 돌덩이였으므로 다시 바다에 던졌다. 그러자 그날 밤 어부의 꿈에 한 노승이 나타나서 그것은 천축국에서 보내온 불상인데 그 귀중한 것을 바다에 두 번이나 던졌다고 책망하면서, 내일 다시 돌덩이를 건지거든 명산에 봉안해 줄 것을 당부하였다. 다음날 22개의 돌덩이를 건져 올린 어부는 노승이 일러준 대로 낙가산으로 이들을 옮기는데, 현재의 석굴 부근에 이르렀을 때 갑자기 돌이 무거워져 더 이상은 나아갈 수가 없었으므로, 바로 이곳이 신령스러운 장소라고 생각하고는 굴 안에 단을 놓고 모시게 되었다.
석실앞에 600년 된 인천시 지방기념물 17호인 향나무가 있고, 범종각 쪽으로 300여 년 된 느티나무가 있다. 특히 큰 바위 틈에서 자라고 있는 향나무는 마치 용트림을 하고 있는 듯 기이한 느낌을 주며, 6.25때 죽은 것처럼 보였다가 3년 후에 다시 소생하였다고 한다.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내리막을 걸어 주차장으로 향한다. 14시 10분 낙가산보문사라고 쓰인 현액이 걸린 일주문을 지난다. 깨달음의 세계로 이끌어 주는 문이 바로 일주문. 대개의 경우처럼 목조 건물 형식을 띤 일주문이다.
길 양쪽에 늘어선 식당에서는 아주머니들이 호객하며 손님들을 불러모으느라 정신 없고, 길 한편을 차지한 노점 할머니들과 관광객들 사이에 정겨운 흥정소리가 오간다.
순무김치가 유명하다고 한다. 집사람 생각이 나서 만원짜리 한 통 사들고 주차장으로 향한다. 14시 20분 주차장 끝에서 김치찌개를 끓이던 총무님이 반갑게 맞이한다.
라면 한 그릇으로 점심을 대신하고 버스에 오른다. 버스는 15시 50분 석포리로 향한다. 수많은 차량 행렬로 좁은 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지루한 기다림과 더딘 진행을 반복하고 선착장에 도착한다. 석모도 선착장은 시골 읍내의 풍경이 그대로 펼쳐진다. 버스종점이요, 섬의 시작과 마지막이 공존하는 곳인데, 다시 돌아오기보다는 그대로 지나치는 시골 조그만 읍내의 나른한 오후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