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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산행일지

광양 백운산

2004년 3월 14일(일)

7시 55분 시민회관에서 보조의자까지 꺼내 등산객들을 가득 실은 소월산악회 버스는 부사동을 지나 8시 15분 남대전요금소로 진입하여 대진고속도로를 힘차게 달린다. 오늘부터 시작한 춘계 40일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기 위해 새벽잠을 설친 탓인지 졸음이 밀려온다. 8시 50분 깜박 조는 사이 덕유산 휴게소에 도착하여 20분간 정차하고 다시 대진고속도로를 시원스럽게 달린다. 10시 진주분기점에서 남해고속도로로 바꿔 타고 30여분을 달려 광양요금소로 빠져나간다. 우회전하여 2번 국도를 타고 백운산 이정표를 따라 가다 선동을 지나 진틀에서 등산객을 내려놓는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하차한 곳은 진틀이 아니라 심원마을이다. 11시 겨울잠에서 깬 계곡의 시원한 물소리를 들으며 오름길을 오른다.


한 사람만 오를 수 있는 오솔길이다. 전국 각지에서 몰려 온 등산객들로 지체되어 산행 속도가 늦어진다. 11시 25분 계곡이 멀어지고 길은 넓어지면서 오름 속도가 빨라진다. 11시 35분 산 중턱에 앉아 물 한 모금으로 타는 목마름을 달래고 매우 가파른 부드러운 흙길을 오른다. 바람 한 점 묻어나지 않는다. 코가 땅에 닿을 정도로 가파르고 건조한 날씨 탓에 메마른 땅에선 먼지가 풀풀 날린다. 11시 50분 안부에 도착하여 배낭을 벗고 잠시 휴식을 취한다. 소나무라고는 보이지 않는다. 활엽수의 숲은 나목 숲으로 변하여 단조로운 색깔을 보이고 있다. 오른쪽으로 오름길이 계속 이어진다. 무거운 발걸음을 옮긴다.

12시 10분 안부에 도착하니 독경소리가 은은히 들린다. 개념도상의 상백운암에서 들리는 소리로 짐작되지만 나무에 가려 절은 보이지 않는다. 해발 900m에 자리잡은 백운암은 통일신라 때 창건된 것으로 추정되며 도선국사가 수도했던 도량으로 알려져 있다. 여러 차례 중창을 하였지만 1948년 여순반란 당시 불타 없어진 것을 1963년 송광사의 구산스님이 오늘의 모습으로 복구해 놓았다 한다. 선동마을에서 올라오는 길은 이곳 백운암에서 만난다. 새 소리와 바람 소리를 들으니 새싹이 움트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따스한 봄 햇살이 포근함을 가져다 준다. 고개를 드니 정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북적대고 오른쪽으로 보이는 억불봉과 정상 왼쪽의 신선대에도 등산객들의 모습이 보인다. 원래 산행코스는 진틀에서 병암폭포를 거쳐 신선대-백운산 정상- 상백운암-백운사-선동마을로 잡고 산행을 시작하였는데 하차를 잘못하여 산행 시작이 진틀이 아닌 심원에서 시작하여 능선을 타고 상백운암 위 1100봉을 향하고 있다.


묘지 1기가 보이고 산죽나무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편안한 길을 10여분 동안 걷는다. 길은 조금씩 경사를 더해가며 호흡을 거칠게 하고 이마에 맺힌 땀을 흐르게 한다. 12시 35분 이정표가 서 있는 갈림길을 만난다. 이정표에는 백운사 1.0km 백운암 0.5km로 쓰여 있다.


산비탈에는 가는 겨울을 아쉬워하는 잔설이 희끗희끗하다. 12시 40분 곧 주능선에 올라서자 헬기장이다. 북쪽으로 정상이 가깝다. 남동쪽으로 우뚝 솟은 억불봉이 멀리 바라보인다. 북서쪽의 또아리봉과 도솔봉도 의젓하다. 억불봉까지는 5km이다.


헬기장에 세워진 백운산 등산 안내도를 보고 산행코스를 정정한다. 백운산정상을 거쳐 신선대까지 가서 진틀로 내려가기로 한다.


수 많은 등산객들이 헬기장 곳곳에서 점심식사를 하느라 장터를 발불케 한다. 12시 55분 두 번째 헬기장에 도착한다. 이곳도 수많은 등산객들이 점심식사를 하느라 발 디딜 틈이 없다. 정상이 코앞에 보인다.


13시 상봉 바로 밑 삼거리에 도착한다.


병암계곡으로 해서 진틀로 빠지는 안부이다. 곧바로 정상에 도착하니 정상에 솟아있는 바위는 오를 엄두가 나지 않는다. 좁은 암봉에 수 십 명의 사람들이 서로 엉켜 사진을 찍기 위해 붐 비는 모습이 위험하다.


지리산 연봉들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바람이 세차게 불어 얼굴을 할퀴고 스쳐 지나간다. 함께 정상에 오른 일행한테 정상 표지석을 차지하고 기념사진을 부탁한다.


한반도의 남단 중앙부에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지리산과 남북으로 마주하고 우뚝 솟은 해발 1218m의 백운산은 광양시의 옥룡면, 다압면, 봉강면, 진상면에 걸쳐있다. 주봉을 중심으로 북서쪽으로 또아리봉과 도솔봉, 동으로 매봉, 남동으로 억불봉에 이어지는 큰 산줄기는 자못 웅장한 산세를 이룬다. 백운이라는 이름을 가진 산이 많다. 그 중에서 "흰구름 산"이라는 이름 값을 제대로 하는 산이 바로 함양의 백운이다. 높이도 1,000m가 훨씬 넘는 준봉인데다 산정에서의 조망도 으뜸이다. 남도의 명산들이 동서남북 어떤 방향에서든 거칠 것 없이 한눈에 들어온다. 천왕봉에서 반야봉, 노고단까지 동서로 길게 이어지는 지리산의 주능선은 한편의 파노라마다. 굽이굽이 흘러가는 섬진강의 모습은 한 폭의 아름다운 산수화다.


한재쪽 신선대로 이어지는 아기자기한 암릉은 백운산이 보여주는 또 다른 멋이다. 13시 20분 신선대로 향한다.


철계단을 내려서 양지 바른 곳에  자리잡고 바위에 걸터앉아 점심식사를 한다. 식사를 마치자 옆에서 같이 식사하던 낯모르는 부부가 커피를 한잔 건넨다. 정말 향과 맛이 좋은 커피였다. 산에 다니면서 세상에는 참 좋은 분들이 많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13시 40분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서둘러 신선대로 향한다.


곧바로 진틀 3.3km라는 이정표를 지나 길 막아선 커다란 암봉을 뒤로 돌아 두 번의 철계단을 오르니 신선대이다.


정상석 대신 묘지가 있고 사방이 탁 트이고 사람들이 적어 정상보다 훨씬 여유롭게 사방을 조망할 수 있다. 지리산 형제봉 아래의 악양벌판이 널찍하다. 서쪽 아래로는 구불구불 이어지는 답곡십리 계곡과 마을들이 내려다보인다. 북쪽 끄트머리에는 넉넉한 덕유산이 태평스레 앉아 있고 그 너머에 황석, 거망, 월봉산이 줄기를 뻗대고 있다. 금원 기백도 가까이 보이고 동북 방향 멀리로는 수도, 가야, 황매산도 가물거린다. 이렇듯 백운산은 명산에 둘러싸여 명산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이 지방 최고의 진산이다. 구름을 이고 우뚝 솟아있는 정상이 손에 잡힐 듯 매우 가깝게 보인다.


14시 15분 신선대에서 내려 한재 2.2km 진틀 3.2km 이정표가 서 있는 갈림길에 도착한다.


가파른 내림길이다. 200m 마다 진틀까지의 거리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서 있다.


14시 35분 진틀 삼거리에 도착한다. 신선대 1.1km 정상 1.3km 이정표가 서 있는 갈림길이다.


왼쪽으로 시원한 물소리 들리는 계곡을 끼고 너덜지대를 지난다. 14시 50분 무릎 시큰거리게 하던 바윗길은 끝나고 무엇 때문이지 모를 철조망이 쳐져 있는 길을 따라 내린다. 15시 고로쇠약수 판매라는 표시가 붙은 민가가 한 채 보이고 계곡에선 산행에 지친 발을 담그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피로를 풀고 있는 산꾼들의 모습이 보인다. 조금 더 내려서 계곡이 끝나는 지점에서 흐르는 계곡 물에 등산화에 묻은 흙과 먼지를 털어 내고 잠시 쉬어간다. 15시 15분 콘크리트로 대충 만들어진 다리로 계류를 건넌다. 봄을 캐는 아낙의 모습이 한가롭다.


15시 20분 진틀휴게소가 보이고 진틀 마을을 알리는 표시판과 백운산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보인다.

백운산은 봉황, 돼지, 여우의 세 가지 신령한 기운을 간직한 영산으로 예로부터 광양에는 백운산의 영험한 기운 덕분에 인물이 많이 난다고 알려지고 있다. 특히, 조선조 중종 때의 대학자인 신재 최산두 선생이 봉황의 정기를, 병자호란 직후 몽고국의 왕비가 된 월애부인이 지혜의 동물인 여우의 정기를 타고 난 것으로 전해 오며, 앞으로는 돼지의 정기를 받아 광양 땅에 큰 부자가 나올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15시 25분 산악회 버스에 오르면서 산행은 끝이 난다.

한라산 다음으로 가장 다양한 식물의 종류를 보유하고 있는 백운산은 온대에서 한대에 이르기까지 900여종의 식물이 천혜의 기후여건 속에서 자라고 있으며, 특히 이 산에는 고로쇠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는데, 예로부터 고로쇠나무에서 나온 수액이 만병통치약이라고 하여 경칩을 전후로 하여 많은 사람이 백운산을 찾아온다고 한다. 산행을 마친 산꾼들이 고로쇠물을 한 통씩 사들고 차에 오른다.

 

매화꽃 축제가 열리는 섬진강변 화개장터로 향한다. 전라북도 진안에서 발원한 섬진강은 오백 리를 흘러내려 경상남도 하동 땅에 들어서면서 유난히 고운 모래를 맑게 적시며 흘러간다. 섬진강의 원래 이름은 다사강(多沙江)이었다. 고려 우왕 11년 왜구가 다사강 하구에 침입했을 때 수십만 마리의 두꺼비가 떼지어 몰려와 울부짖자 왜구들이 놀라서 물러갔다고 한다. 이 때부터 사람들은 섬진강(蟾津江)이라 불렀다고 한다. 꽃 축제가 열리는 행사장 도로는 주차장을 방불케 한다. 산중턱에 하얗게 설화처럼 피어난 매화꽃과 노란 산수유꽃을 감상하며 산행에 지친 몸의 피로를 잠시 잊는다.

 

이미 남녘에는 완연한 봄이 진행중이다.
섬진강과 나란히 달리는 861번 지방도 양쪽은 눈이 내린 듯 매화가 꽃망울을 활짝 터뜨린 채 상춘객들을 유혹하고, 온통 붓으로 노란 물감을 칠해 놓은 듯 산수유 꽃이 만개했다. 해발 고도가 높은 지리산 자락 상위마을의 산수유는 꽃망울만 맺었지만 섬진강 주변의 산수유는 벌써 왕관 모양의 꽃을 활짝 피운 채 따사로운 봄볕을 즐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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