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시내를 돌며 보조의자까지 등산객을 가득 실은 소월산악회 버스는 8시 15분 남대전톨게이트로 진입하여 대진고속도로를 10분간 달리고 인삼랜드휴게소에서 20분간을 정차한다. 그 사이 권사장님 핸드폰에는 불이 난다. 이미 빈 좌석이 없어 예정시간보다 빨리 출발했기 때문에 미쳐 승차하지 못한 산꾼들의 확인 전화에 연신 죄송하다는 사과를 한다.
9시 20분경 육십령터널을 통과하고 10분을 더 달려 함양분기점에서 88고속도로로 갈아타고 대구방면으로 향한다. 합천터널과 해인사터널을 차례로 통과하고 10시 10분 해인사톨게이트를 빠져나온 버스는 우회전해서 지방도로를 따라 경남 합천군과 경북 수륜면의 도계인 솔치재를 힙겹게 오른다. 10시 30분 산행 출발 지점인 백운동 주차장에 정차하여 가야산을 오를 산꾼들을 내려 놓는다. 백운동 매표소는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따라 200m 정도 걸어 올라간다.
▶ 산행코스 : 백운동주차장/매표소 → 동성재 갈림길 → 백운동 대피소 → 백운암지 → 서성재 → 칠불봉 → 상왕봉 → 헬기장 → 토신골/극락골(마애불입상) 갈림길 → 마애불 → 극락골 → 토신골/극락골(마애불입상) 갈림길 → 해인사 → 주차장
매표소를 지나서 국립공원답게 돌박아 잘 정비해 놓은 등산로를 따라 서서히 15분 정도 오르면 상왕봉 3.3km 칠불봉 3.1km 안내 표지판이 보인다.
백운1교에서 백운 3교까지 아치형 철교량으로 계류를 건너고 다시 아름다운 2개의 나무교량을 건너면 가야산 유래가 적힌 안내판이 보인다.
유래·전설
가야산은 경북의 서남단에 우뚝 자리잡은 영남의 제일봉으로서 자연경관이 수려하여 예로부터 "조선 팔경의 하나", "해동 제일의 명산"이라고 일컬어진다. 가야산은 6가야국의 주산으로서 正見母主(정견모주)라는 山神(산신-여신)이 상아덤(서장대)에 머물면서 天申(천신 이질하)와 감응하여 두 아들을 낳았는데, 惱窒朱日(뇌질주일)은 대가야 시조 이진아시왕이 되고, 惱窒靑裔(뇌질청예)는 금관가야의 시조 수로왕이 되었다. 가야국 김수로왕은 인도의 아유타국 공주 허왕옥과 결혼하여 10명의 왕자를 두었는데 큰아들 居登(거등)은 왕위를 계승하고 金氏의 시조가 되고, 둘째 셋째 아들은 어머니의 성을 따서 許氏의 시조가 되었다고 하며, 나머지 7왕자는 허황후의 오빠 장유화상을 스승으로 모시고 가야산에서 가장 힘차고 높은 칠불봉 밑에서 3년간 수도한 후 도를 깨달아 生佛이 되었다고 하며, 그 자리에는 칠불암이 있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가야산은 물이 맑고 경관이 수려할 뿐 아니라, 예로부터 三災(화재, 수재, 풍재)가 들지않는 영산으로 전해진다. 이곳부터 길은 울퉁불퉁한 돌길로 경사가 가파라진다. 11시 20분 백운암이 있었던 백운암지를 지나고 11시 35분 안부 쉼터 서성재에 도착한다. 나무 의자에 앉아 배낭을 벗는다. 날씨가 매우 포근하다. 티셔츠 하나만 남기고 자켓과 윈드스토퍼를 벗어 배낭에 집어 넣고, 물 한모금으로 거칠어진 호흡을 달래고 초코렛과 곶감으로 허기를 속인다. 11시 50분 나무계단을 오르고 무너진 산성터 돌덩어리 흩어진 너덜길을 따라 조금 더 오르자 앙상한 나뭇가지 사이로 상왕봉이 눈에 들어온다.
정상까지는 1km. 대부분의 산이 그렇듯이 정상으로 가는 길은 매우 가파라서 쉽게 정복을 허락하지 않는다. 오름길은 더 가파라지고 호흡은 더욱 거칠어지며 턱밑까지 숨이 차 오르지만 힘이 들수록 산행은 더욱 값지고, 산행기는 더욱 자랑스러울 것이기에 그다지 힘이 든다는 생각은 안든다. 두 개의 가파른 철계단을 지나 길을 막은 커다란 암봉을 우회하자 다시 더욱 가파른 철계단이 오를 것을 강요한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한 발 한 발 내딛는다. 12시 10분 암봉에 붙어있는 3단으로 이어진 두 번째 철계단으로 암봉에 오르자 탁트인 시야가 사방을 조망할 수 있으며 칠불봉이 코 앞에 와 닿는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오름길을 재촉한다. 다시 서너번의 가파른 철계단을 오르고서야 드디어 12시 25분 칠불봉(七佛峯 해발 1433m)에 도착한다. 정상석 앞에서 자랑스런 기념 촬영을 마치고 왼쪽 200m 쯤 떨어진 곳에 보이는 상왕봉으로 향한다.
주봉인 상왕봉에서 칠불봉으로 이어지는 톱날 같은 암봉이 마치 병풍을 친 듯 빼어난 풍광을 자랑한다.
능선을 따라 걷다 12시 45분 커다란 두 개의 암봉 틈 사이로 놓여 있는 철계단을 오르자 상왕봉 정상석이 맞이한다. 가야산은 '해동의 십승지(十勝地)' 또는 남쪽의 '금강산'이라고 불리워질만큼 그 수려한 자태를 자랑한다. 철마다 빛깔을 달리하는 활엽수들과 울창한 침엽림이 어울리는 빼어난 명산이다. 옛날 가야국이 있었던 곳이고 이 산이 가야국에서 가장 높고 훌륭한 산이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가야의 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가야산은 소머리 같다 해서 우두산(산 머리의 큰 바위 아래에 소의 코라는 뜻의 우비정이란 샘도 있다) 이라는 이름외에 상왕산, 설산, 중향산 등으로도 불리워졌다. 정상이라 바람이 세차다. 다시 배낭에서 자켓을 꺼내 입고, 정상석을 배경으로 정상 정복의 기념 사진을 남기고 다시 오르던 철계단으로 내려와 바위를 등지고 양지바른 곳에서 점심식사를 한다.
오래전 산행에서 만나 안면이 있는 분이 팥죽을 내주며 먹어 보라고 한다. 13시 15분 오후부터 기온이 뚝떨어진다는 일기예보가 있었는데 점심식사를 마치자 바람이 세차게 불며 추위가 느껴져 하산을 서두른다. 13시 20분 봉천대를 지나 가파른 산길을 내려서고 이어지는 철계단을 내려서면 갈림길이다.
왼쪽으로 숲길을 따라 20여m를 가면 산행에서 자칫 놓치기 쉬운 보물 제 264호 석조여래입상이 서 있다. 목부분이 잘렸고 발과 대좌도 없어져 원형을 잃었다. 현재의 크기는 210cm 정도이다. 균형을 잃은 경직된 자세, 평면적이고 소극적인 조각 수법 등 형식화 경향이 뚜렷한 여래상으로 통일신라말에서 고려시대 초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조여래입상을 보고 되돌아 나와 내림길을 5분여 빠르게 내려오면 헬기장에 다다른다. 이곳부터 산죽나무 숲길에 평지같은 등산로를 0.6km 내려오면 토신골갈림길이다. 13시 50분 오른쪽 마애불 갈림길까지 1.9km는 자연휴식년제 구간으로 2003년 1월 1일부터 2005년 12월 31일까지 3년간 출입이 금지된다. 왼쪽으로 방향을 잡고 나무계단과 잘 정비된 돌계단을 10분 정도 내려와서 만나는 계류를 건너면 오름길이 시작된다. 10분 정도 오르면 해발 960m에 보물 제 222호 치인리 마애불입상이 보인다. 자연석을 이용하여 돋을새김을 한 마애여래상이다. 얼굴은 살이 많이 올라 있으나 이마가 좁고 인중이 짧아 둔중한 느낌이다. 통일신라시대인 9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짐작하며 높이는 5.8m, 너비는 3.1m이다.
이곳에서 치인 집단지구까지는 3.7km 이다. 돌길인 가파른 내림길 왼쪽 극락골 계곡에서 얼음밑으로 흐르는 맑은 물소리가 시원한 청량감을 준다.
14시 40분 뒤따르던 한겨례산악회 백두대간팀들과 잡담을 나누면서 내림길을 함께 하고 계곡을 가로지르는 나무 다리를 건너 마애불 갈림길에 도착한다.
해인사와 용탑선원이 보인다. 용탑선원을 지나 홍제암으로 향한다. 보물 제 1300호인 홍제암은 임진왜란때 승병을 일으켜 나라를 지킨 사명대사가 선조 임금으로부터 하사받아 1608년 창건하여 말년에 수도하다가 입적한 곳이다. 현존 건물은 고박정희 대통령의 특별하사금으로 1979년에 완전 해체 복원한 것이다. 암자 동쪽 잔디밭에는 보물 제1301호인 사명대사 부도 및 석장비가 있다.
빠른 걸음으로 해인사로 발걸음을 돌린다. 15시정각 일주문을 지나자 오른쪽에 자리잡은 고사목이 잠시 걸음을 멈추게 한다.
서기 802년 순응과 이정 두 대사가 해인사를 창건하고 기념 식수한 이 느티나무는 1200년의 장구한 세월동안 해인사와 더불어 성장해 오다가 1945년에 고사하고 지금은 동치만 남아 해인사의 장구한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해인'이라는 이름은 '일렁임이 없는 바다에 만물의 형상이 그대로 비치는 것과 같과 번뇌가 없는 마음에는 만물의 이치가 그대로 드러난다'는 의미라 한다. 봉황문과 해탈문을 차례로 지나 경내에 들어서면 중앙에 3층석탑과 석등이 보이고 그 뒤로 대적광전이 보인다.
대적광전은 부처가 설법한 진리가 태양처럼 우주에 가득 비추는 것을 형상화한 '비로자나불'을 모신 법당이라 한다.
우리나라 3보 사찰중 하나인 가야산 해인사는 불교의 성지이다. 조선시대 강화도에서 팔만대장경을 옮겨온 후 불보사찰 통도사, 승보사찰 송광사와 함께 법보종찰로서의 명성을 얻게 된 것이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로다』 해인사는 백련암에서 수도했던 성철스님으로 말미암아 더욱 유명하다.
대적광전 뒤로 돌아서면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장경판전(국보 제52호)에 오르는 계단이 보인다.
8만여장의 대장경을 보관하고 있는 장경판전은 고려시대에 지은 건물로 해인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앞면 15칸 옆면 2칸 크기의 두 채를 나란히 배치하고 양쪽에 작은 서고를 배치하여 전체적으로 장방형으로 되어 있다. 앞쪽 건물은 수다라장이라하고, 뒤쪽 건물은 법보전이라 부른다. 대장경판의 보존 기능을 위해 건물의 장식을 전혀 하지 않았고, 내부의 흙바닥에는 숯, 횟가루, 소금 등을 모래와 함께 층으로 다져 습기를 흡수하도록 하였다고 한다.
국보 제 32호 팔만대장경은 준비기간까지 총 16년에 걸쳐 판각하였는데 현존하는 세계 최고(最古)의 대장경이다. 이 대장경판은 장경판전과 함께 1995년 12월 9일 유네스코에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하여 보호되고 있다.
대장경판과는 별도로 고려시대 사찰에서 새긴 승려들의 개인문집과 불경 등의 목판인 국보 206호 고려각판이 보관되어 있는 판고를 지나서 밖으로 나오면 학사대전나무가 눈길을 끈다.
높이 30m, 둘레 5m 쯤 되는 수령 1000년이 넘는 고목이다. 최치원이 말년에 가야산에 은거할 때 찾았던 곳으로 최치원의 벼슬 한림학사에서 따온 이름이라한다.
일주문을 나오면 영지(影池)라는 연못이 보인다. 허황후가 자기의 일곱왕자가 수도하고 있는 칠불봉이 그림자져 비치는 이 연못에서 그림자만 보고 그리움을 달랬다는 전설이 전한다.
주차장으로 발길을 옮기다 보면 보물 제128호 원경왕사비와 성철스님사리탑, 그리고 자장율사 사리탑비가 길 왼쪽에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치인리 집단 시설 지구를 지나 16시 정각 산악회 버스에 오르면서 산행은 마무리된다. 김치찌개를 안주삼아 하산주를 하고 버스는 홍류동 계곡을 빠져나와 귀가길에 오른다. 가을의 단풍이 너무 붉어서 계곡의 물이 붉게 보인다 하여 홍류동이라 불리어 웠고 여름에는 금강산의 옥류천을 닮았다 해서 옥류동으로도 불리운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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